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시각’을 찾아서: 사유의 여행 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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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시각’을 찾아서: 사유의 여행 ➁
  •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3.10.0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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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빈 교수의 〈동아시아 담론〉

 

                                                           이미지 출처: Asia Times

역사관 바로잡기에서 동아시아시각의 생성

상기대로 오늘날 한중일 역사관의 편차는 “수평적이고 성찰적인 동아시아 역사관 vs. 대국주의 구현의 동아시아 역사관”의 갈등을 조성하고 있다. 중국, 일본은 각자의 국가주의적 목표를 지향하는 작위적인 역사관을 성찰해야 한다. 그 이후에 각자가 주창하는 동아시아시각과 지구적 시각의 역사관이 설득력을 갖출 수 있다. 현재의 희망으로 과거를 재해석하고 미래역사를 구성하려는 중국 역사공정과 일본 식민사관은 한국의 ‘국가주의를 소거한 실증적 민족주의사학’의 교정을 받아야 한다. 그런 후에 국가를 상대화하고 동아시아시각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비판의 준거로서의 동아시아시각’을 적용하면, 3국의 어떤 역사론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동이족, 고조선, 부여, 고구려, 가야, 백제, 신라, 왜국, 류큐에게 그들의 역사를 돌려주어야 한다. 저 옛날 그들의 역사와 문화, 강역을 ‘오늘날과 미래’의 한중일의 국가주의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재해석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구체적으로, 과거 변경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오늘날 자국의 국가영토에 통합하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한다. 오로지 학술적 연구와 토론의 주제로만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공정과 식민사관, 실증적 민족주의사관도 이러한 점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동아시아 고전시대 다양한 민족과 왕조국가, 부족공동체의 역사와 문화영역, 강역을 모두 오늘의 나(제국, 국가)에게 통합하려는 팽창 욕망을 소거한 동아시아 수평의식의 역사관이야말로 곧 동아시아의 문제와 담론을 바라보고 비판할 수 있는 “동아시아시각”의 출발선이다. 그래서, 서두에서 말한 대로, 우리에게 내면화한 왜곡된 역사관인 “육체-마음의 습관”을 고치려는 고통이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관에는 민족자존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면, 누구나 수용 가능한 비판의 준거로서의 ‘동아시아시각’을 건설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의 실천의 기초를 사유해 보는 것, 그게 학문이 아닐까.

올바른 동아시아 역사관은 올바른 동아시아사상사론의 출발선이다. “실증적 민족주의사학”이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중국과 일본의 작위적 역사론과 우리의 반도사관을 논리적으로 바로 잡고 한중일 대등사관을 복원했으나 이것을 동아시아시각으로 연결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실증적 민족주의사관을 참조하여 동아 3국의 상호 수평의식을 ‘비판의 준거로서의 동아시아시각’의 자원으로 삼아 ‘동아시아사상사론’을 구상하고 싶다. 

“근대 완성과 극복의 이중과제”를 전개하는 “동아시아담론”(백영서 외)에서도 ‘3국의 왜곡된 동아시아 역사관’에서 어떻게 공통의 비판 준거인 ‘동아시아시각’에 대해 어떠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심지어 기존의 이병도 류의 일제 식민사관과 이기백의 중도적 사관에서 표방하는 “육체-마음의 습관”에서 벗어나려는지도 궁금하다. 실증적 예를 들어보자. 

