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성의 유동적 결합’과 ‘정치적 세력연합’으로서의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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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의 유동적 결합’과 ‘정치적 세력연합’으로서의 민중
  • 강인철 한신대·사회학
  • 승인 2023.08.2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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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강인철 교수에게 듣는다_ 『민중, 시대와 역사 속에서: 민중의 개념사, 통사』 & 『민중, 저항하는 주체: 민중의 개념사, 이론』 (강인철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각 616쪽, 2023.07.30)


 

민중 개념사 연구를 필자가 사전에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내놓은 ‘민중 2부작’은 지극히 우연한 마주침의 소산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2019년 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 학술용어’ 연구프로젝트에 초대받아 ‘민중’ 항목을 집필했던 게 이번 연구의 예기치 못한 시발이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프로젝트의 결과는 2020년 여름 『한국학 학술용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후 꼬박 3년에 걸쳐 두툼한 책 두 권의 기획으로 발전시킨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민중이라는 주제의 중요성과 방대한 시공간적 범위에도 불구하고 3년 전에는 주어진 시간과 역량이 너무 부족했다. 그렇지만 1970년대 이후 수십 년을 풍미하면서 인문·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로 기세등등하게 파급되었던 민중 개념에 대한 깊이 있고 포괄적인 연구가 이토록 드물다는 사실이 참으로 의아하다는 느낌은 여전히 진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기초작업은 이미 해놓은 셈이니 이참에 용기를 내 한번 제대로 부딪쳐보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필자는 1980년 대학에 입학했는데, 연배나 학계 내 위치 면에서도 이 작업에 다소 유리한 입지에 있지 않나 하는 판단도 했었다. 무엇보다도 민중 개념이야말로 1960년대 이후 한국 진보 학계의 동향, 나아가 한국 현대 지성사 전반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탁월한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 이 사실이 뿜어내는 유혹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가 국민, 인민, 시민, 민족, 민중, 계급을 ‘6대 정치주체 개념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가운데 오랫동안 미답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민중 개념사 연구에서 하나의 매듭을 지음으로써 우리 학계의 해묵은 숙제를 일부나마 해결했다는 점, 이를 통사 편과 이론 편으로 나눠 심층 분석했다는 점을 이번 2부작의 의의이자 성과로서 우선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성과를 민중 개념 전변(轉變)의 결정적 계기였던 신채호의 1923년도 <조선혁명선언>의 100주년에 맞춰 발표할 수 있어서 더욱 뜻 깊다고 느낀다. 

 

오늘날 민중이라는 기표(記標)는 전통적 기의(記意)의 두 요소인 ‘다수자’와 ‘피지배층’에다, (정치)주체성·저항성·다계층성이라는 세 가지의 근대적 기의 요소들이 결합된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현재 민중은 “한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피지배층으로서,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며, 역사와 정치의 한 주체이자, 저항적 잠재력을 상대적으로 더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고 간주되는 이들”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2부작 이론 편의 앞부분에서 상세히 다뤘듯이, 민중의 의미에 대한 합의사항들 못지않게 불일치와 이견들도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민중이라는 기표는 여전히 치열한 논란의 대상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한편 민중 개념의 역사를 조금 더 자세히 보자. 민중은 기원전부터 중국에서 사용되어온 용어라는 것, 이 용어가 이후 한국으로 전파되었으나 일본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 조선에서는 최소한 15세기 이후 문헌에 민중 용어가 등장하며 18∼19세기에는 비교적 자주 사용되었다는 것, 2000년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피지배 다수’라는 전통적 의미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것, 1920년대 초 3·1운동의 여파로 좌파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전통적 민중 기표에 주체성과 저항성이라는 새로운 기의를 추가하는 ‘개념혁명’ 내지 ‘언어혁명’이 발생했다는 것, 1920년대 이후 지난 100년 동안 민중 개념은 대전환―잠복―재등장―급진화―재구성이라는 ‘5막극’을 거쳤다는 것, 1970년대에 서구중심주의적 토착화론을 뛰어넘어 지적·학문적 종속화를 제대로 극복해보려는 ‘탈식민주의적 에토스’와 박정희 정권의 ‘지식인 대축출’이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동시다발적인 민중론 형성이 가능해졌다는 것, 그 결과 1970∼1980년대에는 ‘민중연구 혹은 민중학’(minjung studies)이라고 부를 만한 다학문적·학제적이며 지극히 한국적인 학문 분야가 탄생했다는 것, 1980년대 중반 이후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군림한 급진적 민중 개념은 전체 민중 개념사에서는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에피소드에 불과하며 당대에조차 결이 다른 다양한 민중론들이 공존했다는 것, 1990년대 이후에도 민중론은 갱신을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 등이 이번 책에서 밝혀낸 주요 사실들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민중 개념이 역사적 변화를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탈식민주의 에토스, 실천적-비판적 접근, 사회적 약자의 시각, 거기서 비롯되는 반엘리트주의·평등주의·민주주의 가치, 저항적-해방적 파토스 등의 공통적인 성격은 면면히 지속되었다. 아마도 이런 성격들이 시대를 초월한 민중 개념의 생명력과 호소력을 가능케 했으리라.

