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역량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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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역량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9.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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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과학 (2023년 가을 통권115호) - 장애와 역량』 | 권범철·진태원·정창조·김도현·이진희 저 외 13명 지음 | 문화과학 편집부 엮음 | 문화과학사 | 317쪽 | 2023.09.13.

 

'장애와 역량'을 제호로 삼은 계간 『문화/과학』 115호는 일차적으로 한국의 장애인운동이 오랜 세월 동안 보여준 투쟁의 역량에 주목하며 기획되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장애라는 존재 자체가 갖는 사회적인 역량에 주목했다. 다시 말해 사회적 관계를 상호의존과 공생의 원리에 따라 재구축하며 사회질서를 평등과 협력의 원리에 입각해서 새로이 구성하기 위한 사유와 실천의 실마리를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존재로부터 모색해보고자 한 것이다. 장애인 운동 활동가, 장애학 연구자, 철학자, 돌봄 연구자, 연극 평론가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필자들은 여러 영역에서 역량으로서의 장애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사건과 돌봄의 관계망을 증언한다.


□ 특집 〈장애와 역량〉

권범철은 특집을 여는 글 「장애는 어떻게 공통화의 역량이 되는가」에서 장애인은 ‘비생산적’이며 ‘의존적인’ 존재라는 통념에 도전하면서 장애를 공통화(commoning)의 역량(capability)으로 볼 것을 주문한다. 이 글은 장애인의 ‘비생산성’과 ‘의존성’이 오히려 돌봄이 중심이 된 사회를 만들어가는 역량이며, 장애인 운동-삶이 위기에 빠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의 물리적 근거”라고 주장한다. 

진태원 「역량으로서의 장애, 돌봄으로서의 관계」에서 장애(disability)를 역량(ability) 없음(dis)의 상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역량(ability)으로 사고하는 철학적 시도를 펼친다. 그는 스피노자에 대한 고찰을 통해 돌봄을 인간의 보편적 존립 조건으로 이해하면서 전장연 투쟁이 돌봄을 새로운 사회적 규범으로 제시하는 역량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정창조 「비-문명의 역습: 장애인들의 비상행동과 ‘장소성’의 재-구축」에서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이 지닌 정치적 급진성의 의의를 살핀다. 그는 ‘비-정치적’이라 오인되었던 장소에서 ‘지하철 행동’이 만들어 낸 낯선 신체의 출현과 우발적 일탈이 장소성을 뒤흔들고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열어내는 정치적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김도현의 글 「노동해방의 ‘잠정적 유토피아’, 기본소득인가 공공시민노동인가?」는 오래된 언네세서리아트(unnecessariat: unnecessary와 proletariat의 합성어)인 장애인의 노동이라는 예민한 쟁점을 다룬다. 그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노동을 향한 해방’을 비교·검토하면서 후자의 노선에 있는 공공시민노동 전략이 언네세서리아트를 창출하는 동시대 자본주의에 맞서는 잠정적 유토피아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진희 「불구의 몸들이 서로 돌보는 정치」에서 장애를 둘러싼 돌봄의 다양한 모습들을 세밀하게 다룬다. 이 글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돌봄을 통한 연대의 말하기, “공동의 관계 역량” 강화다. 그는 이것이 자본주의적 효율과 속도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다른 길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해수의 글 「취약한 몸들의 ‘이야기판’과 돌봄 연대: 장애 브이로그가 매개하는 작은 정치‘들’」은 서로 다른 장애인들(과 시청 공동체)이 브이로그를 매개로 연결되어 출현하는 새로운 돌봄의 양상과 그 의미를 분석한다. 그는 브이로그 사례를 통해 취약성이 어떻게 서로의 상처를 보살필 수 있는 바탕이 되는지,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윤리적인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김소연 「장애와 연극, 장애와 극장」에서 대표적인 장애인 극단들의 활동을 톺아보며 예술과 장애의 몸에 부여되었던 통념들에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는 장애인 배우가 펼치는 무대가 관객들에게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보게 할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 세계를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극장이 서로 다른 너와 내가 함께하는 공간임을 감각하는 일은 다른 몸들이 우리 사회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시작점으로서 그 의의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 동시대 분석

이번 호 ‘동시대 분석’에는 현 정부의 소수자 탄압, 전세사기, 교육 문제를 다루는 세 편의 글을 실었다. 

