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나는 테니스 잘 치는 사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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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나는 테니스 잘 치는 사람은 아니다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3.09.2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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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명 교수의 〈생활에세이〉

 

중학교 동창한테서 연락이 왔다. 중고등학교 기별 테니스 대회에 참가하자는 것이었다. 그전에 여러 번 참여하였는데,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못하다가 대회가 다시 열리니 참가하자는 것이었다. 전에 같이 하던 터라 별 생각 없이 그러자고 하였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니 갈수록 하기가 싫어지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못하는 골프를 하느라 테니스에는 소홀하였을 뿐 아니라 승부를 가리는 긴장을 별로 느끼기 싫어서였다. 같이 참가할 동창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도 싫은 마음에 크게 작용하였다. 일단 말은 해 놓았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 아닌 고민을 하다가 내가 잘 못하는 거짓말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전화를 하기는 좀 쫄려서 문자로 어깨도 안 좋고 당일 집안일도 있어서 참가 못하겠으니 양해해 달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어쩌겠나? 그 친구로서는 알았다고 할밖에. 거짓말인 줄 알았겠지. 하지만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게 인생사 아닌가.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테니스를 꽤 오래 했지만 그렇게 잘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이기겠다고 경쟁하는 것이 내 성정에 좀 맞지 않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 폼도 엉성하고 엉터리인데 게임은 잘하는 그런 테니스이다. 상대방이 이상하고 보기 싫게 치면 별로 치고 싶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질 수밖에.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게임보다는 초보자들을 가르쳐주는 게 더 재미있어진다. 동네아파트 테니스회에 나보다 잘 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처럼 초보자들을 가르치는 데 진심인 사람은 없다. 한 사람 있는데 그는 우리 회에서 가장 잘 치는 사람이다. 잘 치지도 못하는 인간이 무슨 레슨인가 하고 나무란다면 할 말이 있다. 자기가 잘 치는 것하고 남을 잘 가르치는 것은 매우 다른 것이라고.

내가 초보자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내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유튜브도 많이 보고 고민도 많이 하여 여러 가지 테니스 이론들을 많이 습득하였다. 어디서 보았는데, 테니스 최고 톱스타들은 은퇴 뒤에 코치를 많이 하지 않는데, 그 이유인즉슨 이미 돈과 명예를 거머쥐어 외국으로 돌아다녀야 할 수고를 굳이 하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재능이 최고라서 이론과 학습에 신경을 덜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톱스타들이었던 로드 레이버, 지미 코너스, 피터 샘프라스 등등은 코치를 하지 않았다. 돈을 날려 궁해진 보리스 베커는 할 수 없이 코치를 하였다.

동네에서도 보면 잘 치는 사람들은 별로 이론 공부에 관심이 없다. 안 그래도 잘 치니까. 고등학교 선수 정도 출신으로 동네 코치 하는 사람들 중에도 초보자들에게 속속들이 가르쳐줄 능력을 갖춘 사람은 별로 많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이런 말을 주저리주저리 하는 이유는 내가 잘 치지 못하는 자괴감을 보상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아무래도 게임 승부보다는 연구와 가르침에 더 적성이 맞는 것 같아서이다.

내가 가르쳐준 (물론 다른 데서 교습을 많이 받았지만) 젊은 아줌마들의 실력이 향상된 것을 보면 흐뭇해진다. 그자들이 얼마나 고마워하는지는 미지수다. 베푼 만큼 고마워하기를 바라는 나는 보통 사람이다. 모르지, 내가 괜히 오지랖 떤 것에 불과할 수도.

아무튼 나이가 드니 승부 가리는 운동이나 게임이 점점 더 싫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70대가 되어서도 이기겠다고 기를 쓰는 것은 보기에도 좀 민망하다. 이를 열정이라고 봐 줄 수도 있기는 있겠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앞에 서면 같이 기를 쓰기가 싫어진다. 그러면 게임은 지는 거지. 이래저래 나는 테니스 잘 치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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