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 민족주의와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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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민족주의와 동아시아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8.26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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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11강_ 이욱연 서강대 교수의 「중화 민족주의와 동아시아」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관련 현안을 짚어보는 두 번째 섹션 ‘오늘의 동아시아’ 제11강 이욱연 교수(서강대 중국문화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중화 민족주의와 동아시아


이욱연 교수는 “중화 민족주의라는 중국 부상 시대 중국에 등장한 새로운 민족주의 조류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시진핑 시대를 이전과 다른 시대로 보는” 단절론적인 시각을 넘어 “시진핑 시대 중국”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는 “중화 민족주의라는 현상을 통해 중국 부상 이후 중국의 거시적 흐름을 조망하고, 이러한 중국에 동아시아는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를 검토”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할 때에 “중국 부상 이후 중국 저류에 흐르는 거시적 흐름이 시진핑 시대 들어 어떻게 지속하고 변화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으며 또한 비록 큰 방향은 “중국공산당이 주도”하더라도 그런 움직임에 “중국 지식인과 대중 역시 또 다른 주도자이거나 적극적인 동참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를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중국 민족주의의 변화이자 새로운 양상으로서 중화 민족주의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동아시아 차원에서, 특히 한국 차원에서 생각”해보기를 시도한다. 

 

지난 7월 29일, 이욱연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11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머리말

이 글은 중화 민족주의라는 중국 부상 시대 중국에 등장한 새로운 민족주의 조류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단절론적 시각을 넘어서서 시진핑 시대 중국을 고찰하고자 한다. 중화 민족주의라는 새로운 민족주의 현상을 통해 시진핑 시대 중국을 조망할 때,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첫째, 중국 부상 이후 중국 저류에 흐르는 거시적 흐름이 시진핑 시대 들어 어떻게 지속하고 변화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둘째, 중화 민족주의의 양상을 분석해보면, 그 거시적 흐름을 중국공산당이 주도하지만, 이런 흐름에는 중국 지식인과 대중 역시 또 다른 주도자이거나 적극적인 동참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부상 시대 중화 민족주의가 관방 민족주의와 대중 민족주의의 결합 산물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가운데, 시진핑 시대 중국을 분석할 때 관방과 민간 혹은 대중을 분리하거나 대립적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 중국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의 궁극적인 관심은 중국 민족주의의 변화이자 새로운 양상으로서 중화 민족주의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동아시아 차원에서, 특히 한국 차원에서 생각해보는 일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중국의 새로운 민족주의를 중화 민족주의로 부르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중국 민족주의 성격과 양상에 새로운 변화가 있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다만, 그 기점을 시진핑 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중국 부상 이후 연속 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났고, 시진핑 시대 들어 정점에 이르렀다고 보는 점에서 다르다.

아울러 이 글에서는 중화 민족주의의 핵심 구성 요소를 두 가지로 본다. 그 첫째 구성 요소는 중국공산당의 새로운 정체성, 그리고 중화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 구축이다. 중화 민족주의 두 번째 구성 요소로 이 글에서는 중화성 회복을 들고, 그 의미를 분석할 것이다. 여기서 중화성(中華性, Chineseness)이란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중국적인 것, 중국식, 중국 고유함 등, 중화 문명과 중국 현실의 특수함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2. 중국 부상 시대 중화 민족주의의 중국 상상

1) 치욕 역사 기억의 부상과 새로운 정체성 구축

한 국가나 민족이 다른 국가나 민족에게 겪은 치욕스러운 역사 경험은 민족주의 성장에 좋은 토양이다. 그 치욕이 식민 경험이나 전쟁 등과 관련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근대 시기 제국주의에 반(半)식민 경험이 있는 중국의 경우 치욕적 역사 경험은 그 자체로 민족주의의 좋은 토양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그런 치욕 역사 경험이 민족주의 토양으로 작용하는 데 조금 더 독특한 문화적 배경이 있다. 자신을 가장 수준 높은 문화를 지닌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중화주의 문화 전통, 여기서 연유하는 높은 민족적 자존감, 문화적 유전자로서 중국인의 체면 의식, 그리고 그러한 자존감과 체면이 손상당했을 때 느끼는 치욕감과 그 치욕을 씻고 기어이 원상태로 되돌리려는 갚음 의식 등, 일련의 중국 문화의 핵심 요소들이 결합하여 치욕적 역사 경험이 중국의 독특한 민족주의로 발현된다. 21세기 중국 부상 시대에 등장한 중화 민족주의가 바로 그러한 중국 민족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이 부상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사명으로 등장하면서 중국 근대 100년 동안의 치욕 기억에 관한 서사가 부상하였다. 그런데 중화민족의 부흥이란 말은 시진핑 시대에 중국몽과 결합하면서 극적인 전환을 맞는다. 1990년대 이전에 중국 지도자가 애용하던 단어는 중화민족을 부흥시킨다는 ‘부흥중화(復興中華)’가 아니라 ‘진흥중화(振興中華)’였다. ‘진흥중화’라는 구절은 글자 그대로 중국을 발전(invigoration)시킨다는 의미이다. 중국이 원래 지니고 있었다가 상실한 중국의 국제적 지위와 모습을 부활(rejuvenation)시킨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부흥과는 다르다.

