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주변부로 여겨지던 이중섭 편지화의 독립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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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주변부로 여겨지던 이중섭 편지화의 독립선언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9.0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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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 편지화: 바다 건너 띄운 꿈, 그가 이룩한 또 하나의 예술 | 최열 지음 | 혜화1117 | 320쪽

 

우리에게 이중섭은 천재 예술가인 동시에 한국전쟁, 난민, 가족과의 이별, 요절 등으로 요약되는 비극적 생애의 주인공이다. 1956년 9월 6일 세상을 떠난 이중섭은 오래 전부터 이미 신화였고, 역사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의 아내 한국명 이남덕, 일본명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그리운 이름이었다. 1945년 결혼한 뒤 전쟁과 가난으로 인한 생활고와 병마로 1952년 헤어진 두 사람이 부부로 함께 산 세월은 7년 남짓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중섭이 세상을 떠난 뒤 우리가 역사로 여겨온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야마모토 마사코는 홀로 남편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그런 그녀가 2022년 8월 13일, 세상을 떠났고 이로써 두 사람의 삶은 이제야 비로소 역사의 장으로 편입되었다.

39세의 나이로 요절한 이중섭의 슬프고 안타까운 생애는 천재 예술가의 비극적인 서사와 맞물려 그를 이른바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었으며, 그를 둘러싼 뜨거운 열풍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라는 수식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에 관한 대중적 인기를 견인한 것으로는 그의 편지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바다 건너 가족들에게 띄운 편지화는 정작 오랜 시간 예술의 대상이라기보다 그의 생애를 서술하는 도구 또는 주변부로 여겨지곤 했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이중섭이 편지봉투에 담아 일본의 가족들에게 보낸 숱한 편지들은 예술로서 전면에 서지 못한 채 때로는 그림인 듯 때로는 자료인 듯 편지의 정체를 감춘 채 대중 앞에 나서야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제대로 예술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한 이중섭의 편지화는 오랜 시간이 흐른 202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독립된 하나의 장르로 그 의미를 부여 받아 세상 앞에 서게 되었다.

이중섭의 편지를 독립 장르로 주목한 이는 2014년 이중섭에 관한 독보적인 한 권의 책, 『이중섭 평전』을 쓴 미술사학자 최열이다. 그는 그동안 대개 서사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이중섭의 편지화를 새로운 장르로 인식, 그것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의미와 가치를 밝혀 한 권의 책을 세상에 상재했다. 이로써 이중섭의 예술 세계에서 후순위로 치부되던 그의 편지들은 ‘편지화’라는 독립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중섭이 창안한 대표적 예술 장르인 은지화와 더불어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장르로서 그 독립을 선언했다. 

꽤 오랜 시간 편지화는 대중들에게 공개될 때마다 글씨 부분이 가려진 채 전시장에 등장하거나 전시를 전후하여 출간된 여러 도록에서 글씨 부분이 아예 지워져 수록되어왔다. 편지는 편지임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오로지 편지로만 여겨졌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편지가 아닌 그림이어야만 그 가치를 높게 매길 수 있고, 편지가 아닌 그림이어야만 학자들의 연구 대상으로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며,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의 의미를 전달할 때에야 비로소 이중섭을 둘러싼 슬픔과 그리움의 정서를 담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인식의 틀 안에 갇혀 있던 편지화를 새롭게 꺼내 보이기 위해 최열은 그동안 산발적으로 흩어져 공개되던 편지화를 다 모아 일별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가 바라본 편지화는 텍스트의 맥락을 보완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자체로 눈부신 성취였으며 이전에 없던 새로운 예술 세계의 장이었다.

그의 일별은 단지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지금껏 그림이거나 그림이 아닌 것으로 치부되던 편지화 51점을 모두 펼친 뒤 이를 크게 ‘그림편지’와 ‘삽화편지’로 나누어 그 성격을 분명히 했다. 나아가 그렇게 나뉜 편지화가 지금껏 어떻게 대중들 앞에 등장하고 공개되었는지의 역사를 살피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이중섭의 예술 세계를 어떻게 바라봐왔는지를 돌아보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가 이중섭의 편지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체로 일본어로 쓴 텍스트의 의미 전달에 치중하여 주목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독립 장르로 부름 받지 못했던 편지화는 이제 비로소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새로운 가치를 획득했다.

즉, 한 사람의 예술가가 구축한 예술의 세계라는 것이 그 사람의 생애 전반에서 분리하여 따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이고 보면 이중섭의 편지화 역시 결과적으로 한 시기에 집중된 것이기는 하나 그에 따른 서사와 맥락이 있게 마련이다. 저자 최열은 이를 위해 편지화의 기원을 좇아 시작점을 포착, 거기서부터 편지화의 역사를 되짚어낸다. 여기에 편지화의 전개 과정과 맞물려 그의 시기별 대표작들을 함께 배치하고 살핌으로써 이중섭이라는 예술가의 전 생애에 편지화가 차지하는 위상과 그 의미를 조망하게 한다. 이는 그동안 이중섭의 편지화를 개별적으로, 또는 텍스트에 한정하여 살피던 관성적인 감상에서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게 함으로써 익숙한 대상을 통해 새로운 면모를 발견케 하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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