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의 사회 참여, 그리고 이론의 기여 … 그로스버그의 연구를 전략적 도구로 탐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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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의 사회 참여, 그리고 이론의 기여 … 그로스버그의 연구를 전략적 도구로 탐색하다
  • 조영한 한국외대·커뮤니케이션학
  • 승인 2023.08.27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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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_ 『새로운 세계에서의 문화연구: 로런스 그로스버그 선집』 (로런스 그로스버그 지음, 조영한 옮김, 컬처룩, 540쪽, 2023.07)

 

미국 문화연구를 대표하는 그로스버그는 그의 지적인 성장 과정에서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스튜어트 홀과 제임스 케리의 지도를 받으며 문화연구의 이론가이자 미국 사회와 현대정치문화에 대한 비판연구자로 명성을 쌓았다. 그의 연구는 한편으로 자신이 속한 미국 사회의 현실과 현재에 천착하면서도 동시에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로스버그의 연구를 통하여 문화연구 속에서 사회 참여와 이론적 탐색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기여할 수 있는지 탐색하고자, 그의 대표연구를 모아 번역한 것이 <새로운 세계의 문화연구: 로런스 그로스버그 선집>(이후 <그로스버그 선집>)이다.  

<그로스버그 선집>은 그의 대표 저서인 <Bringing it All Back Home: Essays on Cultural Studies> (1997, Duke University Press), <Dancing in Spite of Myself: Essays on Popular Culture> (1997, Duke University Press), <Cultural Studies in the Future Tense> (2010, Duke University Press)에서 주요 논문을 선택하여 본문을 구성하였다. 선집의 형태로 번역서를 출판한 이유는 그로스버그의 다양한 연구를 한국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번역자의 목표 뿐 아니라, 그가 바라보는 문화연구의 특질에 기인하기도 한다. 멘토인 스튜어트 홀과 유사하게 그로스버그는 문화연구의 이론화 과정에서 보편적 이론에는 비판적 거리감을 유지할 뿐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이론적 입장을 만들어 가는데 부정적이었다. 선집의 형식을 통하여 다양한 맥락을 탐색하기 위해 구체적인 연구 문제를 설정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이론적 틀과 분석을 구성해가는 그로스버그의 연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였다. 

주요 저작의 흐름을 따라 <그로스버그 선집>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문화연구의 형성과 새로운 도전’으로 미국 문화연구의 형성 과정 및 핵심과제를 논의한다. 많은 이들이 문화연구의 시작 지점이라고 여기는 공간은 버밍엄 대학의 현대문화연구센터인데, 그로스버그는 그곳에서 리차드 호가트와 스튜어트 홀에게 함께 공부하며 이후 미국에 문화연구의 주요 연구자를 소개하였다. 그로스버그는 문화연구의 역사적 형성 과정에서 현대문화연구센터의 의의를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문화연구는 특정한 지점에서 시작된 일관된 연구 흐름이 아니라, 다양한 이론적 입장들이 합류하면서 그리고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확산된 연구 흐름임을 강조한다. 

2부는 ‘대중문화와 문화이론’으로 그로스버그의 대중문화와 대중음악에 대한 연구를 모았다. 초기 연구를 통하여 그로스버그는 미국 현대정치문화를 해석하는데 있어 대중문화, 특히 대중음악의 학문적 유용성을 입증하였고, 문화연구에서 대중문화와 대중음악의 위치를 확고하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이 과정에 그로스버그는 니체와 들뢰즈를 기적 계보로 삼은 정동의 이해를 소개하고 접목시킨다. 3부는 ‘현대성과 다중적 근대성’이라는 주제로 현대성을 설명하기 위한 그로스버그의 고민을 담았다. 그로스버그는 경제학이 아닌 ‘경제적인 것’을 다시 규정하고 다중적 근대성의 개념을 통하여 2000년대 이후 변화하는 미국 사회의 지형을 다시 살펴본다. 이런 연구 관심사의 변화는 그로스버그는 자신의 연구가 음악이나 들뢰즈와 같은 분야와 이론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위치한 시공간의 변화에 따라 연구문제가 형성됨을 보여준다. 3부에는 번역자와 나눈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서 문화연구를 실천하는 연구자의 고민을 함께 논의한다. 

