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이라는 처방전을 바꿔야 하는 이유!
상태바
한미동맹이라는 처방전을 바꿔야 하는 이유!
  • 김성해 대구대학교·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 승인 2023.10.15 01:5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 에필로그_ 『벌거벗은 한미동맹: 미국과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이유』 (김성해 지음, 개마고원, 380쪽, 2023.09)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너무 당연한 얘기인데 현실에서는 생각할 게 좀 있다. 목마르다는 걸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우선 존재한다. 본능인데 모를 수 있을까 싶어도 그렇지 않다. 특히 복잡한 문제거나, 자신의 힘이 닿을 수 없는 문제거나,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 다르게 생각할 수 없는 문제에서 이런 모순이 생긴다. 말기가 되어서야 증상을 느낄 수 있는 암과 유사한 경우다. 뭔가 불편한 데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그래서 물을 마시는 대신 갈증을 더 부추길 맥주나 음료수를 마신다. 

문제의 본질이 ‘갈증’에 있다는 것을 알아도 다음 숙제가 기다린다. 당장 아무 물이나 마실 수는 없다. 자칫하면 병이 난다. 근처에 식수가 있으면 바로 이용하면 되는데 이때도 난관이 있다. 물값이 너무 비싸거나, 수도가 없으면, 결국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우물을 파는 건 그렇게 봤을 때 막다른 길목에서 하는 선택이다. 물이 아무 곳에서나 솟아나는 것도 아니고, 마실 수 있는 수준인지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그만한 수고를 할 가치가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평범한 서생에 불과했던 필자가 한미동맹의 실체를 파헤쳐 보려고 했을 때 마주했던 절망이었다. 남들은 편하게 마시는 물을 두고서 굳이 혼자서 헛삽질하는 건 아닌지, 우물이라고 믿었던 게 오히려 모두에게 불행을 주는 독약은 아닐지 많은 생각을 했다. 용감하게 책을 낸 지금도 이런 두려움은 있다. 그래도 그간의 경험치를 통해 더는 침묵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옳고 그른 것을 비롯해 이 작업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세상의 평가에 맡기기로 했다. 

한국에서 미국을 비판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자칫하면 빨갱이로 손가락질당하거나, 국제정세를 모르는 철부지가 되거나, 아니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싸는 한심한 놈으로 몰리기 쉽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까지는 전혀 미국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대학 때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TIME>과 <NEWSWEEK>와 같은 잡지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방학 때는 특강을 들으면서 공인된 영어 성적을 받고자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역설적이지만 목마름을 깨닫게 된 계기도 ‘미국 유학’이다. 1997년 한국 사회를 덮친 외환위기 직후 미국에 갔다. 망해가는 한국 대신 잘 사는, 부강한, 최고의 선진국 미국에 가면 새로운 기회를 얻을 것으로 믿었다. 대략 30년 이상 한국에서 배운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논문을 쓰면서 미국이 천사가 아니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미국이 특별히 나쁘거나, 불량하거나, 악당이 아니라 그냥 다른 강대국과 다를 게 없다는 걸 배웠다. 미국 정부가 가장 우선하는 건 자국의 이익이었다. 국제 현안의 판단 기준은 언제나 손익계산이었다. 그것에 부합하면 한국을 도왔고 그게 아니면 배척했다. 외환위기를 맞아 미국이 혈맹인 한국을 무조건 도와줄 거라고 믿었던 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비로소 직시했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도 눈을 떴다. 국제사회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작동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국가가 중심이 되어 구축한 안보질서, 경제질서, 지식질서, 정보질서 등을 통해 굴러간다는 것 역시 깨우쳤다. 지금껏 배운 게 미국이라는 거인의 어깨너머에서 본 풍경에 불과했다는 것과 거인이 보여주지 않는 다른 쪽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 사회가 꿈에서 깨어나 미국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귀국 후 더 절박해졌다. 

박사 학위를 막 끝냈을 때는 한국 사회가 집단으로 미국 사대주의에 빠져있다는 걸 몰랐다.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은 잘 ‘알면서도’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안’ 한다고 생각했다. 대략 20년 정도 지식인 세계를 경험하면서, 또 언론을 통해 높으신 분들을 만나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들도 잘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애초에 ‘목이 마르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미동맹만 붙들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맹신하고 있었다. 

