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규와 후스(胡適)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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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규와 후스(胡適)의 만남
  • 박영환 동국대·중국고전문학
  • 승인 2023.11.0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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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에세이]

 

필자는 2023년 3월부터 동년 8월까지 하버드 옌칭학사에서 연구할 기회가 있었다. 2019년에 이어 두 번째의 방문이었다.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한국 고대 불교 귀중본 유입과정과 그 불서 특징을 분석하는 것이 주된 연구 목적이었다. 6개월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유의미한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2019년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한국 불서 귀중본을 쫓아가던 중 뜻밖에 한국 대표적인 (불교)사학자이자 서지학자, 국학대가인 서여 민영규 선생(1915-2005)을 만나게 되었다. 적지 않은 한국불교 귀중본에서 민영규 소장인과 제첨, 지어(識語)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버드 옌칭학사를 매개체로 1954년 12월 민영규와 중국 석학 후스의 만남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하버드대학 옌칭학사에서 후스의 강연을 들은 뒤, 윌리엄 홍 교수 집에서 개인적으로 만난 두 사람은 1962년 후스 사망 때까지 돈독한 학문적인 인연을 이어갔다. 이러한 두 석학의 만남은 현대 한중학술교류사에 있어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 만남은 중국 국공내전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하버드 옌칭의 연구기금이 중국 베이징에 있던 연경(燕京)대학(현재 북경대학)에 지급되었는데, 국공내전으로 인하여 이 기금의 사용처가 사라지게 되었다. 당시 연희대학 백낙준 총장이 옌칭학사 책임자인 세르쥬‧엘리세프 교수에게 적극 요청하여 1953년 7월 연희대학에 기금이 지원되었다. 이에 따라 옌칭학사와 연희대학이 인연을 맺게 되고, 민영규 선생은 1954년 9월부터 1955년 8월까지 연경학사 객원연구원으로 하버드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 연구과정 중, 민영규 및 후스와 관련된 서신 7통을 확보하게 되었다. 7통에 불과한 서신이지만, 1950년대 중반 두 석학의 직접적인 교유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1차 자료였다. 특히 후스와 민영규 간의 교유상황에 대한 기존연구가 거의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민영규 스스로가 언급하였듯이 하버드에서 후스와의 만남은 자신을 ‘초기 선종사와 신라불교의 성격 규명’에 본격적으로 매진하게 만들었다. 서신을 보면, 그는 후스의 선종사연구, 즉 중국 선종사 핵심인물 마조가 신라왕자 출신 무상無相의 직계 제자라는 후스 주장에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좌) 을미년(1955) 元旦에 민영규가 윌리엄 홍 하버드 교수에게 보낸 연하장에 찍힌 서여 민영규 선생의 낙관이다; (우) 후스 비석: 하버드대 와이드너(Widener)도서관 서쪽에 위치한 이 비석은 1936년 하버드 개교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 출신 하버드 동문들이 기증한 것이다. 비문은 당시 베이징대학北京大學을 대표하여 기념식에 참석한 후스胡適 선생이 미국과 중국의 '학문중시' 전통을 강조한 내용으로 해서체로 기록하고 있다.

동시에 그를 도와 한국에서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당시 국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조당집祖堂集》 마이크로필름을 후스에게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도왔다. 1960년과 1961년 연세대학교에서 거교적으로 추진한 후스의 한국 방문 목적이 한국과 중국 선종 법맥에 대한 연구를 진일보 발전시킬 목적과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후스의 갑작스런 병환으로 결국 그의 방한은 이뤄지지 못하게 된다. ‘호적 선생이 떠나신 뒤 서여 선생은 당신의 과제를 한시도 잊지 않았다.’라는 서여 제자 조흥윤 회고를 통해서 두 사람의 만남이 이후 민영규의 한국불교사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증명하고 있다. 한국선종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선종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 노력하는 두 사람 학문적인 열정이 고스란히 그들의 서신에 묻어나고 있다. 

게다가 논거와 실증을 통해서 기존 학설과 사료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대담한 가설, 세심한 고증과 재해석이라는 후스의 연구방법론은 그대로 민영규에게 계승된다. 후스의 주장을 계승하여 민영규가 선종법맥에 관한 재해석을 다룬 《사천강단》, 1680년 일본 조동종에서 간행한 쿄토대학 소장의 《중편조동오위》가 일연의 저술임을 밝혀낸 것이 바로 이러한 연구방법론에 근거한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예수생애를 새롭게 재해석한 『예루살렘입성기』, 양명학 명맥을 체계적으로 밝힌 《강화학 최후의 광경》도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1961년 3월 후스의 한국 방문소식을 기다리던 민영규는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낸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이곳에서 10마일 정도 떨어진 산에서 진달래 60그루를 가져와 도서관 주변에 심었습니다. 4월이 되면 우리는 꽃구름 속에 있을 것입니다.

후스 한국 방문의 마중물로 민영규는 진달래 60그루를 정성들여 연세대학교 도서관 주변에 심었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뒤 후스가 심장병으로 쓰러졌다는 편지를 타이완으로부터 받게 된다. 결국 민영규가 심었던 진달래를 보지 못하고 다음 해 후스는 세상을 하직한다.  

지금은 진달래를 심은 민영규도, 민영규가 심었던 진달래도, 일대의 석학 후스도 사라지고 없다. 다만, 그들이 남긴 뛰어난 학문적 업적만이 깊이 뿌리내려 대대로 계승될 뿐이다. 1954년 12월, 하버드 옌칭에서 두 석학의 우연한 만남은 이렇게 한국불교사 연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된다.

 

박영환 동국대·중국고전문학

동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시아해양문명&종교문화연구소 소장, 베이징어언대학 객좌교수이다. 하버드대학 옌칭학사 Visiting Scholar, 동아인문학회 부회장, 동서비교문학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분야는 중국 송대시가와 선종, 동아시아 종교문화교류, 근현대한중문화교류이다. 주요 저서로 『송시의 선학적 이해』, 『소식선시연구』, 『문화한류와 중국과 일본』, 공저로 『송대시인과 시가』, 『불교와 행복』, 『고전의 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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