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화 위에 장미 지지대를 세우는 자, 노새를 경주마로 키우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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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송화 위에 장미 지지대를 세우는 자, 노새를 경주마로 키우는 자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23.08.28 05: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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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칼럼]

세태 유형 I.

1. 채송화를 심는다.
2. 덩굴장미 지지대를 그 위에 세운다. 
3. 채송화가 자라서 장미 지지대에 만발하는 성과를 전망한다.
4. 결과가 기대치에 어긋나면 관계된 사람들과 주변을 비난한다. 때로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과 상실감에 빠진다.

요즘 세태를 어떻게 비유할까? 채송화를 심고서 그 위에 세워놓은 덩굴장미 지지대에 꽃이 만발하리라는 전망에 취하는 양상이다. 그리고 채송화가 지지대를 오르지 못하는 당연한 결과에 직면하면 서로 ‘네탓 내덕’이라 주장한다. (왜 채송화가 유독 대한민국에서 의문의 1패를 당하는지는 또 다른 주제다.) 채송화도 어여쁘고 덩굴장미도 화사하지만, 제각각 심은 대로 거두려 하지 않는다. 


세태 유형 II.

1. 노새를 돌보는 책임을 맡는다.
2. 노새의 자존감과 경쟁력을 위해 경주마로 키워내는 목표를 세운다.
3. 노새가 경주마처럼 달려서 사람들의 환호 속에 금의환향하길 기대한다.  
4. 노새가 스스로의 적성과 성향에 충실하면 경주마와 경쟁하라고 부단히 다그치고 훈육한다. 노새를 경주마로 키우려는 자신의 ‘숭고한 정신’에 어긋나는 모든 사람과 상황을 탓한다.

노새가 무슨 죄인가. (왜 노새가 유독 대한민국에서 의문의 1패를 당하는지도 또 다른 주제다.) 한국 땅에서 태어난 불운한 노새는 나름의 뛰어난 장점과 성격과 생을 누릴 기회를 박탈당한다. 주변의 경주마들과 끝없이 비교되며 사회적 성공과 자존감을 위해 경쟁하도록 채근 당하고 질책 받고, 마치 실패한 부류처럼 취급된다. 

채송화 위에 세운 장미 지지대가 비어있는 결과, 노새가 경주마처럼 달리지 않는 결과를 두고 참 몰염치하게 말들이 무성하다. 끝없이 남 탓하고, 주변과 상황을 비난하며 자기 책임은 없는 양 분노한다. 이러한 세태 유형에 해당되는 건 수많은 행사와 기관과 정책들뿐 아니다. 학생과 교사의 어긋난 인권문제와 온갖 민원의 수렁에 빠진 교육계 문제도 그렇다. (요즘 대학교수에게도 학부모 민원은 드문 일이 아니다.) ‘묻지마 폭행’을 포함해 각양각색의 사회적 이슈의 근원도 그렇다. 이런 사례들이 온 나라에 부지기수다. 

그 공통분모에는 심은 것 이상을 거두는 로또식 요행수를 당연시하는 과욕이 있다. 원하는 결실을 거두기 위해 땅고르기부터 씨 뿌리고 물 주고 공들여 싹을 키워내는 고된 노역과 추수까지 일련의 수고들을 무시해버리는 용맹한 무지도 있다. “진인사(盡人事)” 없이 천운을 탐내고, 노역 없이 행운의 여신을 과신하는 풍토가 있다. 또한 제각기의 개성과 삶을 존중하기보다는 권력, 명예, 부를 우선시하는 계급사회적 잣대와 평가가 자리한다. 개개의 취향과 행복을 무시하고 채송화보다 덩굴장미, 노새보다 경주마가 더 귀한 존재라고 믿는 사회 풍조가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는 채송화를 심고서 드높이 피는 덩굴장미를 기대하는 요행수, 노새를 경주마로 탈바꿈하려는 식의 극한 경쟁이 만연해졌다. 
 
