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일본의 국가 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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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일본의 국가 대전략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9.1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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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14강_ 손열 연세대 교수의 「21세기 일본의 국가 전략」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관련 현안을 짚어보는 두 번째 섹션 ‘오늘의 동아시아’ 제14강 손열 교수(연세대 국제학대학원)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21세기 일본의 국가 대전략


손열 교수는 21세기 일본이 “인도-태평양 개념에 근거한 심상 지도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면서 과연 그 공간 개념이 “어떠한 정책 목표와 수단을 정의하고 배열”하고 있는지, “변화하는 국제 전략 환경과 국내 정치 과정”과 “정합적”인지, 그리고 그 같은 구도에서 “한국과의 관계는 어떤 위상을 갖고” 있으며 “한일 관계의 미래”는 어떠할지를 묻는다. 먼저, 일본을 둘러싼 “21세기 전략 환경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른 주변국의 불안감 확산” 그리고 “이러한 중국의 도전에 대항하는 미국의 상대적 쇠퇴”, “인도의 등장”을 들고 그 흐름에 맞추어, 아베 정권의 등장과 함께, “대전략의 전환”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로서 “미일 동맹 변환”, “파트너국들과 연합”,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FOIP) 구상”이 제안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그 같은 일본의 “국가 대전략”에 미래가 있는가라고 할 때 중국과 일본 관계, 미국과 중국 관계, 일본의 경제력이라는 세 가지 변수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변화된 해당 전략이 한국과 일본에 주는 함의로는 “한일 역사 갈등의 과거 10년”을 돌이켜보아 “역사 문제 해결 노력과 기능적 협력의 투-트랙 접근이 유효하되, 양 측면의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8월 26일, 손열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14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일본은 대전략(grand strategy)을 가지고 있는가.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끊임없이 대전략을 모색하고 실천하고자 했다. 다만 시대에 따라 대전략의 성패가 갈렸을 뿐이다. 대전략이 개별 목표 설정과 수단의 배합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상위에는 공간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레 주어진 지리적 영역이라기보다는 인간 혹은 주요 정책 결정자의 심상 지도(mental map)로서, 행위자의 위상, 사안의 주목도, 나아가 자원 배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주요 국가는 특정 전략 공간을 획정함으로써 특정국을 중심에 두고 다른 국가를 경시하거나 배제하며, 이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고자 한다. 이들은 특정 언어(지역어)로 공간을 구획하고 정체성을 부여하여 구성원을 선별함으로써 자국에 유리한 전략 공간을 조성하고자 한다.

21세기 일본은 인도-태평양 개념에 근거한 심상 지도를 가지고 있다. 과연 이 공간 개념은 어떠한 정책 목표와 수단을 정의하고 배열하고 있는가. 변화하는 국제 전략 환경과 국내 정치 과정은 일본이 추구하는 —혹은 추수하는— 공간 개념과 정합적인가. 이 구도에서 한국과의 관계는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가. 한일 관계의 미래는 어떠한가.


20세기 일본: 태평양, 아시아-태평양, 미국 패권

일본의 20세기는 크게 보면 ‘태평양’이란 ‘주어진’ 공간에서 대전략을 모색하며 국력의 흥망성쇠를 경험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 20세기는 “패권”이란 이름의 “미국의 게임” 속에서 미국과 상호작용하며 성장하고 진화한 역사적 과정이다. 미국 패권은 일본의 “행위에 외적 경계(outer limit)를 설정”하되 “이 패권적 영역을 충분히 넓게 설정하여 [일본이]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탈퇴 의지를 강력하게 제어”하는 기술력과 산업력에 기반한 것이다. 미국은 패권의 무대를 태평양이라 명명하여 아시아만의 독자 공간을 거부하였다. 따라서 일본은 아시아의 일원인 동시에 태평양 무대에서 연기하는 행위자로 규정되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태평양’에서 ‘아시아-태평양(이하 아태)’으로 지역어를 수정하고 자국의 자유주의 가치를 공간 정체성으로 삼아 역내 국가들에 전파하고자 했다. APEC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전파의 기제로 만들어 일본의 시장 자유화를 압박하였고, 일본의 기술력과 생산력이 패권의 외적 경계에 근접하였을 때 미국은 보복 조치를 취하였다. 안보적으로는 탈냉전 상황에서 일본 내의 동맹 존치 논란에 대해 이른바 ‘나이 이니셔티브(Nye Initiative)’를 통해 미일 동맹을 지역 동맹으로 재정의하여 일본을 미국의 군사 패권하에 존속시켰다.

