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도서관은 기호학 총체이자 지식문명 코드
상태바
책과 도서관은 기호학 총체이자 지식문명 코드
  • 윤희윤 대구대학교 문헌정보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09.10 13: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에게 듣는다_ 『책과 도서관: 불멸不滅의 기호학』 (윤희윤 지음, 태일사, 448쪽, 2023.08)

 

인류는 수상과 지문을 동원하여 천(천문), 지(지리), 인(인문)을 기록하였다. 그것의 체계적인 조형물이 책이라면 울타리는 도서관이다. 그럼에도 책과 도서관, 그 행간에는 인류의 무수한 지성사와 야만사가 혼재되어 있다. 

우선 지성사 측면에서 책에는 고대 학자들의 지적 탐구와 논리, 중세 수도사의 고전 복원을 위한 필사와 번역, 장인정신이 충만한 채색과 제본이 함축되어 있다. 근대 지식인과 사서가 집요하게 수집ㆍ보존한 서고의 고전을 주시하면 화려한 채색과 장정에 압도되고, 책장을 넘기면 고대 및 중세 지성인과의 지적 유희가 가능하다. 수천 년간 누적된 지적 질서에서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개별 도서가 저자의 지적 통찰과 치열한 고뇌가 조합된 노작이라면 사전이나 전집은 무수한 전문가와 선지식이 토해낸 집단지성이다. 그 역사가 오래될수록 지적 카리스마를 분출하여 사상반추, 지식창조, 사회변혁을 견인한다. 다음으로 야만사 관점에서 책은 끊임없는 박해와 약탈에 시달렸고, 도서관은 방화와 파괴의 대상이었다. 고대 왕조에서는 체제에 도전하거나 거부하는 책, 중세 봉건시대는 신권에 반기를 들고 복종을 거부하는 책, 근대는 사회질서와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책, 그리고 현대는 지배이념을 거스르는 책에 주홍글씨를 새겼다.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구속하고 단두대에 올리거나 한 줌의 재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왜 책을 금지하고 도서관을 불태웠을까. 가장 명료한 이유는 책에 함축된 역사성, 혁명성, 초월성이 기억으로 부활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책을 독점하려는 세력이 권력을 앞세워 금기의 장벽을 치는 데 혈안이었다면, 책을 공유하려는 민중은 목숨을 걸고 금단의 영역을 허물었다. 이러한 대결구도의 산물이 금서와 분서다. 특히 분서는 ‘불(火) = 재(灰)’라는 강렬한 상징성을 은유한다. 그러나 광신적 종교집단, 청교도적 위선, 권력 유지를 위한 지배자, 무지한 폭도, 공산주의 정권, 레드 콤플렉스 등에 의해 자행된 분서는 금서를 넘어서는 악행이다. 그들이 사회악, 신성 모독, 외설과 폭력, 이념적 편향성 등을 명분으로 거세ㆍ말살하였음에도 책은 죽지 않았다. 에블라 왕궁 터에서, 수메르 왕실에서, 이집트 모래사막과 파라오 신전에서, 사해동굴의 항아리와 둔황 막고굴에서, 페르쿨라네움 화산재 속에서, 고대 성채 유적지에서, 유대교 회당의 게니자에서, 중세 암벽과 심산의 수도원에서 도서관으로 귀환하였다. 

책이 기억을 지배하는 기록물의 대명사라면 도서관은 기록이 집합된 책의 총체. 즉 장서다. 책의 행간을 왕복하며 지적 허기를 채우는 과정에서 희로애락이 교차하고, 미지를 여행하거나 불가사의한 현상을 경험한다. 독서가 생활화되면 책은 삶과 밀착된다. 그것이 책의 기호학이다. 장서가 책의 총체라면 도서관은 인류의 지적 세계가 집적된 장서다. 도서관은 책의 무덤이 아니다. 건물과 수장고 이상을 함축한다. 고귀한 지적 세계를 여행하면서 무지를 몰아내고 망각된 세월과 기억을 복원하는 공간이다. 책과 공간을 매개로 공동체 사회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 디플레이션, 외환위기, 바이러스 팬데믹 등이 도래하면 안식처를 제공한다. 상업주의가 지식문화에 침투하여 공익성과 공평성이 훼손되면 지방공공재 역량을 배가시킨다. 지불능력에 따른 디지털 정보격차와 불평등이 심화되면 무료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정보공동체 기능을 강화한다. 이념과 정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에서도 중립적 자세를 고수한다. 정부와 권력이 국민의 알 권리와 지적 자유를 통제하면 강력하게 투쟁한다. 그리고 포용력과 응집력이 강한 커뮤니티를 창출하는 데 주력한다.

