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타체제의 해체에 직면한 세계, 연결된 위기가 한반도를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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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체제의 해체에 직면한 세계, 연결된 위기가 한반도를 위협한다
  • 백승욱 중앙대·사회학
  • 승인 2023.10.30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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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연결된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반도 핵위기까지, 얄타체제의 해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백승욱 지음, 생각의힘, 416쪽, 2023.09)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정세에 대한 판단에서 ‘신냉전’이라는 관점이 대세를 이루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신냉전이라는 구도는 현 시기 전 지구적 질서의 변동을 역사적 기원까지 파고들어 분석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기본 틀로서 얄타체제가 무너지고 있고 자칫 세계가 2차 세계대전 이전, 1차 세계대전 시기로 되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 시기 국제정세를 신냉전이 아니라 얄타체제의 해체로 본다면, 우리가 알던 냉전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2차대전 종전과 더불어 수립된 국제질서의 출발점이 과연 냉전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구상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냉전의 구도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아래에서 왜 강대국 사이의 전쟁이나 인근 영토로 팽창해나가는 전쟁이 억제되었는지, 그 억제를 가능하게 했던 역사적 제도배치의 특징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런 구도에 균열은 언제 어떻게 발생하기 시작했는지를 묻지 않고 ‘신냉전’이라는 단어만 반복한다면, 현 국제정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기 어렵다. 

1차대전 시기와 다른 2차대전 종결 질서 수립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붕괴가 강대국 전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통합된 경제질서를 수립하고 또 강대국간 전쟁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억압할지, 그리고 세기 전환기에 부상한 새로운 도전세력인 노동자계급과 식민지 독립세력을 어떻게 체제 내로 편입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 과제를 해결하고자 형성된 것이 루즈벨트의 ‘얄타 구상’에서 확인되는 ‘단일세계주의’라고 할 수 있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이 과제를 달성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의 핵심인 독소전쟁의 중요한 특징은 미국이 <무기대여법 Lend-Lease Act>을 통해 소련에 ‘무조건·무제한’ 무기를 제공하고 이 도움을 받아 소련이 나치 독일과 맞서는 ‘대리전쟁’ 성격을 띤 전쟁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전후 질서 수립에 대한 루스벨트의 구상은 ‘네 경찰국’이 주도하는 ‘단일세계주의’라는 틀로 소련을 포함해 강대국 중심의 UN안보리 체제를 통해 강대국 전쟁을 억제하고, 소련을 브레튼우즈-ILO의 통합적 세계경제 구도 속에 포함시키며, 구식민지역을 탈식민지적 발전의 길로 통합하고자 한 것이었다. 루스벨트 사후 냉전이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단일 세계주의 구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냉전이라는 트루먼의 ‘자유세계주의(두 세계주의)’로 전환되고 경제통합 구상에서 소련을 배제하였지만, 강대국의 협의를 중심으로 전쟁을 억제하는 구도 자체가 붕괴한 것은 아니었다. 현실 사회주의는 이 얄타체제 외부에서 어떤 독자적인 ‘국제주의’를 수립했던 것은 아니었다. 

 

1945년 2월 9일 찍은 얄타회담의 대표적인 기념사진. 아랫줄 왼쪽부터 회담의 ‘3거두’인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우리가 겪고 있는 얄타질서 해체의 세계는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무관하지 않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지배한다는 것은 얄타질서를 세운 뉴딜 자유주의가 약화하고 사회주의적 대안도 쇠락한 이후 예전과 다른 시대가 전개됨을 의미하고, 이런 변화 때문에 국가들의 질서로서 얄타체제 지속도 어려워진다. 얄타체제는 모순과 한계가 많은 질서 구도임이 분명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드러난 갈등과 대립의 현실은 그런 얄타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넘어서려는 긍정적인 시도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이 질서 구도를 퇴행시켜 세계를 다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시대로 되돌리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핵보유 강대국의 영토 온전성의 논리가 서로 맞물리는 세계에서는 사회주의 이념은커녕 자유주의조차 논의되기 어려워진다. 

얄타체제도 대국 논리에 기반한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얄타체제가 해체되면 세계적으로 지금까지와 다른 성격의 강대국 논리가 재부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과거 ‘제국’을 경험한 거대 규모의 영토제국이 재부상하면서 핵보유력을 바탕 삼아 밖으로 대대적으로 팽창하지는 않더라도 내포적인 영토주의를 내세우면서 영토적 온전성을 강화하는 시도가 도처에서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스스로 무력 개입을 정당화할 인접 영토에 대한 ‘내정’ 범위가 확대된다. 물론 이는 2차 세계대전처럼 외연적 영토팽창의 주장은 아닌 내포적 영토단속의 주장으로 제약될 것이지만, 분쟁이 전개될 인근 지역에 끼칠 타격은 심대하다. 

