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정치사상과 정치철학: 개인성과 관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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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정치사상과 정치철학: 개인성과 관계성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9.0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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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12강_ 곽준혁 중국 중산대 교수의 「유교 정치사상과 정치철학: 개인성과 관계성」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관련 현안을 짚어보는 두 번째 섹션 ‘오늘의 동아시아’ 제12강 곽준혁 교수(중국 중산대 철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유교 정치사상과 정치철학: 개인성과 관계성


곽준혁 교수는 먼저 근래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통으로의 회귀, ‘유교 정치사상으로 돌아가기’에 내재하는 정치철학적 고민들”이 교차 문화적 맥락(cross-cultural context)에서 보면 무엇인지, 즉 현재 중국의 지식인들이 “왜 유교 정치사상으로 돌아가려고 하는지, 돌아가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찾았는지, 그래서 이러한 전통 사상으로의 ‘회귀’가 정치철학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에 이어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를 통해 “중국 지식인들과 중국학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정치철학적 해답들이 갖는 장단점을 ‘중국의 재건’이라는 관점”을 탈피하여 검토해본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중국 지식인들의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가 2차 대전 전후 서양 정치철학자들의 ‘근대 이전 정치사상’으로의 회귀와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그리고 “서구 정치철학자들의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에서 그들에 의해 재조명된 “유교 정치사상의 ‘개인성’과 ‘관계성’의 문제”가 어떤 의의를 갖는지 들여다본다. 이 같은 정치철학적 접근을 통하여 결국 “‘근대성’에 대한 정치철학적 성찰들”과 함께 “중국의 경제적 성공에 기초한 전통으로의 ‘회귀’가 갖는 문제점”을 되짚어보고, “동시에 서양 정치사상이 당면한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혜안을 유교 정치사상에서” 찾아보는 시도와 더불어 “유교 정치사상에 기초한 정치 제도적 구상들이 갖는 한계”도 함께 이야기한다. 

 

지난 8월 12일, 곽준혁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12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프롤로그: 정치철학적 접근의 필요성

저는 중국 지식인들의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를 ‘지역적 맥락(regional context)’으로부터 ‘교차 문화적 맥락(cross-cultural context)’으로 끌어올려 정치철학적 차원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정치철학적 접근을 통해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를 살펴보면, ‘근대성’에 대한 정치철학적 성찰들을 다시 검토할 수 있고, 중국의 경제적 성공에 기초한 전통으로의 ‘회귀’가 갖는 문제점도 되짚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서양 정치사상이 당면한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혜안을 유교 정치사상에서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교 정치사상에 기초한 정치 제도적 구상들이 갖는 한계도 함께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Return)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는 크게 세 가지 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첫째, 중국의 경제 발전이 가져다준 정치사회적ㆍ문화적 자신감입니다. 둘째, 자유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근대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불신입니다. 셋째, 유교 정치사상을 특정 시대의 역사적 산물이나 특정 지역의 문화적 유산으로 이해하기보다, ‘영구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는 인류 보편의 정치철학적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는 자각입니다. 

사실 개념사적 접근 또는 지식사적 접근을 통해 중국의 고전을 연구해야 한다는 입장이 중국 사상 연구에서 아직도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최근 ‘영구적이고 보편적’인 철학적 질문에 대한 중국 사상의 고유한 해답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시각에서 볼 때, 유교 정치사상은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상상과 경험을 통해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지혜와 안목의 보고인 것입니다.

