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불완전하기에 무한한 가능성을 갖는다 -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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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불완전하기에 무한한 가능성을 갖는다 -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 최승연 뮤지컬평론가
  • 승인 2023.10.16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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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연의 〈뮤지컬 인사이트〉

 

최근 창작 뮤지컬 신에서 눈에 띄는 작가가 있다. <너를 위한 글자>(2019), <인사이드 윌리엄>(2021), <태양의 노래>(2021), <라흐 헤스트>(2022), <빠리빵집>(2023), <달샤베트>(2023) 등을 쓰며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 김한솔이다. 보통 뮤지컬 프로덕션에서 작가의 초기 아이디어가 공연의 결과물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연습 과정 중에 작가의 대본은 여러 의견을 흡수하며 가장 ‘옳다고’ 판단되는 방향으로 끝없이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김한솔 작가의 작품은 구별된다.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 때문이다. 대학로 소극장 창작 뮤지컬들이 추리와 스릴러 장르로 쏠림 현상을 보이며 죽은 존재/분리된 인격의 캐릭터화, 죽을 운명의 인물, 개념캐¹⁾ 등을 거의 공식처럼 사용하고 있기에 더 두드러진다.
1) 개념을 캐릭터로 만든 인물이라는 현장의 용어다.

현재 공연되고 있는 <인사이드 윌리엄>에서도 작가가 보인다. 2020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되어 2021년에 초연된 후 2년 만에 재연으로 돌아온 작품이다(연출 김동연, 대본/가사 김한솔, 작곡/음악감독 김치영, 제작 ㈜연극열전, 아트원씨어터 1관, 2023년 9월 12일~12월 3일). 재연이 되기까지 영국 런던 쇼케이스(2022), 중국 상하이 레플리카 공연(2022~2023)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대본은 다시 수정됐으며 2023년 재연 연습 과정에서 또 다시 배우들의 아이디어가 결합되었다. 대본에는 작가가 셰익스피어 생가에서 떠올렸던 아이디어, ‘햄릿, 로미오, 줄리엣이 작품에서 나와 서로 만난다면?’이라는 질문만 남았지만, 인물들을 한결같은 따뜻함으로 지켜보는 작가의 태도는 공연의 핵심이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공연사진 (사진 제공: 연극열전)

사실 삶을 긍정하는 따뜻한 뮤지컬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결말이 쉽게 예상돼 극의 긴장감이 떨어지거나 자칫 계몽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가 강조되다보면 공연이 관객의 정서만 한없이 자극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인사이드 윌리엄>의 미덕은 관객의 과도한 정서적인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유연하게 활용하며 작가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점에 있다. 과장되고 양식화된 연기와 대사톤, B급에 가까운 코미디는 그 자체가 공연의 목적이라기보다 테마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공연이 전달하는 위로와 응원이 과도하거나 민망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공연의 목적이 양식과 잘 융합되어 비교적 부드럽게 전달된다고 할까.

<인사이드 윌리엄>이 누구를 응원하는가의 문제도 공연의 초점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서는 내용적 측면 외에 공연 양식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작품의 프로타고니스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원종환)이다. 그런데 이 셰익스피어는 세계적인 명작의 작가이자 그 자체로 전설인, 우리가 아는 그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비평가들의 평가에 전전긍긍하고 작품이 잘 써지지 않아 고민하는 보통의 작가다. 오랫동안 남을 명작을 남기고 싶은 셰익스피어는 도미니코 만초니가 쓴 작법서에 의존하기까지 한다.²⁾ 그런데 어느 날 이렇게 어렵게 쓰던 희곡의 원고가 바람에 날려 서로 뒤섞여버린다. 그 바람에 햄릿과 줄리엣의 서사도 한데 뒤섞인다.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것이다.
2) ‘명작, 이대로만 따라하면 쓸 수 있다’라는 제목의 이 작법서는 물론 허구다. 또한 도미니코 만초니는 김한솔 작가의 데뷔작 <너를 위한 글자>에 등장하는 유명 소설가의 이름이기도 하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공연사진 (사진 제공: 연극열전)

공연의 핵심은 여기서부터다. 두 작품의 서사가 뒤섞이자 인물들이 작품 속에서 나와 자유의지를 발동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점부터 공연은 핵심을 향해 달린다. 마치 루이지 피란델로의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1921)처럼, 인물들은 작품 밖으로 나와 새로운 세계관을 만든다. 그들은 셰익스피어가 만들어 놓은 인물형(인물의 관점으로 보면 ‘운명’)을 버리고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찾기’ 시작한다. 피란델로의 인물들이 작가의 상상력의 한계로 버림받아 자신들을 예술적으로 구현해줄 수 있는 새 작가를 찾았다면, <인사이드 윌리엄>의 인물들은 우연히 극 밖으로 나와 스스로 삶을 개척한다. <인사이드 윌리엄>이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밝고 쾌활한 코미디이며 한편으로는 낭만적인 판타지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인물들은 대상에서 주체가 되며 그 과정에서 셰익스피어라는 클래식의 외피를 전부 벗는다. 

