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없이보내는 백만송이장미꽃 - 아이유, 말의 의미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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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어쓰기없이보내는 백만송이장미꽃 - 아이유, 말의 의미를 노래하다
  •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 승인 2023.09.24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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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식 교수의 〈음악과 철학 사이〉

 

 

[리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탐구>로 본 아이유의 <Blueming>


“'뭐해?'라는 두 글자에 / '네가 보고 싶어' 나의 속마음을 담아 우
이모티콘 하나하나 속에 / 달라지는 내 미묘한 심리를 알까 우 (...)

조금 장난스러운 나의 은유에 / 네 해석이 궁금해
우리의 색은 gray and blue / 엄지손가락으로 말풍선을 띄워
금세 터질 것 같아 우 / 호흡이 가빠져 어지러워

I feel blue I feel blue I feel blue / 너에게 가득히 채워
띄어쓰기없이보낼게사랑인것같애 / 백만송이장미꽃을 나랑피워볼래?
꽃잎의 색은 우리 마음 가는 대로 칠해 / 시들 때도 예쁘게

우리의 네모 칸은 bloom / 엄지손가락으로 장미꽃을 피워
향기에 취할 것 같아 우 / 오직 둘만의 비밀의 정원
I feel bloom I feel bloom I feel bloom / 너에게 한 송이를 더 보내”


아이유가 부른 노래 <Blueming>이다. 제목부터 재기발랄하다. blue와 blooming을 합쳐 새로 만든 말이다. 파란 꽃을 피운다는 뜻이다. 말장난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연인들이 파란 말풍선으로 오가는 아이폰의 아이메시지(iMessage)로 사랑을 피운다는 뜻이다. 노란 말풍선으로 오가는 카카오톡으로 사랑을 피우면 Yellowming이라 할까.

‘뭐해?’라는 물음에 ‘네가 보고 싶어’라고 직접 대답하지 않고, 그 속마음을 담아 이모티콘을 보내고, 엄지손가락으로 띄운 말풍선이 금세 터질 것 같아 호흡이 가빠지고 어지러워진다. 파랗게 파랗게 파랗게 물들어 가득히 채워진 사랑의 마음을 띄어쓰기없이 뜸 들이지 않고 단도직입으로 마침내 고백한다. “백만송이장미꽃을 나랑피워볼래?”

부럽다. 띄어쓰기없이 단도직입으로 고백할 수 있는 그녀의 용기가 부럽다. 7년 동안 사랑하는 여성의 주위를 맴돌면서도 끝내 띄어쓰기없이 단도직입으로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했던,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속 광식처럼 나 또한 끝내 내뱉지 못하고 혀끝에 담아둔 고백이 있다.

대학 때 마음에 드는 여성을 따라 마음에도 없는 프랑스어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민주화 시위 등으로 수업을 빠지는 때가 많아 시험 때 노트를 빌려 복사해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핑계로 그녀에게 노트를 빌려달라 했다. 그녀는 흔쾌히 빌려주었다. 그녀에게 노트를 돌려주며 고맙다고 말했다. 다음 말을 내뱉지 못해 머뭇거리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다음 학기에 프랑스어 고급 과정을 들을까 하는데 같이 들을래요?”

다음 학기에 그녀와 함께 프랑스어 고급 과정을 들었다. 이번에도 시험 때 그녀에게 노트를 빌렸다. 그녀에게 노트를 돌려주며 고맙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다음 말을 내뱉지 못해 머뭇거리자 그녀는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그냥 웃었다. 아쉽게도 최고급 과정이 없었으니까. 끝내 내뱉지 못하고 혀끝에 담아둔 그 한마디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긴 한마디가 되어버렸다. “커피 한잔, 하실래요?”

어느 뉴스탐사 언론사가 가짜뉴스를 보도했다고 압수수색을 받았다. 그 언론사는 대통령 선거 직전에 지금 대통령이 된 후보가 검사일 때 국민의 지탄을 받는, 개발 사업의 종잣돈을 한 은행으로부터 부당하게 대출한 사건을 덮어줬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그 근거로 그 개발 사업의 핵심 인물의 녹취록 일부를 공개하였다. 그 녹취록 속에서 그는 말했다. “커피 한잔 마시고 왔더니 사건이 없어졌어!”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는 쪽은 그때 수사를 지휘했던 지금의 대통령이 커피를 타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내세웠다. 커피를 타준 적이 없는데 커피 한잔 마시고 왔다고 했으니 가짜뉴스라는 거다.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커피를 타준 이는 검찰 직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커피 한잔 마시고 왔더니 사건이 없어졌어!”라는 말은 가짜뉴스일까? 도대체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그의 책 <철학 탐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의 의미는 그 말을 사용하는 이들의 언어놀이로 만들어진다.”