2) ‘돌아가기’에 내재하는 문제점

첫 번째 자각과 관련해서는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가 중국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든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고, 중국의 지난 70년 동안의 성공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은 경계의 대상이라고 지적하고자 합니다. 중국이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이 유교 정치사상에 대한 지구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요인들 중 하나인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중국의 초강대국으로의 부상 그 자체가 유교 정치사상이 보편적 가치로 발돋움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은 결코 아닙니다. 첫 번째 자각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두 번째 자각에서 비롯된 정치철학적 질문들이 경제 발전 이후의 지속적 성장과 물질적 풍요에 대한 열망으로 오해받고, 세 번째 자각도 결국 옛날에는 ‘우리 전통 속에도 그런 가치들이 있다’고 말하던 태도로부터 ‘그런 가치들보다 우리 것을 배워라’고 말하는 오만한 태도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3. 개인성(Individuality)과 관계성(Relationality)

자유주의가 곧 개인의 권리로 이해되는 지금, ‘개인성’의 발현을 위해서라도 ‘관계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요구하는 ‘유교 정치사상’만의 독특한 견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서구 사회의 문제로부터 시작해 유교 정치사상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들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노력들은 중국 지식인들이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법이 요구됩니다. 첫째, 중국 지식인들의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가 중국인들의 축적된 경험과 사유의 총체인 ‘전통’과 자기를 일체화시키는 작업이 요구된다면, 서구 사회의 지식인들이 유교 정치사상으로부터 지혜를 얻고자 하는 ‘회귀’는 자기 문화 중심적 사고를 넘어 문화적 비교를 통한 보편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요구됩니다. 둘째, 동아시아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서양에 의해 강압적으로 부여된 근대화의 과정이 초래한 결과로 단순화하는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전면적인 ‘근대성’의 부정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원자화된 개인의 문제는 비단 서구 사회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구적 모델을 직간접적으로 이식해서 경제 발전을 이룩한 동아시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구 사회의 문제로부터 출발해 유교 정치사상에서 보다 나은 생각을 찾으려는 노력으로부터, 우리는 중국 지식인들의 유교 전통으로의 회귀를 통해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재고할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4. 에필로그: 비지배적 관계성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유교 정치사상’은 한편으로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펴봐야 할 사고와 실천의 종합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적 맥락 속에서 살펴봐야 할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는 ‘지혜’의 보고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교 정치사상이 가르쳐줄 수 있는 보편적 지혜의 타당성과 적실성을 되짚어보았습니다. 물론 중국 중심의 ‘천하 질서’ 논쟁에 꿈틀거리는 중화 민족주의, 자유주의의 대안으로 논의되는 중국식 ‘현능주의’가 갖는 반(反)민주주의적 편견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유교 정치사상이 갖는 보편성에 대한 교차 문화적ㆍ비교 정치철학적 접근입니다. 즉 유교 정치사상이 더이상 중국인들만의 고유한 문화적 유산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항구적 문제를 고민한 보편적 사유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비교 정치철학적 관점을 통해 유교 정치사상이 갖는 장단점을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두 가지 측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첫째, 그 어떤 정치 이념도 완벽한 사회의 재건을 약속할 수 없고, 동일한 맥락에서 유교 정치사상도 완전히 이상적인 사회의 건설을 약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유교 정치사상이 지금의 자유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의 문제점들을 해결 또는 보완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유교 정치사상이 지배적인 정치 이념이 되어야 한다거나 자유주의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보는 태도는 신중하지도 적절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유교 정치사상의 이상이 실현된 역사적 사례가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이상보다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 운영에서 초래된 현재의 문제만 지적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한 고민은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가 주장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대 희랍의 정치철학자들도 민주주의에서 자유의 과잉이 가져오는 문제를 고민했고, 로마 공화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공화주의의 오랜 역사에서 보듯 ‘타인의 자의적 권력에 종속되지 않을’ 시민의 권리를 확립하는 것은 근대 자유주의 이전에도 매우 중요한 정치철학적 과제였습니다. 단지 근대 자유주의가 성립된 이후에 정치철학적 화두가 ‘자유’의 문제에서 ‘자유주의’의 위기로 전환되었을 뿐입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적인 경제 공황이 있었을 때, 자유주의는 파시즘과 나치즘의 도전을 받았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시작된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류는 자유주의와 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정치 이념들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전개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논쟁에서 보듯, 자유주의의 위기는 정치철학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들 중 하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철학적으로 볼 때, 포퓰리즘이나 불평등의 심화와 같은 오늘날 자유주의의 위기 징후들이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하기 전에, ‘어떤’ 자유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는지, 그리고 자유주의가 지향했던 정치사회적 원칙들과 이상들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동서양 정치사상에 대한 비교 정치철학적 접근이 더욱 중요합니다. 동서양 사상은 공통분모만큼이나 인식론적 차이가 큽니다. 동양 정치사상이 갈등이 아니라 조화가 더 자연적이며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라고 믿는다면, 서양 정치사상은 거의 대부분 갈등이 보다 더 자연스럽고 보다 더 정치의 본질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동양 정치사상은 자연적 조화와 덕성의 함양에 더 많은 기대를 걸지만, 서양 정치사상은 ‘갈등’을 제도화하려거나 ‘갈등’을 종식시킬 수 있는 제도를 더 많이 고민합니다. 만약 이러한 항구적인 정치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동서양 정치사상의 인식론적인 차이에 대한 고민이 ‘제도적 대안’에 선행된다면,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는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약속은 할 수 없어도 동일한 실수의 반복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유교 정치사상도 조정 원칙이 필요합니다. 소수와 다수의 차이에 기초해서 제시되는 위계적 질서가 제도적 견제를 통해 보다 평등한 관계로 발전될 수 있도록, 동시에 소수와 다수의 갈등이 구성원들 사이의 상생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안창호도 이러한 조정 원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인민이니 결코 노예적이어서는 아니 됨니다. 우리를 명령할 수 있는 이는 오직 각자의 량심과 리성뿐이라야 할 것이니, 결코 어떤 개인이나 어떤 단체에 맹종하여서는 아니 됨니다.