<인사이드 윌리엄>의 인물들은 뒤섞인 세계 안에서 반복되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가 누구인지’ 알아간다. 이로써, 햄릿은 복수심에 불타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를 고민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줄리엣은 로미오(그리고 아버지가 정해 놓은 패리스)와 결혼할 운명을 거부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질문하기 시작한다. 좌충우돌하는 상황 속에서 셰익스피어는 ‘작가로서’ 이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들은 이미 자신을 주체로 정립하는 ‘주체화’의 과정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이 상황을 그냥 지켜보지는 않는다. 그는 기억되고 존재하고 싶다면 원래 부여된 이름을 지키라고 설득한다. 햄릿과 줄리엣은 당분간 이름 없이 주체화의 과정을 충실히 밟아보겠다고 맞선다. 그들의 최종 결론은 각각 시를 쓰는 유랑하는 악사, 칼을 든 보초병이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공연사진 (사진 제공: 연극열전)

공연은 이들의 결심을 ‘파라다이스’로 개념화한다. 만약 그 결말이 비극이라도, 잠시 주체로 살았던 꿈을 꾼 것이라고 해도 그 ‘감각’을 기억한다면 삶은 파라다이스라는 논리다. 이 결말에는 셰익스피어도 포함된다. 셰익스피어 스스로 ‘작가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재정립했던 것이다. 그는 인물들이 주체화될 때, 명작에 대한 욕심 때문에 기존의 틀에 작품을 맞추려 했던 자신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칼 든 여자 캐릭터는 사랑받을 수 없다’와 같은 비평적 요구에서 자유로워지기로 결심한다. 두려움은 여전히 문제로 남지만 작품을 향한 스스로의 진심을 믿기로 결정한다. 

<인사이드 윌리엄>은 이렇게 주체화(subjectification)를 향한 비전(vision)을 품는다. 이 비전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주체화에 눈을 뜨거나 그 필요성을 느낀 불완전한 존재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김한솔 작가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공연은 처음부터 작가로서 완성된 셰익스피어를 다루지 않았다. 그는 끝없이 고민하고 외부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심지어 캐릭터의 자유의지에 밀리기도 하는 작가다. 마지막 지점의 작가는 자신이 진심으로 만들어낸 작품의 ‘조각’들을 스스로 인정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여전히 완성형은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곧 작가 자신이자, 이 세상의 모든 작가를 대표하는 존재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공연사진 (사진 제공: 연극열전)

그렇다면 로미오는? 공연은 로미오만 끝까지 셰익스피어의 세계관 안에 머물게 함으로써 예외적 존재로 그린다. 결말로 갈수록 자연스러운 연기로 바뀌는 햄릿(정지우)과 줄리엣(김수연)에 비해 로미오(주민진)는 끝까지 B급 코미디적인 과장된 연기를 유지한다. ‘주인공으로 사는 것’이 로미오의 진짜 욕망이라는 설정 때문인데, 이는 결말에 과도한 정서적 몰입을 차단하며 뮤지컬의 쇼(show)적 감각을 확대하는 효과를 낳았다. 유난히 몸놀림이 가볍고 관객과 편안하게 호흡하는 주민진의 로미오와, 로미오의 욕망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원종환의 셰익스피어는 특히 코미디의 합이 좋아 공연의 목표 지점까지 관객을 잘 끌고 갔다. 로미오의 잔망스러움은 그가 예외적 존재일 뿐이지 파라다이스에서 소외된 건 아니라는 관점을 포함하고 있었다. 로미오 역시 진짜 자신의 욕망을 찾은 것이므로.

피아노 컨덕터³⁾ 역할을 하는 작곡가 김치영이 자주 서사 안에 개입하며 극에 또 다른 차원을 부가하는 방식은 세계관이 뒤섞이고 재조정되는 공연의 양식을 더 부각시켰다. 한 가지 예로, 신파적 느낌을 주는 피아노의 특정 모티프는 인물들이 셰익스피어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계관을 만드는 시점을 예고했다. 공연이 흐를수록 그 신호에 익숙해진 관객이 인물의 행동을 예상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역시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작용했다. 공연 내내 음악은 연출의 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3) 라이브로 피아노를 치며 지휘도 겸하는 포지션을 말한다. 

<인사이드 윌리엄>은 김한솔 작가의 이후 작업을 더 기대하게 만든다. 동시대의 불완전한 존재들을 응원하고 그 무한한 가능성을 긍정하는 소박하고 재기발랄한 이 작품은 아마 앞으로 더 진화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그 이후를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인사이드 윌리엄>의 정신일 테니. 

 

최승연 뮤지컬평론가

런던대학교(로열 할러웨이)에서 연극학 석사, 고려대에서 국어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동아시아학과 객원연구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논저로는 “청년 테마로 본 뮤지컬: 팬덤의 참여욕망과 수행성에 대한 고찰”, “라이선스 뮤지컬의 현지화에 대한 일고찰”, “확장하는 보편, 타협하는 로컬리티”, “해방 후 오영진의 좌표와 음악극 실험”, “만들어진 비애와 감성의 연대”, 『미국 뮤지컬과 국가정체성의 형성』(공역), 『멜로드라마적 상상력』(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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