이기백과 그의 저서 <한국사신론>
                                이기백과 그의 저서 <한국사신론>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동아시아 고대사의 중요한 주제들(동이족 문명권의 하나인 한민족과의 연관성, 고조선과 고구려의 건국 주체와 강역, 한사군의 위치, 조선시대 북방 강역)에 대해서 대체로 기존의 강단학계를 토대로 하면서, “…주장하는 설도 대두하고 있으며,,,설도 나타나고 있다...”(34면)라는 유보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사군의 위치와 사회상에 대해서는 기존의 식민사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40-42면). 발해와 신라가 남북국의 형세를 이루고 있었다고 서술하면서도 신라사가 정통사관이 되었다고 기존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따름으로써(130면), “반도사관”을 거부하는 진보적 “대륙지향 사관”을 추구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일제 식민사관을 조금은 벗어나고 있으나, 여전히 《한국사신론》은 그 영향을 털어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른바, 조선시대, 북방 강역에 대해서 기존의 역사서는 모두 세종의 4군 6진 개척으로 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 확장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257면).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한 이덕일의 실증적 연구가 확인한 것은 일본 식민사학자 이케우치 히로시(박찬흥,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의 한국고대사 시기구분과 고조선․한사군 연구〉)가 작위적으로 구성한 한국사를 한국사학계가 지금도 추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려는 북방 강역을 ‘북계’와 ‘동계’라는 행정 구역으로 관할했는데, 동계에 대해서 《고려사》〈지리지〉는 이렇게 말한다. “비록 연혁과 명칭은 같지 않지만 고려 초로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공험 이남에서 삼척 이북을 동계라 일컬었다”(322면). 고려 동계의 북쪽은 공험진, 남쪽은 삼척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사 교과서들은 공험진을 함경남도, 삼척을 경북 포항 근처에 그려 놓고 있다. 철령은 지금의 심양 남쪽 진상둔진의 봉집보 자리이고 공험진은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이다. 조선 태종은 국체보전을 위해 명에 사대했으나, 강역을 양보하지는 않았다. 재위 4년 1404년 5월 19일 예문관 제학 김첨을 명에 보내 철령에서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강역이라면서 명조가 인정할 것을 요청한다. 이때 태종은 고려 우왕이 박의중을 명나라에 보내서 “공험진 이북은 요동으로 환속하고 공험진 이남에서 철령까지는 본국에 환속시켜 달라고 요청”했을 때, 명조에서 수용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결국 김첨은 태종 4년(1404) 10월 “상주하여 말한 삼산천호 이역리불화 등 10처 인원을 살펴보고 청하는 것을 윤허한다”라는 명 성조 영락제의 국서를 받아왔다. 조선-명의 국경이 “지금의 요녕성 심양 남쪽의 철령부터 흑룡강성 영안 부근의 공험진까지를 조선 북방의 강역으로 확정되었다(323면). 이는 명조에서 국서로 인정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이후 명조와 국경협상을 다시 한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국경선은 현재에도 의미가 있다.

세종도 태종이 확정한 강역에 관심이 많았다. 1426년(재위 8년) 4월에 “공험진 이남은 나라의 옛 강역이니 마땅히 군민을 두어서 강역을 지켜야 한다.”라면서 그 대책을 묻는 책문을 유생들에게 묻는 논술 고시를 치루었다 (332면). 다시 북방의 강역에 대해서, 1433년 1월 최윤덕을 평안도 절제사로 보내고 난 후, 조선의 국경에 대해 설명했다. “...고황제(명 태조)가 조선 지도를 보고 조서하기를, ‘공험진 이남은 조선경계’라고 하였으니, 경들이 참고해서 아뢰라”(《세종실록》, 15년 3월 20일, 이덕일, 333면)고 하였다. 세조 시기 정척, 양성지 등이 작성한 《동국지도》 역시 두만강 북쪽 공험진과 선춘령을 조선 강역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리하여 한국사 교과서들이 세종의 4군 6진 개척으로 조선 국경이 압록강에서 두만강으로 확대되었다고 서술한 것은 일제 식민사관의 조작을 지금까지 추종하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335면).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중-고등학생과 각종 고시 준비생에게 과연 어떤 역사를 가르치면서 그들의 ‘육체-마음의 습관’을 조작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역사론을 바로잡은 지점에서 ‘비판의 준거’로서의 ‘동아시아시각’이 설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이미지 출처: UNESCO, APCEIU 2023(www.gcedclearinghouse.org/about)

‘동아시아시각’, ‘세계시민의식’, ‘우주시민의식’의 연동성

나의 사유에서 ‘동아시아시각’과 ‘세계시민의식’(world citizenship)은 얼굴은 다르지만, 그 두뇌의 생각은 일체를 이루고 있다. 후자의 의식이 있으므로 전자의 시각이 가능하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정신과 육체, 리와 기는 다르지만 하나가 되어야 작용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유발 하라리는 “모든 인간이 신이 되면 역사는 종언한다”라고 했다. 신의 수준은 모르겠으나, “모든 사람이 국가주의를 초탈하여 세계시민의식으로 보편적인 가치와 감성으로 인류사회의 사상-사물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갈등의 역사는 종언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역사 흐름에 따른 인류의 각성은 끝이 없다. 고전시대 동서양의 ‘하늘(天)과 유일신의 시점’으로 살던 르네상스 시대 인간은 신이 지정해 준 ‘정지된 시점’의 그림에 의문을 품고 ‘원근법’을 개발하였다. 이어서 도래한 근대의 ‘국가 시점’에서 탈근대를 외치는 근래는 ‘나의 시점’으로 진정한 계몽이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시각과 세계시민의식을 일체화하는 동기는 21세기 사유의 출발선인 ‘시점의 계몽’이라는 함의를 자각했기 때문이다. 즉, 내가 국적을 초탈한 시각으로 동아시아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지구상의 한 시민인 나의 시각에서 세계를 비평한다는 의미와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동아인은 지난 서세동점과 냉전체제, 현 미세동점의 세기에 제국과 국가의 지배기제에 편승과 저항, 기회주의적 순응으로 나(주체)의 시점을 빼앗긴 채 살고 있다. 21세기 동아시아의 부상은 이렇게 탈제국-탈국가-탈냉전의 각성을 이루려는 탈근대적 문제의식과 연동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미세동점과 국가주의에서 탈피하여 동아인의 주체적 시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전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시민의식을 내포하는 동아시아시각’은 우선하여 체계권력(제국과 국가, 주류문화와 자본)으로부터 능동적인 해방을 지향한다. 나의 삶의 유무형의 조건을 결정하는 체계권력을 초탈한다는 것은 밟고 있는 땅을 거부하고 하늘을 떠다니겠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도 탈체계를 사유하는 철학적 이유는 ‘체계를 생존의 방편으로 삼지만, 생각과 사유만큼은 우주를 유영하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라는 것이다. 내가 사유하는 시점(출발점)을 체계권력에서 출발하지 않고 내(주체)가 생각하는 도덕성(정의와 공정)을 주도적으로 활용하여 문제와 담론을 토론하겠다는 뜻이다. 

