물안개 피어오르는 사양저수지 … 신비로운 마이산의 두 바위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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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피어오르는 사양저수지 … 신비로운 마이산의 두 바위 봉우리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3.11.0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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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전북 진안 사양동 사양저수지

 

마이산은 꽃봉오리처럼 벌어져 있다. 그것은 물속에 잠기어 하나의 커다란 꽃 같기도 했고 아이가 신중하게 접은 나비 같기도 했다. 저수지는 생각보다 작았다. 마이산을 담은 수조라 할만 했고 혹은 그의 명경인가도 했다. 분수는 분수도 모르고 자꾸만 꽃잎을 흩트렸다. 해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 먼지 같은 햇살을 뿌리고 있었는데, 산봉우리에서 미끄러진 햇살은 저수지의 서안으로 쏟아졌다. 그곳에는 하얀 살로 피어난 갈대와 바짝 마른 몸의 포도나무들, 노랑과 주황의 활엽수들, 그리고 지붕이 뾰족한 소설 같은 집이 마른 수풀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가뭇없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가을 오후였다.

 

마이산이 고스란히 담긴 사양저수지. 1962년에 준공된 농업용 저수지로 부유식 데크 산책로, 분수, 구름다리 등이 조성되어 있다. 

마이산의 북쪽 아래 단양리 사양동에 사양 저수지가 있다. 1957년에 착공, 1962년에 준공되었다. 사양제(斜陽堤), 단양제(丹陽堤), 사양동 방죽이라고도 부르는데 ‘사양’은 ‘햇볕이 비켜간다’는 뜻이다. 북쪽으로 트인 골짜기라 빛 드는 시간이 짧았나 보다. 사양이라 할 만큼 짧은 태양의 하루이지만, 사람들은 해질 무렵 서산에 걸쳐진 햇빛이 마을에 비칠 때면 참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하여 ‘사양낙조(斜陽落照)’라 추앙했다. 하루 일을 끝낸 골짜기 사람들과 그들의 얼굴을 물들이는 석양빛이 떠올라 마음이 부푼다. 사양제 둑 사면에 한 여인이 포복해 있다. 급할 것 없는 평온한 오체투지의 끝에 들어 올린 얼굴이 맑다. “그게 뭔가요?” “고들빼기. 야생 고들빼기.” 아, 나는 그 맛을 모른다.

 

사양제 둑길에 바람개비가 팽팽 돈다.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용왕제를 지냈으며 제방에 오방기를 세우고 호롱불을 켜고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정오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사양제 둑길에 바람개비가 팽팽 돈다. 코스모스는 모두 졌다. 벤치들은 파란 파라솔을 쓰고 세상 한량인 모습으로 앉아 있고 한 사내가 벤치를 쓱 닦으며 지나간다. 연인이 둑길을 걷는다. 멀리서 개가 짖는다. 분수가 하늘을 향해 물을 뿌린다. 수면에 떠 있는 데크 산책로가 슬쩍슬쩍 들썩이고 물에 잠긴 마이산이 파르르 몸을 떤다. 1억 년 전 즈음 진안고원은 호수였다. 호수로 쓸려온 모래와 자갈 따위가 물속에서 쌓여 2000m 두께의 역암층이 되었고 7000만 년 전 쯤이 되었을 때 땅이 크게 흔들려 역암층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것이 마이산이다. 두 봉우리 중 풍만한 쪽이 암마이봉(해발 686m), 뾰족한 쪽이 수마이봉(680m)이다. 암마이봉 정상에서 쏘가리를 닮은 민물고기와 다슬기의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단다. 사양제의 물은 마이산에서 온 것이다. 물에 잠긴 마이산이 태초의 시간처럼 준동한다.

 

누각에 올라 미로공원을 내다본다. 단풍든 숲이 희부윰하고 연인의 길이 얼핏 보인다.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은 조금 떨어져 아무도 모르게 손 꼭 잡은 듯하다. 

