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에 비상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상태바
진보에 비상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 하홍규 숙명여대·사회학
  • 승인 2023.09.03 12: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옮긴이 에필로그_ 『하이테크 러다이즘: 디지털 시대의 기계 혐오』 (개빈 뮬러 지음, 하홍규 옮김, 한울엠플러스, 208쪽, 2023.07)

 

지난 3월 말 전기자동차 테슬라(Tesla)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등 첨단 기술 기업 최고경영자와 연구자들 1,000여 명이 인공지능(AI)이 초래할 위험성을 지적하며 개발을 한시적으로 중단하라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 사실을 보도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이들은 인공지능 개발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우리는 기계들이 선전과 거짓으로 우리의 정보 창구들을 홍수로 만들게 할 것인가, 모든 일자리를 자동화할 것인가,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능가하고, 우리보다도 똑똑하고, 우리를 쓸모없게 만들고 대체할 수도 있는 비인간적 지능을 개발할 것인지, 우리 문명의 통제를 상실할 위험을 초래할 것이지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야만 한다”(<한겨레신문> 2023.3.30.)고 호소했다고 한다. 기술 발전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오히려 디스토피아를 창조해낸 우울한 미래에 대한 염려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문학, 영화 등에서 재현되어 왔었다. 그러니까 기술 발전과 디스토피아의 아이러니컬한 조합에 대한 염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 소견으로는 이러한 염려들 때문에 인공지능 개발 회사들이 기술 발전의 속도를 늦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에 의한 디지털 자동화는 엄청난 생산성의 향상을 이루어내고 있다. 생산성이 엄청나게 향상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이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의 완벽한 통제를 통해 이루어질 완전 자동화는 인류를 힘든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노동자의 착취 없이 재화와 서비스가 제공되는 윤택한 삶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카를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말했던 바대로, “사냥꾼, 어부, 양치기 혹은 비판가가 되지 않고서도 내가 마음먹은 대로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저것을, 곧 아침에는 사냥을, 오후에는 낚시를, 저녁에는 목축을, 밤에는 비판을 할 수 있게” 되는 삶이 정말로 실현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What a life!! 

                                       원서와 저자 개빈 뮬러

과연 그러할까? 이 지구상에 폭발적으로 성장해 온 인구가 기술 발전이 병행되지 않았다면 생존할 수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 발전이, 오늘날에는 디지털 자동화가 모든 사람에게 풍요와 여가의 수단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특히 디지털 자동화가 가져온 노동 현실을 보면 발전된 기술이 노동자들의 짐을 덜어주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해방의 결과를 낳지 못하고 있다. 자동화된 기술이 인간 노동자들의 삶을 ‘자동적으로’ 향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디지털 자동화로 표상되는 자본의 기술적 구성 변화는 “안정적인 일자리의 침식, 노동 과제를 확산하기 위한 디지털 기술의 사용, 불안정한 주문형 경제의 도입, 테일러주의의 재발명, 테크 기업의 거대한 재정적·이념적 권력 등”과 같은 새로운 도전을 실천 계급으로 구성되어야 할 노동자들에게 부과하고 있다. 

개빈 뮬러의 『하이테크 러다이즘』은 기계를 파괴했던 러다이트들(Luddites)이 기계 파괴 자체를 목적으로 했던 것이 아니라 기계가 생산 현장에 도입됨으로 인해 절망적인 결과를 낳은 노동의 기술적 재조직화에 저항한 운동이었다는 데 주목한다. 그리고 오늘날 발전된 자동화 기술이 생산 현장에 들어왔을 때 벌어지는 저항적 실천도 그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하여 붙여진 이름이 ‘하이테크 러다이즘’이다. 이 책의 원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작업장에서 사물들(기계들) 부수기: 당신이 당신의 일을 증오하는 이유에 대해서 러다이트가 옳다(Breaking Things At Work: The Luddites Are Right About Why You Hate Your Job)’이다. 책의 의도를 잘 드러낸 좋은 제목이나,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대로 번역하기보다는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인 ‘하이테크 러다이즘’을 번역서의 제목으로 택했다.

뮬러는 기술 발전이 현재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난관들을 극복할 것이라는 ‘가속주의’ 정치에 대항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과거 투쟁의 역사로 눈을 돌려서 과거 운동으로부터 목소리를 회복하여 현재 목소리를 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고자 한다. 저자가 회복하고자 한 과거 운동의 목소리는 바로 러다이트들의 목소리이다. 러다이즘은 단지 기계를 혐오하여 기계를 파괴했던 시대착오적이고 비합리적인 기계공포증의 발현이 아니었다. 러다이트들의 운동은 기계를 부수기 위해 기계를 부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기계를 내세워 노동 현장을 통제하고 노동자 공동체와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한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었다. 저자의 관찰대로,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서 러다이트가 되었었다.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기술은 노동자들의 해방을 위한 도구가 되기보다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해로운 역할을 해왔을 뿐이다. 기술 발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부의 혜택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권력자들에게만 돌아가고 있다. 뮬러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을 중립적으로 다루기보다 기술이 위계와 부정의의 재생산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특히 자본주의 생산 양식 내에서의 기술이 어떻게 그러한 역할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상황 판단에 근거하여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바로 ‘감속주의 정치’이다. 감속주의 정치는 단지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낭만적 정치를 뜻하지 않는다. 감속주의 정치는 저자 자신의 말로 “변화를 늦추고, 기술적 진보를 약화시키고, 자본의 탐욕을 제한하고, 반면에 조직을 발전시키고 호전성을 배양하는 정치”이다. 

이러한 정치적 실천이 필요한 이유는 기술을 현재의 속도로 발전하는 그대로 놓아두면, 그것이 평등주의적인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권위주의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는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기(empowering) 위한 것이며, 우리 모두가 기술, 진보, 그리고 노동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재고하기를 요청한다. 이 소중한 책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하면서 옮긴이로서 한 가지 바램을 표현하자면, 저자는 결론에서 러다이트 정치는 테크 산업의 경계를 넘어 환경 운동, 탈성장 정치, 보존지향적인 유지 운동(“수리할 권리 운동”) 등과 공명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 부분의 논의가 좀 더 발전되었으면 좋겠다. 이 주제는 어쩌면 이 책 이후에 더 깊이 다루어져야 할 중요성을 갖고 있다. 


하홍규 숙명여대·사회학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 HK 연구교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보스턴 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이론과 종교사회학이 주 전공 분야이며, 현재 문화사회학, 감정사회학을 바탕으로 혐오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피터 버거』, 『감정의 세계, 정치』(공저), 『공간에 대한 사회인문학적 이해』(공저), 『현대사회학 이론: 패러다임적 구도와 전환』(공저) 등이, 역서로는 『혐오의 해부』, 『사회과학의 방법론: 사회적 설명의 다양성』, 『종교와 테러리즘』, 『모바일 장의 발자취』, 『실재의 사회적 구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