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언어 … 우리말 속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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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언어 … 우리말 속 일본어
  • 박상현 경희사이버대·일본학
  • 승인 2023.10.15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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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경계의 언어: 우리말 속 일본어』 (박상현 지음, 박문사, 264쪽, 2023.09)

 

한글날이 되면 ‘우리말 속 일본어는 일제의 잔재다. 일본어는 오염물이고, 찌꺼기이기에 순화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이와 같은 인식이 있었기에 ‘국민(國民)학교’를 ‘초등학교’로 대체했다. 구루마(손수레, 자동차), 다꽝(단무지), 마호병(보온병), 벤또(도시락), 사라(접시), 사시미(회), 사쿠라(벚꽃), 센베이(전병), 소데나시(민소매), 스시(초밥), 시보리(물수건), 쓰리(소매치기), 쓰메끼리(손톱깎이), 에리(옷깃), 와리바시(나무젓가락), 와이로(뇌물), 요지(이쑤시개), 우와기(상의), 자부동(방석), 쿠사리(면박), 시마이(끝) 등도 각각 고쳤다.

이처럼 언어민족주의라는 관점에서 우리말에 살아남아 있는 일본어를 오염물로 혹은 찌꺼기로 간주하여 순화했다. 하지만 우리의 언어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너무 친숙하고 익숙한 나머지 순화하기 어려운 일본에서 유래한 말이 상당히 많다. 또한 일본어라는 의식조차 없이 쓰고 있는 말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많다. 전자에 해당하는 것에는 ‘노가다’가 있고, 후자에 들어가는 것에는 ‘아파트’가 있다. 특히 ‘일본식 한자어’는 일본어라는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회, 자유, 권리, 자연, 개인, 사진 같이 일본이 근대화를 진행하던 시기에 서양의 문화와 문물을 한자로 옮긴 ‘일본식 한자어’는 한자어라는 특성상 저항감이나 위화감 없이 우리 사회에 유입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철학이라는 용어도 그렇고, 국문법에서 쓰는 어휘도 그렇다. 이런 말조차도 ‘오염물이고, 찌꺼기이기에 순화해야 한다’면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은 상당히 어려워진다. 이것이 ‘우리말 속 일본어’의 현실이다.

순화해야 할 일본어는 알기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말 속 일본어’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생성과 변용 그리고 정착과 소멸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말 속 일본어’에 ‘시야시’(‘히야시’ 혹은 ‘시아시’)가 있다. 세대에 따라 이미 사어(死語)가 된 말이라고 볼 수 있는 ‘시야시’는 ‘찬’, ‘차게 한’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야시 잘 된 맥주’ 혹은 ‘시야시 잘 된 사이다’처럼 쓰였다. 이 말은 일본어 ‘ひやし(冷し, hiyasi)’에서 유래했다. 일본어의 의미도 ‘차게 함’이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시야시’의 전형적인 쓰임이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시야시 잘 된 맥주’ 혹은 ‘시야시 잘 된 사이다’인데 반해 일본어 ‘ひやし(冷し, hiyasi)’의 전형적인 용례에는 이것과 함께 ‘冷やし(hiyasi) ラーメン(ramen)’ 곧 ‘냉라면’이 들어간다. 그리고 ‘시야시’와 달리 일본어 ‘ひやし(冷し, hiyasi)’는 면류 음식에 대단히 많이 쓰인다. 결국 ‘시야시’는 일본어 ‘ひやし(冷し, hiyasi)’의 의미 가운데 일부만 차용하여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시야시’라는 말은 사라졌다고 추정된다. ‘시야시’는 아이스박스라는 얼음이 들어가 있는 대형 스티로폼 박스와 함께 쓰였기 때문이다. 냉장고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 얼음이 들어간 ‘아이스박스’에는 맥주와 사이다 같은 음료수가 채워졌다. 요즘처럼 찬 맥주나 시원한 음료수가 동네 슈퍼나 마트의 냉장 진열장에 당연히 있는 시대에 아이스박스와 함께 썼던 ‘시야시’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둘째, 한국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우리말 속 일본어’에 ‘미싱’이 있다. ‘미싱’은 재봉틀을 말한다. ‘미싱’은 영어 sewing machine을 일본식으로 줄여서 부른 말로 일본어로 ‘ミシン(misin)’이라고 표기한다. ‘미싱’은 재봉틀로 순화해야 하고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미싱’이 함의하는 바는 단순한 재봉틀이 아니다.

지금은 잊힌 시인이지만  박노해 시인은 ‘미싱’을 시어(詩語)로 자주 사용했다. 또한 이 말은 1989년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제2집에 수록된 <사계>에 수록되어 ‘미싱’이 사회성을 띤 용어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사계>를 소개한다. 

