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빅에 가면 하우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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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빅에 가면 하우게가 있다
  •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 승인 2023.10.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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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노르웨이에 가면 울빅(Ulvik)이 있고, 울빅에 가면 울라브 하우게(Olav H. Hauge, 1908∼1994)가 있다. 타임 슬립이 가능하다면 만나고픈 사람, 울라브 하우게. 그의 시 「수확기」를 읽자마자 첫눈에 반한 시인, 울라브 하우게. 그의 시편들 속으로 몸과 마음을 늪처럼 그저 끌어당기는 울라브 하우게. 책을 너무 좋아했고, 정원사로 일하며 한평생 고향 울빅을 떠나지 않은 시인 울라브 하우게. 여덟 권 분량의 400편이 훨씬 넘는 시를 토종 노르웨이어인 ‘니놀스크(nynorsk)’로 썼기에, 생각보다 뒤늦게 세상에 알려진 시인 울라브 하우게. 생소한 언어로 빚어낸 시적 감수성이 보란 듯이 보편성을 구가하는 울라브 하우게. 온화하면서도 단단하고 다정하면서도 분별력을 잃지 않는 삶의 태도를 예견케 하는 울라브 하우게.

  그의 시집은 국내에 두 권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다.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와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마땅한 노르웨이어 전공자가 없어, 부득이 영어 번역본을 기반으로 그의 시 일부들이 번역되어 있다. 그의 모든 시편들을 낱낱이 읽어 볼 수는 없어서 여간 아쉽지가 않다. 그러나 번역에 번역을 거친 두 권의 시집만으로도 울라브 하우게의 시적 세계를 온전히 만나본 느낌을 받았다 하면 오만일까. 그래도 그 오만함을 누리기로 하고, 두 권의 시집 가운데 내 마음에 와닿는 번역 작품으로 그의 시적 이야기를 전한다. 노르웨이어에 도저히 근접할 수 없음을 절망하면서, 또는, 무릇 시는 절대 원문 그대로 읽어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는 평소 내 소신을 잠시, 굽히면서.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나의 갈증에 바다를 주지 마세요,
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
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
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같이,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같이. 

-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울라브 하우게의 이 시를 알고 난 이후부터 해마다 일기장을 바꿀 때 맨 앞에 적어 두는 작품이다. 몇 십 년을 살다보니, 시간의 이랑과 고랑을 건너면서 더더욱 간절해지는 것은 진실의 실체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라는 단호함에 사로잡히고야 마는 내 마음자리란. 그는 ‘진실’, “그런 건 없다고” 말한다.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 말이 없다”(「진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증을 느끼는 진실의 실체. 이어 “나의 갈증에 바다를 주지 마세요”라는 단호한 그의 목소리가 나를 일깨운다. 풀이 죽어 고개 든 채 하늘을 보면 “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라는 그의 견고한 목소리가 또 다시 나를 뒤흔든다. 그러면, 서서히,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가 귀한 가치로 내 삶에 젖어든다. “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같이,/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같이” 그것들이 내 삶의 소중한 가치들로 서서히 물들어 가는 것이다. “천천히 바다”가 “놀을 밀어 올리”듯이, “천천히 숲”이 “골짜기에서 붉어지”듯이(「천천히 진실이 떠오른다」). 그 순간 찾아오는, 알 수 없는, 그러나 어렴풋이 알 것도 같은 안도감. 이때 경계하는 그의 목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죽은 진실을 본 적이 있다/ 얼어 죽은 토끼의 눈을 하고 있었다”(「진실」).
  유난스럽지 않은 시어들과 시적 전개가 저 깊은 사색으로 이끄는 가슴 설레는 경험. 평온함에서 시작했다가 쿵쾅거리는 두근거림으로 옮아갔다가 안도감을 느꼈다가 다시 불안함을 느끼는, 그러나 찬란한 혼란스러움이 전혀 두렵지 않은. 
  그래서 이것저것 곁눈질하는 나에게 “자랄 데가 아니다, 여기는/ 뿌리를 내리지 마라,/ 꽃을 내밀지도 마라!/ 삶을 구하고 싶다면/ 단단히 그대로 남아 있으라!”(「씨앗」)는 그의 당부가 경고이자 동시에 위안으로 다가온다. 평생 글을 쓰면서, 시를 쓰면서 살고 싶은 나에게 “네가/ 말을 적게/ 썼으면/ 한다,/ 사이사이/ 빛과 공기를 담고/ 소나기처럼/ 페이지 아래로/ 흘러내리는/ 적은 말과/ 짧은 문장”(「가르침」)을 권유하는 그의 당부가 준엄한 ‘가르침’으로 내리꽂힌다. 실존의 무게감이 더러 버거운 나에게 “거기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물론 네 말은/ 옳다, 너무 옳아서/ 말하는 것이/ 도리어 성가시다/ 언덕으로 들어가,/ 거기 대장간을 지어라,/ 거기 풀무를 만들고,/ 거기 쇠를 달구고,/ 망치질하며 노래하라!/ 우리가 들을 것이다,/ 듣고,/ 네가 어디 있는지 알 것이다”(「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라는 그의 당부가 뼈아프게 아로새겨진다. 
  시로 온 삶을 헤아려보게 만드는 하우게. 문득, 그가 지닌 시관(詩觀)을 되새기고픈.