바야흐로 인간과 달리, 배부르면 먹지 않는 동물들이 명예스러워 보이는 세상이 되었다. 갖은 난관에도 성실하게 먹거리를 준비하고 겨울나기를 성취하는 짐승들이 감동을 주는 세상이 되었다. ‘인과응보, 카르마, 심은 대로 거둔다’ 등등 범세계적 문화와 역사가 증거함에도, 각자 자신이 심은 그대로 결과를 얻었다고 분노하고 싸운다. 좋은 세상은 특정세력의 불의와 편법이 득세하지 못하고, 불특정 다수가 불이익 당하지 않도록 가능한 모두가 심은 대로 공정하고 정의롭게 거두는 사회체제를 갖춘다. 그럼에도 ‘특권층 질량불변의 법칙’이 오랜 역사를 통해 기득권의 모양새만 변했을 뿐 유지되어온 이 나라에서 이제 너도나도 “왜 나는요? 왜 내가요?”를 주장하며 심은 것 이상을 당당하게 기대하고 요구한다.

21세기에 혈연, 학연, 지연으로 결속된 계급·신분사회의 신귀족시대가 열린 이 땅에서는 요상한 현상들이 진행 중이다. 물질만능주의, 성공지향주의, 과잉경쟁주의로 점철된 신계급사회에서 환골탈태하여 금수저 집안으로 거듭나고자 “내가 왕이 될 상인가”를 되뇐다. 남의 귀한 자식들을 희생시켜 “내 왕자, 공주”를 키워내려 한다. 남의 자식은 “게나 가재나 붕어” 되라 하고, 혹은 지렁이나 뱀이 되어 내 자식이 용이 되는 발판 되라 한다. 우리 세상에서는 용이 아니라 게, 가재, 붕어나 지렁이나 뱀이 비할 수 없이 더 필요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망각된다. 스스로 지렁이건만 뱀이라고 착각하고, 뱀인데 용이라고 착각한다. 세상의 필요 여부와 무관하게, 타인 위에 군림하고 실제보다 잘나게 보이려는 욕망으로 용을 꿈꾸는 이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난다. 대한민국 구성원의 50퍼센트 이상이 왕이 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내 자식이 왕이 아니라 남들의 왕권유지를 위해 살아야하니 아이도 낳지 않는다.) 그러니 나라가 혼란스럽고 세상이 혼탁하고 들끓는다. 

이런 사회에서 불필요한 고초에 시달리지 않는 생존 노하우가 빠르게 공유된다. MZ세대의 이른바 ‘3요’는 이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학생뿐 아니라 교육자들 사이에도 확산되어 새로운 세태 유형이 되고 있다. 본인의 책무가 아닌 일에 괜히 끼어들면 결국 부당한 대가를 치른다는 인식이 사회전반에 퍼져서, 일을 요청받으면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는 3요로 대응한다.

이 나라의 현재와 후대를 우려하며 기도하다 보니,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초저출생과 초고령화로 인해 지구상 ‘1호 인구소멸국가“(데이비드 콜먼 교수)로 전망된 2006년 유엔인구포럼 이래 벌써 17년이 흘렀다는 생각이 미친다. 자신들 때보다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신 선대에 송구하고, 이 땅에 장차 올 후대가 안쓰러운 것도 어쩌면 오지랖 넓은 어느 교수의 부질없는 기우가 되리라. 또 새 학기가 되었다. 한낱 비눗방울의 오색영롱함을 인생의 목표삼아 전력을 다해 쫓아가면서 채송화를 덩굴장미로, 노새를 경주마로 키우려는 과잉경쟁 과욕사회의 싸움터로 나가기 위해, 평온한 안식처를 나선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 of Delaware)에서 미술사 석사와 박사 학위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과 루스(Luce)재단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강의교수를 거쳤으며, 국내에서 현대미술사학회 회장, 원광대 평생교육원장, 대외협력처장, 국제교류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미술과 교수로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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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2023-08-30 11:57:51
평온한 안식처가 욕심부리지 않고 뿌린데로 거두는걸 인정하는거겠죠? 글 잘읽었습니다~ 교수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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