 

철학자 황문수나 문학평론가 이철범, 경제학자 전기호 등 그간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흥미진진한 논의를 펼친 수십 명의 ‘숨은 민중론자들’을 새로 발굴해낸 데 대해 필자는 상당한 자부심을 느낀다. 1920년대의 도(道) 단위 민중운동자동맹들, 전북민중운동자동맹 기관지인 『민중운동』,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개최를 둘러싼 총독부와의 치열한 공방, 1930년대의 제주 해녀 시위 사건을 이끈 민중운동협의회, 재일 조선인 항일운동을 이끈 김문준과 「민중시보」 같은 새로운 사실(史實)들을 확인한 것도 큰 기쁨이었다. 1960년대 말부터 초기 민중론 형성 및 확산 과정에서 결절점 역할을 담당했던 조동일, 김지하, 허술 3인방의 종횡무진 활약상도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민중사학의 창시자 격인 강만길·정창렬·이만열 이전에도 유홍렬·김진봉·천관우·강진철 등의 선구적인 발자취를 추적해본 일, 베스트셀러 『한국사 신론』의 저자였던 이기백의 묘한 위상을 밝혀냈던 일도 적잖은 지적 즐거움을 선사했다. 조동일, 신경림, 임헌영, 백낙청, 강만길, 노명식, 서남동, 안병무, 한완상, 한상범, 조용범, 박현채, 유인호, 김인회, 원동석 등 각 분야 민중 담론 개척자들의 지적 역정에서 ‘민중 개념의 중심화’ 과정을 찬찬히 살펴본 것도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이번 2부작에서는 새로운 민중론 시기 구분 방식을 사용하여 세대론적-계보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필자는 대략 10년 주기로 민중론을 분류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1970년대 이후 민중론을 세 개의 ‘세대’로 나눴다.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를 ‘1세대’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를 ‘2세대’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3세대’로 명명했다. 1985년은 1세대와 2세대를 나누는 뚜렷한 분기점이었고, 1993∼1994년은 2세대와 3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선이었다. 1985년은 사회운동계와 진보 학계의 급속한 마르크스주의적 재편이 개시되던 때였고, 1993∼1994년은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 학계·사회운동계의 본격적인 탈(脫)마르크스주의화, ‘민중운동’을 위협하는 ‘시민운동’의 급성장, 포스트마르크스주의·포스트구조주의·포스트모더니즘·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 다양한 ‘포스트주의’의 영향을 받은 신진 민중론자들의 등장 등으로 특징지어지던 때였다.

