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곡을 언제까지 ‘애국가’로 부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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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곡을 언제까지 ‘애국가’로 부를 것인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9.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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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의 오늘: 안익태 애국가와 트로트 | 이해영·김정희·신현국·박영금·강태구 지음 | 가갸날 | 205쪽

 

안익태 〈애국가〉는 표절곡인가? 그리고 안익태의 친일, 친나치 행각은 역사적 사실인가? 이 책의 대답은 분명코 그렇다이다. 우리 민족의 국가적 정체성이 반일 독립투쟁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음을 생각할 때 친일 작곡가의 곡을 국가를 대표하는 의식에 사용하는 것은 분명 코미디다. 게다가 그 곡이 외국곡을 거의 그대로 표절한 곡이라니 이건 국가적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한편 ‘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돌연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등장하였다. 트로트 바람을 타고 ‘한국 고유양식’론까지 대두하는 판이다. 하지만 그것이 포스트 민주화 시대, 그리고 팬데믹 시대의 ‘퇴행적’ 감수성이라는 점에서는 비판적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필연적으로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배와 ‘친일’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가닿기 때문이다.

이 책은 친일의 오늘을 상징하는 문화사적 사건으로 에키타이 안(안익태)의 〈애국가〉와 트로트 두 가지를 소환한다. 앞의 것이 과거의 친일을 상징하는 그렇지만 우리의 음악적 공생활을 강제하는 이벤트라면, 뒤의 것은 현재의 은폐된 친일의 대표 일상이다.

이해영은 국가상징으로서 안익태 〈애국가〉의 적격성을 역사정의의 관점에서 묻고 있다. ‘애국가’를 통해 ‘애국’이라는 기본가치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것을 만든 사람이 최소한 애국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정언명법이다. 하지만 안익태는 친일과 일제 동맹국 독일을 위한 친나치 부역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렇기에 ‘비애국적’ 애국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형용모순이다.

작곡가이자 한국음악학자인 김정희는 음악 분석을 통해 안익태 〈애국가〉의 표절성을 고발하고 있다. 〈애국가〉가 표절곡이라니, 그것도 다른 나라의 곡을 표절한 노래라니,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안익태 〈애국가〉는 불가리아 노래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의 표절곡이다. 선율형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총 16마디 중 12마디의 선율이 유사하고, 〈애국가〉의 출현음 총 57개 중 맥락과 음정이 일치하는 음은 모두 33개로, 일치도가 58%이다. 변주된 음까지 포함하면 그 개수는 41개, 유사도는 72%로 높아진다. 음악 분석을 통해 실증적으로 안익태 〈애국가〉 표절의 실상을 해부한 데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 있다.

박영금은 일본과 한국의 전통음악, 그리고 트로트의 음악 요소를 세밀히 비교함으로써 트로트의 음악적 뿌리가 일본 쇼와가요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누구라도 더 이상 트로트가 ‘한국 고유의 음악양식’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근대 음악사를 연구해온 강태구는 엔카로 통칭되는 일본 대중음악 탄생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엔카와 트로트가 어떻게 음악적 골격을 공유하게 되었는지를 살피고 있다. 결국 ‘음악의 근대화’라는 문화사적 맥락과, ‘식민 지배’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엔카, 즉 쇼와가요와 트로트는 필연적으로 그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현재 음악적 장르로서의 엔카와 트로트는 한일 양국의 문화풍토 속에서 각자 독자적으로 변용 발전해왔기에 하나의 장르로 묶어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트로트가 대중의 사랑을 받고 한국 대중음악의 한 갈래로 자리했다고 해서 그 음악적 뿌리가 바뀔 수는 없는 법이다. 올바른 일본문화 수용을 위해서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안익태 〈애국가〉와 트로트라는 두 개의 사건을 통해 친일의 오늘을 보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오늘의 친일을 정당화하고 강화시키는 문화적 토대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치론이 배제된 채 국가 의식과 학교행사 등에서 법정 국가(國歌)의 지위에 있지도 않거니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안익태 〈애국가〉 부르기가 강요되고 친일음악인의 노래가 울려 퍼지니 어찌 친일사상이 우리의 의식을 좀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해방 직후부터 안익태 〈애국가〉를 폐기하고 법적 지위를 갖는 새로운 국가를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꾸준히 제기되었던 것이다. 더 이상 ‘친일’이라는 말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를 살기 위해서도 제대로 된 ‘국가’를 제정해야 한다. 이 책은 그 같은 노력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國歌)만들기시민모임’이 일군 공동작업의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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