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고통을 꿋꿋이 견디며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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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고통을 꿋꿋이 견디며 살아가는 법
  • 강용수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서양철학
  • 승인 2023.10.0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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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철학 수업』 (강용수 지음, 유노북스, 232쪽, 2023.09)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을 30가지의 주제로 소개하는 책이다. 40대는 빛나던 청춘을 지나 이제 인생의 전환점이자 변곡점을 경험하게 되는 시기다. 계절에 비유하자면 늦여름을 끝내고 초가을을 맞아 이제 열매를 맺어야할 때다. 40대는 나름 성공을 경험하면서도 아쉬움과 후회, 불안감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마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사는 것이 고통이다. 쇼펜하우어는 이 세계를 ‘삶에의 의지’라고 보았다. 이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식물이나 동물에도 해당되는데 생명으로 태어나면 영원히 존재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삶은 원래 목적이 없으며 마치 눈먼 장님처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집착으로 나타난다. 인생이 괴로운 이유는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이 충족되지 않고 언젠가 병들어 늙고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죽음을 넘어서는 다른 방법을 찾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목적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해 성욕을 갖는다. 인간은 성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착각하지만 자연이 인간에게 심어놓은 ‘콩깍지’ 같은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큰 키, 뛰어난 외모, 성격도 있지만 자신의 결함을 충족해주는 사람을 선택하기도 한다. 

인간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이지만 환상에 눈이 멀어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하며 아이를 낳게 된다. 사랑이 행복하게 해줄 꺼라는 착각은 오래가지 않고 곧 깨어진다. 요즈음 미디어의 발달로 사랑, 결혼, 육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미리 알고 아예 2세를 포기하는 일도 많다. 본인은 정작 결혼은 하지 않았던 쇼펜하우어는 성이 미래의 인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보았다. 성이 없다면 인류의 미래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자가 볼 때 자연은 끊임없이 성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유혹하지만, 그 속임수를 잘 견디면 연애와 결혼은 지혜롭게 피할 수 있지만 고독사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둘째, 인생은 결핍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감정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시계추(진자)에 비유한다. 왼쪽은 최대결핍이고 오른쪽은 최대만족이다. 왼쪽에는 궁핍하고 배고픈 가난한 사람의 불행을 뜻한다. 오른쪽은 돈이 많고 시간이 많은 부자의 불행을 뜻한다. 쇼펜하우어는 사업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먹고 살만한 재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이 얼마나 따분한 삶을 사는지 잘 알고 있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고달픈 일을 하지 않아도 되며 골프치고 이리저리 여행을 하겠지만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처음에는 재미가 있지만 돈자랑, 집자랑, 자식자랑을 듣다보면 사람에 지쳐버리는 것이다. 솔로는 외롭지만 그렇다고 인간관계가 너무 많아도 힘들다. 

 

시계추의 비유는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너무 적은 것도 피해야 되지만 너무 많은 것도 피해야 된다. 행복의 순간은 결핍에서 만족으로 넘어가는 짧은 순간이다. 음식을 예로 들면, 배고픈 상태에서 배를 약간 채운 상태가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이다. 음식이 맛있다고 폭식을 하면 복통에 시달려 음식에 질리게 된다. 돈을 예로 들면 약간 궁핍할 때 받은 첫 월급이 큰 행복감을 준다. 그러나 별 수고 없이 번 돈이나 지나치게 많은 돈이 있다면 사람은 자랑하고 싶어 하고 탕진해버려 가난해지는 일이 있다. 풍족한 돈이 인간을 어느 정도의 행복까지는 끌어올리지만 돈이 행복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행복한 순간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지만 시계추가 빨리 지나가는 중간지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소확행’(작고 확실한 행복)과 쇼펜하우어의 행복은 의미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셋째,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라. 쇼펜하우어는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어떤 행복을 누렸는지를 보지 말고 어떤 불행을 견뎠는지를 봐야한다고 말한다. 얼마나 돈을 많이 벌고 명성과 명예를 가졌는지 따지지 말고 얼마나 고통을 잘 이겨냈는지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으며 고통은 나라는 배가 뒤집히지 않게 하는 ‘바닥짐’과 같으며 고통을 통해 얻은 지혜는 항해에 필요한 ‘나침판’과 같다. 그래서 부자 가운데 얼굴이 찡그러진 사람도 있고 고생한 사람 가운데 웃음을 띈 얼굴도 있다. 쇼펜하우어의 사진은 젊었을 때 찍은 것과 늙었을 때의 찍은 것이 있다. 두 사진을 비교하면 노년의 얼굴에는 주름이 많지만 자신의 고통을 잘 이겨낸 여유가 보인다.