얄타체제의 해체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확인되고 있고, 이 위기가 동아시아로 확장되면, ‘연결된 위기’로 확장될 가능성이 커진다. 동아시아에서 대만 해협 위기가 중국의 군사적 점령 위협이라는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데, 이것이 다시 이어져 한반도에 끼칠 우선적 영향은 한국전쟁 종전 이후 특히 한중 수교 이후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 사실상 포기되고, 한반도의 핵위기가 중국의 통일문제 해결의 하나의 우호적 외적 조건이라는 변수로 바뀔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점령 시도가 실제로 진행된다면 이와 연동되어 한반도에서 남한에 대한 북한의 핵도발이 동시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시작된 국제질서의 동요가 대만위기를 거쳐 한반도 핵위기로 직접 이어질 수 있는 ‘위기의 연쇄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발발 순서는 반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시도가 실제 상륙작전까지 진행되지 않고 장기 포위 고사작전으로 진행되더라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신시대’를 표방하는 중국 시진핑 체제의 목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새로운 100년의 건설이다. 여기서 넘어서야 하는 과거 두 개의 굴욕이 중요해진다. 서구 제국주의에 패배한 아편전쟁의 굴욕으로 영국에 내준 홍콩과 동아시아 제국주의 일본에 패배한 청일전쟁의 굴욕으로 내준 대만이다.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의 과거 합의틀인 ‘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한다’를 무너뜨리고 2019년 이후 ‘애국자가 홍콩을 통치한다’로 전환한 이후 대만 문제 해결 또한 같은 함의를 지니는 일정표에 오르게 된다. 앞선 시기 정치 지도부의 합의를 깨고 3연임을 가능하게 만든 시진핑 체제의 새로운 특징과 ‘강군몽’에 따른 변화도 이 위협을 현실화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대만위기가 고조되면서 북한 변수가 중요해지는데, 대만위기 발발 시 동아시아 복수의 위기가 진행된다면 중국으로서 불리하지는 않고 북한도 이를 활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전략에서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2019년 하와이 노딜 이후 중요한 변화가 발생해 북한 핵전략이 한 단계 더 나아가 전술핵 개발을 중심에 두고서 ‘비대칭적 확전형’이라는 새로운 핵전략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개발한 전략핵과 전술핵 두 가지 핵무기는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다. 대미용 ICBM/SLBM 전략핵이 실제 발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거래와 확증보복 위협용의 위상을 지닌다면, 후자의 전술핵은 재래식 전력의 비대칭을 압도해 실제 투하 가능성을 목표로 삼는 ‘확전-선사용’ 목적을 지닌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점령 위협과 남한에 대한 북한의 핵위협은 동시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북·중관계의 성격상 이것이 북·중 협의와 공모에 의해 진행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동시 발생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는다. 문제는 두 위기가 동시 발생할 때 이 상황에 대한 관련국들의 판단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대만문제를 더 중시할 것인지 핵도발을 더 중시할 것인지에 따라 중국과 북한은 상이한 판단을 할 것이고 자국에 유리한 방식의 해석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  

복잡 미묘한 국제정세에 직면했을 때 한국 사회는 자주 냉정한 분석과 집중적 토론을 거쳐 체계적 대응에 나서기보다 분석에 기반하지 않은 과잉된 의지만으로도 현실을 돌파할 수 있다는 열망에 빠지곤 했고, 이는 곧 좌절로 이어졌다. 이를 ‘분석의 부재와 의지의 과잉’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신냉전’이라는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는 국제정세에 대한 ‘가치동맹’ 외교를 내세우며 실제로는 낡은 반공주의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방식, 또는 기존 구도에 대한 어떤 변형도 반대하는 무이념적 ‘실용외교’, 그도 아니면 국제정세 분석이 결여된 민족지상주의 사이를 반복할 뿐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자칭 진보의 국제정세 인식은 “앞선 세대의 게으른 습관적 반미주의”를 벗어나 그 이상으로 나아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백승욱 중앙대·사회학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 중국지역학과 조교수,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 현대중국학회 부회장, 비판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자본주의 역사강의』,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 『세계화의 경계에 선 중국』, 『중국의 노동자와 노동 정책』, 『생각하는 마르크스』, 『1991년 잊힌 퇴조의 출발점: 자유주의적 전환의 실패와 촛불의 오해』 등이 있고, 역서로 『장기 20세기』,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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