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그래서 교육공무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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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그래서 교육공무원입니까?
  •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 승인 2023.09.1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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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칼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출근 시간대에 열차에 탑승해 지나는 역마다 타고 내리는 방법으로 시위를 하고 있다. 고성과 욕설로 분통을 터뜨리는 시민들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는 여론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없다고 훈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장연이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지하철 운행이 지연돼 손해와 손실을 입는 시민들이 오히려 약자”라고 말했다.(2023년 신년 기자간담회) 오 시장은 전장연이 사회적 강자라고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시민을 약자의 자리에 놓은 것은 분명하다. 저들의 시위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시민들 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해야 할 시장이 저렇게 말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의식주를 통상 인간의 기본생활이라고 하는데,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여기에 행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동을 할 수 없으면 학교에 갈 수도 없고, 직장을 다닐 수도 없고, 극장에 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기본생활에는 그것을 영위할 권리가 주어져야 하고, 권리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보편성이 권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리가 개인에게 부여되는 것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의무는 사회에 부여된다. 개인에게 이동의 권리가 있다고 말할 때 이에 대해 개인에게 동시에 이동의 의무가 있다고 하면 우스운 말이 되기 때문이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꼭 마찬가지의 이동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고 있지 않으며, 전장연은 지금 그 권리의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누구에게 요구하고 있는가? 그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는 사회에. 사회는 누구의 것인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것인가? 서울시민의 것인가? 전장연은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며, 그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출퇴근하는 서울시민을 향해 시위한 것이다.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게으른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손해를 입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법률로 보장된 권리다. 그런데도 이동할 권리를 온전히 누리는 시민들이 그 권리를 보장받지도 못하는 장애인들보다 약자라고?

서이초 교사의 죽음으로 교권을 두고 여러 말들이 나오는데,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교육할 권리? 모든 시민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그 교육을 제공할 의무가 있는 것이지 교사가 이와 따로 교육할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교사의 권리? 그건 무엇일까? 폭행당하거나 위협당하지 않을 권리라면 그것은 교사의 권리가 아니라 인간의 권리이고, 그것이 학교에서 폭행당하거나 위협당하지 않을 권리라면 그것은 노동자의 권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업무 과중이나 학부모 민원의 문제 역시 노동조건과 관련된 노동권의 문제다. 교사의 직무상 권리? 직무는 권한과 관련되는 것이지 권리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교사의 지시를 거부한다면, 이는 교사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 교사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많은 국립대에서 총장을 선거로 뽑을 것이다. 총장 선거는 숱한 갈등을 낳았다. 국가로부터 총장을 선출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투신을 한 교수도 있었고, 전임교원들은 1인 1표의 권리를 행사했지만 10%와 4% 정도의 지분만 부여된 직원과 학생들은 투표장을 점거하기도 하고 선거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강사들은 아무런 권리도 보장받지 못했고, 부산대의 강사는 교수회관에서 한 달간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보다 못한 국회에서 “교원, 직원 및 학생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로 선출하라고 법을 개정하였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일이 교육과 연구인데, 이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교원’이라 부른다. 비정규직 교원도 있고 이들이 강사다. 이들의 법적 지위는 <고등교육법>에 규정되어 있고 그 임무는 “교육·지도 및 연구”다. 즉, 법적으로 이들은 그 임무에 있어 전임교원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들은 총장 선거권이 없다. 총장 선출은 <교육공무원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강사는 교육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총장 선거권을 부여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을 들은 한 강사가 말하길, “그러면 학생은 <교육공무원법>상 교원이라서 그러한 권리가 있는 건가요?”

전임교원들은 총장 선출을 전임교원의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총장 선거권을 개인의 기본적인 권리가 아니라 전임교원이란 직업이 갖는 권한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강사의 계약기간이 어떻네, 자격이 어떻네, 하는 이유를 들어 강사의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총장 선거권이 대학 구성원의 보편적 권리라면, 그런데도 이를 교육공무원이란 직무를 가진 전임교원의 권한이라고 생각하고 교육공무원이 아닌 자들에게 그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요즘 유행하는 말이 있다. 갑질! ‘갑질’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그들 나라에서는 직무상의 권한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현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운영의 책임자인 대학의 장을 선출하는 데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권리를 행사하고, 학과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조교들도, 심지어 피교육자인 학생들도 그 권리가 있는데, 대학의 중추적인 임무인 “교육·지도 및 연구”를 담당하는 강사는 안 된다고? 그런 이들에게 어떻게 교육을 맡기는가? 너무 간이 크지 않은가? 차라리 그들에게는 수업이 아니라 강의실의 칠판을 닦는 일을 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사. 부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대학 개혁, 특히 비정규교수의 노동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비정규교수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다. 「의사소통과 일치」, 「해명·치료·언어투쟁」, 「비트겐슈타인 삶의 방식의 변경」, 「대학 구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벼랑 끝 비정규교수」,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고용구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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