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시기의 관련 … 한일고금비교론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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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시기의 관련 … 한일고금비교론 ④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3.08.27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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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한국과 일본은 일찍부터 밀접한 관련을 가졌다. 얽혔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 그 내력이 아주 복잡해 쉽게 말할 수 없다. 시빗거리가 많아 헷갈린다. 자칫하면 미궁에 빠진다. 본보기를 하나 들고 논의를 시작하면서, 논의 방식 점검에 힘쓴다.

신라의 왕자 天日之矛(아메노히보코) 또는 天日槍이 많은 보물을 가지고 일본에 가서, 한 지방을 차지하고 현지 일본인 아내를 얻어 살았다고 한다. 이런 기록이 한국에는 전연 없으므로 허구라고 할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간 이주민 또는 渡來人(도래인)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天日之矛 또는 天日槍이라는 이름은 ‘天’이라고 한 하늘, ‘日’이라는 태양, ‘矛’(모) 또는 ‘槍’(창)이라는 무기, 이 세 말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과 관련된 고귀한 혈통, 태양을 움직이는 신이한 능력, 뛰어난 무술을 갖춘 인물이 신라의 왕자라고 했다. 높이 평가해야 할 조건을 완전히 구비했다. 

도래인이 이렇게 자처해, 자기를 칭송하고 따르도록 했다고 하면 일단 이해가 가능하지만, 다른 의문이 바로 제기된다. 그런 인물이 왜 고국 신라에 있지 않고, 일본으로 갔는가? 이에 대해 <古事記>(고지키)에서 한 말을 들어보자. 내용이 아주 복잡하므로, 단락을 나누어 요약한다. 

(가) 신라의 어느 늪 근처에 사는 천한 여인이 낮잠을 자는데, 무지개 같은 햇빛이 음부를 비추었다. (나) 그 때문에 임신을 하고, 붉은 구슬 赤玉(적옥)을 출산했다. (다) 지켜보고 있던 천한 남자가 그 구슬을 달라고 해서 가져갔다. (라) 신라의 왕자가 그 남자를 소를 끌고 가서 죽이려 한다고 나무라니, 허리에 차고 있던 그 구슬을 바치고 용서를 빌었다. (마) 그 구슬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신라 왕자의 아내가 되었다. (바) 음식 공양을 잘하는 아내를 나무라니, “당신의 아내가 될 사람이 아니므로 조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하고 떠나갔다. (사) 신라의 왕자가 그 뒤를 따랐으나, 해협의 신이 막았다. (아) 多遲摩國(다지마노쿠니)라는 곳으로 가서 다른 아내를 얻고 안착했다. 

(가)에서 (아)까지의 순차적인 구조를 일관되게 이해하기 어렵다. 몇 개로 나누어 심층 분석으로 뜻하는 바를 찾아보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얻은 결과를 제시한다. 

(가)ㆍ(나): 무지개 같은 햇빛을 받는 이적을 체험하면, 천한 여인도 붉은 구슬을 잉태하고 출산할 수 있다. 사람 차별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다)ㆍ(라): 소를 모는 일이나 하는 천한 사람이 그 구슬을 가져가면, 허리에 차고 다니기나 한다. 진가를 모르면 보물이 무용하다. (마)ㆍ(바): 신라의 왕자가 가져가니, 그 구슬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아내가 되어 남편을 잘 받들었다. 응분의 행복이라도 누리면 고맙게 여겨야 한다. (바)ㆍ(사): 공연히 나무라자, 그 여인은 남편을 버리고 자기 나라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은 신이한 이적의 고장이다. (사)ㆍ(아): 신라의 왕자가 아내를 따라 일본에 가니 해협의 신이 길을 막아, 딴 곳으로 가서 다른 아내를 얻고 안착했다. 너무 큰 것을 바라지 말고, 작은 성취에 만족해야 한다. 

<日本書紀>(니혼쇼키)에서는 이 이야기를 다르게 했다. “저는 신라국 임금의 아들인데, 일본국에 聖皇(성황)이 계신 것을 알고, 나라를 아우에게 맡기고 귀화했습니다.” 天日槍이 天皇(텐노)에게 이렇게 말하고, 가져간 선물을 바쳤다고 했다. 天皇은 두 곳을 지적하고, 살 곳을 택하라고 했다. “신이 장차 살 곳을, 은혜를 베푸시면 스스로 돌아보고 정하겠습니다”라고 하고, 但馬國(다지마노쿠니)으로 갔다. 거기서 아내를 얻고 정착했다. 但馬國은 多遲摩國의 다른 표기이다. 오늘날의 兵庫縣(효고켄) 북부이다.  

<古事記>에서는 天日之矛가 겪은 일을 그 자체로 말해 신화가 살아 있다. <日本書紀>에서는 일본 天皇이 天日槍을 받아들이고 돌보아준 연유를 역사적 사실인 듯이 말해 원래의 전승을 훼손했다. 일본이 신이한 이적의 본고장이라는 생각을 신령스러운 군주의 나라라는 것으로 바꾸어놓고, 도래자가 스스로 한 일을 국가의 시책을 따른 결과라고 했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서술로 조작을 은폐할 수는 없다. 天日槍이 “聖皇(성황)이 계신 것을 알고” 일본으로 갔다고 한 것은 말이 되지만, “나라를 아우에게 맡기고” 떠났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조작의 증거를 남기고 있다. 