인생이 고통이라는 깨달음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삶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자살을 선택하는 일이 있는데, 쇼펜하우어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한다. 마치 눈을 감으면 세상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처럼, 내가 사라지면 이 세상도 없어진다고 믿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이 죽는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고 고통의 총량도 줄지 않는다. 오히려 자살로 인해 가족과 친척들은 남은 생애를 죄책감에 살아야할지 모른다. 고통이 더 늘어난 셈이다. 이 우주를 무지개에 비유한다면, 인간은 무지개를 이루는 작은 물방울과 같다. 그 물방울이 사라져도 무지개가 불변하듯이 내가 자살을 해도 이 세상에는 변함이 없다. 우주는 무심해서 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이 절대로 없다. 인생이 힘들다고 한탄을 해도 자살은 무의미하며, 쇼펜하우어처럼 고통을 잘 견디다 보면  노년에 기대하지 않은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려면 오랫동안 살아야 된다’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자살처럼 고통을 완벽하게 없애지는 않지만 음악 감상, 아름다운 풍경보기,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것은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 된다. 
 

넷째, 고통은 적극적이고 쾌락은 소극적이다. 쉽게 말해서 불행은 잘 느껴지지만 행복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쇼펜하우어가 행복의 첫째 조건으로 꼽는 것은 건강한 신체다. 따라서 너무 오랫동안 앉아있지 말고 혈액순환이 좋도록 꾸준히 활동을 해야 된다고 말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온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이 두 가지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우리는 건강의 가치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상쾌하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게 되는데 우리는 뇌, 심장, 위, 손과 발에 감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식사를 하면 위에서 음식을 열심히 소화를 하지만 ‘위야 고맙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암에 걸리게 되면 비로소 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제야 수십 년 동안 위가 나의 생존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건강한 치아 10개보다 아픈 충치 1개의 고통이 더 큰 법이다. 건강은 원래 당연한 것으로 아무런 느낌이 없다. 마흔이 되면 서서히 노화가 시작되는데 피부의 탄력도 줄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몸 이곳저곳에 이상이 생기면서 잊고 있었던 젊음의 소중함을 뒤늦게 느끼게 된다. 만약 현재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없다면 이미 행복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나의 생명을 바쳐서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건강이든, 가족이든, 우리가 갖고 있지만 잊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다섯째, 행복을 밖에서 찾지 말고 안에서 찾아라. 행복의 조건은 무엇을 갖는가(재산), 어떻게 평가받는가(평판), 나는 누구인가(인격)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행복의 조건으로 최우선으로 꼽는 것은 돈과 재산이다. 쇼펜하우어는 상속을 많이 받은 부자였기 때문에 돈의 소중함을 알았다. 진짜 부자는 재산을 잘 관리하기 위해 늘 절약하는 습관을 가졌다. 그러나 가난했다가 부자가 된 사람은 허영심에 과시하거나 낭비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경제적인 여유 덕분에 평생 철학공부만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산책, 사색, 독서, 글쓰기가 그가 누린 큰 행복이었다.

행복의 두 번째 조건은 명성과 명예다. 흔히 세평이라는 것이 있다. 타인의 마음에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머리를 조아려야 되고 아부도 해야 되는데, 좋은 점수에 허영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따져보면 마음도 좁고 왜곡된 타인의 마음속에 자신의 좋은 인상을 심으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쇼펜하우어가 예를 들 듯이, 어떤 사형수가 자신의 죽음을 보러오는 관객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면도를 하고 멋진 옷을 챙겨 입는 것은 인간의 허영심이 얼마나 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행복의 세 번째 행복의 조건은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다. 내가 본래 타고난 것에는 건강, 힘, 아름다움, 기질, 도덕적 성질, 지능 등이 있다. 앞의 두 가지, 부와 재산, 평판과 명예는 빼앗길 수 있지만 내가 원래 갖고 있는 것은 양도가 불가능한 만큼 소중한 것이다. 죽을 때 까지 나를 평생 따라다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쇼펜하우어는 내가 원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별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 교육을 보면 많은 경우 개인의 적성보다는 부와 성공이 보장되는 직업을 갖기 위해 전공을 선택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나중에 오랜 경험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 우주에서 인간이 가장 개성이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무기물의 단계에서는 장력이나 전기가 똑같이 작용하고, 식물은 작년에 핀 꽃이나 올해 핀 꽃이 비슷하다. 그나마 동물은 좀 낫지만 인간은 각자 원하는 바와 할 수 있는 일이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들에게 다시 태어나고 싶다면 하고 싶은 일을 물어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즐기고 싶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은 남의 기준에 맞춰 살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용기를 갖는 일이다. 남의 눈치를 보다보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을 많지만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갖는 자긍심(pride, Stolz(독일어))은 절대로 깨어지지 않는 보석과 같은 존재다. 마흔부터는 자신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기죽지 않고 당당하면서 품위있는 자신만의 인생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강용수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서양철학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동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서양 철학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받고,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철학을 바탕으로 자기 긍정과 행복을 위한 방법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 《니체 작품의 재구성》, 《니체의 『도덕의 계보』 읽기》, 《Nietzsches Kulturphilosophie》, 《쇼펜하우어가 들려주는 의지 이야기》 등이 있으며, 역서로 《유고(1876년~1877/78년 겨울) 유고(1978년 봄~1879년 11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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