 

1절 봄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2절 여름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 짧은 샤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저 하늘엔 별들이 밤새 빛나고

3절 가을
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 간밤에 편지 한 장 적어 실어 보내고 /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4절 겨울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5절 다시 봄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피어도 /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이 노래의 리듬은 경쾌하다. 하지만 노래 가사에서는 노동자의 고단함이 느껴지는데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이 ‘미싱’이다. 

일본어에서 유입된 ‘미싱’을 재봉틀로 순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해 왔던 ‘미싱’의 어감은 사라지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미싱’을 귀화어로 받아들여 ‘미싱’과 재봉틀은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셋째, 최근에 많이 쓰는 ‘우리말 속 일본어’에 ‘간지’가 있다. 보통 ‘간지나다’라고 표현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느낌이 좋다, 멋지다, 세련되다’ 같은 의미로 쓰는 ‘간지’라는 말은 일본어 ‘かんじ(感じ, kanzi)’에서 왔다. 일본어의 의미는 ‘피부 등에서 외부의 자극을 받는 것. 감각’ 혹은 ‘사물이나 사람에 접촉하여 생기는 생각. 감상(感想). 인상. 분위기’를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가 쓰는 ‘간지’는 일본어 ‘かんじ(感じ, kanzi)에서 유래했지만 그 뜻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립국어원은 ‘간지나다’라는 말은 일본어의 ‘かんじ(感じ, kanzi)’와 우리말 접사 ‘나다’를 결합하여 쓰고 있는 것이기에 ‘멋지다’, ‘멋있다’, ‘느낌이 좋다’로 바꾸어 쓰는 것이 좋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간지나다’라는 말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멋지다’, ‘멋있다’, ‘느낌이 좋다’라는 표현이 주는 어감과는 다른 것을 표현하고 싶은 언중(言衆)의 욕망이 우리가 쓰는 ‘간지’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본어에는 ‘멋지다’와 ‘세련되다’라는 의미를 갖는 단어가 몇 개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말은 영어 cool의 외래어 표기인 ‘クール(cool)’다. ‘멋지다’ 혹은 ‘세련되다’라고 말할 때 고유 일본어인 ‘かっこいい(kakkoii)’ 등이 있지만 젊은이와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クール(cool)’라는 표현이 급속히 퍼져가고 있다. ‘クール(cool)’가 ‘かっこいい(kakkoii)’보다 더 멋있고 세련되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간지’를 쓰는 이유도 이와 같은 새로운 표현에 대한 언중의 욕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국어순화운동은 순화했던 일본어 혹은 순화하려는 일본어가 당대의 한국 사회에서 담당했던 언어적 역할 혹은 실제로 그 말을 사용했던 언중이 그 말에 담아냈던 의미와 뉘앙스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곧 언중의 주체성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언어를 생명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언어를 다양성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언어민족주의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어가 우리 사회에 유입될 때 그대로 이식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언어는 생명체이기에 한국 사회에 편입된 일본어는 우리 사회와 언중의 현실을 반영하여 발음뿐만이 아니라 의미에 변용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발음과 의미에 변용이 생긴 ‘일본어’는 (사라지는 말들뿐만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생명력 있게 살아남아 있는 말들도) 이미 더 이상 본래의 ‘일본어’가 아니다. 우리에게 귀화한 우리말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변용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일본어는 ‘일본어의 문맥’이 아니라 ‘우리말의 문맥’에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어 ‘키무치(キムチ)’가 우리말 ‘김치’가 아니듯 말이다. 

최근 한일 간에는 실질 소득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상호 간에 인식 변화가 크게 생기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금은 한일관계사에서 볼 때 대전환의 시대다. 지금까지 우리는 언어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우리말 속 일본어’를 오염물이나 찌꺼기로만 바라봤다. 하지만 ‘우리말 속 일본어’가 담당했던 쓰임을 어휘별로 꼼꼼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그 말의 고유한 역할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당당하게’ 인정하면서 그런 말들을 우리말로 포용하는 자세가 대전환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관점이 아닐까?

 

박상현 경희사이버대·일본학

경희사이버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일어교육학과를 졸업했고,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대학교에서 역사지역문화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술적 에세이라는 글쓰기를 통해 전공에 관련된 전문 지식을 대중에게 좀 더 알기 쉽게 전달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한국인에게 ‘일본’이란 무엇인가』(개정판 『한국인의 일본관』)와 함께 『일본문화의 패턴』, 『일본인의  행동패턴』, 『(타문화의 이해와 존중을 위한) 일본어한자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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