이처럼 지구촌의 지적 혁명과 대중화, 독서문화, 도서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다수 책은 서점이나 박물관이 아닌 도서관에 있다. 책에 담긴 기억과 문명을 간직한 도서관은 사상과 이념, 국적과 민족, 인종과 종교, 지위와 신분, 연령과 학력 등을 초월한 지식의 성전이고, 지성의 전당이며, 지혜의 보고다. 지식문화의 타임캡슐이자 지적 갈증을 해소하는 오아시스다. 민주주의 파수꾼이고 안식처다. 책이 예술적 걸작이고 순례객의 마중물이라면 도서관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고 행복지수를 높이는 민주주의 공간이다. 모두 시공간을 초월하는 책과 도서관의 기호학이다. 고대 파라오 신전에서는 영혼의 치유소로, 눈 먼 도서관장 보르헤스가 꿈꾸는 천국으로, 이민자ㆍ취약계층ㆍ노숙자를 위한 삶의 안식처로, 거세와 학살의 비블리오코스트(bibliocaust)를 인내한 불사조로 남아 있다. 해서 책과 도서관의 기호는 불멸(immortality)이다. 

이에 책과 도서관은 기호학 총체이자 지식문명 코드라는 입장에서 그 불멸의 기호를 10개장으로 구성ㆍ상재하였다. 

제1장(기록과 책의 진화)에서는 기억과 기록의 관계, 고대 기록매체 원형과 종이의 천년여행, 책의 변용과 진화를 추적하였다. 

제2장(책의 백미와 증언)은 신들의 유산과 지문인 점토판(길가메시 서사시, 최초 작가 엔헤두안나의 184행 서사시, 서명한 인물이 등장하는 쿠심 점토판, 천문학적 숫자가 각사된 니네베 정수)을 해체하였다. 파라오 축복과 비밀을 간직한 파피루스는 고대 멤피스 사카라 무덤에서 발굴한 아돈 파피루스, 길이 41m의 해리스 1세 파피루스, 사자의 서, 쿠푸왕 피라미드 작업일지, 신약성서 코덱스를 백미로 제시하였다. 신의 메시지와 은총인 양피지는 요한계시록 텍스트와 사해사본 등을, 목판본ㆍ활자본의 진수는 다라니경과 팔만대장경, 직지, 왕조실록을 해부하였다. 

제3장(고대 기록관과 도서관의 동행)은 양자가 정체성 및 기능적 측면에서 미분화 상태로 공존한 ‘한 지붕 두 가족’이었음을 제시하였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점토판 보존소, 프톨레미 왕조의 파피루스 보고, 그리스ㆍ로마의 왕실ㆍ제국도서관, 학당ㆍ개인도서관, 공중목욕탕ㆍ체육관 부설도서관의 당시 명칭을 탐구하였다. 

제4장(동양의 도서관 명칭과 쟁점)에서는 일본(고대 도서료와 예정, 중세 문고와 본옥, 메이지 시대 서적관과 집서원, 도서관 명칭의 등장과 쟁점), 중국(고대 왕조 관서고, 중세 사가장서루, 근대 장서루ㆍ장서원, 도서관 명칭의 출현과 쟁점), 한국(왕조별 명칭의 변천, 화제한어 도서관 명칭의 수용, 일본홍도회 부산포지회 도서실)을 논증하였다. 일본은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중국은 개혁사상가 양계초, 한국은 개화사상가 유길준을 서양 도서관 소개자로 지목하고 있으나 모두 오류다. 그리고 한국에 존재한 최초 명칭은 ‘홍도도서실’이고, 위치는 용두산 중심의 초량왜관 내 일본전관거류지 서관의 서산하정 9번지(현 광복동 3가)다. 