 

21세기 전략 환경의 변화

세기말 ‘단극의 순간(unipolar moment)’과 미국의 일방주의가 일본에 기존 전략(=미국 추수 외교)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면, 21세기에 들면서 지구적 규모로 전개된 세력 배분 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국가 대전략을 모색하는 결정적 동인이 되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추세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른 주변국의 불안감 확산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중국의 상대적 부상, 그리고 일본의 상대적 쇠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출처: Governments, Japan Center for Economic Research

둘째는 이러한 중국의 도전에 대항하는 미국의 상대적 쇠퇴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는 미국발(發) 위기이었고 월 스트리트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모델의 위기이었으며 나아가 미국이 지탱해온 전후 자유주의 국제 경제 질서의 동요를 의미했다. 위기의 진앙이던 미국은 스스로 기성 질서의 안정과 회복을 가져올 능력이 부재하였으므로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세 번째 변화는 인도의 등장이다. 인도는 2017년 PPP(Purchasing Power Parity, 구매력 평가 지수) 기준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였다. 또한 인도는 핵 보유국이며 경제력 상승에 걸맞게 군사력을 증강하여 지역 군사 대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아베 정부는 양국이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으며, 미국 역시 전략적 관심을 인도양으로 확대하여 중국의 영향력을 제어하고자 하였고, 이런 차원에서 인도와의 협력을 중시했다.

 

아베 정권의 등장과 대전략의 전환

일본의 전략적 고민은 아태 공간으로 상징되는 미국 패권이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부상에 따른 세력 균형의 변화로 동요하고 있다는 점, 중국의 부상이 수정주의적 양태를 띠고 있다는 점, 미일 동맹만으로 자국의 안정과 번영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 미국의 안보 정책 및 경제 정책의 아시아 이동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다. 

중국의 거센 외교적, 경제적, 군사적 공세 속에서 우익 민족주의 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업고 등장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은 2012년 12월 재기하여 2020년 8월까지 장기 집권하면서 21세기 일본의 대전략을 수립하였다. 핵심 목표는 미국에 의존하는 수동적이고 일국 평화주의적, 경제 수단 중심 외교로부터 군사력을 신장하고 대외 개입의 범위를 확장하는 ‘대국 외교’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선제 조치는 국가안전보장국을 설치하고 《국가안보전략》(2013)을 책정하여,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쇠퇴에 따른 전략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력 강화(억지력 강화), 미일 동맹 강화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신뢰/협력 강화, 보편적 가치와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 강화를 향한 주도적 역할 수행이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1) 미일 동맹 변환

첫 번째 핵심 과제는 미일 동맹의 강화이다. 과거 패권적 동맹(hegemonic alliance)을 탈피하여 보다 상호적 동맹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즉, 미군 전력의 상대적 쇠퇴를 일본이 보완하여 지역 내 군사력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정부는 중국의 도전 및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강화 등에 미국과 공통의 전략 목표를 합의하였다. 따라서 이제 일본은 동맹의 연루(entrapment) 우려 없이 상호 전력의 극대화와 통합, 상호 운용성과 전략 조정 기능 향상 등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함께 아베 정부는 제도적 정비에 나섰다. 2014년 집단 자위권 행사 요건을 확장시켜 헌법 개정을 하지 않고도 군사력 행사의 범위를 파격적으로 확장하여 미일 동맹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놓았다. 

 

2) 파트너국들과 연합

일본은 미일 동맹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또한 미일 동맹의 일체화만으로 일본의 안정과 번영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미일 동맹의 강화와 함께 주요 파트너국들과의 연계와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그 핵심 파트너가 인도와 호주이고, 미국을 포함하여 이를 통칭하는 쿼드(Quad)이다.