마이산은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 조선 초기에는 속금산으로 불리다 태종 때에 이르러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두 봉우리의 모양이 말의 귀(馬耳)를 닮았다 해서 마이산이다. 계절마다 이름도 다르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대를 닮아 ‘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 같다 해서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다. 특히 노령산맥은 용의 몸, 진안고원은 용의 머리, 마이산은 용의 뿔과 같다 하여 용각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래선지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용왕신에게 제를 모셨다고 한다. 일 년에 두 번 음력 정월과 7월 백중날에 제방에 오방기를 세우고 4개의 호롱불을 켜고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정오에 제를 올렸다. 그리고 정월 초하루부터 초나흗날까지 밤마다 불을 밝혔다. 그들은 이렇게 기원했다. ‘진안군 진안읍 사양동 마이산의 밑의 제방이옵나이요. 어찌든지 금년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일 무사고로 댕겨주시라고 금일 정오에 이렇게 바치오니 반갑게 받아주시고 반갑게 놀아주시기를 .....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집안에 어찌든지 정월 초하루부터 그믐날까지 무사고로 댕겨주시라고....’ 그들은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안녕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저수지 아래 아마도 옛날에는 논밭이었을 골짜기 땅은 지금 ‘마이돈테마파크’다. 진안은 흑돼지가 특산물이고 상표는 ‘마이돈’이다. 공원 곳곳에 돼지 모형이 놓여 있다. 
사양제 아래 마이돈 테마파크 광장. 이곳에서 홍삼축제가 열린다. 도로 위 하늘다리를 건너면 진안역사박물관과 미로공원에 닿는다. 

사양제 주변에는 진안홍삼스파, 산약초 타운, 역사박물관, 미로공원, 가위박물관, 연인의 길 등 진안의 대표 관광시설이 밀집해 있다. 이곳은 2013년 7월, 전라북도 동부권 신발전 지역 투자 촉진 지구로 승인 받아 마이산 북부 예술관광단지로 거듭났다. 저수지 아래, 아마도 옛날에는 논밭이었을 골짜기 땅은 지금 ‘마이돈테마파크’다. 진안은 흑돼지가 특산물이고 상표는 ‘마이돈’이다. 공원 곳곳에 돼지 모형이 놓여 있다. 이곳에서 진안 홍삼축제도 열린다. 홍삼 역시 진안이 특산품이다. 공원 아래는 음식점 거리다. 돼지를 테마로 조성되어 곳곳에서 웃는 돼지 얼굴과 마주친다. 그 아래 골짜기 입구 쪽에는 산약초 타운과 홍삼한방타운이 널찍하게 자리한다. 마이돈테마파크 광장에서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면 진안역사박물관이다. 2006년에 문을 연 박물관은 구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진안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용담댐 건설로 사라진 마을들과 이주민, 실향민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박물관 뒤편에는 미로공원이 있다. 쉼터이자 전망대인 누각에 오르면 미로가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마이산이 귀를 쫑긋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연인의 길 입구. 길은 1.9㎞로 마이산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 갈라지는 곳까지 연결되며 전기차인 ‘마이열차’를 운영하고 있다. 
진안역사박물관. 2006년에 개관했으며 진안의 역사와 용담댐 건설과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양제 앞에는 마이산으로 향하는 ‘연인의 길’이 있다. ‘마이산 구 도로’라 불렸던 이 길은 과거 마이산 중턱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2002년 경 ‘연인의 길’로 개칭되었고 북부 진입로 중 한 구간이 되었으며 지금은 차량을 통제하여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길은 약 1.9㎞로 마이산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 갈라지는 곳까지 연결된다. 단풍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길이어서 가을이 특히 아름답지만 봄에도 연초록과 들꽃으로 가득하다. ‘마이열차’라는 전기차도 운행하고 있다. 길 끝인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에서는 작은 샘물이 솟는다. 그 물이 이곳 사양제를 채우고 진안천이 되었다가 금강이 된다. 멋지다. 누각에서 미로공원을 본다. 그 뒤로 단풍든 숲이 희부윰하다. 숲으로 드는 연인의 길이 얼핏 보인다. 조선시대 학자 김종직은 '아름다운 봄 죽순 같은 자태를 / 서로 사랑할 뿐 기댈 수는 없구나'라고 노래했지만,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은 아무도 모르게 손 꼭 잡은 듯하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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