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학살은 가짜 뉴스의 폭발이었다!”
상태바
“관동대지진 학살은 가짜 뉴스의 폭발이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9.03 18: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 램지어 교수의 논거를 검증한다 | 와타나베 노부유키 지음 | 이규수 옮김 | 삼인 | 288쪽

 

2023년 9월 1일은 관동대지진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일본 사회에는 여전히 “학살이 없었다”고 주장하거나, “살해당한 조선인은 있었지만, 그들은 범죄자이기 때문에 일본인의 자위 행동이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학살 부정론은 일본 국내에서 도쿄도지사가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는 것을 취소하는 사태뿐 아니라 램지어 교수의 논문처럼 해외에까지 그 무대를 넓히고 있는 형국이다. 

하버드대학 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2019에 발표한 논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경찰 민영화: 일본의 경찰, 조선인 학살 그리고 민간 경비 회사」란 제목의 논문은, ‘관동대지진’의 혼란에서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 자경단은 기능부전의 사회가 만들어낸 경찰 민영화의 한 사례라고 주장하며 이는 정당한 방위 행위였다고 강변한 것이다. 

램지어 교수는 논문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방화를 저지르고 우물에 독을 뿌렸다는 유언비어를 사실인 것처럼 강조한다. 그는 “중요한 것은 학살 여부가 아니라 조선인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범죄를 저질렀고, 실제 자경단이 죽인 조선인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로 그는 당시에 보도된 신문 기사들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 와타나베는 램지어 교수 논문에 등장하는 신문 기사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그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는 주로 신문 기사가 오보임을 증명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오보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살피고 추적하는 것이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당시, 도쿄와 연결되는 통신 시설은 모두 끊긴 상황이었다. 신문 기자들은 긴박한 상황에서 본연의 임무를 다해, 하나의 기사라도 더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보를 모았다. 그러한 기록은 와타나베가 제시한 여러 신문사의 사사(社史)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리의 피난민에게 들은 풍설이나 철도 통신망을 통해 얻은 정보, 그리고 군의 전문(電文) 등이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마구 호외로 발행된 것이었다. 그러한 ‘가짜 뉴스’는 시민들에게 유언비어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다.

가짜 뉴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공공연한 장소에서 벌어진 조선인 학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저자 와타나베는 이렇게 말한다. “조선인 학살을 정당화하려면 ‘유언비어가 실재한 것’으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이 모순된 상황을 다소나마 꿰맞추기 위해 ‘없던 일을 있었던 것’으로 하고, ‘있었던 일을 없었던 것’으로 조율했다. 정부는 거짓 발표를 한 것이다. 권력이 의도적으로 유포한 가짜 뉴스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지진 직후의 ‘유언비어를 보도한 오보’와는 다른 형태의 혼란이라 볼 수 있는, ‘정부의 발표를 보도한 오보’가 이렇게 방대하게 생겨난 것이다.”

조선인 학살은 공공연한 장소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왜 이런 학살이 일어났을까? 일본인은 유언비어의 어떤 부분이 두려웠던 것일까? 이 책의 저자 와타나베는 그 원인에 대해 몇 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우선 당시 ‘불령선인’이라 불리던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이다. 많은 신문이 조선인 범죄에 대해 의심하는 기색도 없이 보도했으며, 특히 《가호쿠신보》(9월 4일 자) 1면 칼럼에는 유언비어로 나도는 조선인 범죄에 대해 “그들의 평소 행동을 보면 있을 법한 일이다”라고까지 표현한다. 이에 대해 와타나베는 “사람들이 믿는 유언비어의 중심에 있던 것은 조선인이 집단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에 싸움을 걸어온다는 구도였다. ‘불령’이란 ‘불평을 품고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식민지 조선인이 일본에 대해 불평을 품고 있다는 인식이 공유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 하나는 재향군인이란 귀환병들의 존재다. 일본군은 동학농민군과의 싸움을 비롯해 1910년 한국병합을 전후해 만 단위 수의 조선인을 죽였다. 이후에도 3.1운동과,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는 ‘불령선인’과 ‘조선인 빨치산’을 상대로 싸웠다. 그런 조선 전선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재향군인이 되었고 자경단을 조직한 것이었다. 와타나베는 이렇게 말한다. “쌀 소동에 대한 반성으로 경찰이 자경단을 발족했을 때, 그 중심에 재향군인이 편입되어 들어갔다. 거기에 지진 재해가 발생해 유언비어가 흘러 들어갔다. 그 내용에는 조선 전선에서의 체험을 떠올리게 하는 현장감이 있었다. 어떻게든 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무기를 찾고, 망설임 없이 조선인을 죽인 게 아니었을까?”

관동대지진의 진실이 잊혀가고 왜곡되는 상황에서, 이 책의 역자인 역사학자 이규수는 이렇게 말한다. “100년 전의 관동대지진을 기억하는 일은 ‘조선인이 학살당했다’는 피해만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본 군대와 경찰, 자경단의 야만을 새삼스럽게 폭로하려는 의도도 아니다. 이른바 반일 감정에 바탕을 둔 과도한 민족주의에 동조하기 위한 것 또한 아니다. 한일 양국이 역사적 진실을 공유하고 부조리한 과거를 거울 삼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역사학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