뜯기는 사립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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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기는 사립대학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3.09.1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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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

입학정원이 줄어들면 기존의 대학 건물이나 운동장 중 일부를 매각할 수 있을까. 차라리 그렇게라도 된다면 참 좋겠다는 사람도 있을 터이고, 미련한 생각이라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미련하다 못해 매우 나쁜 생각이라고 본다. 최근 ‘사립학교법 시행령’의 개정(2023년 6월 23일)과 이에 근거하여 제정한 ‘교육용 기본재산 처분에 관한 기준 고시’(9월 1일)에 따라 교사(校舍)와 교지(校地)’의 일부를 합법적으로 처분할 수 있게 되었다. 입학정원이 줄어드는 시대에 이르면 오히려 공간의 과밀화가 점차 해소되어 보다 쾌적한 교육공간이 될 터인데, 국가와 학교법인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들에게 학령인구의 감소는 ‘돈’을 벌 절호의 기회가 된다. 교육의 기회를 포기하고 돈을 얻겠다고 하는 이 발상을 어찌할 것인가?

학령인구 감소라는 쟁점은 주로 학생의 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아니면 우수한 학생을 어떻게 유치할 것인지를 둘러싼 담론을 형성하는 데 그쳤다. 슬프지만 현실이 된 ‘축소의 시대’를 대비하며 때로는 국가의 강압에 따라, 때로는 대학마다 스스로 입학정원을 나름대로 줄이는 데 지난 20년을 보냈다. 정권에 따라 그 색깔이 다소 다르긴 했지만 대체로 한국 사회는 지방대를 위주로, 그리고 점차 전문대와 사립대를 위주로 입학정원을 줄이면서 인구감소의 추계에 맞게 억압적 구조조정을 대학별로 또는 각 대학의 전공별로 강행하였다. 그사이 고등교육은 본연의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교수의 비정규직화가 확대되어 차별을 넘어 법률적 차원의 신분보장과 사회적 처우가 사라지는 시대를 맞게 되었다. 교수는 고등교육의 담지자가 아니라 어느덧 생계형 교육종사자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고등교육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교육과정의 주도권이 기업이나 국가로 넘어가 이제 교수는 그저 강의하는 당사자로서만 존재한다. 전공 교육은 그 깊이도 얕아졌고 교양 교육은 그 흔적조차 희미하거나 무늬만 남았다. 

이제 인구감소에 대응하는 그 억압적 구조조정의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것이 이번 사립학교법 시행령 개정을 둘러싼 정치적 과정인데, 사립대학을 설립할 때 요구하던 기준을 입학정원의 감소에 맞게 구조조정을 하려는 것이다. 이번 개정을 통해 현행 ‘대학설립·운영 규정’을 사실상 무력화하려는 셈이다. 현행 사립학교법과 그 시행령의 ‘원칙’에 따르면 교지, 강당을 포함하는 교사, 실내체육장을 포함하는 체육장, 실습 또는 연구시설 등에 대해서는 학교법인이 매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학생 수의 감소 등 교육여건의 변화를 고려하여 매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해도 교육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경우로서 교육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재산’에 대해서는 학교법인이 매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교육용 기본재산 처분에 관한 기준 고시’에 따르면 이제 ‘대학설립·운영 규정’ 제4조(교사)와 제5조(교지)에 따른 기준은 최근 감소한 학생 수에 연동하여 교사와 교지의 확보 기준이 넘는 경우 이를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행 학생 1인당 교사(교육기본시설, 지원시설 및 연구시설)의 기준면적은 계열별로 다른데, 인문·사회과학 12㎡, 자연과학 17㎡, 예체능 19㎡, 공학 20㎡, 그리고 의학 20㎡이다. 따라서 해당 사립대학의 교사가 법정 기준을 얼마나 넘겼는지를 보려면 이 수치에 편제완성연도 기준 학생정원의 수를 곱하면 된다. 그동안 대학종합평가인증제를 무난히 넘나든 사립대학이라면 최근 20년 동안 감소한 입학정원의 비율만큼 교육기본시설(강의실, 실습실, 도서관, 학생회관 등)과 그 부대시설, 지원시설(강당, 학생기숙사 등)과 그 부대시설, 그리고 연구시설(연구용 실험실, 부설 연구소 등)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교지’도 여기에 연동된다. 편제완성연도 기준 학생정원이 1,000명 이상의 사립대학은 위 교사기준면적의 2배 이상 교지를 확보하여야 하는데, 이 역시 학생정원의 수가 감소하는 경우 그 비율만큼의 교지를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번 시행령의 개정에 따르면 사립대학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학교법인은 자신이 소유하는 해당 사립대학의 교육용 기본재산, 즉 교사와 교지 중 일부를 입학정원의 감소 등을 이유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입학정원의 감소 등 새로운 사회변화에 맞춰 대학의 설립에 필요한 교사, 교지, 그리고 교원의 확보 기준 또는 규범을 변경할 수 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이를 나는 긍정적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규범은 언제나 장래효를 가질 뿐이다. 새로운 대학의 설립을 구상한다면 가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기존의 대학이 가진 물적 토대를 학생의 숫자라는 변수에 맞춰 축소할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런 발상은 고등교육의 기반을 전혀 고민하지 않은 발로이다. 비록 입학정원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그 대학을 구성하는 ‘사회’는 이미 상당한 기간 그 정체성을 유지한 채 같은 물적 토대에 의존해 왔다. 적정규모였던 대학은 이제 여유로운 공간을 가진 대학이 될 수도 있고, 과밀했던 대학은 비로소 적정규모의 공간을 갖춘 대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다양한 교육과정, 더 자발적이며 더욱 자주적인 학생 활동과 실천들, 그리고 주민과 지역이 함께 연대하는 대학의 생태계 구축을 고민하는 게 앞으로의 과제들이라면,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여유로운 대학의 공간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학교 교육이라는 교육제도와 그 운영 그리고 교육재정에 관한 기본적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대한민국헌법’ 제31조의 취지는 이미 버려진 지 오래다. 마치 넘치는 자산이 사립대학에 남아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2단계 구조조정은 결국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국가가 이제 포기하겠다는 엄숙한 선언과 다름없다. 국가는 자신이 할 일은 하지 않은 채 그 책무성을 대학과 그 구성원에게 떠넘기고 있다. 자신이 제공한 침대보다 키가 큰 손님의 목이나 다리를 잘라 죽인 프로크루스테스보다 더 영악하다. 마치 점점 작은 침대를 제공할 수밖에 없게 함으로써 모든 손님의 다리를 자를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합법적으로 만든 셈이다. 야바위꾼이나 다름없는 간사한 꾀가 ‘시행령 정치’라는 이름으로 대학에도 들이닥친 꼴이다. 교육의 섬세함을 모르는 자들이 학교를 마구 물어뜯고 있다. 교원을 할퀴고 교육의 공간인 대학의 건물과 땅을 마구 뜯어 팔아넘기려 한다. 그렇다면 향후 예상하는 세 번째 구조조정은 누구나 전망할 수밖에 없듯 교원의 확보 기준을 없애는 데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이다. 법의 가면을 쓴 무도들이 활개 치는 난세가 아닐 수 없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인데 교육법, 인권법, 법여성학, 사회철학, 사회과학방법론, 법인류학 등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경남 근현대사: 사건, 공간, 운동』(공저, 2023),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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