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와 재번역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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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와 재번역의 필요성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 승인 2023.10.0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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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프랑스 문학 번역자를 둘로 나누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번역한 경험 여부가 기준이 될 정도로 누구나 아는 이 책을 새삼스럽게 여러 전공자가 번역하여 출간했다. 더구나 그들 중에 존경받는 원로 학자들도 많은 것을 보면 동일한 원전을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한 목적이 단순히 상업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닌 것 같다. 프랑스어 이외의 원전으로 출간된 번역서까지 포함하면 수백 종의 『어린 왕자』가 있고 한 해에도 새로운 번역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책의 인기 비결이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어린 왕자』를 완독했거나, 중년 이상의 나이라면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읽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 책을 완전히 읽지 않았다면 러시아 고전처럼 제목이 익숙하고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독서로 옮기지 못했거나 학창 시절에 읽고 더 이상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번역자도 밝혔듯이 101번째 번역으로 『주석 달린 어린 왕자』(김진하 역, 필로소픽)가 작년 말에 출간되었다. ‘주석 달린’이라는 수식어는 이 책의 다른 번역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려는 의도이기도 하지만 ‘내가 읽은 『어린 왕자』’를 통해 독자와 만나려는 번역자의 생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번역자는 연구자들에게 학문적 도움을 주려는 목적에서 주석을 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이른바 ‘흡혈귀 독서론’에서 책이 글자를 제외하고 하얀 종이로 되어 있는 모습이 마치 피가 모자라 창백한 흡혈귀와 같다고 했다. 흡혈귀에 비유되는 책이 독자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되면 화색이 돌고 생명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즉 『어린 왕자』 역시 새로운 의미 부여를 시도하는 번역자 혹은 독자와의 만남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어린 왕자』가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번역자는 이 책이 우리가 알고 있듯이 ‘어른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환상소설’이라고 규정한다. 특히 어린 왕자가 3인칭 시점으로 등장하는 10장에서 23장은 볼테르식 설화이며, 의인화된 동식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우화적 기법을 활용한 ‘환상소설’이라고 해석한다. 다만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고 동식물과 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어린이의 상상력을 지닌 것이고, 그것에 의심을 둔다면 ‘합리성의 논리를 따지는’ 어른에 속할 것이다.

 

『어린 왕자』에서 가장 많이 주목받고 인용이 되는 단어는 ‘길들이다(apprivoiser)’일 것이다. 그 대상은 어린 왕자와 장미, 여우 그리고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이고 그들 사이의 관계 맺기에 적용된다. 물론 이 단어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점진적으로 알아가고 서로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 즉 ‘조하리의 창’에서 유사한 모델을 빌어온다면 나도 알고 타인도 아는 ‘열린 창’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번역자가 본문에 옮기지 않고 주석에만 남겨두었지만 ‘길+들이다’는 “마음속에 타자가 들어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진다”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시적 해석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21장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들려주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을 지는 거야. 너에겐 너의 장미에 대한 책임이 있어”라는 말을 역자는 ‘책임의 윤리학’으로 규정한다. 어린 왕자가 장미를 사랑하고 둘이 서로를 길들였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보호와 책임, 존경, 지식’으로 정의 내린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보호와 책임은 개인 간의 혹은 사회적 연대로도 발전할 수 있다. 내가 어떤 대상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는 연대 의식의 발로이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에서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힘도 자신의 생존을 확신하는 사람들과의 신뢰와 정신적 유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책임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번역의 필요성은 중역이나 오역을 바로 잡으려는 당연한 요구부터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동시대의 언어를 담으려는 긍정적 의도는 물론, 심지어는 기본 판매 부수가 보장될 것이라는 출판사의 상업적인 판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린 왕자』 역시 길들이기 전의 다른 십만 마리의 여우가 아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처럼 독자에게 수용되기 위해서는 번역자의 노력 못지않게 독자의 공감을 얻어내야 할 것이다. 『주석 달린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책은 독자와의 만남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는 투르니에 독서론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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