동맹이란 ‘친구’가 아니라 ‘적’이 같은 관계라는 것과 미국은 늘 자신에게 유리한 ‘적’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중국과 북한이 정말 한국의 ‘적’인지 만들어진 ‘유령’인지, 그 유령으로 인해 어떤 기회비용을 치르고 있는지, 신냉전을 맞아 앞으로도 미국의 선봉대가 되야 하는 지 등에 무관심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미국의 심리전이 한국 사회를 일상적으로 관통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중국과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물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라크와 리비아 사태 등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이 보라는 것만 보고, 미국이 하는 말에만 귀를 기울인 업보였다. 한미동맹의 민낯을 한번 밝혀 보겠다는 ‘우물 파는 일’을 선택한 이유다. 

 

사진 출처: 월간조선<br>http://m.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418&Newsnumb=20050717)<br>
사진 출처: 월간조선
http://m.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418&Newsnumb=20050717)

미국과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이유 

책은 크게 5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제1장에서는 ‘동맹’의 본질을 설명했다. 동맹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것과 국제사회에서 동맹에 몫을 매는 나라는 많지 않다는 것과 왜 그런지 설명했다. 적이 같은 게 동맹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동맹 중 누군가 ‘적’을 끝없이 만들어내고 상대적 약자는 그것에 따라 늘 ‘총대’를 매는 상황이 된다는 것도 밝혔다. 

제2장에서는 “미국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통념이 과연 맞는지 살폈다. 잘못된 신화가 최소 4가지 있다는 것을 이 장에서 지적했다. 미국이 한국을 도운 건 미국 중심의 패권 질서에 필요한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전쟁에서 미국은 천사가 아니라 악마에 가까운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것, 미국이 한국을 지원한 건 공짜 점심이 아니었다는 것, 또 미국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집단정서와 태도가 ‘세뇌’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것 등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모두 낯선 얘기라 가능한 많은 증거 자료를 제시했다. 제2장은 미국에 대한 ‘우상 숭배’가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파헤쳤다. 과거 일본 식민지를 거치면서 ‘황국신민’이 되었던 것처럼 한국은 70년 간 지속한 한미동맹을 통해 ‘반공 십자군’으로 거듭났다는 해석이다. 

전쟁 후 미국 가정에 입양된 전쟁고아는 무려 10만 명이 넘는다. 침략군에 맞서 함꼐 피를 흘린 것도 너무나 감사한 일인데 입양까지 해 줬다. 절대 흔한 일이 아니고 보통 애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을 한국의 수호천사로 받들게 된 건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미국이 ‘입양 프로젝트’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 것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많았다는 게 먼저 나온다. 1941년 대서양선언을 통해 신생 독립국의 내정을 간섭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밝힌 게 미국이다. 국제사회에서 봤을 때는 내전에 가까웠던 한국전쟁에 개입함으로써 미국은 이 약속을 스스로 어겼다. UN에서 결의한 ‘남한 지역의 질서 회복’을 넘어 38선 너머로 전선을 확대한 것 역시 ‘제국주의’ 행태였다. 

국제사회의 비난에 맞서 미국은 ‘달라졌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공산주의라는 악마에 맞서 성전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데 있어서도 입양은 훌륭한 전략이었다. 적색 제국주의 소련과 공산주의라는 악마에 핍박을 받고 있는 ‘어린 양’ 한국을 구원해야 한다는 종교적 열정도 거들었다. 당시 고아를 입양한 다수가 그런 신앙으로 뭉친 보수적 개신교 교인이었다. 한국을 반공 십자군으로 양육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미국의 전략도 소개되어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관찰자료를 모으기 위한 한국학 연구와 정보기관을 통한 자료 수집, 친미 엘리트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 또 영화, 잡지, 신문 등을 통한 프로파간다 활동 등이다. 

 

2023년 현재 한국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집단정체성에서 미국이라는 변수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이 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고 지금은 지금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 미국의 개입을 통해 한국 사회가 영향을 받았고, 그 덕분에 미국을 해바라기처럼 추종하는 집단사고가 있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건 아닐까? 더욱이 한국은 지금 세계 10대 강대국인데 여전히 부모인 미국을 거부하지 못하는 ‘어린애’라고 하는 건 과장이 아닐까? 제4장 ‘가두리양식장’을 통해 이 질문에 답했다. 