당신이 농부를 이해하여
시를 한 편 써서
쓸모 있다 말을 듣는 것
대단한 겁니다
대장장이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 말을 듣기 가장 어려운 이는 목수입니다  

- 「시」


  하우게가 지닌 시에 대한 생각은 「추와 종」에서도 나타나고(“나는/ 종 속의 혀/ 무겁고/ 침묵하는 혀.// 나를 건드리지 말라 ―/ 쇠 옆구리를 찌르는/ 내 몸짓으로/ 침묵을/ 부수게 만들지 말라.), 「노래여, 살며시 내 마음을 밟고 가라」에서도 드러난다(“고통의 껍질을 부수면, 노래여/ 나는 익사할 것이다”). 그러니까 고난이나 고통을 시의 필요충분조건이라 생각하는 하우게의 진지하면서도 단단한 세계관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부드러운 건 모두/ 곰팡이와 벌레에게 포식당했다/ 단단하고, 질기고, 비뚤어진 것만이/ 남았다 마디와 옹이가/ 아직 그를 지탱해준다”(「썩은 나무 둥치」)도 이에 보태는 마음. 하여, 농부와 대장장이에 이어 목수에까지 도달하는 시적 대상은 그에게 카오스를 포함한 우주 그 자체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러한 하우게의 시적 세계관은 시어에 대한 사유에서 비롯됨을 확인한다. “한 단어/ ― 하나의 돌/ 차가운 강물 속/ 또 다른 돌 하나/ 이곳을 건너려면/ 더 많은 돌이 필요하다”(「말」)는 말에 숙연해진다. “하지만 나의 말들은 무엇인가?/ 북쪽을 면한/ 폭풍으로 뒤틀어진 숲,/ 한낮의/ 고통스런 열기와 마주한/ 울퉁불퉁한 바위들”(「다시 노래하다」)에서는 장엄해지기까지 한다. “한번 뱉은 말을 주워 담지 말라/ 말은 다이너마이트이기에 깊은 곳이나 높은 곳에서 작동한다,/ 폭발에 터진 틈새로/ 지하수가 솟을지도 모른다”(「사포를 쓰지 말라」)에 이르러서는 호기로움마저 만난다.
  그래서 하우게에게 시는 곧 삶이라는 생각. 쉽지만은 않은, 그러나 어렵지만도 않은. 그래서 “좋은 시는/ 차향이 나야 해/아니면 숲의 땅이나/ 갓 자른 나무 냄새가”(「나는 시를 세 편 갖고 있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겠다. 그래서 “대단할 것도 없다/ 이 시들은, 그저/ 되는대로/ 단어 몇 개를 쌓았을 뿐/ 그럼에도/ 나는 생각한다/ 이것들을 짓는 게/ 좋았다고, 그런 다음이면/ 잠깐 동안/ 집을 가진 것 같다고/ 어릴 적/ 지었던/ 이파리움막을 기억한다,”(「이파리움막과 눈집」)라는 순환론적인 이치가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이겠다. 그래서 “그의 시로 들어서긴 수월했다,/ 나막신 두 짝처럼/ 문간에 놓여 있었으니”(「베르톨트 브레히트」)라는 찬사도 그저 쉽게 얻어진 사유가 아니라는 확신. 그의 시관을 맞닥뜨리면서 나도 그처럼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 아니, 기도. 

  하우게의 작품을 정독하면서 겹겹이 쌓이는 것은 그의 시적 터전에 대한 신뢰. 평생을 고향 울빅에서 정원사로 일하면서 마주한 자연의 이치, 그 진솔한 삶의 자세가 녹아 든 시적 터전에 대한 경이로움.


구월의 조용한 날들 해가 떠 있다
추수할 때다 숲에는 아직
크랜베리들이 있고 돌담 옆에
붉게 물들고 있는 들장미 열매들이 있고
떨어질 듯 개암들이 있고
블랙베리들이 관목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
개똥지빠귀들이 마지막 까치밥나무 열매들을 찾고 있다
말벌들은 달콤해지는 자두들에 매달려 있고
나는 황혼녘에 사다리를 헛간에 세워 두고
바구니를 걸어 둔다 빙하들은
새로 온 눈을 조금씩 쓰고 있다. 침대에서
나는 청어 잡이 어부들이 시동을 걸고 떠나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온밤을 지새울 것이다
어둠이 활주하는 피오르에서 강력한 탐조등을 켜고  

