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영국대학… 재정난으로 교육의 질 저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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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영국대학… 재정난으로 교육의 질 저하 우려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10.04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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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나무위키

최근 영국에서는 재정난을 겪는 대학들이 늘어나면서 캠브릿지·옥스퍼드 등 영국 명문 대학들의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 년간 정치논리에 따라 등록금이 사실상 동결된 탓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비를 삭감하고 온라인 강의를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교육의 질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외국인 학생 의존도가 높아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6일 “약 30개의 영국 대학이 가장 최근 학년도에 재정적 손실을 보고했으며 올해 그 수가 세 배 더 늘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24개 명문대학으로 구성된 러셀 그룹이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이 대학들은 2022~2023학년도에 학생 1인당 평균 약 2,500파운드에 가까운 적자를 봤다. 이 수치는 2030년 5,000파운드로 두 배 늘어날 것으로 영국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이는 영국이 지난 12년 동안 대학 등록금을 사실상 동결한 여파다. 영국의 대다수 대학은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립대학이다. 영국 정부는 매년 전국 대학에 동일한 등록금 상한선을 정하고 있다. 이 등록금 상한선은 2011년 3,290파운드에서 9,000파운드로 오른 뒤 6년 간 동결됐다. 2017년에 9,250파운드(1만1,200달러에서 1만1,500달러)로 한 차례, 약 2.8% 오른 뒤 이 금액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고등 교육 컨설팅 회사인 ‘데이터HE’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을 고려해 계산했을 시 2012년 이후 등록금은 약 3분의 1 가량 하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물가 상승을 그대로 반영했다면 1만4,000파운드에 가까웠을 것이라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같은 기간 미국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명목상으로는 40%, 인플레이션 이후에는 10% 가까이 상승해 평균 3만4,041달러에 달했다.

대학 등록금 인상은 영국 정치권에서도 각 정당이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정치적 역풍을 우려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현 정부도 내년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등록금 인상에 미온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로버트 하펀 고등교육부장관은 최근 타임스 고등교육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영국 평균 급여가 하락한 상황에서 등록금 인상은 백만 년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WSJ는 “지난해 물가가 평균 8% 급등하고 올해 7% 정도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학들의 적자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이러한 재정난이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들은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교원 수를 줄이거나 임금을 낮추고 있다. 노리치에 위치한 이스트앵글리아대학은 연 3000만 파운드 적자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일부 교수진과 행정직원을 해고하고 교육·연구 분야를 축소했다. 올해 초 150개 대학에서 일하는 교직원 약 7만 명은 고용 안정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학생들도 직접 피해를 겪고 있다. 대학들이 온라인 수업 비중을 늘리고 기숙사를 줄이면서다. 지난해 요크대학교 생물학과에 입학한 이사벨 코리(19)는 “2022~2023년도에 수강한 6개 과목 중 5개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고 토로했다. 학생들은 대체로 녹화 강의를 시청했고, 교수와 대면하는 일은 극히 적었다고 한다. 글래스고대학은 올 여름부터 차로 1시간 거리 안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는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이스트앵글리아대의 데이비드 매과이어 부총장은 대학들의 이런 조처에 대해 “궁극적으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라며 “교육의 질을 보장해야 똑똑하고 우수한 인재를 대학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이들이 영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등록금은 치솟고 있다. 대학들이 이를 통해 부족한 재정을 메우고 있다는 얘기다. 러셀 그룹 대학의 외국인 학생 평균 등록금은 2017년 1만 8,000파운드에서 2만 3,750파운드로 올랐다.

유학생 비율도 늘었다. 러셀 그룹 대학 내 외국인 학부생 비율은 지난 2017년 16%에서 2022년 25.6%로 증가했다. 중국 출신 학생 수는 2015년 5만 2,000명에서 2021년 약 10만 명으로 늘었고 인도 출신 학생도 9,000명에서 8만 7,000명으로 급증했다.

한 대학 관계자들은 “외국인 학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경우 대학 재정이 지정학적 요소 또는 정부 이민 규정과 같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의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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