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올한 이정표, 혹은 정처 없는 부표, 이어령의 비평을 좇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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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올한 이정표, 혹은 정처 없는 부표, 이어령의 비평을 좇아서
  • 홍래성 서울시립대·국문학
  • 승인 2023.09.0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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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말하다_ 『이어령, 우리 시대 비평의 이정표』 (홍래성 지음, 파람북, 684쪽, 2023.07)

 

이 책은 겉표지에 다음과 같은 카피가 새겨져 있습니다. “문학비평에서 문화비평에 이르는 방대한 비평 세계를 가름하고 분석한 이어령 연구의 시금석” 출판사에서 임의로 만들어 붙인 문구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한 번씩 눈에 띌 때마다 부끄러운 심정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특히 “시금석”이란 단어는 어떻게든 뺐어야 했다는 후회가 듭니다. 이 책이 이어령 연구에 있어서 기준 잣대로 삼아지기에는 한참 모자란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다만 “문학비평에서 문화비평에 이르는 방대한 비평 세계를 가름하고 분석한”이란 구절마저 마냥 수사(修辭)이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이어령의 비평을 문학비평과 문화비평으로 나누어 꼼꼼히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이어령의 비평이 워낙 광범위한 탓에 아직은 채워야 할 부분이 많으나, 그래도 전체적인 얼개가 어떠한지를 그려볼 수 있는 정도는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자평(自評)해봅니다.

이어령은 참으로 희귀한 인물입니다. 그 자신 이름을 세상에 분명히 알린 1950년대 초·중반부터 뭇사람의 안타까움 속에서 세상을 떠난 2022년까지 이어령은 근 7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늘 세간으로부터 주목받으며 단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활발하게 활동을 펼쳤습니다. 심지어 작고한 이후에도 여러 출판사에서 다수의 유고가 발간되었으며 발간되고 있습니다. 문학사를 통틀어 보아도 이렇게나 왕성한 생명력을 내보인 경우란 이어령 외에는 좀체 찾아지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쉽사리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에 비겨 이어령이 시간의 시련을 유독 잘 견뎌낼 수 있었던 원인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이와 같은 물음을 해결해보고자 제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가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령은 장르를 기준으로 접근할 때조차 비평, 소설, 시, 희곡 등 손대지 않은 것이 없는 면모를 보여줍니다. 다만 그중에서도 본령을 찾아보라는 문제와 마주한다면 아무래도 비평이라는 답안을 제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이 이어령의 비평을 중심으로 논의를 펼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크게 보아 이어령의 비평은 1960년대를 기점으로 성격이 구분됩니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이르는 사이에는 문학비평이 폭발적으로 생산되었습니다. 1960년대로 접어든 이후에는 문화비평이 본격적으로 생산되었습니다. 문학비평으로는 이상(李箱)을 조리 있게 분석해낸 일련의 글을 비롯하여, 새로운 세대에 의한 새로운 문학을 선언하는 글, 문단 내의 기성들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배태된 글, 새로운 문학(담)론을 모색하는 글, 비평 방법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시도한 글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문화비평으로는 당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위시하여, 그밖에도 유명하기 그지없는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생명이 자본이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방금 적은 모두를 망라해서 다루어보았습니다. 대상이 여럿이니만큼 짜임새 있는 분석을 위해 무척 고심했습니다만, 그 각각이 어떠한지를 지금의 자리에서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주안점을 어디에다가 두었는지만 밝혀두면 충분할 성싶습니다. 이어령의 비평은 화려한 수사로만 구축되었으므로 깊이가 부족하다고 흔히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르게 이어령의 비평은 주제와 목적 그리고 독자에 따라 상당히 다채로운 양상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이러한 사실을 오롯이 드러내 보이려는 의도에 따라 전반적인 서술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쯤에서 이 책이 지닌 한계도 솔직하게 밝혀두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우선 이 책은 아쉽게도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부 이어령의 문학비평’은 박사학위논문을 가져온 것이고, ‘2부 이어령의 문화비평’은 학술논문 네 편을 모은 것입니다. 애초에는 기발표된 원고들을 덧대고 엮어서 기승전결을 갖춘 한 편의 글로 재탄생시키기를 염두에 두었습니다만, 역량의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기발표된 원고들을 가급적 연대기적 순서에 맞게끔 배치하는 수준으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이 책은 아쉽게도 이어령의 비평을 성실히 읽고자 했으되, 좀 더 비판적으로 다가가지 못한 채 그저 패러프레이즈(Paraphrase)하고 만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이와 연동되는 차원에서 이어령의 비평이 지닌 문학사적 위치에 관한 고민도 다소간 불충분하다는 느낌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형식과 내용 전부를 대폭 수정, 보완하여 지금보다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

끝으로 이 책에는 소박하게나마 ‘부록’이 붙어있습니다. 이어령이 대학 시절에 쓴 습작 다섯 편을 소개한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구태여 실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놓고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어령의 초기작과 관련한 서지사항이 아직 제대로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임을 참작할 때(가령 「幻想曲 ―背反과 犯罪―」를 이어령이 쓴 최초의 소설이라고 간주한다거나 「「마호가니」의 季節」이 게재되어있는 ≪예술집단≫ 2집은 실물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하는 등의 오류를 들 수 있습니다), 비록 소수일지언정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강인숙 선생님께 허락을 구하여 최종적으로 수록하고자 결정했습니다.

아무쪼록 이 책이 이어령의 비평을 한번 탐사해보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한 줌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홍래성 서울시립대·국문학

서울시립대학교 의사소통교실 객원교수. 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同)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영남대학교, 한남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이어령을 비롯한 전후세대 비평가들에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이를 기반 삼아 1950년대 비평 담론이 지닌 성격과 특징을 새로이 밝히는 데까지로 나아가고자 노력 중이다. 최근에는 공부의 폭을 넓히고자 리터러시, 생태주의 등의 주제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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