가두리양식장에 사는 고기는 행복하다. 일정한 크기가 되지 않으면 자신이 갇혀 있다는 걸 깨달을 일이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 그물이 있어 외부의 사나운 물고기에 공격을 받을 일도 없다. 먹이를 찾아 애써 헤매지 않아도 된다. 유일한 비극은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할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덩치가 더 커져 그물 밖으로 나갈 때가 되면 식탁의 횟감이 되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에 갇혀 있는 한국의 처지를 여기에 비유하면 모욕일까? 제4장에서는 2000년과 2018년 한반도를 찾은 두 번의 봄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노무현과 문재인 대통령 때 어렵게 찾아왔던 한반도 평화는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모든 게 ’북한 탓‘일까? 아니면 무능한 정권 탓일까? 미국은 남북대화를 원하는 것 같은데 속내는 달랐을까? 

제4장에서는 지금의 상황이 결국 ’우리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압력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이 가능한 건 우리가 협력한 때문이다. 특히 관심을 둬야 할 집단은 분단을 통해 기득권을 누리게 된 권력 연합체다. 복합체라고 부른다. 종교계, 학계, 정치권, 시민단체, 이민사회, 탈북자 집단 등에 흩어져 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곳은 그중에서도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하는 언론복합체다. 미국의 심리전을 대신해 주는 집단에 가깝다. 국내 언론시장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을 돕는 집단이 CIA 자금 지원을 받는 <열린북한방송> <자유북한방송> <데일리NK> 등이다. <극동방송> <크리스탄투데이> <기독일보> 등 교회에서 운영하는 매체도 힘을 보탠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담겨 있다. “박수칠 때 떠나자”라는 제목에 압축되어 있다. 

2023년 한국 상황은 좋다. 맹자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말한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 중에서 최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질서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게 하늘이 돕는 정황이다. 중국, 러시아와 브릭스 등이 꿈꾸는 대안질서는 단순한 희망 사항이 아니라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국력이 어느 때보다 성장했다는 게 땅의 이로움이다. 세계 10위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한국이 패권경쟁의 어느 한 편을 들면 큰 힘이 된다. 미국과 중국 누구도 한국을 적으로 두려고 않는다. 그게 기회다. 굳이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중립‘의 길을 가면 된다. 뜬금없는 소리가 아니다. 중립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구한말에 등장해, 해방 직후, 한국전쟁 이후, 4.19 혁명 이후에도 나왔다. 지금도 꾸준히 반복하는 주장이다. 미국이라는 거인의 어깨에서 내려와 직접 찾으면 쉽게 볼 수 있는 데 우리는 그걸 안 한다. 못하는 게 아니다. 

 

’중립화‘라는 새로운 처방전

작년 말 원고를 마쳤을 때만 해도 책을 낸다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소 30개 이상의 출판사에 문을 두드렸는데 모두 거절당했다. 필자의 생각이 낯설었다는 게 문제였을 것 같다. 대중이 좋아할 주제가 아니거나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개마고원>에서 이 원고를 받아줬다. 책이 나온 지 한 달이 넘어가는 데 독자의 반응은 평범하다. 무시를 당할 정도는 아닌데 그렇다고 관심의 대상이 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왕 파기 시작한 우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지금은 혼자여도 장차 누군가 힘을 보태줄 거라는 희망도 있다. “목이 마르다”라는 걸 한시도 잊지 않게 해 주는 현실도 힘이 된다. 

필자가 머무는 대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전투기와 관련된 얘기다. 평일이면 잠시도 쉬지 않고 쇳소리를 내면서 날아다닌다. 자칫하면 한순간에 모든 게 끝날 수 있다는 공포감에 시달린다. 지난 70년 이상 ’종전‘ 선언도 못 하는 한반도라서 가능한 일이다. 미국이 있어도 달라지지 않는 풍경이다. <벌거벗은 한미동맹>을 통해 이 모순을 드러내고 싶었다. 70년 동안 날마다 복용해온 처방책이 효험이 없다면 이제는 다른 처방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평화롭게 살면서 가고 싶은 곳 어디나 가고, 하고 싶은 말 맘대로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김성해 대구대학교·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영상콘텐츠전공 교수. 연세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조지아대학에서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으며,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객원과 상임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지식패권 1,2』(2019) 『천사 미국과 악마 북한』(공저, 2019)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도전 2023-10-19 12:49:20
미안한 표현이지만..., 저자가 몽유병 환자 같은 느낌이 듭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