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시민과 ‘시(詩)로서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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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시민과 ‘시(詩)로서의 철학’
  • 박병기 한국교원대·윤리교육
  • 승인 2023.10.0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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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_ 『철학은 시가 될 수 있을까』 (리처드 로티 지음, 박병기·김은미 옮김, 씨아이알, 150쪽, 2023.08)

 

시민이 주인인 우리 사회에서 그 시민들이 사라지고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은 무조건 옳고 선하다고 주장하면서 상대편을 악마화하고, 이익을 더 많이 남기기 위해 거짓말은 물론 먹는 음식에 먹지 못할 것을 서슴없이 섞기도 한다. 많은 고통들이 여전하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의 외로움은 더 깊어지고 있지만, 그 고통과 외로움을 해소해야 한다는 생각과 노력은 오히려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이른바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이 시대의 명령을 넘어서 도덕성까지 흡수하며 횡행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1919년 4월 ‘민주공화정’을 선언하며 등장한 대한민국은 민주와 공화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시민을 전제로 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온전히 성립될 수 있었다. 독립운동과 민주적인 선거, 절대 빈곤 극복 노력 같은 일련의 과정은 독재자의 폭압적인 통치와 국민 동원을 전제로 하는 산업화, 목숨을 걸어야 했던 민주화 과정과 함께 했다. 그 성취와 좌절은 3년여에 걸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습격’이라는 사태와 마주하면서 맨 얼굴을 드러냈다.


‘철학하는 시민’의 요청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의 공포는 우리 일상을 거의 온전히 묶어 놓았고, 성장만이 살 길이라고 외쳐온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을 일시에 정지시키기도 했다. 3년 동안의 고통을 힘겹게 이겨낸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 교훈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서 존재하고 있다는 연기적 그물망의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추종해온 나라들의 실상 인식이다. 미국 같은 나라는 빈곤층은 죽어도 괜찮다는 정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펼쳤고, 유럽도 우왕좌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특별히 잘한 것은 없지만, 나름대로 지혜를 모아 희생을 줄이면서 그 재난에 대응할 수 있었다.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인 신채호의 주장에 따르면, 고려 중기 이후 우리 사회의 주도권을 확보한 사대주의를 마음으로부터 극복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 일본과 유럽, 미국으로 순서를 바꿔가며 추종해온 ‘선진국’이 사실은 내 마음 속 환상임을 직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그 배경에는 민주화와 산업화 모두의 영역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둔 20세기 역사의 성취와 좌절이 함께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시민은 자신의 삶과 그가 속한 사회의 주인공이다. 그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생계를 해결함과 동시에, 다른 시민과의 연결고리를 확보하면서 시민사회의 주인으로 자리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사회의 성공과 실패는 모두 시민의 몫일 수밖에 없다. 우리 시민사회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관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삶의 지향 또한 일차적으로는 그 자신의 몫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하는 시민’에 관한 요청이 등장한다.

우리 삶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생존(生存)의 차원과 삶의 의미를 묻는 실존(實存)의 차원이 얽혀 있다. 그 어느 것도 경시될 수 없지만,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존의 차원을 꼭 붙들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생존 차원에만 매몰될 경우 자칫 짐승만도 못한 삶으로 내몰릴 수 있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학대하거나 자신의 분노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폭력적으로 표출하는 사람은 물질적 가치에만 내몰려 인간성 자체를 상실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국가 경제력이 상당함에도 우리 아이들의 돈을 향한 맹목적인 추종은 위험한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모두 어른들의 잘못된 모형 제시에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정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누구도 굶어 죽거나 방치되지 않는 복지망을 촘촘히 하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물질 만능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 자신은 물론 자식들까지 아수라장으로 내몰면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할 가능성이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그 노력의 출발점에 시민의 철학함이 자리한다.


시민의 철학함과 시(詩)

철학함은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일상에 충실하면서도 때로 그것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성찰의 대상으로 내놓고자 하는 실천적 노력이 곧 철학함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철학함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모든 시민이 꼭 해야 하는 과업이 된다. 

