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을 미루는 익숙한 사랑 - 아이유, 할로윈을 노래하다
상태바
헤어짐을 미루는 익숙한 사랑 - 아이유, 할로윈을 노래하다
  •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 승인 2023.10.30 0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광식 교수의 〈음악과 철학 사이〉


 

 

[리뷰]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로 본 아이유의 〈빈 컵〉


“창백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 넌 변함 없이 빛나
날 미치게 하던 그 눈을 더 이상 / 사랑하지 않을 뿐야

아, 미안 / 억지로 내 맘을 돌려보려고
애쓰고 싶지가 않아

I'm sick of your love / Sick of your love
Sick of your all

우리를 삼키는 / 따분함이 싫어 (....)

타오르던 감정은 / 부스러기들로 남아
이런 가볍기도 하지 / 겨우 이게 다였나 봐 (....)

헤어짐을 미루는 / 익숙함이 싫어 (....)

Just fed up with us and our love / Sick of your love
Just sick of this love”


아이유가 부른 노래 <빈 컵>이다. 그녀는 “날 미치게 하던 그 눈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뿐야”라고 노래한다. 왜 사랑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너의 모든 게 지겨워”라고 대답한다. 왜 나의 모든 게 지겹냐고 물으면 “우리를 삼키는 따분함이 싫어”라고 대답한다. 왜 우리를 삼키는 따분함이 싫냐고 물으면 뭐라 대답할까? 아마도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그냥! 그냥 싫어!”

한 남자가 아이들이 조약돌로 물수제비를 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도 해보고 싶어 조약돌을 집어 드는 순간 그는 역겨움을 느낀다. 카페에서 떨어뜨린 종이를 집어 드는 순간 그는 역겨움을 느낀다.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지인의 멜빵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역겨움을 느낀다.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 나오는 남자 이야기다. 왜 역겨움을 느꼈냐고 물으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그냥! 그냥 싫어!”

올해도 할로윈 축제가 어김없이 다가왔다. 지난해 대참사를 겪어서인지 축제를 즐기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대참사가 났을 때 ‘못된 것을 즐기려다 난 사고’라는 틀을 씌워 오히려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다. 왜 할로윈 축제를 ‘못된 것’이라고 여길까? 그들에게 할로윈 축제는 ‘못된 유령 가면을 쓰고 몰려다니는 짓’이다. ‘유령’은 ‘못된 것’이다.

‘유령’, ‘귀신’, ‘죽은 자’에 대한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살아있는 자에게 죽음은 두려움 그 자체다. 그 어떤 두려움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설 수 없다. 삶을 괴롭게 여기는 이들도 죽음은 두려워한다. 죽음이 왜 그토록 두려운 걸까? 죽음은 무이기 때문이다. 내 존재가 무로 사라지니까. 내 존재의 사라짐이 두렵다기보다 내 존재의 의미가 사라짐이 두려운 거다. 내 존재가 물질 덩어리처럼 무의미해지는 게 두려운 거다.

하지만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따르면 죽음, 곧 무뿐만 아니라 존재도 무의미하기는 마찬가지다. 존재의 의미 따위는 원래 없다. 존재의 본질적인 의미, 존재의 본질 따위는 없다. 존재의 본질이란 뒤늦게 만들어 덧붙여진 거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그의 책 <존재와 무>에서 이렇게 말한다.


“실존[존재]은 본질에 앞선다.”

                                            - 사르트르, <존재와 무>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이 조약돌, 종이, 멜빵 등에서 느낀 역겨움의 바탕은 어지러움이다. 역겨운 구토를 하도록 하는 차멀미의 바탕이 어지러움인 것과 마찬가지다. 어지러움은 부조화, 곧 어긋남에서 비롯된다. 몸의 움직임과 차의 움직임의 어긋남, 더 정확히는 바라보는 모습과 바라보이는 모습의 어긋남, 봄이나 시선의 어긋남은 어지러움을 일으킨다.

