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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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 어강석 충북대·한국한문학
  • 승인 2023.09.03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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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시로 읽는 목은 이색』 (어강석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 136쪽, 2023.07)

 

 

白雪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온 梅花는 어느 곳에 픠었는고
夕陽에 
홀로 셔 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목은 이색이 지은 단가(短歌)이다. 내우외환이 가득한 고려를 구할 젊은 인재는 찾을 길이 없고, 석양처럼 기울어가는 고려의 국운을 바라보며 갖는 깊은 고민을 참으로 처연하게 표현하고 있다.

목은은 역사적으로 혼란이 극심하였던 고려말(1328년)에 태어나 조선초(1396년)까지 살았던 인물이다. 우리에게 고려말 포은 정몽주와 도은 이숭인과 함께 삼은(三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목은의 집안은 문벌귀족 중심 사회였던 고려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충청도 한산지역에 근간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목은의 조부였던 이자성으로부터 터전을 닦아 부친인 가정 이곡이 초석을 놓고 목은에 이르러 완성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목은은 타고난 남다른 자질의 바탕 위에 끊임없는 노력을 더하여 당시 국내외를 막론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의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은 커져만 갔다. 원과 명이 교체하는 시기에 약소국 고려가 취해야 할 외교적 방향, 혼란이 깊어지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를 바로잡고 학문을 진흥하여 미래를 대비하는 것 등 작지 않은 일들이 모두 목은의 몫이었다. 

그 사이에서 누구보다 고민하며 ‘반가운 매화’가 피어나길 고대하였지만, 결국 고려의 멸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조선 건국 후 ‘운명이거늘 무엇을 한탄하랴? 나는 이제 자유롭게 되었도다’라고 읊은 것에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책임감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목은은 69세까지 살면서 6,000수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한시를 남겼다. 그러나 그의 문집인 『목은시고』에는 34세부터 48세까지의 시가 전혀 남아있지 않음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어느 문인들보다 뒤지지 않는다. 이처럼 많은 시를 짓기 위해서는 매일 꾸준하게 창작활동을 해야 하는데, 『목은시고』를 보면 대체로 하루 평균 5수 정도의 시를 창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창작된 시들은 날짜에 따라 그날그날 발생한 특별한 일을 기록하는 일기의 성격으로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서술하고 있다. 

목은의 시에는 고려말의 역사가 오롯하게 담겨있다. 당나라의 대표 시인인 두보(杜甫)의 시를 후세에서 시로 표현된 역사라는 뜻으로 ‘시사(詩史)’라고 평가하고 있는데, 목은의 시도 여말선초의 혼란한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원 간섭기 고려의 신흥사대부들이 권문세족들에 의해 장악된 중앙정계에 진출하기 위한 힘겨운 싸움, 고려에서 정치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선택한 원나라 과거(科擧)의 도전, 공민왕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원나라와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던진 정치적 승부수, 원과 명의 교체기라는 역사적 갈림길에서 고려의 미래를 결정질 수 있는 중요한 선택, 더 나아가 고려를 지킬 것인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 등 목은은 여말선초의 역사 상황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 순간순간 현명한 판단을 해야 했고, 그의 선택은 곧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목은은 항상 살얼음판을 걷듯이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 

목은의 시에는 이러한 여말선초의 혼란기를 살았던 그의 삶의 자취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가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서 기록한 목은의 행적에 대하여 조선 후기 산림(山林)으로 우뚝하였던 우암 송시열과 한말 위정척사운동을 주도하였던 면암 최익현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옛말에 이르기를, “백이(伯夷)ㆍ숙제(叔齊)가 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 죽었다 하더라도 문왕ㆍ무왕이 그것 때문에 왕 되기에 부족한 것이 없다” 하였으니, 비록 선생이 고사리를 캐 먹고 살다 말라 죽었다 하더라도 어찌 우리 태조에게 병 될 것이 있기에, 사필(史筆)을 잡은 자나 명(銘)과 장(狀)을 짓는 자들이 도리어 주저하고 거짓으로 꾸며 마치 말하지 못할 것을 말하는 것처럼 하였는가.
(宋時烈, 『宋子大全』 卷171, 「牧隱碑陰記」)

  목은 이 선생이 고려 말기에 포은 선생과 정주학을 제창하여 유학의 풍도를 진작하고 풍속을 변화시켰으며 강상(綱常)을 부식하고 예의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우리 왕조의 문운(文運)을 열어놓았으니 아, 하늘이 선생을 동방에 태어나도록 한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다만 왕조가 바뀌는 시기를 만났기 때문에, 곧은 충정과 큰 절개가 당시에 숨김을 당하여, 유고(遺稿)를 불사르고 지석(誌石)을 부수는 일과 사실을 개조하고 허위를 날조한 사서(史書)들이 서로 선생을 은폐시키고 비방하였다. 그러므로 비명(碑銘)이나 행장을 기술하는 데도 역시 올바르게 기록하지 않고 애매하고 잘못된 것이 구름에 덮이고 안개가 낀 정도가 아니었다.
(崔益鉉, 『勉菴集』 卷24, 「牧隱事實編跋」)

조선에 들어 역사적 유불리에 의해 가려지고 왜곡된 목은의 행적은 물론 그가 힘겹게 살았던 여말선초의 올바른 역사 사실을 살펴볼 자료는 현재 목은의 시문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일부의 유고가 불타 없어지고 사서에서 거짓으로 꾸며 기록된 것이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남겨진 목은의 시문에 담겨있는 깊은 역사적 탄식은 가릴 수 없다.

『시로 읽는 목은 이색』은 목은이 남긴 시를 통해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환경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극복해 이룬 목은의 성취를 밝히고, 더 나아가서는 여말선초의 시대와 맞서 싸웠던 그의 행적을 통해 희미해진 그 시대의 아픔을 되새겨 보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뜻을 세우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그 가운데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행복해 하는 모습은 바쁜 일상생활에 지친 우리들에게 삶의 여유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도 항상 스스로 독려하며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모습,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주저 없이 뛰어드는 과감함은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위인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두려운 마음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보이는 탄식에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진솔함이 시공간을 넘어 지금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울림으로 전해진다.


어강석 충북대·한국한문학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목은 이색의 삶과 문학』(2007), 『고려시대 외교문서와 사행시문』(공저, 2020), 『고전문학으로 충북을 읽다』(공저, 2021), 『고암일기』(공역, 2021)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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