아베 수상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 속에서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공간 지평의 확대를 통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해양 국가 인도와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나아가 미국과 호주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확대를 꾀하였다. 아베 수상은 2006년 12월 인도와 전략적 글로벌 파트너십에 합의하여 해양 안보 등에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고자 하였고, 2007년 3월 호주와 「안전보장 협력에 관한 일호 공동 선언」을 발표하여 “민주주의 가치 및 인권, 자유, 법의 지배에 대한 헌신”과 “공통의 안보 이익”에 기초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어서 5월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의 전략 대화(Quad) 결성을 주도하고, 이를 ‘아시아 민주주의의 호(Asian Arc of Democracy)’로 명명하였다.

3)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FOIP) 구상

미일 동맹, 일인 협력, 일호 협력 강화는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수렴된다. 이는 아베 정권의 외교 대전략이라 할 수 있다. 2016년 8월 아베 수상은 케냐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의 기조 연설에서 “일본이 태평양과 인도양,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교제를 힘과 위압으로부터 무관하며, 자유, 법의 지배,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장으로 키우고 이끌어갈 책임”을 담당하여 “양 대륙을 잇는 해양을 평화롭고 규칙이 지배하는 해양”으로 만들기 위해 아프리카와 협력하겠다고 선언하였다.

2017년 《외교청서》는 이상의 담론을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ㆍ태평양(FOIP; Free and Open Indo-Pacific)’으로 정리하고 이를 일본 외교의 신기축이라 선언하였다. FOIP의 지정학은 ① 중국의 확대되는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② 해양 안보를 중심으로 해양 네트워크를 조성하고 ③ 보편적 가치를 지역 개념으로 설정하여 ③ 역내 국가들과 개발ㆍ무역ㆍ투자 등을 통한 연계성(connectivity) 증진과 ④ 해양법 집행 능력 구축, 인도적 지원, 재해 구조 등 비전통 안보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자유, 법치, 개방성, 다양성 등 보편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 질서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본래 우익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아베 정부는 자유, 인권, 시장경제 등 자유주의적 가치보다는 공동체주의와 같은 일본적 전통의 부활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가치 외교는 일본의 정체성 혹은 문화적 열망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일본 자체가 규칙 기반 국제 질서에 뿌리를 둔 현상 유지 세력이란 측면에서 내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정부는 보편 가치를 레토릭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과 위안부 문제 및 강제 동원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보편적 인권 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 대전략의 미래

일본의 21세기 국가 대전략의 성패는 크게 세 가지 변수에 달려 있다. 첫째는 중일 관계 변수이다. 일본은 오랜 기간 중국을 안보 경쟁국으로 간주하지 않았지만 2010년과 2012년 센카쿠(혹은 다오위다오) 해역 충돌 이래 전력을 증가시키며 경쟁 관계를 이루고 있다. 반면 일본에 중국은 경제적으로 최중요 파트너로서, 일본의 최대 수출 시장인 동시에 생산 면에서 일본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주요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영토 분쟁이 격화되거나, 자국의 군사력 증강 및 동맹 강화가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하여 경제 관계가 과잉 안보화되지 않도록 현명하고 절제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는 미중 관계 변수이다. 이는 중일 관계에 대한 결정적 변수이기도 하다. 미중 관계는 양국이 전략적 핵심 이익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전면적 대립으로 갈 수 있고, 건전한 경쟁과 협력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미국의 대중 정책이 강경한 군사적 억제 전략과 경제 안보 차원에서의 디커플링 전략으로 경도된다면 일본은 경제 안보 명분에 따라 대중 무역, 투자, 기술 협력 등의 축소 압력을 더욱 크게 받을 것이다. 반면, 양국이 과잉 안보화를 자제하고 충돌의 위기를 견제할 수 있는 가드레일(guardrail) 설치 등 대화 메커니즘을 복원하면서 건전한 경쟁 관계를 추구할 경우 중일 간 경제 협력은 증가할 것이다.