바라보는 모습과 보이는 모습의 어긋남에서 그는 어지러움을 느낀다. 그는 조약돌, 종이, 멜빵의 의미를 이미 모두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 의미로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을 느낀다. 그 의미는 그것들 속에 있던 게 아니라, 그가 그것들을 그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봄으로써 비로소 생겨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그것들을 그 무엇으로 보기에 앞서 그것들은 이미 존재한다. 그것들의 본질적 의미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의미 없는 ‘존재’가 ‘본질’ 또는 ‘의미’에 앞선다.

 

                                                      Jean Paul Sartre (1905-1980)

아이유가 그의 눈을 ‘날 미치게 하는 것’이나 '우리를 삼키는 따분한 것'으로 보기에 앞서 그의 눈은 존재했다. '날 미치게 하는 것'이든 '우리를 삼키는 따분한 것'이든 모두 그녀가 그 무엇을 보고 만들어 붙인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날 미치게 하는 것’이란 의미나 본질적으로 ‘우리를 삼키는 따분한 것’이란 의미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그의 눈은 없다.

그럼 아이유 자신은 본질적으로 누구일까? 그의 눈을 ‘날 미치게 하는 것’으로 보는 자일까, ‘우리를 삼키는 따분한 것’으로 보는 자일까? 아이유 자신은 그의 눈을 그 무엇으로 보는 자이기에 앞서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존재한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무의미한 것이란 의미로 ‘무’다. ‘빈 컵’이다.

하지만 그냥 비어 있지는 않다. 그녀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채울 수 있는 존재다. 그녀는 그의 눈을 ‘날 미치게 하는 것’이나 ‘우리를 삼키는 따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존재다. 또한 그녀는 그의 눈을 그가 무엇으로 보기에 앞서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존재다. 그녀는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자유 그 자체다. 그녀는 자유롭도록 선고받은 존재, 곧 실존이다.

자유로운 존재는 아직 그 무엇도 아닌 ‘무’이고, 아직 그 무엇도 아닌 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다. 자유로운 존재에게 존재는 곧 무이고, 무는 곧 존재다. 빈 컵은 아직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않은 ‘빈’ 컵이고,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찰’ 컵이다.

죽음으로 사라지는 내 존재의 의미는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다. 그의 눈을 ‘날 미치게 하는 것’이나 ‘우리를 삼키는 따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존재가 되기에 앞서 나는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존재했다. 우리가 조약돌이나 종이나 멜빵으로 보는 존재가 우리가 그렇게 보기에 앞서 이미 아무런 의미 없이 존재했듯이.

죽음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죽음으로 사라질 내 존재의 의미를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처음부터 그런 의미라는 건 없었다. 죽은 자를 두려워할 까닭도 없다. 죽은 자에 덧씌워져 있는 그 온갖 부정적인 의미는 덧씌워진 것일 뿐이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할로윈 축제는 죽은 자일 뿐인 죽은 자와 함께 즐기는 즐거운 놀이일 뿐이다. 할로윈 축제를 당당히 즐기자. 이것이야말로 대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제대로 기리는 일이다.

죽음처럼 사랑의 헤어짐도 늘 두렵다. 헤어지면, 만남의 의미가, 그 만남 속 내 사랑의 의미가, 그 사랑 속 내 존재의 의미가 모조리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미룬다. 헤어짐을 미루는 익숙함이 싫다. 하지만 어떤 만남도 필연적인 운명적 의미는 없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만나고 우연히 헤어지는 거다. 그토록 타오르던 감정도 ‘겨우 이게 다였나 봐’ 하며 놀랄 정도로 가벼운 부스러기들로 남는다. 만남에 앞서, 헤어짐에 앞서 내가 그냥 존재했고, 존재하며, 존재할 거다. 그 본질적 의미나 이유를 묻지 말라. 그런 건 없다. 그 의미는 내가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나는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나는 빈 컵이다. 내 만남도, 내 사랑도!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
.
.
.
.

아, 미안
그런 영원한 사랑은 처음부터 없었어!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과학·기술·철학과에서 인지문화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인지철학자이자, 여러 문화현상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문화철학자이다. 저서로 『BTS와 철학하기』, 『행동지식』, 『김광석과 철학하기』, 『다시 민주주의다』(공저),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공저)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