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은 어떻게 사실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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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은 어떻게 사실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8.27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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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가?: 과학적 인식을 가로막는 직관의 한계에 대하여 | 앤드루 슈툴먼 지음 | 김선애·이상아 옮김 | 바다출판사 | 424쪽

 

우리는 어린아이일 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틀을 마련한다. 가령 우리는 물건이 떨어지면 그것이 수직 방향으로 곧게 떨어진다는 직관을 가지고 그것이 원래 있던 자리 바로 아래에서 떨어진 물건을 찾는다. 두 살밖에 안 된 아기들도 이런 직관을 가진다. 아마 이런 직관은 생존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기에 발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리얼을 그릇에 부을 때 시리얼이 어디로 떨어질지 예측할 수 있어야 흘리지 않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세계를 이해하는 틀을 영유아기 때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천적 직관과 후천적으로 습득한 지식을 얼기설기 엮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그럴듯한 이론을 형성한다. 저자는 이를 ‘직관 이론’이라고 부른다. 이런 직관 이론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유용한 면이 있지만 많은 경우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표적인 직관 이론으로 기동력 이론이 있다. 많은 사람이 운동하는 물체가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운동이 멈추는 건 바로 그 내부의 힘이 소진되었기 때문이라고 인식한다. 이런 직관 이론은 실제 현상의 일부분을 성공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지만 낙하하는 공의 궤적과 같이 실제 현상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기동력 이론을 극복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뉴턴 역학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 시간에 뉴턴 역학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기동력 이론을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반박 증거에도 불구하고 직관 이론들은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힌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직관 이론은 우리가 세계를 올바르게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백신반대운동, 기후 변화 부정론, 지구편평설, 창조설을 믿는 이유는 이런 ‘썰’들이 우리의 직관에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인 저자 앤드루 슈툴먼은 여러 심리학 실험을 통해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는 12가지 직관 이론이 어떻게 형성되고, 또 어떻게 우리를 속이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저자는 우리가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별 믿음이나 생각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일어나게 하는 기본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직관 이론은 일관된 내부 논리가 있고 세상에 널리 퍼져 있으며 그를 반박하는 증거 앞에서도 완고하다. 심지어 어떤 이론은 우리가 성인이 되고 올바른 과학 이론을 배운 이후에도 계속 남아 우리에게 혼란을 일으킨다. 즉, 직관 이론은 과학적 이론에 의해 대체된 이후에도 우리의 무의식 속에 오랫동안 남아서 우리의 생각에 미묘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과학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도 그것이다.

토대가 잘못된 이론에서 올바른 사실을 길어 올릴 수도 없다.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단순히 믿음이나 생각의 내용을 수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생각을 일어나게 하는 기본 개념을 바꿔야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직관 이론에 대해 알리고 그 직관들이 어떻게 우리가 생각의 길을 잃게 만드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제 과학적 지식은 단순히 알면 더 좋은 것을 넘어 삶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바로 과학적 교양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전염병의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과소평가했던 각국 정부는 초기 대응에 미흡한 모습을 보여줬고 그 결과 초기에 진압할 수 있었던 감염병이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일반 대중들 또한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것은 마찬가지다. 병의 확산을 막는 데 마스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묻어 있을지도 모를 손으로 마스크를 만지기 일쑤였다. 이는 우리가 병의 원인에 대해 잘못된 직관 이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병의 원인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다. 하지만 이들 미생물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직관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오랫동안 우리는 병의 원인으로 잘못된 생활 태도, 평소의 악행, 신의 저주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병의 원인이 미생물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평소에도 병을 막기 위해 올바른 습관을 들이기 힘들다. 잘못된 직관 이론이 우리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것이다.

직관 이론은 현재 상황을 대처하는 이론으로서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협소하고 설명 방식 또한 얕다. 반면에 과학 이론은 과거에서 미래까지, 관찰할 수 있는 것에서 관찰할 수 없는 것까지 전체적인 것을 다루며, 세상에 대한 인과 관계를 이야기한다. 과학 덕분에 더 정확한 근본 원리를 터득하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번영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과학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우리 또한 그에 걸맞는 방식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사회에서는 과학에 대해 무지해도 그럭저럭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오늘날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학에 대한 기본적 능숙함도 필요하다. 기본적인 과학 개념도 이해할 수 없다면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인가? 현대의 삶의 방식은 과학에 의존하고 있기에 우리는 과학의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 즉 직관 이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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