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조선을 뒤흔든 과학과 과학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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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조선을 뒤흔든 과학과 과학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찾아서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9.03 1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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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의 과학 탐사기 | 민태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316쪽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등 현대물리학을 태동시킨 이들이 인류 지식의 판을 새롭게 짜던 때 우리 과학자들 역시 폭넓은 국제적 행보를 보이며 당대와 흐름을 같이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공간, 시대의 아픔과 비극을 과학으로 극복하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바로 우리의 숨은 과학사로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과 예술, 문화가 어우러지며 역동적으로 꿈틀대던 조선을 남다른 시각으로 보여준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이 시기에는 현대물리학을 정립한 과학자들이 살아 있기까지 했다. 상대성이론을 비롯해 양자역학, 핵물리학 등 최신 과학은 어떻게 들어와서, 언제 알려졌고, 왜 대중에게 확산되고 소화되었을까? 그리고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누구였을까? 새로운 지식을 빨리 알고 싶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강연장으로 몰려들던 역사적 풍경을 저자는 다양한 사료로 정확하게 보여준다. 

20세기 초,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공간을 지나던 때는 인류의 지식 체계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현대물리학이 등장하며 과학자들이 치열한 논쟁을 벌이던 시점이었다. 막스 플랑크가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고, 퀴리가 방사능을 발견했으며,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으로 물리학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여기에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까지 가세하며 물리학의 황금기가 펼쳐진다.

사료를 꼼꼼히 살피던 저자는 의문을 가진다. 과학의 혁명이 이루어지던 이 시기 우리 조상들은 아인슈타인을 알았을까? 조선의 지식인은 양자역학을 공부했을까? 놀랍게도 1920년,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기 전부터 조선에서는 이미 상대성이론이 화제가 되었고 대중을 위한 해설 강연이 신문에 연재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는 해외 소식을 통해 과학이 세상을 움직이는 영향력을 가졌다는 데 주목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상대성이론을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조선인에게 과학은 곧 자립이었다.

당시의 무수히 많은 신문에서, 잡지에서, 소설에서, 시에서, 그림에서 과학의 흔적을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기록을 제대로 살펴본 적 없었을까. 그 답을 찾다 보면 상처로 얼룩진 근현대사가 드러난다. 일제강점기, 좌우 분열, 남북 분단, 그 안에서 수많은 과학자가 선택을 강요받았으며 이념이 얽히며 한 명 한 명 기억에서 사라졌다. 이제는 우리의 과학 기반을 다시 알아갈 때다. 저자는 식민지, 전쟁의 폐허에서 이루어낸 지금의 발전을 제대로 평가하고 과거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어두운 시대를 건너온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자 한다.

 

조선의 주요 일간지와 잡지는 연이어 새로운 과학의 탄생을 지면에 올렸다. 또한 1919년 2·8 독립선언을 이끌었던 조선유학생학우회는 여름이면 전국을 돌며 상대성이론의 순회강연을 했고 청중의 열기는 대단했다. 결국 이 학생들은 경찰과 충돌하면서까지 일정을 강행했고 과학 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처럼 조선의 과학 공부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상대성이론 해설을 7편의 시리즈로 연재하며 이목을 집중시킨 나경석, 독일 과학 아카데미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나고 와 그 생생한 현장을 우리나라에 전한 황진남, 2022년 노벨상 주제인 EPR 역설을 소개한 1935년의 과학자들, 국내 최초 이학박사인 천문학자 이원철, 야구 스타이자 물리학박사 최규남, 다윈의 ‘종의 기원’을 뒤집은 우장춘, 남대문시장에서 주운 미국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국제 무대에 선 수학자 이임학, 국내 첫 노벨상 후보인 양자화학자 이태규… 공식을 필기하던 강의실의 청중부터 과학자, 과학 커뮤니케이터까지 다양한 인물이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공식을 둘러싼 조선의 뜨거운 과학사가 펼쳐진다.

우리 선조들은 결코 무기력하지 않았다. 당시 세계적 논쟁거리였던 상대성이론을 소개한 선구자를 필두로, 시대의 아픔과 비극을 과학 공부로 이겨내려 했다. 과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다시는 뒤처지지 않겠다고 다짐한 현실 극복의 역사를 읽는다. 이 책은 한국 근대사가 절망으로 점철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향한 동력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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