한국 민중 개념·이론의 역사에서 1990년대는 모질고도 힘겨운 암중모색의 시련기였다. 1990년대 초반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2세대 민중론이 전방위적 공격의 과녁이 되고 민중론이 급속히 위축되는 와중에 기존 민중론자들의 선택은 결별, 대체, 고수, 재구성/재발견 등으로 첨예하게 엇갈렸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기존 민중론자들 상당수가 민중 개념을 버리거나 다른 개념으로 대체했다. ‘재구성/재발견’이라는 선택은 주로 신학, 역사학, 미술에 해당한다. 그중에서도 신학과 미술이 ‘남은 자’ 쪽에 가까웠다면, 역사학은 ‘(잠시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자’에 가까웠다. 얼마간의 공백기를 거쳐 2000년대 이후 ‘민중교육’(한숭희)과 ‘민중언론학’(손석춘)을 표제로 내건 단행본들이 출간된 바 있는데, 어찌 보면 역사학과 유사한 패턴을 밟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2세대 민중사학과의 철저한 단절, 그 폐허 위에서 불확실한 새 출발을 도모해야 했던 3세대 민중사 연구자들과는 달리, 3세대 민중신학자들은 1세대 민중신학의 지적 유산을 재발견·재해석하는 방식으로 1990년대의 학문적 난국을 견뎌냈다. 민중신학의 행운은 걸출한 선학(先學)들을 다수 보유했다는 점, 다수의 1세대 민중신학자들이 서로 긴밀히 교류하면서 민중신학의 질적 수준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놓았다는 점에 있었다. 되돌아갈 아름다운 과거 혹은 황금시대가 있었다는 것, 이는 민중신학만의 행운이었다. 민중신학과 민중미술이 이미 1980년대부터 상당한 국제적 명성을 누렸다는 사실도 두 분야의 생명력을 보강해준 요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중 개념의 역사적 변화와 다채로움뿐 아니라, 이 개념의 놀라운 폭과 깊이를 설득력 있게 드러내는 것도 연구의 주요한 목표였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잠복’했다가 1970년대에 ‘재등장’한 민중론은 민중 개념의 요소들 가운데 주체성과 저항성을 집중적으로 발전시켰다. 필자가 보기에, 1970년대 이후 민중론의 질적 도약을 가능케 한 양대 이론적 혁신은 ‘이중성(즉자성과 대자성)의 유동적 결합’으로 민중을 개념화한 것, 그리고 ‘정치적 세력연합’으로 민중을 개념화한 것이었다. 민중이 ‘즉자성과 대자성의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조합’으로 새롭게 이해되면서, ‘즉자적·대자적 민중’ 패러다임(민중 유형론)이 ‘민중의 즉자성·대자성’ 패러다임(민중 형성론)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민중 형성 이론은 ‘의식 형성’(의식화)과 ‘세력연합 형성’(연대)의 두 방향으로 발전해갔다. 의식 형성의 문제의식은 민중교육, 민중언론, 민중문화·민중예술, 민중종교, 민중언어, 민중정동 혹은 민중적 감정문화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세력 형성의 쟁점은 유사한 의지와 감정을 지닌 이들의 결합에 의한 ‘저항의 탄생’, 국지적 저항들의 접합을 매개로 한 ‘저항의 확산’, 다양한 계층·계급의 결집을 통한 ‘저항연합 구축’ 모두에 해당했다.

필자는 2부작의 이론 편에서 주체성과 저항성의 두 요소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주체성과 관련해서는 정치주체, 저항주체, 변혁주체, 역사주체, 특권적 주체(민중의 인식론적·존재론적·윤리적·종말론적 특권 담론들), 비지배적 주체, 윤리적 주체, 희생적·메시아적 주체, 연대적 주체 등 대단히 다양한 의미·쟁점·담론들이 민중 개념을 휘감고 있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1970년대에 대두한 민중 주체론은 지배와 정치의 대상·객체이던 민중이 역사적·정치적 주체로 역할이 변화되어간다는 ‘이행 담론’, 혹은 그런 방향으로 시대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전환기 담론’의 일환으로, 혹은 역사를 실질적으로 만들어가는 이는 영웅이나 엘리트인가 아니면 보통사람들인가 하는, 말하자면 ‘영웅사관·엘리트사관 비판’의 맥락에서 주로 제기되곤 했다. 어느 것이든 ‘서구 근대적 주체’ 관념과 관련된 일련의 논의들, 예컨대 타자를 창출·지배하는 위압적이고 능산적(能産的)인 주체, 반대로 권력의 효과로 생산되는 탈중심화되고 수동적-순응적인 주체 관념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저항은 1세대, 2세대, 3세대 민중론을 가로지르고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의 명명이 1세대의 ‘인간해방·인간화·민주화’에서 2세대의 ‘혁명·변혁’을 거쳐 3세대의 ‘일상적 저항’으로, 저항으로의 전환을 위한 최우선 실천과제가 1세대의 ‘의식 형성’(의식화)에서 2세대 이후 ‘연대 형성’으로 바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항성의 원천을 어디서 발견할 것인가, 혹은 순응에서 저항으로의 전환 요인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는 민중 이론의 최대 딜레마 중 하나였다. 민중의 저항성을 선험적으로 전제하거나 주어진 것으로 당연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민중 저항성을 결정론적 독단으로 추정하거나 기계적으로 연역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저항성의 중층결정적 발생을 경험적·역사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는 결코 만만한 과업이 아니었다. 저항으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요인들 혹은 저항의 잠재적 원천들과 관련하여 필자는 지배의 틈새, 민중문화, 민중언어, 민중정동, (민중이 오랜 시간 벼려온) ‘저항의 기술들’, 저항의 윤리적 동기화 등과 관련된 기존 민중론적 주장들을 찾아내어 상세히 소개했다. 