이게 ‘동아시아시각’이 ‘세계시민의식’과 일체화하여 만들어 낸 함의이다. 이러한 ‘동아시아시각’의 사유에 영감을 준 비판적 지성을 떠올려 본다. 이들은 평화주의 논리와 실천을 초지일관하여 구현한 특성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안중근, 신채호, 함석헌, 리영희 선생이 우선 떠오른다. 일본에는 오에 겐자부로오, 미야지마 히로시, 고야스 노부쿠니 등이 있다. 특히, 3·1운동에 자극을 받아 조선 독립을 지지한 이시바시 단잔, 광복 70주년(2015년 8월)에 하토야마 유키오는 독립투사 추모비 앞에 무릎 꿇고 사죄했다. 중국에는 루쉰, 첸리췬, 가오싱젠이 생각난다. 물론 내가 놓치고 있는 인물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른바, 이들의 공통점은 탈국적의 ‘동아시아인’이자 ‘세계시민’으로 살았던 비판적 지성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자국을 비판한 탈국가주의적 동아시아인이었고 동시에 세계시민의식을 가진 평화사상가였다. 자기 국적을 초탈하여 도달한 ‘동아시아시각’은 ‘세계시민의식’(awareness of global citizenship)과 분리되지 않는 한 몸과 같다. 

‘세계시민의식’이라는 개념은 누구나 당위적으로 그래야 한다는 관념론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사실, 미래의 역사를 건설해야 한다는 ‘미래주의 조망’에서 ‘미래사적 방법론’으로 빚어낸 것이며, 인문학적 상상에 사회과학적 구체성을 가미해야 한다는 의도에서 제출한 개념이다. 따라서 인문학적인 상상으로서의 칸트의 ‘세계시민정부론’을 그대로 복사한 게 아닌 울리히 벡의 ‘글로벌 위험사회론’에서 주창한 ‘글로벌화한 위험’에 대한 국제주의적 대응으로서의 ‘세계시민국가’를 구상하는 것이다. 즉, ‘세계시민의식’이란 민족과 국가 간 평등과 차이를 인정하고 궁극적으로는 전 지구적으로 책임지는 ‘세계시민 공동체’의 창출을 지향한다. 이는 곧 ‘동아시아공동체 구상’과도 맞닿아 있다. 

세계시민의 주체의식 각성과 세계시민정부의 필요성을 자각한 기반에서 우주-인간에 대한 영감을 준 《코스모스》(칼 세이건)는 ‘인간의 충성과 사랑의 대상은 마을, 부족, 도시 국가, 국가, 초강대국(패권제국)으로 넓혀져 왔는데, 이제 전 인류와 전 지구로 넓혀야 한다. 그래야 수백만 년 이후에도 지구의 생명체는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경고하고 있다(675면). 이러한 과학자의 사상에서 지구인인 우리는 지구멸망 임박의 경고성 메시지(자연위기와 핵위기를 상기)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 이제 세계시민의식은 헛된 인문학적 구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 행동규범이다. ‘동양의 유기체적 인식론, 천인합일과 천인감응, 우주와 자연, 인간(天地人)의 상호 공존’도 이제는 구호가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조건이다. 21세기 서양사상의 근대적 진보성에 의해 후진적 보수성으로 배제되었던 동양의 유기체적 인식론은 인류생존을 위해서는 이제 가장 진보적 사상이 되었다.

나는 앞으로 동아시아 정치사상이 동아시아시각과 세계시민의식에서 우주시민의식을 지향하는 사유를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바로 지금 우리가 착수해야 할 일은 인류사를 과거와 현재를 발판으로 삼은 ‘미래주의’ 조망으로 분석하면서, ‘미래사적 방법론’으로 구체적인 프로젝트(ex. 글로벌 위험공동체, 탈지구적 우주시대, etc)를 구상하는 것이다.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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