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을 넘어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 영웅으로서 플랫폼 내러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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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을 넘어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 영웅으로서 플랫폼 내러티브
  • 권승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영상문화학
  • 승인 2023.09.1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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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플랫폼 내러티브』 (권승태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128쪽, 2023.08)

 

2021년 미국의 퓨 리서치(Pew Research) 센터에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17개 선진국 19,000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대부분의 나라 국민이 가족을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뽑았지만 한국인 응답자만 물질적 풍요를 첫 번째 중요한 것으로 선택했다. 또 한국인 응답자는 다른 나라 응답자에 비해 의미의 원천을 하나만 선택한 비율이 높았다. 이를 통해 한국 응답자가 다른 나라 응답자에 비해 좀 더 획일적 기준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2017년에 『비주얼 아이덴티티』라는 책을 번역한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장마리 플로슈는 워터맨 펜, 샤넬 패션, 애플 로고, 하비타트 가구, 오피넬 칼이라는 제품을 시각 기호학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워터맨은 신사의 품위 있는 취향을, 샤넬은 일하는 여성의 자유를, 애플은 디지털 세상에서 자유를, 하비타트는 자연스럽고 필수적이지 않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가 선택한 세계적인 기업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가치 또는 유희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최근에 나는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연구하면서 플랫폼을 하나의 주인공으로 보고 그 주인공의 스토리를 탐구한 책인 플랫폼 내러티브를 저술하였다. 플랫폼 내러티브에서 다루는 플랫폼은 윈도, 애플, 구글, 네이버, 유튜브, 넷플릭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어도비, 로블록스로 열 개의 세계적인 기업들이다. 이들 역시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한 욕망을 갖겠지만 그것만으로 각 기업의 정체성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각 플랫폼은 결과적으로 경제적 가치 이외의 이상적 또는 유희적 가치를 성취했다. 

윈도는 PC의 대명사로서 개인 컴퓨터를 대중화했고, 애플은 디지털 세계에서 개인의 유희와 자기실현을 위한 도구를 선사하였다. 구글은 세계의 지식을, 네이버는 일상에 필요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했다. 유튜브는 일반인이 방송을 제작하는 시대를, 넷플릭스는 영화와 오락 콘텐츠를 구독하는 시대를 열었다. 페이스북은 인간에게 시공간을 뛰어 넘는 연결의 힘을, 인스타그램은 자신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힘을 선사했다. 어도비는 누구나 디지털 도구로 예술을 할 수 있는 시대를, 로블록스는 어린이가 다른 친구들과 서로 배우고 즐기는 공생의 문화를 창조하면서 사이버 세계에서 경제활동까지 하는 시대를 열었다. 이는 기업으로 단순히 돈만 번 것이 아니라 디지털 민주화에 기여한 좋은 스토리다. 이 책은 좋은 스토리를 사익을 넘어 많은 이에게 이로운 혜택을 주는 영웅의 이야기로 간주한다. 

플랫폼 내러티브는 영화처럼 각 플랫폼을 영웅으로 상정하고 그것에 맞게 스토리를 꾸며내지 않는다. 플랫폼 내러티브는 극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에 더 가깝다. 먼저 각 플랫폼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분석한 후 그것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기존에 플랫폼에 관한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다. 주로 성공의 경영 노하우를 다루는 책이나 창업자의 자서전이 많다. 플랫폼 내러티브는 비즈니스에 있어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기존의 경영지침서나 자서전과 달리 플랫폼의 있는 그대로 현실에서 의미 있는 가치를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책이다. 

플랫폼의 현실은 크게 공간적 구조와 시간적 과정에서 탐구할 수 있다. 공간적 구조는 플랫폼 자체의 구조와 다른 플랫폼과의 관계를 말한다. 그리고 시간적 과정은 플랫폼의 탄생부터 시작해 위기와 혁신의 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그 현실은 플랫폼의 외모와 행동을 통해 파악된다. 플랫폼의 외모는 플랫폼의 로고나 인터페이스를 통해 드러나고 행동은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사건 즉 가치 변화에서 읽혀질 수 있다. 

플랫폼 내러티브는 각 장을 세 덩어리로 구분한다. 먼저 플랫폼을 소개하고 그 정체성을 밝힌 후 그것에 대한 근거로서 플랫폼의 공간과 시간을 다룬다. 공간은 플랫폼 사이트로, 시간은 플랫폼 스토리로 이름을 붙였다. 플랫폼 사이트는 사용자가 플랫폼을 접하는 인터페이스를 말하는데 그 인터페이스의 구성 요소와 구성 방식을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이는 이미지를 통해 파악하는 시각 정체성에 해당한다. 플랫폼 스토리는 플랫폼의 역사로서 플랫폼이 기존의 낡은 성격과 단절하고 타자의 기술을 차용해 혁신하는 과정을 주로 살펴본다. 왜냐하면 스토리를 통해 파악하는 서사 정체성이 문제와 해결의 구조를 갖기 때문이다. 플랫폼 내러티브는 각 플랫폼을 홍보하기 위해 과장한 이야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 발견한 극적인 상황이다. 즉 이 책은 실제 극적인 변화를 이룬 각 플랫폼의 행동으로 스토리를 구성한다.  

 플랫폼 내러티브를 읽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플랫폼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지배적인 플랫폼은 일상을 구조화한다. 그러므로 플랫폼은 거꾸로 그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누군지 알려준다. 플랫폼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디지털 원주민 또는 디지털 이주민인 우리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원주민인 MZ세대가 누군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타고난 플랫폼 세대이기 때문이다. 둘째 디지털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플랫폼 내러티브는 디지털의 역사이다. 열 개의 플랫폼은 디지털 세계 최초의 대중적인 플랫폼인 윈도에서 시작해 인터넷 포털을 거쳐 현재 일상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적인 플랫폼과 미래 메타버스를 지향하는 플랫폼까지 다룬다. 나는 열 개의 플랫폼 내러티브가 디지털 세계의 지도를 그려줄 것을 희망한다. 셋째 디지털 리터러시를 장착한다. 현재 디지털 리터러시는 플랫폼의 효율적인 사용 역량을 말한다. 각 플랫폼 사이트에서 설명하는 인터페이스의 구성요소와 구성 방식은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기초 개념을 제공할 것이다. 

플랫폼 내러티브는 인간에게 홍익을 실현한 이 시대 대표적인 플랫폼의 스토리를 다룬다. 그들은 단순히 회사의 이윤만을 추구하지 않고 더 크고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였다. 우리는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그 주체가 추구하는 행동에 의해 사회는 좀 나은 공동체로 성장한다. 인류 역사상 우리가 조금씩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사회 구성원이 각각 삶에 있어서 물질적 가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플랫폼 내러티브는 개인의 물질적 풍요를 뛰어 넘어 공동체 윤리를 실현하는 영웅의 이야기다. 

 

권승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영상문화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전임대우 강의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영상문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Chapman University에서 Film & TV production 전공으로 MFA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철학을 전공했다. 20년 이상 방송 영상 분야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1인미디어기획제작』(2022), 『디지털영상편집』(2021), 『장마리 플로슈, 시각 정체성』(2016), 『영상스토리텔링의 일반원리』(2015), 『3막의 비밀: 스토리텔링의 보편적 법칙』(2012), 공역서로 『차이와 지속의 기호학, 비주얼 아이덴티티』(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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