정강산 「윤석열 정부의 소수자 탄압 양상」에서 노동, 여성, 시민사회 운동 영역에서 현 정부가 벌이는 탄압 양상을 살피고 그것을 관통하는 논리를 분석한다. 그는 현 정부의 소수자 탄압 양상을 날카롭게 비판할 뿐 아니라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윤석열 개인의 의지나 성향이 아니라) 우파 정치업자들과 우파 대중, 그리고 그들을 관통하는 동일성의 논리를 드러낸다. 

송명관 「사회적 재난으로서 전세사기, 금융화의 타락」에서 오늘날 전세사기가 부동산 거래에서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인 계층에게 모든 금융의 위험 부담을 떠넘기기 때문에 더욱 문제적임을 지적하며, 대출정책으로 주거정책을 보완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벼랑 끝에 몰린 임차인들에게 긴급히 재정을 투여해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김성윤의 글 「‘교실 붕괴’의 환유: 숭고한 불행 배틀과 현세주의적 대항폭력」은 학교폭력 피해자의 처절한 복수를 그린 대중서사물이 큰 인기를 끄는 현상이 학교폭력 문제의 해법이 오리무중인 작금의 현실을 방증한다고 주장한다. 통속적인 복수극들은 수용자들에게 통쾌함을 제공하지만, 반인륜적인 것에 대한 사적 제재는 불안의 시간을 장기 지속시킬 뿐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 텍스트의 발견

정보영은 정정훈의 『인권의 전선들』을 다룬 글 「함께 살기 위한 전선으로의 초대」에서 규범 기반 접근 담론과 구조 기반 접근 담론의 통합을 인권운동의 방향으로 제시하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그 주장이 가질 수 있는 한계 또한 비판적으로 논의한다. 

이현정은 홍은전의 『전사들의 노래』를 다룬 글 「전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향한 진군의 노래」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의 삶을 솜씨 있게 요약하면서 이들이 살아온 길에 대한 깊은 존중과 공감을 서평 안에 녹여낸다.


□ 이론의 재구성

장애와 관련된 이론적 논의를 담은 두 편의 글을 실었다. 

송승연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과 인정 요구, 그리고 대항서사에 대하여」에서 정신장애인의 정체성과 인정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광기에 대한 다른 이해를 이끌어내는 대항서사, 즉 매드 서사(Mad narrative)가 ‘해방’을 갈구하는 당사자들의 경험이 축적되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며 이것이 많은 당사자들에게, 또한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다줄 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두 번째 글은 1764년 칸트가 『쾨니히스베르크 학술 정치 신문』에 연재한 「두뇌의 질병들에 관한 시론」이다. 칸트는 인식능력의 결함을 두뇌의 질병이라고 부르면서 그 질병, 즉 인지장애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며 또한 그와 관련하여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다양한 명명들을 엄밀하게 정의한다. 이것은 칸트의 인식능력에 대한 분류에 대응하는 식으로 서술되며, 그에 따라 우리는 이 글을 통해 거꾸로 그의 능력 이론 혹은 인간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함께 실린 역자 고병권의 해설은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 이미지

이번 호에서는 예술의 다양성, 접근성, 수행성의 측면에서 장애의 정치적이고 미학적 가능성에 도전해온 세 참여작가(팀)를 소개한다. 점자 스마트시계 디자인을 통해 장애에 대한 인식을 디자인 실천으로 전환한 유영규, 재난에 취약한 장애인의 포괄적 대피 매뉴얼을 제작하고 비장애인과의 워크숍을 통해 일상 속 실천을 도모해온 리슨투더시티, 장애인·비장애인이 공생하는 탈중앙화 네트워크를 여러 분야의 협력자와 함께 탐색해온 최태윤이다. 이렇듯 장애와 예술의 만남은 사회 참여 운동, 소수자 운동, 예술 제도·주류 미술 비판 및 포용적 예술 확산 등 사회문화적 변화를 위한 공동의 역량으로 전개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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