<日本書紀>의 다른 대목에서는 뜻밖의 말을 더 길게 했다. 간추려 옮긴다. “天皇이 여러 신하에게 말했다. “내가 들으니 신라왕자 天日槍이 처음 올 때 보물을 가져와서 지금 但馬에 있다고 한다. 원래 나라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 神寶(신보)로 삼는다고 하니, 내가 그 보물을 보고자 한다.” 

그날 사자를 보내 天日槍의 증손 淸彦(키요히코)에게 (보물을) 바치라고 명령했다. 淸彦이 명령을 받고, 많은 보물을 가지고 와서 바쳤다. 다만 작은 칼 하나는 남겨둔 것이 신통력을 보여 天皇이 탐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 고장 사람들이 그 칼을 神(신)으로 받들고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일본은 신이한 이적의 고장이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일본에 聖皇(성황)이 있는 것을 알고 귀화해, 선물을 바쳤다는 말도 타당하지 않다. 진상은 무엇인가? 신라의 왕자라고 자처하는 도래인이 신이한 보물을 가지고 가서 한 지방을 장악하고 세력을 구축했다. 이것을 天皇이 시기하고 방해했다. 보물을 다 빼앗아가도, 남은 것이 있어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도래인이 일본으로 간 것은 새로운 삶을 이룩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但馬國을 차지할 때 그 곳의 神과 싸웠다는 말이 그 지방의 <風土記>(후도키)에 전한다. 신화적인 유래가 있는 신이한 보물을 많이 가지고 나타난 신라의 왕자라고 자처해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적절하다.

<日本書紀>에 있는 다른 기록을 하나 보자. “百濟(쿠다라) 加須利君(카스리노키시 蓋鹵王 카후로오)가 자기 아우 軍君(유니키시 崑支君 유니키)에게 말했다. 너는 일본에 가서 天皇(텐노)을 모셔라. 軍君이 대답했다. 임금님 명령을 받고 어길 수 없습니다. 원컨대 임금님 부인을 내려주시면 명령을 받들고 가겠습니다. 加須利君은 임신한 아내를 軍君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여자는 임신하고 해산할 달에 이르렀다. 길에서 해산을 하면, 배 한 척에 태워 어느 곳에 이르렀든지 신속하게 나라로 보내라. 마침내 작별의 말을 하고, 조정으로 파견하는 명령을 받들었다.” 잉부가 加須利君의 말처럼 되었다. 筑紫(쓰쿠시) 各羅嶋(카카라노시마)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嶋君(시마키미)라고 했다. 嶋(시마)가 이름이고, 君(키미)는 존칭이다. “軍君는 배 하나로 嶋君를 나라로 보냈다. 이 아이가 武寧王(무네노오우)가 되었다. 百濟 사람들은 그 섬을 主嶋(니리무시마)라고 한다.”

이 기록은 사실과 부합되는 면이 있다. 武寧王(무령왕)은 무덤을 발굴해 찾은 묘지에서도 斯麻王(사마왕)이라고 했다. <三國史記>(삼국사기)에서 이름이 斯摩(사마)라고 했다. 둘 다 일본음은 ‘시마’이다. ‘시마’는 섬이다. 武寧王은 일본의 섬에서 태어나 ‘시마’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百濟는 일본과 특별히 가까운 관계를 가졌던 것도 알려준다. 

다른 말은 전연 납득할 수 없다. 天皇을 모시려고 일본에 가는 사람이 임신한 형수를 동반자로 삼았다는 것은, 논리적ㆍ윤리적 타당성이 전연 없다. 임신한 여자는 어떤 신통력이 있다고 믿었다고 풀이하면 해소될 의문이 아니다. 말이 어디서 어떻게 해서 잘못되었는지 밝힐 수는 없으나, 전연 납득할 수 없는 기사를 기재한 <日本書紀>는 역사서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세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가) 한국에서는 이미 통하지 않게 된 신화적 주술이 일본에서는 지속되어 역사 발전의 단계가 다른 것을 말해준다. (나) 환상은 버리고 현실을 존중하는 합리주의,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는 초합리주의가 두 나라에서 각기 오래 이어졌다. 현실주의는 전쟁보다 평화가 이롭다는 것을 잘 안다. 초합리주의는 정치적 광신이 되어 침략을 일삼는 실수를 한다. (다) 현실과 환상을 뒤섞는 초합리주의 발상에도, 위에서 天日之矛에 관한 <古事記>의 기사 심층 분석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납득할 만한 논리가 잠재되어 있을 수 있다. 침략과 가해, 역사 왜곡 등에 관한 표면적인 논란에 머무르지 말고, 그 근저를 탐구해 얻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어느 가설이 타당한지, 더욱 타당한 견해를 찾아야 하는지 더 연구해야 한다. 한일 관계사보다 문화 비교론이 더욱 긴요한 과제이다. 너무 다른 것 같은 데서 보편적인 원리를 찾아내면, 온 인류의 心眼(심안)을 크게 열어줄 수 있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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