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의 사각지대, 외국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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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의 사각지대, 외국인 교수
  • 김일규 강원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영어전공
  • 승인 2023.09.11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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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저시급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법정 근로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노동시간을 강요받고, 심한 경우 사용주로부터 정신적·육체적 폭행을 당하거나 심지어 제대로 된 숙소도 제공받지 못해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에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다가 목숨을 잃는 등 장시간·저임금 노동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인권과 생존권마저 보호받지 못하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다행히 이주노동자의 증가와 함께 이들이 겪는 피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익숙한 피해자들은 주로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아시아계 육체노동자들로 한정되어 있다. 물론 이들이 겪는 부당함의 정도가 워낙 심하기에 세상의 관심이 그들에게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차별의 피해자는 육체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도 부당한 억압과 차별에 시달리는 외국인 노동자가 존재한다. 바로 외국인 교수들이다. 

외국인 교수의 경우 기본적인 인권과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자극적인 기삿감을 원하는 언론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국인 교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며 법과 제도로 정해진 의무 외의 업무를 강요받는 등 그들 또한 엄연히 부당한 억압과 차별의 피해자이다. 일례로, 서울의 한 사이버대학에서는 외국인 전임교원의 재임용 과정에서 책임강의시수를 늘리는 등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 내용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버젓이 계약서에 넣고 서명을 요구하는 위법 행위를 자행하고, 공식적으로 정해진 수업 외에 학생들과의 전화상담 업무를 강요하는 등 오로지 경제 논리에 따라 외국인 교수들의 노동권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우리가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 출신이면서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것은 우리의 저열한 국민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이 선진국 출신이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첫째, 대학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형성된 차별문화가 존재한다. 외국인 교수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모국어 관련 학과에 소속되어 해당 외국어 교육을 담당한다. 따라서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박사학위 소지자이기보다는 최종 학위가 석사학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사학위를 지닌 내국인 전임교원들이 주를 이루는 국내 대학사회에서는 최종학위가 석사학위인 외국인 교수들을 암묵적으로 무시하는 차별 문화가 존재한다. 그러나 최종학위가 석사학위라는 사실 때문에 법과 제도로 금지된 차별이 정당화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둘째, 대부분의 외국인 교수들은 우리 대학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적 제도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외국인 교수들은 비전임교원인 경우가 많고 전임교원이라 하더라도 비정년계열에 속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고용 형태의 측면에서 이미 구조적으로 차별받는 집단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정년계열 전임교원으로 지원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주로 실용외국어 중심의 교육을 담당하는 외국인 교수들에게는 정년계열 전임교수로 임용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차단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학교에서는 실용외국어 교육을 담당할 외국인 교수를 채용할 때 정년계열 전임교원이 아닌 비전임교원이나 비정년계열 전임교원을 채용 조건으로 제시함으로써 외국인 교수에 대한 차별을 제도적으로 강제한다.

외국인 교수에 대한 차별을 가능케 하는 세 번째 요인은 언어 문제와 수적 열세로 인해 차별에 적극적으로 맞서기 힘든 환경이다. 대부분의 외국인 교수들은 한국어에 서툴다 보니 직원들과의 의사소통도 어렵고 한국의 법과 제도에 상대적으로 무지하여 자신들이 어떤 억압과 차별을 받는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힘들다.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대학 내에서 기득권이 아닌 소수집단에 불과하다 보니 용기를 내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가 힘들다. 교수들의 노조할 권리가 합법화된 이후 수천 명의 내국인 교수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반면 외국인 교수 중 노조 가입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 이들이 처한 언어적·환경적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하지만 차별의 정도가 육체노동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해서, 대학 내 소수의 문제라고 해서 문제의 무게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의 기본인 ‘약자 우선의 원칙’에 의하면 외국인 교수에 대한 차별은 대학 내 그 어느 문제보다도 절실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우선 정확한 실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외국인 교수의 차별 문제는 그 누구도 진지하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에 피해의 종류와 규모에 대해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교육부는 하루빨리 실태 조사를 실시하여 객관적인 정보를 확보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차별 철폐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위의 제도적 노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피해 당사자들의 투쟁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그 어떤 의미 있는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노동운동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준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필자가 속한 전국교수노동조합에 네 명의 외국인 교수가 차별에 맞서기 위해 용기를 내어 가입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마지막으로, 당사자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엄호하고 지지하는 강력한 연대가 필요하다. 특히 외국인 교수들처럼 투쟁의 주체가 소수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언론, 시민사회 등 대학 밖의 다양한 세력과 더불어 학생, 직원, 동료 교수 등 대학 내 구성원들의 관심과 연대 없이는 결코 이들보다 훨씬 힘이 센 학교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 또한 지난 수십 년의 지난한 대학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확인한 바 있다. 부디 강고한 단결과 연대로 외국인 교수들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여 대학 민주화라는 궁극의 목표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길 기대한다.

 

김일규 강원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영어전공

• (현) 위원장/강원대학교
• (전) 전국교수노동조합 강원지부장
• (전) 민교협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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