실제로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에 몰두하는 어느 지점에서 문득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라는 물음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런 의문이 깊어질 때면 주변의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혼자서 차나 술잔을 기울이며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그런 몸짓으로도 해소되지 않을 때는 책방 철학코너를 찾거나 가상공간 책방에서 철학책을 검색해 보기도 한다. 

“실존과 삶의 의미의 핵심을 기술하고자 하는 (철학적) 노력은 우리가 그 각각을 알맞게 잘 이해할 수 있는 더 작은 것들의 총합을 크고 다루기 버거우며 신비로운 무언가로 대체한다. 인간 삶의 의미와 실재의 내재적 본질은 우리가 좋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주제들임에도 말이다.”(77쪽)

플라톤 이후로 서양철학이 이데아를 전제로 하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논의에 집중해왔다고 비판하는 이 책의 저자 리처드 로티는, 이제 철학이 삶의 의미를 말할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의 총합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철학 전통 또한 이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일상의 사판(事判)과 진리의 세계인 이판(理判), 기(氣)의 역동적인 흐름과 그 흐름을 주도하는 리(理) 사이의 균형과 조화는 화엄철학과 성리학이 공유한 바람직한 철학적 지향이었다. 이 두 차원이 분리될 수도 섞일 수도 없다는 불이(不二)의 관점은, 현실 속에서는 사판과 기의 세계에 몰입하면서도 입으로는 이판과 리를 외치는 위선과 공론(空論)으로 타락하며 힘을 잃었다.

 

                           Richard McKay Rorty (October 4, 1931 – June 8, 2007) 이미지 출처: iai news

시민은 신분과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자이다. 그는 자유로운 존재일 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과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철인왕을 상정했던 플라톤이나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전제하고자 했던 붓다, 목민관(牧民官)을 불러내고자 했던 다산의 정치이론은 모두 시민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재구성될 때만 비로소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전제는 다른 한편으로 그 시민 모두가 최소한의 철학함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요청을 불러낸다. 그 역량을 토대로 다른 시민과 함께할 수 있는 관계 역량을 포함하는 시민윤리를 확보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시민사회가 제대로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 전문적인 분과가 되어갈수록 비철학자들이 누릴 수 있는 쓸모는 줄어든다. . . . 그런 미래의 지식인들은 사물들의 참된 존재방식에 대해 플라톤보다 가까워지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상상력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 가득찰 것이다. 이런 생각은 우리의 유한성에서 벗어나고자 하기보다는 그 유한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시작될 것이다.”(93, 95쪽)

우리 시민의 일상은 우연과 필연, 유전자와 경험의 온전히 알 수 없는 결합을 토대로 전개된다. 따라서 일상에 관한 철학함 과정 또한 논리와 상상력이라는 두 요건을 함께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각각을 상징하는 철학과 시(詩)는 궁극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보편적 진리와 논리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 온 서양철학 전통은 20세기 분석철학에 이르러 논리와 언어에만 집중하는 또 하나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논리에 근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것을 넘어서는 것에도 유의하며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적 철학함 지향은 그 침묵을 명상과 시적 리듬으로 구성해 내놓고자 했던 우리 선비와 선사(禪師)의 철학함으로 보완될 수 있어야 한다. 

선사와 선비는 모두 철학자이자 시인(詩人)이었다. 그들의 철학함을 계급과 신분을 넘어서는 시민의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오늘에 되살리고자 하는 실천적 노력이 절실한 시절이다. 그런 노력들은 이미 무너져 버렸거나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시민사회의 공론장(公論場)을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공론장을 회복하지 못하면 우리 시민사회는 조만간 혐오와 배제가 횡행하는 지옥 같은 공간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고 싶다는 마음을 냈던 지점 중 하나도 시민의 철학함 역량을 토대로 바로 이 공론장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강연문이라는 판단이었다.

 

박병기 한국교원대·윤리교육

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했다.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에서 불교철학과 윤리를 공부했다.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장,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유전자 전문위원이다. 주요 저서로 『윤리학과 도덕교육1, 2』(공저), 『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 『우리 시민교육의 새로운 좌표』 등이 있고, 역서로 『보살의 뇌』, 『윤리적 자연주의』, 『도덕적 감정과 직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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