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민주주의의 양상과 전개: 정부 형태, 정당 체제, 법의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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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민주주의의 양상과 전개: 정부 형태, 정당 체제, 법의 지배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11.02 0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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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18강_ 김비환 성균관대 교수의 「현대 민주주의의 양상과 전개: 정부 형태, 정당 체제, 법의 지배」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오늘의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추이를 점검해보는 세 번째 섹션 ‘오늘의 정치와 경제’ 제18강 김비환 교수(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현대 민주주의의 양상과 전개


김비환 교수는 “현대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상황”이 “중국, 러시아 및 다른 권위주의 국가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어온 반면, 공고화된 민주주의에서는 민주적 가치와 규범에 대한 지지가 약화되면서 민주주의의 침식이 일어나고 있는 형국”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대하여 이처럼 “민주주의가 지구적 차원에서 전반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양상과 원인”을 간략히 설명한 다음 “민주주의의 침식이 정부 구조, 정당 제도, 그리고 법의 지배와 같은 제도적 요인들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를 분석”해본다. 먼저 오늘날의 “정당은 사회를 통합하기는커녕 극단적으로 분열시키고, 그런 분열을 이용하여 지지자들을 규합함으로써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며 여러 연구들이 엇갈린 결론을 도출하고 있긴 하지만 “권력 분립 원칙과 엄격한 임기제를 특징으로 하는 대통령제 민주주의가 내각제보다 상대적으로 더 불안정”해 보이고, 법의 지배 또한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메커니즘을 통해 교묘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무력화하거나 형해화하는 데 악용되는 경향이 발견된다”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9월 23일, 김비환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18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들어가는 말

현대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상황은, 중국, 러시아 및 다른 권위주의 국가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어온 반면, 공고화된 민주주의에서는 민주적 가치와 규범에 대한 지지가 약화되면서 민주주의의 침식이 일어나고 있는 형국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이런 상황 인식은,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퇴조를 막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국제적인 공조를 강화하고, 각국이 민주적인 법과 제도를 재정비하여 대처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국내적 차원에서는 오늘날 정당은 사회를 통합하기는커녕 극단적으로 분열시키고, 그런 분열을 이용하여 지지자들을 규합함으로써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정부 구조와 법의 지배 역시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와 관련되어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대통령제 민주주의와 대의제 민주주의 중 어느 것이 더 민주적 안정성을 담보하는 데 유리한지에 대해 권위 있는 연구들도 엇갈린 결론을 도출하고 있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주의 후퇴 현상을 두고 볼 때 (저는) 권력 분립 원칙과 엄격한 임기제를 특징으로 하는 대통령제 민주주의가 내각제보다 상대적으로 더 불안정하다는 평가에 동조하는 편이다. 

다른 한편으로, 현대 민주주의에서 법의 지배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메커니즘을 통해 교묘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무력화하거나 형해화하는 데 악용되는 경향이 발견된다.

 

2. 정부 형태의 문제

대통령제에 내재하는 제도적 약점은 대통령 1인의 인격적ㆍ능력적 약점과 역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민주주의의 붕괴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 오늘날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주주의 후퇴 현상이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체이법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처한 특유한 상황이 대통령제뿐만 아니라 의회제 민주주의마저도 위태롭게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하는바, 대통령제가 의원내각제에 비해 특별히 취약하다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민주주의 후퇴 패턴을 200년 이상 대통령제를 채택해온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특히 대통령제는 현대 민주주의의 제도적 근간인 정당의 기능 상실과 공명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급속한 후퇴나 침식을 가속화할 수 있다. 

 

3. 정당 제도

정당의 역할과 관련하여 몇 가지 결론을 도출해볼 수 있다. 첫째, 정당은 민주적 가치와 규범을 수호하는 문지기 역할을 제대로 회복할 필요가 있다. 둘째, 도덕적ㆍ종교적인 언어를 통해 상대방을 악인과 죄인 혹은 국가와 민족의 배신자로 정죄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상대방을 동등하고 존중해야 할 경쟁자 혹은 협력자로 인정하는 태도를 배양하고 습관화해야 한다. 