이 밖에도 정치권력과 민중 개념의 관계에 주목한 것, ‘개념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여타 정치주체 개념어들과의 복잡다단한 관계들을 규명하고 그 속에서 민중 개념만의 중요한 특징들을 도출한 것, 민중 개념과 민족·민족주의 개념의 유난한 친화성을 발견하고 강조한 것, 문화운동·문화연구그룹 경로와 민중신학 경로를 비롯하여 민중론 태동 및 확산의 몇몇 역사적 경로들을 식별해내고 추적해본 것, 20세기 초 한국·중국·일본의 민중 개념에 대한 비교분석을 시도한 것 등을 이번 연구의 또 다른 성과들로 꼽을 수도 있겠다. 

2부작 이론 편의 마지막 장(章)에서 필자는 국민, 인민, 민족, 시민, 대중, 다중 등 다양한 정치주체 개념어들과 민중 개념의 관계를 호환 관계, 대항 관계, 결합 관계로 대별하여 고찰했다. 아울러 여러 정치주체 개념들과의 비교를 통해 민중 개념에서만 발견되는 중요한 특징 몇 가지를 가려냈다. 그것은 번역어가 아닌 고유어라는 ‘토착성’, 비지배/탈권력 지향과 연결된 ‘비(非)주권성’, 신·구 개념(혹은 지배언어로서의 민중과 저항언어로서의 민중)의 끈질긴 ‘병렬성’, 법률체계 등에서 확인되는 ‘비(非)주류성’, ‘저항성’ 등으로 집약되었다. 유사한 맥락에서 서발턴연구(subaltern studies)와 민중연구를 체계적으로 비교 분석해보기도 했다.

민중이 번역어인가 고유어인가 하는 논쟁은 꽤 오래 지속되었고, 이번 연구에서 시종일관 견지한 질문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한쪽에선 민중이 한국에 독특한 개념이라고 주장해왔고, 다른 쪽에선 민중이 ‘피플(people)의 번역어’이거나 ‘인민의 대체어’라고 주장하곤 했다. 필자는 1920∼1930년대와 1970년대 이후의 민중 개념이 ‘개념의 한국적 창안’ 사례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민중 개념의 경우 ‘서구 근대적 개념의 수용’ 측면보다는, 식민지화를 비롯한 안팎의 도전과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전통의 창조적 재발명’을 시도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국가 주권을 박탈당한 식민지 민족주의자들이 기존의 ‘민족’ 개념에 ‘사회혁명’의 요소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전통적 민중 개념에 급진적인 재해석을 기도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1920년대 초 신채호에 의해 주체성과 저항성을 장착한 신개념의 민중이 처음 공표될 때부터, 민중은 ‘계급과 민족의 결합체’라는 특이한 성격을 내포했다는 점에서 동시대 중국과 일본의 민중 개념과 구분되는 뚜렷한 독창성을 드러냈다. 1910∼1920년대에 중국의 민중 개념은 계급 측면이 약했고 일본의 민중 개념은 민족 측면이 약했던 데 비해, 조선의 민중 개념은 계급모순과 민족모순 모두의 집약체였다. 한·중·일의 민중 개념이 모두 정치 주체성과 일정한 저항성을 포함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과 일본의 민중 개념이 대체로 ‘자유주의적 민중’에 머물렀던 데 비해 식민지 조선의 민중 개념은 민족혁명과 계급혁명이라는 이중혁명·동시혁명의 주역인 ‘혁명적 민중’으로 성큼 나아갔다. 또한 중국과 일본에서는 민중 개념이 지성사나 사회·정치운동에 미친 영향이 한국에서만큼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광범위하고 집중적인 민중연구가 이뤄진 바도 없었다.

