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서사 연구의 경계 확장과 지평의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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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서사 연구의 경계 확장과 지평의 확대
  • 이명현 중앙대·고전서사문학
  • 승인 2023.10.2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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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칼럼]

주변 사람들은 필자가 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한다고 하면 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곤 한다. ‘고전서사문학’을 전공한다고 답하면 많은 경우 ‘참 어려운 공부를 한다.’는 반응이다. 간혹 반응이 부담스러워서 ‘과거의 문학, 즉 옛날이야기를 전공한다.’고 덧붙이면 옛날이야기를 굳이 대학에서 전공할 필요가 있는지 의아해한다. 최근에 친분이 있는 의과대학 선생님이 정말로 진지하게 <홍길동전>, <춘향전> 등과 같은 과거의 작품을 지금까지 연구하는 게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자신의 연구 분야는 새로운 케이스와 최신 의료 방법 등 현재진행형 성과를 내기 때문에 고정된 과거의 텍스트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려운 공부라는 말에는 한문, 고어 등 현재와 상이한 표기 형태, 지금의 관점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과거의 문학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옛날이야기라고 하면 비전공자의 일반적인 시선에서는 전래동화를 연상하고, 단순한 이야기, 비현실성, 우연성 등 중·고교에서 배운 고전소설과 근대소설의 차이를 떠올리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고전문학이 연구대상으로 적합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경우는 시효가 만료된 과거의 문학, 즉 현재와 괴리된 문학이라는 시각이 작동하는 것 같다. 

대중 혹은 비전공자의 고전문학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이러한 것 같다. 그런데 이를 오해와 편견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사실 그동안 고전문학 연구는 대중과의 소통이 부족하였다. 물론 고전문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성립 과정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고전문학 연구사의 시작은 거칠게 말하면 고전문학 학문 분과의 인정 투쟁이자 민족의 문화유산으로서 고전문학의 가치를 입증하는 작업이었다.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정부 수립기의 1세대 고전문학 연구자들은 외세의 침략과 타율적 근대에 맞서기 위해 고전문학을 정전화(正典化)하였고, 고전문학을 통해 ‘민족과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고전문학은 민족정신과 전통문화를 내재한 정전(正典)의 위상을 확보하면서 대한민국 정신문화를 통합하는 권위 혹은 표준으로 인식되었다. 고전문학은 대학 강단에서 현대문학, 외국문학과 구별되는 독자적 학문 분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고전은 배타적 학문 영역을 구축하기 위하여 선택된 정전이자 ‘만들어진 전통’, ‘창조된 고전’이라 할 수 있다. 고전문학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은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맥락적 관계, 고전문학과 타학문의 융합 연구에서 일정한 한계를 드러낸다. 특히 과거의 수많은 서사적 맥락 속에서 창작되는 오늘날의 서사를 포착하기 어렵고, 새로운 매체와 형식의 각종 이야기들을 연구 영역으로 포함하는 데 주저하게 만든다. 

최근 고전문학 연구자 중에서 고전문학의 대중화에 관심을 가지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 요즘 세대가 이해하기 쉬운 표현의 현대역, 오늘날의 가치관과 새로운 관점을 적용한 고전 비평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고전은 어렵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서 고전문학자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고전문학과 문화콘텐츠를 연계하여 연구 영역을 확장하는 시도가 있다. 고전을 소재로 한 대중문화는 이전부터 제작되었지만, 인터넷, 스마트폰의 출현 이후 MMORPG 게임, 웹툰, 웹소설 등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도 OTT 플랫폼, SNS 미디어, 유튜브, 숏폼 등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될 것이다.

기술 환경의 변화로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서 기존 방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서사 양식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서사(이야기)는 완전히 새롭고 개별적일 수 없다. 이야기는 무수한 과거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창작되고, 새로운 이야기는 이전의 이야기에 대한 반론, 인용, 재인용이라 할 수 있다.

고전문학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이야기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고전서사문학’ 연구에서 ‘고전’보다 ‘서사’에 방점을 찍어 분과 학문의 경계를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전서사, 현대소설, 영상서사, 대중서사, 사이버 텍스트 등 다양한 서사 양식을 ‘서사’라는 공통 요소를 중심으로 융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이들을 고전서사와 연속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들 사이의 문화적 맥락과 해석의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장르 횡단적 서사학, 학제적 서사학, 상호매체적 서사학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면 반드시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고전서사와 다른 양식의 서사를 횡단하는 연구가 고전서사 연구의 범위에 포함되는지 여부이다. 필자는 박사과정 때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다. 고전소설로 박사학위를 작성한 연구자는 고전소설만 연구해야 하는 것인가? 고전문학을 연구하면서 다른 영역을 함께 공부하면 고전문학자가 아닌가? 고전문학 연구자이면서 문화 연구자는 될 수 없는 것인가? 고전을 소재로 한 오늘날의 문화콘텐츠는 전통적인 고전문학이 아니다. 하지만 고전문학자가 연구할 수 있는 대중문화이고, 고전문학자가 장르 횡단적으로 접근하기에 가장 적합한 연구대상이다. 

고전문학의 가치를 천착하는 연구는 고전문학 연구의 기본이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이글에서 이를 소홀히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중과 소통하는 고전문학, 현재진행형의 고전문학 연구를 위해서는 학제 간 융합을 통해 연구의 지평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학문과 학문 사이에 울타리를 치기보다는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폐쇄적인 학문 영토를 고수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 영토가 중층적으로 결합하는 새로운 학문의 지평을 지향해야 한다.

 

이명현 중앙대·고전서사문학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고전서사 전공. 고전문학은 연구실에 박제된 화석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고전문학의 현대적 수용과 변용에 대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고전서사와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문화다양성 시대의 문화콘텐츠』(공저) 외 다수의 공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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