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4일, 참교육의 함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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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4일, 참교육의 함성으로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 승인 2023.09.04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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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지난 7월 18일 서울 서초동 서이초등학교에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이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교사의 사십구재가 바로 오늘, 9월 4일에 있을 예정이다. 이에 전국의 초등, 중등 교사들이 오늘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선언하고 고인을 함께 추모하면서 공교육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로 뜻을 모았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만을 얻는 곳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배우는 곳이다. 학생들은 교사를 신뢰하고 따르면서 그 교사 개인뿐만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한다. 학부모들 또한 교사를 신뢰하고 교사가 학생들을 당당하고 책임감 있게 지도할 수 있도록 교사를 지지하고 독려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교육은 결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오늘날 교권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교사들이 목숨까지 스스로 내려놓으면서 학교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일들을 고발하는 일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도 결국은 교육 현장에서 ‘신뢰’와 ‘존중’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지난여름에 이 사건을 마주하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서이초등학교 앞 분향소를 찾았다. 그런데 학교 주변에 눈에 띄는 모습이 있었다. 바로 이 학교 인근의 신축 아파트 단지들에 어김없이 ‘외부인’을 차단하는 높은 담장과 철문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에는 이웃 주민들을 차단하는 시설이 없었지만 신축 아파트들 중에서는 담장과 철문이 없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에는 보통 공공 보행로가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넓은 땅을 차지한 아파트 단지이기 때문에 이웃 주민들도 편안하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공공 보행로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곳 주민들은 하나같이 자기 아파트 사람들끼리만 그 길을 독점하겠다며 빗장을 걸어 두고 있었다. 이렇게 공공 보행로마저 이웃 주민들이 못 지나다니게 막아 놓는 어른들, 자기 아파트 주민들만(이라고 써 놓았지만 결국은 자기 가족만)을 챙기고 이웃들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는 어른들을 부모로 둔 아이들이 과연 무엇을 배우고 자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 아이들이 이런 공간 속에서 과연 이웃을 신뢰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외부인들’이 아파트 주민들의 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과연 자녀에게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아파트에 사는 어린이들은 이웃 아파트 어린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뛰어놀기 힘들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어떤 집에 사느냐를 따지면서 친구들을 따돌리고 차별하는 일들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 또한 어린이들을 이렇게 어른들이 만든 담장 속에서 서로를 구분 지으며 살게 만든 탓이 아닐까 싶다.

담장을 쌓고 철문을 만든 아파트들 중 어느 한 곳의 주민들이 교사에게 이른바 ‘갑질’을 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안 그래도 한때 서이초등학교 부근의 어떤 아파트 주민이 별세한 교사에게 모진 언행을 했다는 뜬소문이 잠깐 나돌았다가 사실무근이라 밝혀진 바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첨언하자면 이 글은 이번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특정 지역 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곳 주민들과 이 사건을 아무런 근거 없이 함부로 관련 지으려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이 사건은 특정한 가해자에게만 책임을 묻고 말 일이 아니기에 아파트 담장 문제를 함께 이야기해 보려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 담장을 쌓는 것과 교사에게 부당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둘은 모두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말미암은 행동이기 때문에 분명한 상관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외부인’들이 자기 아파트에 들어와서 쓰레기를 버리는 등 경관을 어지럽히거나 주민들의 안전에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한다면서 이웃 주민들의 통행을 차단하는 행위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더러 보인다. 이러한 범법 행동은 물론 큰 문제이며 제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는 지역 주민들이 힘을 모아 지역 전체의 치안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금처럼 아파트 단지에만 담장을 두르는 미봉책은 불신을 더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교사를 신뢰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녀만을 챙기는 것과 지역 전체의 치안보다 자기 아파트만의 안위를 더 먼저 챙기는 것은 근본적인 면에서 서로 다를 바 없는 처사이다. 이에 경종을 울리고 바람직한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앞장서서 외쳐야 할 사람들은 결국 교육자들이다. 비록 지금 당장은 학부모의 언행에, 때로는 엄중한 질책이 필요한 일부 학생들의 되바라진 짓에 시달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당한 교육 행위와 집단 행동을 무조건 억압하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에게 억눌리는 것이 현실이라 할지라도 이럴 때일수록 우리 교육자들이 힘을 더 냈으면 한다. 대학 교원도, 중등 교원도, 초등 교원도, 유치원 교원도 모두 마찬가지다.

2023년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 참여하는 초중고 교사들의 굳센 의지에 지지를 보내면서 민중가요 <참교육의 함성으로>(차봉숙 작사, 주현신 작곡)의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 / 침묵의 교단을 딛고서 참교육 외치니 / 굴종의 삶을 떨쳐 기만의 산을 옮기고 / 너와 나의 눈물 뜻 모아 진실을 외친다.” 이 가사대로 반교육의 벽은 부수어야 하고 기만의 산은 옮겨야 한다. 반교육의 벽은 곧 불신의 벽이고 기만의 산은 교사를, 그리고 나아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권 회복, 공교육 강화는 교사가 신뢰와 존중을 되찾게 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지난여름에 세상을 떠난 서이초등학교 교사와 불과 며칠 전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신목초등학교 교사 등 교육 현장에서 부당한 일을 겪고 희생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빈다. 그리고 다시는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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