세 번째는 일본의 경제력이다. 경제가 받쳐주어야 대전략의 여러 수단들을 가동하여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일본은 2010년 중국에 추월당해 세계 3위로 밀려났고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2030년에는 인도에 이어 세계 4위권으로 밀려날 것으로 전망되며, 1인당 GDP는 머지않아 대만과 한국에 따라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일본이 대전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경제 구조 개혁을 통해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력 인구 증대를 위해 여성 및 고령자 취업률 증대와 이민을 위한 사회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일 관계에 주는 함의

2022년 2월 한미일 외교 장관은 “이 지역에서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긴장을 높이는 어떠한 행동도 강하게 반대”하며 “규범에 기초한 경제 질서를 강화하고 인도-태평양 지역 및 세계 번영을 확보하기 위한 삼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나아가 2023년 8월 18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 회의에서 선언한 “삼각 파트너십의 신시대”는 안보 협력의 수준을 전례 없이 끌어올렸다.

문제는 한미일 협력의 목표가 대중 견제로 확대되는 경우이다. 예컨대, 미일 양국이 가이드라인 개정 등 조치를 통해 양국 간 통합 억제(integrated deterrence) 체제를 형성하면 한국의 참여 압력은 점증할 것이다. 한일 안보 협력 논의는 고도의 전략적 협의가 필요한 신차원에 진입하고 있다.

두 번째 과제는 전략적 경제 협력이다. 이번 《국가안전보장전략》은 자국 산업과 기술의 전략적 안정성, 우위성, 불가결성을 강조하며 안보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꾀하고 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과 기술을 보호, 육성함으로써 안보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경제적 효과도 기하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경제 안보 정책은 수세적 대응이란 측면이 강하다. 경제적 상호 의존의 네트워크에 깊이 내장된 한국 경제의 취약성에 대비하는 조기 경보 체제 수립 등 국내외적 노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한일 양국은 경제 안보 분야에서 신중한 논의를 통한 협력의 분면을 찾을 필요가 있다.

한일 양국이 마주할 보다 큰 딜레마는 대국들이 경제 안보 확보 경쟁에 나서면 대국 간 경제적 안보 딜레마가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세계 질서 속에서 고도 성장을 이룩하였고 또한 경제 강압의 피해를 경험한 한일 양국은 세계화의 역진을 저지하고 자유주의에 기반하면서도 포용적이고 회복력 있는 세계화로서 재세계화(reglobalization)를 지향해야 할 시점이다. 한일 양국은 수출 규제(화이트리스트 문제) 해소와 같이 미시적인 현안 해결을 넘어서 규칙기반 질서 수호라는 대의 속에서 강대국들의 경제 민족주의를 견제하고 경제의 과잉 안보화를 저지하면서 재세계화의 규칙과 규범을 만들어가기 위해 상호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대중 정책의 경우, 일본과 한국은 경제 분야에서는 협력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경제 안보적 고려가 요구되는 부문 즉, 군사 안보적 관련이 큰 첨단 기술 부문에서 중국과의 탈동조화는 불가피할지라도 여타 부문에서 한일 양국은 경제적 상호 의존의 네트워크를 견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끝으로 역사 문제의 관리와 해결 과제이다. 아베 수상의 재집권 이래 지속되어온 자민당 우위 체제는 우경화된 정치 체제이다. 이 세력은 보편 가치를 외교의 중심축으로 내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 가치와 원칙에 근거하여 역사 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왔다. 이런 점에서 현재 양국 관계 개선은 역사 문제 진전의 결과가 아니라 양국 정부의 실용주의적 선택이다. 그렇다면, 여권이 주장하듯 양국이 안보ㆍ경제 면의 기능적 협력을 확대해가면 역사 문제가 서서히 해결될 것인가? 반대로 야권의 주장처럼 역사 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의미 있는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는가?

한일 역사 갈등의 과거 10년을 돌이켜보면 역사 문제 해결 노력과 기능적 협력의 투-트랙 접근이 유효하되, 양 측면의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함을 알 수 있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21세기 일본의 국가 전략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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