선거 경쟁의 결과가 승자독식이고, 따라서 패자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극단적인 제로섬 게임의 정치 구조에서는, 정치가 모든 수단을 동원한 극단적인 전투 활동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우리 당이 지더라도 다음 선거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권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유지할 수 있을 때, 비록 선거에서는 졌으나 모든 권력을 다 잃지는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선거의 승자가 우리를 억압하여 다음에 치러질 선거 결과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 선거에서 진 정당은 선거 결과에 기꺼이 승복하게 되며, 민주주의의 장기적 안정성이 담보될 수 있다. 

새로운 집권 세력이 교묘하고 은밀한 방법으로 다음에 치를 선거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공작을 벌이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 때, 야당과 그 지지 세력들은 선거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음을 기약하며 준비할 수 있다. 여기에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도 어느 정도 권력을 공유할 수 있는 정치 제도나 문화가 갖춰질 경우 경쟁과 협력, 합의와 타협에 의한 민주 정치가 공고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제도를 창안하고, 상대방에 대한 ‘경합적 존중’의 태도를 함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방지하는 것을 넘어 민주주의의를 공고히 하고 질적으로 심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4. 법의 지배

첫째, 정치 사법화로 법 체계와 법원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고, 현대 사회의 사회ㆍ경제ㆍ문화적 갈등을 효율적으로 조정하거나 해소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정치로 인해 (정치적 문제를 혹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법원으로 떠넘김으로써)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추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둘째, 타협을 통한 민주화로 생존을 보장받은 과거 권위주의 체제의 기득권 정치인들이 (소위 민주화 세력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민주적 절차보다는 법원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정치 문제를 사법부로 이관함으로써 정치의 사법화를 촉진한바, 법조계의 보수적인 의식과 문화가 사법에 의한 민주주의의 침식을 지원할 수 있다. 

셋째, 법의 지배는 결국 판사들의 ‘양심’을 매개로 해서만 구현될 수 있는데, 판사들의 개인적 신념과 가치가 사법을 정치의 장으로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 된다. 

넷째, 적어도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는 사법 정치화 현상이 강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당분간은 사법이 정치적 갈등의 중요한 영역이 될 공산이 크다. 

다섯째, 정치 사법화/사법 정치화가 역사적ㆍ사회적 조건의 불가피한 귀결이고, 정치인과 법조인들 또한 개인적인 신념과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 법의 지배를 객관적인 정의를 실현하는 초정치적인 영역으로 신성시하는 태도는 매우 천진난만한 생각이다. 

법의 지배 원칙이 지닌 규범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법의 지배가 최대한 공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법의 지배 역시 월드런(J. Wladron)이 ‘정치의 환경(circumstances of politics)’이라고 부른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인식하고, 사법이 정치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사법 소극주의).

법의 지배는 온전히 실현하기 어려운 정치적 이상일 뿐만 아니라, 그만큼 비자유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세력들이 법의 지배를 교묘히 조작ㆍ왜곡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민주 정치는 민주화 혁명을 겪은 수많은 시민들의 축적된 민주 역량과 의지에 의해 뒷받침된다. 하지만 복잡하고 까다로운 제도적 정치, 고도의 전문 지식, 그리고 특별한 자질을 필요로 하는 법의 지배는, 시민들의 이해와 관심 범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권위주의적이며 엘리트주의적인 위정자들과 법조인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조작하거나 왜곡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이것은 법의 지배가 절차적 민주주의와 함께 자동적으로 구현되는 정치적 이상이 아니라, 장기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확립해가야 할 이상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과정은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가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하면서 성숙한 헌정민주주의 체제로 발전해가는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결국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가 모든 시민들을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상이한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상보적인 정치적 이상들이기 때문이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현대 민주주의의 양상과 전개: 정부 형태, 정당 체제, 법의 지배 (김비환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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