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언어, 만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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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언어, 만주어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학교 인문도시 사업단장
  • 승인 2023.10.16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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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호탁 교수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_ 사라진 언어, 만주어

 

                                        사라진 언어, '만주어' 최근 사극 드라마 속에서 부활

한겨울 추위가 혹독했던 1636년 섣달(음력 12월), 청나라 군사들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침공한다. 그때부터 이듬해 2월 사이, 불시에 침입한 오랑캐 병사들의 거센 공격에 맞서 인조가 이끄는 조선의 군사들은 남한산성을 지키기 위해 적들과 힘겨운 전투를 벌여야 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반 만에 조선은 항복한다. 그리고 50~60만 명으로 추정되는 조선의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청나라의 수도 심양으로 끌려간다.

인간이 사는 지구상에서 하루도 전쟁 없는 날은 없었다. 크고 작은 싸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부상을 입었다. 오늘만 해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의 전쟁으로 사상자가 속출했다. 인명의 살상과 재산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싸움에서 진 집단은 승자의 지배를 받는 部衆으로 예속되거나 포로가 되었다. 승자의 유르트(yurt, 軍營)가 멀 경우 포승줄에 묶인 채 짐승처럼 끌려가곤 했다. 승자가 된 오르드(horde, 무리, 집단)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혼거하고 있었다. 질서를 위해 위계를 정할 필요가 있었다.

중원의 漢族은 사방의 야만 이민족을 방향에 따라 구별해 北狄(북적), 西戎(서융), 南蠻(남만), 東夷(동이)로 분류했다. 『晉書』 「북적 흉노전」에 의하면 북방 이민족의 총칭은 한어로 狄, 이민족의 말로는 흉노라는 집단이었다. 흉노라는 명칭이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4세기경이다. 시대 상황의 변전에 따라 용어의 의미는 새롭게 적용되거나 달라지게 마련이다. 3세기 경 狄으로 표기되던 흉노가 후일 胡로 지칭되는가 하면, 胡에 집단의 특성을 드러내는 수식어를 덧붙여 다르면서 같은 속성의 胡種을 林胡, 興胡, 東胡 등으로 나누었다. 서쪽의 오랑캐로 치부하던 戎족은 西羌族(서강족)에게 밀려서인가 西周 목왕(穆王)의 토벌 이후 犬戎(견융)이라는 명칭으로 출현했다가 그 이후로는 더 이상 戎이라는 이름으로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西南夷는 夷族의 일부가 서남방으로 이주한 결과로 생긴 명칭이다.

선우라는 명칭의 군주가 19종의 부락을 통괄하는 흉노는 금수저 집단과 흙수저 집단으로 계층 구성이 되었다. 흉노의 최고 지배자인 선우는 연제(攣鞮)씨 집안에서 배출되었다. 황후인 알지(閼智)는 호연(呼衍)씨 집안에서 나왔다. 이 두 왕족 집단이 지배의 정점이었다. 이 둘과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는 수복(須卜)씨, 난(蘭)씨, 구림(丘林)씨라는 흉노의 지배 집단이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인이 북방민족에 관항 민족지적인 기록을 쓸 경우 그 집단의 크기와 성격에 부합시켜 유(類), 종(種), 부(部), 씨(氏), 성(姓), 읍(邑), 낙(落), 장(帳), 가(家) 등의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부족연맹체라 할 흉노 사회는 도각종(屠各種)을 위시해 장성 바깥에 거주했던 선지종, 구두종, 오담종 등 장성 바깥을 주거지로 하는 초원 유목민 열아홉 종이 부락을 형성해 서로 뒤섞이지 않고 지냈다. 이들 중 연제씨가 속한 도각종이 가장 강력하여 연제씨 집안에서 선우를 배출하여 모든 종족을 다스린다. 그런가 하면 전쟁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은 19종과는 다른 별종으로 취급하였다. 흉노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오랑캐였던 셈이다.

오랑캐란 명칭은 야만인이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본디 만주, 시베리아 등지에서 목축을 주업으로 하는 북방유목민의 족칭이다. 그 중 하나가 탁발선비요, 여진족이다. 이들을 중국 사서에서는 울량합, 우디거, 오륜춘, 어원커 등으로 기록했다. 몽골인들은 삼림민족이라는 의미로 우량카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오랑캐라고 지칭했다.

어렸을 적 주변 어른들의 이야기 중에 심심찮게 거론되던 것이 바로 ‘만주 오랑캐’, ‘여진족 오랑캐’라는 말이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 들어 배운 노랫말 중에도 거친 야만의 이미지를 지닌 오랑캐가 들어 있었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 천만이냐/대한 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 얕잡아보는 말투에 경멸하는 눈빛이 섞인 이 말은 문화적 우월성을 드러내는 위험한 자만의 발로다.

최근 TV를 통해 杭州(항주) 아시안 게임 경기를 보면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탁구 신동으로 불리는 신유빈 선수와 짝을 이루어 여자 복식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전지희 선수의 이력이었다. 전지희 선수는 허베이(河北)省 랑팡시 출신의 滿洲族으로 2011년 귀화한 한국인이다. 귀화 전 중국 이름은 ‘톈민웨이(田旻炜, Tian Minwei, 전민위)였다. 중국은 漢族과 55개 소수민족이 공존하는 거대한 나라다. 우리와 같은 민족인 조선족도 중화민국을 구성하는 소수민족의 하나다.

만주족 출신이라는 정보에 퍼뜩 떠오르는 말이 구룬(gurun)이었다. 구룬은 만주어로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혈통상 그녀에게 모국은 사라지고 없다. 나라가 없어지며 국민들이 사용하던 언어도 점차 소실되다가 현재 만주어는 완전히 소멸된 사어가 되었다.

만주족은 淸나라를 세운 女眞族의 다른 이름이다. 청나라는 金나라와 조상이 같아 後金이라고 했다가 건국주 누루가치의 셋째 아들로 후일의 태종이 된 홍타이지(皇太極 황태극)에 의해 만주로 개명되었다가 종국에는 국호가 大淸國이 되는 과정을 거쳤다.

만주의 지배집단은 金氏族이라는 의미의 아이신줘로(愛新覺羅) 족속이었다. 이들 만주족이 1911년 10월 10일 민권(民權), 민생(民生), 민족(民族)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내세운 쑨원(孫文)이 이끈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세력을 잃고 변방의 주민으로 전락하였다. 자신들의 언어보다는 漢語 사용에 익숙해지다 보니 더 이상 만주어 사용자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제 만주어는 소멸된 언어로 지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사라진 언어, 사어가 되었다. 사용 가치가 사라지면 존재가 위협받는다는 점을 일깨우는 씁쓸한 현상이다. 2019년 현재 1천만 명 가량의 만주족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가운데, 만주어 구사자는 수천 명에 불과하며 모어 구사자는 10명뿐이라고 한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학교 인문도시 사업단장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명예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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