- 「수확기」

  내가 제일 처음 접한 그의 작품이다. 몇 년 전 어느 시인이 나에게 들려 준 작품인데, 이 작품을 만난 순간 내 마음속에는 울라브 하우게라는 이름이 단단히 각인되었다. 시를 포기하지 않게 만든 행운 가득한 인연. 
  위 시는 특히 낭송하면 더더욱 아로새겨질 작품이다. 한 행 한 행 마음을 실어 읽다보면 1인칭 화자의 관찰자적 시선이 무심한 듯 동시에 섬세하게 연이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거둬들이는 때의 결과에만 찬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추수를 위한 전 우주적 순간들, 그 과정들 낱낱에게 귀한 눈길을 주는 하우게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자연은, 계절의 흐름은 너무나도 소중한 진실이자 삶 바로 그 자체라는 사실에 쉬 수긍하게 될 것이다. 「가을이 오면」(“가을이 오면/ 추위가 오고/ ……/ 번민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 볕바른 기억들을 구슬려 불러온다”), 「눈 내린 저녁」(“너의 어둠을 내주고 풍성해지거라/ 눈 내린 저녁처럼/ 땅은 비옥하고 비탈은/ 소나무 바늘잎을 덮었으며/ 집들도 풍성하다, 생명과 온기를/ 단단히 품고// 잠든 대지는/ 자신이 빛나고 있음을 안다/ 서리가 내린 하늘의 눈썹은/ 별로 가득하다”), 「겨울날」(“그러나 이제 산봉우리는 태양의 원반을 떠받아 수천 개로 조각내고/ 먼 천체를 향해 비스듬히 시선을 던진다/ 능선의 키 큰 가문비 초들은 불을 끄고/ 숲의 나무들은 밤을 맞을 채비를 한다/ 강은 골짜기에서 한숨 쉬며 바다를 향한 열망을 식혀 얼음으로 만들고/ 돌들은 초록 꿈을 가슴에 품고 눈 아래 잠든다”) 이 세 편은 특히 계절에 대한 하우게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끼는 순간이 될 것이다. “꿈은 달 아래 싹이 돋는다”(「겨울날」)는 구절도 내내 마음에 맴돈다.

  하우게의 시는 그리고 그의 삶은 도무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코 누추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 이외 그는 생명의 소중함도 절감했고(“푸른 사과가/ 없는 사과보다 낫다/ 이곳은 북위 61도이다”, 「푸른 사과」), 시간의 흐름을 존중했다(“어떤 길을 걸었는지/ 남기지 마라/ 지나간 처음의 길은/ 바람이 지우리”, 「길」).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희망도 구체적이어서 좋았다(“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갑시다, 고요한/ 꿈속으로,/ 미끄러지듯 ― 밤이라 불리는/ 훌륭한 화덕 안/ 두 덩어리 반죽으로/ 그러곤 아침이면/ 깨어납시다,/ 둥그스름한/ 황금빛 빵 두 덩이로!”, 「잠」). 그래서 그의 시와 삶은 더더욱 환했다.

  나도 그처럼 시를 쓰고 싶다. 더 욕심을 낸다면 그가 소망하는 대로 “매일 시 한 편을 쓰고 싶다.” 그는 “매일/ 어렵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아마도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대로 “하루에 시 한 편/ 떠오른 생각,/ 일어난 일,/ 무언가 주의를 끄는 것”(「매일 시 한 편」)에 온전히 마음을 바치리라, 한다. 
  그러면 하우게가 마주한 것처럼, 겨울날, 나도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줄 수 있을까. 그 답을 들으러 울빅에 갈 것이다. 그의 생가에 들러 그의 사유를 다진 책장도 만져보고, 그가 평생을 일군 과수원도 거닐어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앉아 생을 마감했다는 의자에도 앉아볼 것이다. 70여 년 동안 쓴 그의 일기장도 함께. 그의 시 「수확기」에 나오는 피오르도. 
    

눈이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에/ 서투른 창이라도 겨눌 것인가/ 아니면 창이라도 겨눌 것인가/ 아니면 어린 나무를 감싸 안고/ 내가 눈을 맞을 것인가// 저녁 정원을/ 막대를 들고 다닌다/ 도우려고./ 그저/ 막대로 두드려주거나/ 가지 끝을 당겨준다./ 사과나무가 휘어졌다가 돌아와 설 때는/ 온몸에 눈을 맞는다// 얼마나 당당한가 어린 나무들은/ 바람 아니면/ 어디에도 굽힌 적이 없다 ― / 바람과의 어울림도/ 짜릿한 놀이일 뿐이다/ 열매를 맺어 본 나무들은/ 한 아름 눈을 안고 있다/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동아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시인·문학비평가. 부산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현대시)을 전공하였다. 1990년 『문학예술』 제1회 신인상 시 부문 당선, 1991년 『심상』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익숙한 소리』(시집), 『현대시와 문화의식』, 『한국전쟁과 시』 등이 있으며, 그 외 공저로 『한국 현대시와 패러디』, 『한국 서술시의 시학』, 『한국 현대문학의 성과 매춘』, 『몸의 역사와 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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