                                                                         - 비트겐슈타인, <철학 탐구>


말의 의미가 그 말을 사용하는 이들의 언어놀이로 만들어진다는 언어 의미이론을 ‘언어사용 의미이론’ 또는 ‘언어놀이 의미이론’이라 부른다. 이 의미이론의 핵심은 말의 의미가 그 말을 사용하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데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인 듯하지만, 많은 이들이 널리 받아들이는 상식적인 의미이론은 말의 의미가 그 말이 가리키는 것이라는 의미이론이다. 이러한 언어 의미이론을 언어지시 의미이론 또는 소박한 언어 의미이론이라 부른다. 

             비트겐슈타인 (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년 4월 26일 ~ 1951년 4월 29일)

많은 이들은 ‘장미꽃’이나 ‘커피’라는 말의 의미가 그 ‘장미꽃’이나 ‘커피’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 곧 장미 나무에 달린 꽃이나 커피 가루를 우려낸 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그것은 ‘장미꽃’이나 ‘커피’라는 말이 지닐 수 있는 수많은 의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 의미는 그 말을 사용하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수많은 의미 가운데 하나다. 

사랑하는 이가 함께 피워보고 싶다고 말하는 ‘장미꽃’이라는 말의 의미는 장미 나무에 달린 꽃이 아니라 함께 피우고 싶은 사랑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이가 함께 마시고 싶다고 말하는 ‘커피’라는 말의 의미도 커피 가루를 우려낸 물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랑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말의 의미를 만드는 일이 놀이일까? 소꿉놀이할 때 소꿉의 의미는 그 놀이에 참여하는 이들이 그 소꿉을 사용하는 상황이나 맥락 또는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다. 돌멩이를 그 말이 가리키는 작은 ‘돌’로 사용할 수도 있고, 음식을 얹는 ‘그릇’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먹는 ‘떡’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돌멩이’의 의미는 하나로 고정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쓰이는 상황이나 맥락 또는 규칙에 따라 때마다 달라질 수 있다. 놀 때마다 어떻게 노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소꿉이 소꿉놀이의 도구이듯이 언어는 삶 놀이의 도구다. 소꿉의 의미가 소꿉놀이의 형식이나 규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듯이 말의 의미도 삶 놀이의 형식이나 규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삶 놀이의 다양한 형식이나 규칙에 따라 달라지는 말의 의미들은 서로 전혀 다른 게 아니라 서로 엇갈리면서도 비슷하게 닮았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엇갈리며 비슷하게 닮은 것과 같다. 첫째와 둘째는 눈 모양은 다른데 코 모양이 닮았고, 둘째와 셋째는 코 모양이 다른데 눈 모양이 닮았으며, 첫째와 셋째는 눈 모양과 코 모양은 다른데 입 모양이 닮았을 수 있다. 그런데 첫째의 친구들은 둘째나 셋째를 보면 첫째와 닮았는데 혹시 형제가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을 ‘가족 유사성’이라 부른다.

‘장미꽃’이나 ‘커피’라는 말의 다양한 의미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이 서로 닮았다고 하나의 고정된 공통된 의미가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이 쓰이는 다양한 상황이나 맥락 또는 규칙에 따라 서로 다르면서도 닮은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어느 하나의 의미를 그 말의 유일한 의미라고 우기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런 행위는 언어 폭력이다.

“백만송이장미꽃을 나랑피워볼래?”라고 말할 때 ‘장미꽃’의 의미나, “당신의 모습이 장미꽃 같아!”라고 말할 때 ‘장미꽃’의 의미나, “커피 한잔, 하실래요?”라고 말할 때 ‘커피’의 의미나, “커피 한잔 마시고 왔더니 사건이 없어졌어!”라고 말할 때 ‘커피’의 의미가 모두, 장미 나무에 달린 꽃이나 커피를 우려낸 물이라고 우기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커피 한잔 마시고 왔다’라는 말의 의미는 커피를 우려낸 물을 한잔 마시고 왔다는 의미보다 눈감아주거나 봐줬다는 의미로 쓰였을 수도 있다. “커피 한잔 마시고 왔더니 사건이 없어졌어!”라는 말의 의미가 “봐줘서 사건이 없어졌어!”라는 의미라면, 커피를 우려낸 물을 마시고 왔는지 아닌지보다 봐줬는지 아닌지를 따져야 가짜뉴스인지 아닌지를 밝힐 수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서 온 ‘뭐해?’라는 두 글자 속에서 ‘네가 보고 싶어!’라는 그의 속마음을 읽어서 ‘볼까?’라는 두 글자로 답장을 보낼 수 없다면, 엄지손가락으로 말풍선 하나 띄워놓고 금세 터질 것 같아 호흡이 가빠져 어지러운 마음도, 엄지손가락으로 장미꽃을 피워놓고 향기에 취할 것 같은 마음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뭐해?’가 단지 뭐해가 아니듯이, ‘커피’는 단지 커피가 아니다!


띄어쓰기없이보낼게
백만송이장미꽃을 나랑피워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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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건 어때? 알레르기가 있거든!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과학·기술·철학과에서 인지문화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인지철학자이자, 여러 문화현상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문화철학자이다. 저서로 『BTS와 철학하기』, 『행동지식』, 『김광석과 철학하기』, 『다시 민주주의다』(공저),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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