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역사학계의 축복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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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역사학계의 축복과 과제
  • 최자명 성균관대·일본근대사
  • 승인 2023.10.2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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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필자가 전공하는 근대 일본사 역사학 분야에서 최근 세계의 젊은 역사가들이 주축이 되어 근대 일본사 협회(Modern Japanese History Association)를 조직했다. 조직자가 1년 회비가 25달러니 커피 몇 잔 값 아니냐며 유쾌하게 가입을 권하길래, 갓난아이가 있어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입장임에도 기부하는 셈 치고 가입했다. 그런데 가입해서 얻는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회원들이 낸 책의 저작발표회, 학계의 현상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하는 원로학자들의 원탁토론회, 첫 책을 내고 승진한 부교수들을 상대로 두 번째 저서의 구상을 도와주는 워크샵, 최근 근대 일본역사가가 북미뿐만 아니라 각 지역 학계에서 취업하는 요령을 설명해주는 좌담회 등 대학원생, 조교수, 부교수 등 다양한 대상을 상대로 조직된 행사들은 하나하나 다 참여하고 싶었다. 

일본사 분야의 고질적인 문제인 일본어권 연구자와 영어권이나 다른 언어권 연구자들의 격리가 해소될 단초가 마련된다는 것도 큰 수확이다. 덕분에 필자가 박사과정 시절 자료조사차 방문한 대학에서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던 일본인 학자가 최근에 책을 냈다는 소식도 접했다. 화상회의의 발달로 유능한 역사가들이 의기투합한다면 굳이 직접 학회에 출장하지 않아도 최신 저서들을 읽으면서 세계 학계의 정보를 취합할 수 있다. 아직도 첫 저서를 못 내 부끄러운 마음도 잠시 제쳐두고 화상회의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것이 바로 필자만 잘하면 되는 훌륭한 세상이 아닌가 싶다.

1945년 이전 일본의 역사가들 중에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정부의 대변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역사가 리사 요시카와(Lisa Yoshikawa)가 지적했듯이, 도쿄제대 일본 국사학의 건설자들 중 일부는 실증과 과학을 내세웠지만 때때로 천황제와 식민제국을 정당화하는 나팔수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많은 역사가들은 한동안 맑스주의, 근대화론과 같은 거대담론에 의지하거나 그에 반론하며 역사를 썼다. 실증연구가 두터워지며 이들 거대담론이 비판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21세기 역사가들은 의지하는 담론 없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역사를 집필한다. 과거의 역사학계가 스스로 질문할 줄 아는 대가와 그 질문을 받아 안아 논증에 집중하는 그 제자들로 이루어진 선단이었다면, 요즘의 학계는 동등한 정도로 유능한 역사가들의 보다 더 수평적인 조직이다.

이러한 발전은 훈련프로그램의 비약적인 발전과 연구방법론의 지속적인 혁신에 빚졌다. 역사가들은 이제 여러 개의 언어를 배우고 필요에 따라 자연과학의 기초를 닦으며, 전공 지역의 경험을 다른 나라의 경험과 비교할 수 있는 기술을 갖췄다. 특히 근대사가들은 전 세계의 경험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얼마나 공통점이 많은지를 충분히 음미할 줄 안다. 수많은 현지어를 할 줄 모른다고 하더라도, 영어가 학계의 공용어로 자리 잡으며 영어권 학계에 발표된 다른 나라의 역사를 읽으면 궁금증은 상당 부분 풀 수 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연구자료의 디지털화가 진행되어, 역사학자가 굳이 문서관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소화할 수 있는 사료의 양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일본근대사 분야의 경우, 일본국회도서관은 해마다 디지털 자료의 양을 늘리고 있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주도하여 구축한 데이터베이스 덕에 근대 일본사에서도 불평등의 장기 역사에 관한 논문이 나왔다. 언어장벽이 허물어지자 이전까지 연구자들이 한국어와 중국어를 하지 못해 진척되지 않던 일본식민제국 연구가 한국이나 대만의 현지 학계뿐만이 아니라 영어권 학계에서도 활성화되었다. 과학기술사가, 환경사가들은 자연과학을 배워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한다. 제대로 훈련받은 전문 역사가가 특정한 주의나 정부의 주장에 매몰되어 앵무새처럼 그 주장을 반복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으며, 1938년 일본 내무성이 내린 훈령만으로 식민지 조선에서의 위안부 모집실태를 거론하는 마크 램지어(Mark Ramseyer)의 괴(怪)논문은 극우 독자들의 입맛에 맞을지 몰라도 다국적 학계에서 추문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역사학계가 거대담론의 시대에서 역사가 스스로 질문하는 단계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학자와 독서 대중을 잇는 플랫폼은 꾸준히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역사전문가들이 역사이야기를 들려주는 TV프로그램이나 신문 연재코너, 그리고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필자가 일하는 성균관대 사학과에서도 최근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이 추세에 동참했다). 성공적인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를 보건대, 역사학의 수요가 적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이 새로운 환경에 기생하는 엉터리도 있겠지만, 역사학자가 자신의 질문으로 학계의 구성원들과 일반 독자와 소통할 기회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전문 역사가가 수행하는 연구와 교육이라는 일의 난이도나 대학에 고용된 학자라는 직업의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제 역사학계는 역사학자 모두가 연구하는 중심 질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물론, 불평등이나 인구감소, 자연환경의 변화 등 역사학자들이 관심을 늘려가는 분야가 있지만, 어떠한 논문 하나가 갖는 함의가 과거처럼 잘 설명하지 않더라도 여간해서는 비슷한 연구 관심을 공유하는 다른 학자들과 일반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문제제기에 능하지 못한 학자는 그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기 어려우며, 그가 생산한 학문적 성과의 가치는 그저 그가 남긴 실증적 노력 그 자체로 한정된다.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학자는 사실상 독립적인 연구자라기보다는 스스로 질문할 줄 아는 연구자의 보조자 역할로 떨어진다. 

학계의 담당자이며 학술출판 최대의 독자층인 동료학자들의 동질성이 무너지는 것은 심각한 위기다. 수평적인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후진들에게 비약적으로 발전한 학계의 수준을 따라잡을 충분한 시간과 자원을 제공해야한다. 한국에서는 문과계 대학원에 예산을 지원하는 BK와 같은 사업들이 있지만, 이러한 사업들을 단지 각 대학의 대학원에 예산을 배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학원생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좋은 학자로 올라설 수 있는 훈련프로그램을 정비하는 노력으로 연결해야 한다. 대학원 프로그램의 질이 올라간다면, 당연히 그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학부생들의 훈련과정도 같이 올라가야한다. 사실 국민의 반 이상이 대학을 졸업하는 21세기에 학부 수업들만 궤도에 올라도 대학원과 학술출판 시장의 발전은 장기적으로 그냥 따라올지도 모른다. 

영어가 세계 학계의 공용어가 되면서, 고교 시절 영어를 못했던 친구들이 역사가로 성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도 이 시대의 새로운 걱정거리다. 가뜩이나 문과계 연구자들의 취직이 어렵다는 21세기 초반, 후진양성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지만, 과연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역사학계는 후진들을 얼마나 준비된 인재로 키우고 있을까? 좋은 훈련프로그램을 작동시키며 후진들을 잘 준비시킬 수 있다면 이 변화는 축복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학계는 그 누구도 행복하기 어려운 공간이 될지도 모른다. 필자만 잘하면 되는 세상은 참 좋지만, 필자도 잘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최자명 성균관대·일본근대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으며, 펜실베니아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남가주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사학과 전임강사, 연변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세계사 속의 갈등과 통합』(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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