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대규모 대학 구조조정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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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대규모 대학 구조조정에 관한 단상
  • 이성용 뉴질랜드 오타고대학교
  • 승인 2023.09.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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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특별판]_ 글로벌 고등교육

 

지난 8월 초, 부총장과의 면담에서 면직 최종 통보를 받았다. 학교 재정난에 따른 자구책으로 내가 속한 학과가 사실상 폐지되면서 나의 교직 정원도 소멸되었다는 것이다. 외부 기금으로 운용되는 석좌교수 정원 하나만 남기되, 학교의 새로운 방향에 맞춰 다른 학과의 한 보직으로 편입된다고 했다. 해직 시점은 내년 2월말, 강제 퇴직 수당(redundancy entitlement)은 대략 7개월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2019년 말 코로나 사태로 시작된 일련의 위기와 혼란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작은 섬나라 뉴질랜드를 뒤흔들어 놓았다. 경제적 혼란과 이에 따른 국가 재정 위기는 특히 국가 운영 전반에 큰 어려움을 야기했고, 나라 안의 모든 영역이 심각한 수준의 긴축재정 정책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운영 자금의 가장 큰 비중을 정부 지원에 의존해 온 대학들은, 지난 수년 동안 지속된 대학 재정 동결과 가파르게 올라간 물가 상승 탓에 모두 비상 상황을 맞이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오타고 대학교는 대략 600만 뉴질랜드 달러(한화 48억 원)의 재정 적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략 ‘수백 명’의 교직원의 감원이 1차 목표로 제시되었다. 학생 수가 적은 학과들이 우선 정리 대상이 되었다. 첫 번째 구조조정에서 독일어 등 몇몇 어문학과가 폐지되었고, 다음은 내가 속한 학과처럼 학부생 없이 대학원 과정만을 둔 연구 중심 학과/연구소가 자리를 잃었다.

하루아침에 폐과 통보를 받은 교직원과 학생들은, 형식적으로 주어진 한 달간의 의견 수렴 기간 동안 고군분투했다. 학장과의 면담에서 부당함을 호소하고, 졸업생과 관련 기관들에 부탁하여 반대 서한을 제출했다. 많은 이들이 호응해 주었다. 학과 체제가 무너진 ‘국제학부’의 경우, 전 세계에서 90여 건의 개별 서한과 반대 서명부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말 그대로 형식적 절차였을 뿐, 이를 통해 달라진 것은 없었다. 폐과 혹은 통폐합을 면한 학과들도 교수정원 감소는 피할 수 없었다. 특정 개인을 해고하는 것이 아닌, 구조조정을 통해 교원 정수를 소멸시키는 과정에 대해서는 교직원 노동조합도 속수무책이었다. 

퇴직 통보를 현실로 받아들이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격앙된 학생들의 분노를 받아주는 책임자가 없었다. 학장의 부재로 2달 동안 임시 학장 대행을 하고 있는 교수는 책임 있게 해 줄 수 있는 대응이 없었고, 정작 결정을 내린 부총장은 아예 학생들을 만나주지 않았다. 보다 못해, 해고가 예정된 학과의 교수들이 여러 차례 타운홀 미팅을 열어 학생들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분노와 토로를 접하며, 비로소 나의 실직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들의 표정과 마음을 느끼며,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감정들이 만져지기 시작했다. 

개인적 차원에서 볼 때, 이러한 대량 해직 사태가 뉴질랜드 노동당 (the Labour Party)의 집권기에 일어났고, 종용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뉴질랜드에 정착한 이후,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익과 목소리를 대변하는 노동당의 정책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노동당의 집권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리고 노동당의 정치적 지향성이 분명해질수록, 내 개인의 이익과는 점차 상반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세제 부담은 증가하고, 이를 통해 신설된 정책들은 모두 ‘저소득층만’을 그 수혜 대상으로 한정했다. 상대적으로 고소득 계층인 대학교수들은 그들의 관심 대상 밖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국가 전반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특정 계층을 주요 타겟으로 삼는 노동당의 정책 방향은 더욱 극단화했고, 소위 재정의 ‘균형 편성’에 대한 요구에 소극적이었다. 대학교육 현실화를 위한 재정 확충 역시 외면을 받았다. 

또한 대학 구조조정 공론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의제들은 모두 ‘돈의 논리’가 주도했다. 대학에서도 어느덧 학문과 공동체, 사회적 가치 등에 대한 대학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오직 학생 수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교원의 수에 초점이 모아졌다. 노동당 정부하에서 벌어지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대량 양산이라는 아이러니가 눈앞에 펼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진행 중인 대규모 구조조정이 향후 뉴질랜드의 교육과 학문연구에 당분간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길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대학 교육 재편이 인기 학과 및 과목을 중심으로 대폭 축소하고, 방법론과 연구이론 관련 과목들은 통폐합하면서, 학생들의 다양한 ‘니즈(needs)’에 맞춘 교육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대학들은 대부분이 외국인들인 교원들 중 상당수를 잃게 되는데, 그중 가장 연구 실적이 뛰어난 순으로 외국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 이렇게 한번 외국으로 이직한 사람들은, 설사 다시 자리가 생긴다해도 뉴질랜드로 돌아오기 힘든 상황에 처한다. 그동안 각 대학의 특성에 맞춰 최고의 성과를 내 왔던 인재를 대규모로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학문과 지식의 축소 역시 우려할 대목이다. 인구와 경제력 면에서 규모가 작은 뉴질랜드는 그동안, 상당수의 연구와 교육 분야를 대학에 적절하게 안배하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유지해 왔다. 어느 학교의 연구/교육 분야가 다른 대학과 중복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크지 않은 인력풀이 최대한 다양한 연구 분야를 포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대학의 결정에 의해 폐지된 연구소와 학과는, 그 대학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의 연구-교육 공백을 초래하게 된다. 내가 일하고 있는 연구소/학과는 뉴질랜드에서 유일한 ‘평화학’ 연구소이자 교육기관이었다. 이제 평화학에 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은 불가피하게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조건이 되었다. 

그 문제점을 대학 지도부도 이미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 적자 감축에 대한 압력이 심해지며, 당분간 ‘어느 정도 괜찮은 수준의 교육을 학부생에게 제공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춘 운영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작금의 교육 통폐합을 바라보며, 현 정부가 유명한 마오리 격언 하나를 되새겨주길 바라본다.

He aha te mea nui o te ao? 
He tangata, he tangata, he tangata.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다, 사람이다, 사람이다.


이성용 뉴질랜드 오타고대학교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교에서 평화분쟁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국 코벤트리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잠시 일하다 2014년 뉴질랜드로 이주한 후 줄곧 그곳에서 살고 있다. 주로 전후 복구, 평화구축, 사회적 화해 문제에 관한 내용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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