 

                                                       필자와 저자 로런스 그로스버그

그로스버그의 문화연구에서 문화는 매우 중요한 시작점이다. 즉, 사회를 구성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정치, 경제, 기술 만이 아니라 문화도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밝히고 주장한 것이 문화연구이다. 하지만 동시에 문화연구는 단지 문화만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삶의 총체적 양식으로 문화에 접근함으로서 문화를 구성하는 맥락을 연구하는 학문 관점이다. 그렇기에 그로스버그의 문화연구는 항상 복합성, 우발성, 그리고 맥락성을 견지하고자 노력한다. 문화연구의 복합성은 직설적이고 명쾌한 설명 그리고 완결적인 정답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연구 대상의 다면성과 문제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발성은 때로는 비논리적이고 모순적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주체, 힘, 그리고 논리간의 연결되고 결합되는 지점을 파악하고, 그것이 도전받고 해체 및 재결합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맥락성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연구 결과가 아닌 맥락적 지식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프로젝트로 구성되는 문화연구를 강조한다. 

복합성, 우발성, 맥락성의 특성을 강조하는 그로스버그의 문화연구는 연구 대상에 대한 ‘더 나은 이야기’를 하고 ‘다르게 생각하기’를 강조한다. 그는 최근의 연구에서 이야기라는 비유를 자주 사용하며, 문화연구는 정답과 불변하는 사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이야기를 하고, 지도를 그리고 같이 이야기를 하는 과정을 통하여 이야기를 바꾸는 데 노력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문화연구자는 이론이나 정치적 신념에 의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술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맥락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질 것을 강조한다. 이를 위하여 그로스버그는 문화연구의 핵심으로 급진적 맥락주의와 국면 연구를 강조한다. 특히 그로스버그는 문화연구의 방법론으로 국면 분석을 제안하는데, 국면 분석은 단지 연구자료를 모으는 좁은 의미의 방법론이라기보다 비판적 분석의 과정을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국면 분석은 어디에서 진지전이 발생하며, 무엇을 문제적 공간을 인식하여, 그리고 이를 통하여 어떠한 유기적인 위기가 접합/해체되는지를 탐색하는 것이라 정의내릴 수 있다. 

문화연구자의 ‘정치적 지식인’ 역할을 강조하는 그로스버그에게 현실에 기반하여 이론적 이해를 추구하는, 또한 동시에 이론적 도구를 통하여 현실을 탐색하는 문화연구는 필연적인 종착점이 되었다. 그리고 문화연구는 기획이자 집단적인 프로젝트로 형성되며 이를 위해서는 학제를 넘어선 그리고 지역과 국가를 넘어선 대화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론은 현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더 많은 이들과 대화를 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이자 우회로이다. 이런 이해 속에서 사회 참여와 이론은 무관하거나 때로는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힘이 아니라, 사회 참여와 이론이 상호작용하고 기여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 실천한 연구자가 그로스버그라 평가하고 싶다. 

미국 현대성에 천착하고 이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면서 그것을 현학적이고 철학적으로 드러내는 그로스버그의 글은 바로 현대 한국 사회의 문화 현상 및 대중정치를 해석하기 위한 손쉽고 빠른 이론적 틀을 얻기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로스버그가 늘 강조하듯이 다른 맥락에 대한 분석을 꼼꼼히 읽고 그 맥락을 설명하기 위하여 동원한 이론, 그리고 이론과 현실을 접합시키는 전략을 배울 수 있다면, 독자는 새로운 맥락을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틀과 그것을 구성하는 방식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해는 다시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화 현상과 그것을 둘러싼 맥락을 이해하고 개입하는 중요한 지점을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로스버그 선집>의 각 부분은 우리가 글로벌 학계의 위계 속에서 한국 내 문화연구의 형성과 위기, 한류 등 한국 대중문화의 역할, 그리고 새로운 보수화의 흐름 속에서 현대정치문화를 탐색하기 위한 전략적 우회로 역할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문화연구의 이론에 대한 또 다른 연구자, 즉 그로스버그의 연구의 소개를 통하여 현실과 분리되지 않는 이론의 가능성 그리고 이론에 대한 엄밀한 해독을 통하여 현재 맥락에 대한 더 나은 이야기에 대한 대화가 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조영한 한국외대·커뮤니케이션학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한국학과 교수이자 코레아노폰 연구센터장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싱가포르 국립대학 아시아 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한국 사회의 민족주의와 근대성, 글로벌 스포츠, 아시아 대중문화, 한류 등이 주요 연구주제이다. 저서로 <옐로우 퍼시픽: 다중적 근대성과 동아시아>, <Global Sports Fandom in South Korea>가 있고, Palgrave 출판사의 Series of Sport in Asia의 창립 편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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