안창호도 근대와 전근대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유교 정치사상의 ‘친애’와 ‘동정’을 부활시켜 개인의 자율성과 인민의 공공성을 함께 실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 문장입니다. ‘결코 노예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충고입니다. 그는 인민의 자유를 ‘타인의 자의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으로 정의했고, 이러한 조건이 구비된 상태에서만 비로소 ‘진정한 주인,’ 그리고 이러한 조건을 갖춘 관계 속에서만 ‘스스로의 책임’을 인지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즉 안창호의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는 ‘비지배적 관계성’이라는 조정 원칙에 의해 마련되고 규제되었다는 것입니다. 천두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릇 제국주의는 인권과 자유주의의 적이며 인도주의를 삼키는 홍수나 맹수 같은 것이다. 이런 것들이 죽지 않아 헌정이 파괴되면, 임금이 주인이고 백성은 노예인 제도는 다시 살아나고, 이 백성들은 전쟁과 부역으로 초췌해지고 평안한 날이 없게 된다.”

천두슈에게 조정 원칙으로서 ‘헌정’이 없는 유교가 지배했던 당시 사회는 임금 한 사람만이 자유를 누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였습니다. 즉 그에게 유교 정치사상이 말하는 ‘예치(禮治)’와 ‘덕치(德治)’를 통한 ‘조화’는 결코 자연스럽게 형성되거나 유지될 수 있는 정치적 이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자유’와 ‘인권’의 보장을 근간으로 하는 ‘헌정’을 통해 규제되고 조정되지 않으면 모두를 또다시 ‘노예적 상태’로 빠뜨리는 낡은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비록 천두슈의 급진적 반(反)유교주의를 받아들일 수는 없더라도, 그가 목도한 유교가 지배했던 정치사회의 문제들을 숙고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다른 모든 정치철학적 고민과 이상을 배제하고 유교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만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경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조정 원칙은 유교 정치사상 안에서 찾을 수도 있고, 다른 철학적 전통이나 자산을 통해 얻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정 원칙이 없이 인간의 도덕적 잠재력과 자연주의적 낙관론만 앞세우는 유교 정치사상은 정치 질서의 재편을 요구하기보다 개인의 도덕성 계발에 그 역할을 국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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