필자는 앞으로 1세대 민중론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며, 그들에 대한 보다 면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동시에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2세대 민중론이 풍미했던 시기에 그와는 ‘결이 다른’ 민중론을 펼쳤던 이들도 새롭게 주목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비(非)/탈(脫)마르크스주의적 민중론을 독자적으로 펼쳤던 이들은 1986∼1992년 시기의 한완상을 비롯한 한상진·김영범·김성기 등의 사회학자들, 정치학자인 최장집, 인류학자인 김광억과 김성례, 작가이자 국문학자인 송기숙, 현직 승려인 법성, 사상가 혹은 철학자인 신영복과 기세춘, 일본인 사회학자로서 한국 민중론을 탐구한 마나베 유코(真鍋祐子) 등을 망라한다. 이런 견지에서 3세대 민중론이 1세대 민중론 및 2세대 ‘비주류’ 민중론과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민중론의 새 지평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1980년대에 1세대와 2세대 민중론의 가교 역할을 담당했지만 1990년대 말 이후 원통적(圓通的) 사고와 화이부동(和而不同), 상자이생(相資以生) 사상을 통해 인상적인 수평적-민주적 민중 연대론을 전개한 김진균, 1980년대에 전형적인 2세대 민중론자였다가 2000년대 이후 민중의 일상생활·놀이와 권력의 미시적 상호작용을 파고든 공제욱 등의 사회학자들도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다. 필자가 한국 민중론의 궁극적 종착지로 제시한 비지배/탈권력 테제, 즉 ‘끝내 권력자가 되지 않기’ 그리고 ‘저항적이되 영원한 비(非)지배자로 남기’ 테제에 대해서도 후속 논의가 이어지길 고대한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중은 단지 학계와 지성계의 언어로만 머물지 않았다. 민중은 매력적인 학술적 언어임과 동시에 그 자체 강력한 사회운동과 정치의 언어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필자의 책들은 한국 근현대 저항적 정치주체론의 계보학일 뿐 아니라, 사회운동 저변에 자리한 정신구조의 변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의 민중만큼 사회운동과의 강한 연관성이 확인되는 개념도 드물다. 새로운 민중 개념이나 이론이 태동하는 데는 항상 선행하는 사회운동의 자극이 있었고, 역으로 새로운 민중 개념·이론은 사회운동의 발전을 촉진하곤 했다. 민중론 자체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거대한 힘이요 에너지였다. 민중론은 사회운동과 지성계의 합작품이자 공동 성취였다. 오늘날의 사회운동가들 역시 민중론의 영향을 직접 받은 이들, 혹은 그 직계 후예들일 것이다. 사회운동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필자의 책들에서 얼마간의 격려와 위로를 받기를, 아울러 비판적 성찰과 통찰력의 원천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2부작의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사회운동과 진보 지식인들이 대변·대표하고자 하는, ‘부단한 재구성 과정 안에 놓인 피지배 다수자’가 어떤 이들인지를 보다 정확히 알고자 노력해야 하며, 이는 결코 종결될 수 없는 항상적 과제라는 것이다. 수준 높은 민중론은 사회운동 발전을 위한 자양분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양심적 지식인들과 사회운동가들이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민중연구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도 나서야 한다고 본다. 앞서 말했듯이 다학문적이고(multi-disciplinary) 학제적일(inter-disciplinary) 뿐 아니라 지극히 한국적인 학문이기도 한 ‘민중연구 혹은 민중학’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기관, 연구모임이나 학회, 정기간행물, 출판사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학문적·대중적 성격을 겸비한 『민중연구』 같은 간행물을 창간하여 지금도 활성을 유지하고 있는 민중신학, 민중사, 민중미술 분야에서부터라도 공동의 공론장을 조금씩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강인철 한신대·사회학

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민종교, 전사자 숭배, 한국의 종교정치, 군종제도, 종교와 전쟁, 양심적 병역거부, 종교사회운동, 종교권력, 개신교 보수주의, 한국 천주교, 북한 종교, 민중 개념사 등을 탐구해왔다. 현재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역사를 다루는 2부작을 집필 중이다. 이번에 나온 민중 2부작을 포함하여, 광주항쟁 40주년을 맞아 2020년 5월에 내놓은 『5·18 광주 커뮤니타스』 등 지금까지 모두 18권의 단독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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