제5장(고전 필사본의 유랑과 귀환)은 고전 언어와 매체, 필사본 규모와 생존율, 그리스ㆍ로마 고전의 번역과 유랑, 레반트 성서의 번역과 유랑, 비잔티움 제국의 번역과 전파, 이슬람 제국의 중역과 확산,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 사냥과 전파 등을 집요하게 추적하였다. 그러나 시간적 유동, 지리적 유랑, 언어적 변용으로 인한 난제와 모순이 중첩된 아포리아다. 고대 그리스ㆍ로마의 원전으로 향하는 구심력과 중세 근동ㆍ레반트ㆍ서유럽에 전파된 번역본을 추적하는 원심력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제6장(인쇄혁명과 지식 대중화)은 마인츠와 구텐베르크 성서, 인쇄술 확산과 인쿠나불라, 지식 대중화와 무지의 해방, 책의 변종과 공공도서관 등장을 시계열적으로 다루었다. 

제7장(르네상스와 메디치가 후원)에서는 중세 암흑기, 피렌체 르네상스 및 역사도서관, 메디치가의 고전 수집과 도서관 후원, 피렌체 르네상스의 유산을 다루었다. 

제8장(비블리오코스트 진상과 메타포)은 서양, 중국, 한국에서 지식을 감금과 거세한 금서를 추적하였다. 비블리오코스트 역사와 요인을 제시하고 미스터리와 진상의 사례로 진시황의 분서갱유, 알렉산드리아도서관 파괴, 이슬람 바그다드 도서관 학살, 베를린 분서와 도서관 파괴, 조선총독부 한국사료 20만권 분서설을 추적하였다. 

제9장(문학과 영화 속의 오마주)은 시 속의 책(디킨슨의 도서관에서, 헤세의 독서에 대하여, 안정복의 제초서롱과 제저서롱, 김현승의 책), 소설이 품은 책과 도서관(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브레드버리의 화씨 451, 에코의 장미의 이름, 케르베이커의 책의 자서전, 최인훈의 화두, 올리언의 도서관 책), 영화가 소환한 책과 도서관(크레이머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 아메나바르의 아고라, 주삭의 책 도둑, 우광훈의 직지코드, 와이즈먼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을 분석하고 배후를 추적하였다. 그리고 문학과 영화 속에 잠복된 책과 도서관의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를 제시하였다. 

제10장(책과 도서관, 불멸의 기호)은 반달리즘의 망령과 통곡, 책의 운명과 귀환, 도서관의 숙명과 부활, 책과 도서관이 배태하는 불멸의 기호를 논증하였다. 책은 죽지 않았고 고전 필사본은 부활하였다. 

책은 이집트 여신 토트(Θωθ)의 화신이다. 먹과 잉크의 묵향(墨香), 물성적 서향(書香,) 독서 열기가 품어내는 독향(讀香), 도서관 서고에 집적된 지향(智香)은 지복(知福)을 추동한다. 책이 지식과 기록에 대한 역사적 증거라면 책이 집적된 도서관은 삶의 동반자인 동시에 지식문화의 종석이다. 책과 도서관, 그 불멸의 기호에 자작시 ‘책’으로 화답하였다.

 

윤희윤 대구대학교 문헌정보학과 명예교수

경북대학교 도서관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성균관대학교 문헌정보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구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한국도서관·정보학회 회장, 국립중앙도서관 자문위원회 위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도서관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문명과 매체, 그리고 도서관>, <공공도서관경영론>, <대학도서관경영론>, <공공도서관정론>, <도서관 지식문화사>, <정보자료분류론>, <장서관리론> 등 다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