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말을 걸고 독자의 응답을 듣다 -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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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말을 걸고 독자의 응답을 듣다 -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 이상원 서평위원/서울대·통번역학
  • 승인 2023.10.2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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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글을 쓴다는 건 독자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책을 내는 것도 그렇다. 언제 어디에서 읽어줄지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혹시 당신 생각은 어때요?’라고 말을 걸어두는 것이다. 응답이 올지 안 올지는 알 수 없다. 누가 응답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고맙게도 이제는 인터넷 덕분에 응답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책을 읽고 한두 줄이라도 생각을 남겨두는 열성 넘치는 독자로 범위가 제한되기는 한다. 하지만 글쓴이와 일면식이 없는 사이인 만큼 그만큼 솔직한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면전에 대고 차마 쓴 소리를 하지 못하는 지인 독자와는 다른 것이다.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는 2020년 10월에 낸 에세이집이다.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우연히 출판번역(책 번역)의 길로 들어서 일한 지 20년이 넘은 때였다. 번역하는 사람이 번역에 대해 하는 생각을 정리해 책을 내고 싶다는, 저자 이름 뒤에 가려져 있는 번역과 번역가에 대해 인식할 계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끼적여둔 내용이 어느 정도 쌓여 있었는데 마침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개강이 2주 미뤄지고 이후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며 출퇴근 시간이 절약된 덕분에 짬을 내서 엉성하게나마 한 권으로 묶어낼 수 있었다. 출판 번역을 하면서,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번역 수업을 하면서, 박사학위를 받고 공부하면서 하게 된 경험과 생각을 담았다.

책은 별로 팔리지 않았다. 그래도 책을 읽어준 몇몇 독자들이 인터넷에 응답을 해주었다. 나는 서평들을 찾아 읽어보며 내 말 걸기가 어떻게 가닿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글들은 “여기 좀 봐 주세요! 번역과 번역가의 존재에 대해 한번 생각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내 말 걸기가 그럭저럭 성공했다는 걸 보여주는 듯해 반가웠다. 번역가에 신경을 써본 적 없는 이, 번역은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이, 번역의 매력을 새로 알게 된 이는 이후 번역된 책을 마주할 때 조금은 다른 시선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광진정보도서관에서 이 책이 이달의 추천도서였다는 것도 인터넷 덕분에 알았다. 사서 선생님이 올린 추천 글을 반갑게 읽었다. 번역이 업이 되면서 이제 책읽기라는 취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내 이야기에 대해 사서 선생님은 ‘가장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라고 했다. 어이쿠, 사서 선생님이라는 특별한 독자가 이렇게 응답해 오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사실이 그러하니 달리 해명하기도 어렵다.

‘원로 번역가의 약간은 자기만족적인 신변 잡기적 에세이’(https://blog.naver.com/kihyunp/222665399816)라는 평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일단 ‘원로’라는 처음 접해보는 낯선 수식어가 그러했다. 또 번역이라는 치열한 현장을 일상적 언어로 풀어내려던 시도가 ‘신변잡기 에세이’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쉬웠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래도 책 읽는 데 들인 시간을 그저 낭비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으면 좋겠다.

대안적 매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책을 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과거의 관행에 매달리는 시대착오적 모습일 뿐일까. 그건 아니리라. 정체를 밝힌 상태에서 자기 얘기를 긴 호흡으로 풀어내 독자 앞에 서는 방식은 아직도 책이 유일한 것 같으니.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걸고 응답을 기다리는 과정은 여전히 유효해 보이니.

 

이상원 서평위원/서울대·통번역학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글쓰기 강좌를 운영하며 저서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매우 사적인 글쓰기 수업』, 『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 등을 출간했으며, 『첫사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안톤 체호프 단편선』과 같은 러시아 고전을 비롯하여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홍위병』, 『콘택트』, 『레베카』 등 9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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