‘진흥중화’에서 ‘부흥중화’로 변한 것은, 중화를 수식하는 단어 하나가 변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는 중국공산당의 역사 인식 변화, 그리고 중국공산당의 정체성 변화가 맞물려 있고, 중국몽 시대 중화 민족주의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화민족 부흥의 논리는 <화려한 전통 시대—근대 치욕과 고난 시기—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 실현>이라는 역사 인식이 바탕이다. 진흥중화의 논리는 <화려한 전통 시대—낙후—발전>의 구도다. 중흥이 발전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면 부흥은 회복에 대한 갈망과 원래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를 담고 있다. 중흥이 발전을 통해 치욕을 씻겠다는 논리라면, 부흥은 과거와 같은 세계적 지위 회복을 통해 치욕을 씻겠다는 논리다.

이렇게 중화민족을 부흥시키려는 의지가 커질수록 위대한 시대에서 멀어졌던 아편전쟁 이후 100년 동안에 겪은 치욕의 기억 역시 강하게 부상하였다. 근대 중국이 겪은 치욕을 씻는 일이 곧 중화민족 부흥이고, 중국몽 실현의 대전제이다. 시진핑 시대 중화민족 부흥 논리 구도는 <화려했던 전통 시대—근대 치욕—중화민족의 부흥>이다. 이는 중국 전통문화 속 치욕 서사 패턴인 <정상적인 삶—치욕—발분 노력—성취 혹은 복수>의 중국몽 버전이다. 시진핑 시대에 중국 근대 치욕의 기억과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중국몽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렇다면 중국공산당이 이렇게 중화민족 부흥과 함께 그 동전의 양면처럼 치욕 기억 서사를 사용하는 것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중국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을 중국인에게 새롭게 각인하기 위해서 자신을 중화민족의 부흥을 실현하는 정당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중국인에게 어필하려는 것이다. 중국인이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서사를 이상적 인격과 이상적 삶의 한 과정처럼 수용하는 가운데 중화민족 부흥 비전을 제시하면서 강국을 추구하는 중국공산당을 이상적 인격이자 이상적인 중국 문화의 원형으로 정당화, 인격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둘째, 중화민족의 부흥과 치욕 서사를 통해 사회주의 중국 차원의 인민 공동체를 넘어 중화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고, 대중화공동체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중화민족의 부흥과 치욕 서사를 바탕으로 한 중화 민족주의는 인민보다는 중화인이라는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사회주의 중국 수립 이후 사회주의와 인민은 늘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인민보다 중화민족을 상위에 설정하고 있다. 중화의 부흥을 도모하는 중국몽 시대 중화 민족주의는 국민이나 인민이 아니라 중화인 만들기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주체 구축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민족주의다.

 

2) 중화성과 중국적인 것의 추구

중국몽 시대 중화 민족주의의 치욕 기억 서사는 민족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원래 상태를 회복하려는 자기 치유 기제 차원인가? 아니면 치유의 궁극적 실현 과정으로서 치욕을 가한 타자에 대한 복수로 열려 있는가? 중화성 회복은 자기 치유를 위한 기제인가 아니면 서구를 향한 보복적 공격 기제인가?

개혁개방 이후 1980년대 중국을 지배한 것은 신계몽주의였다. 신계몽주의 인식 구도에서 중국은 어둠이자, 봉건적이고 낙후된 현대화 이전으로 상상되지만 서구는 빛이자 (후)현대로 이상화되었다. 현대화는 중국 지식인만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이 추구하는 최대 정책 목표였고, 현대화와 서구화는 하나로 인식되었다. 중국에서 이런 신계몽주의 분위기에 전환이 일어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먼저 지식인 사회에서 계몽이라는 서구 근대성 이식을 비판하면서 중화성이라는 화두를 제기하였다. 이제 중국은 그 대안으로서 중화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탈식민주의를 수용하여 서구 중심을 해체하고, 중화성을 회복하여 중국을 새로운 중심으로 재구성하자는 도전적 주장이었다.

2000년대 이후 중국 경제가 성장하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중국적인 것 재발견 흐름이 중국 지식인 사회에서 주류로 등장했다. 그 흐름의 주요 갈래는 크게 셋이었다. ⑴서구 근대성(현대성)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한 중국 근대성(현대성)의 추구. 신좌파 조류. ⑵중국 전통 사상과 유교의 재발견. 문화 유교, 정치 유교, 좌파 유교 등 유교 부흥을 주창하는 흐름. ⑶중국 전통 질서와 정치, 사회 원리, 중국 역사 경험을 재발견하는 흐름. 

중국 고유의 역사 경험과 가치를 재발견하는 이런 역사주의적 중화성 재발견 주장은 근대 중국 상처의 치유라는 수세적 성격과 중화성으로 서구 근대성을 대체하려는 공세적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 지식인 사회에서 제기된 갖가지 중화성 재발견 주장은 중화성 회복을 통해 지금 세계 질서를 대체하여 새로운 미래를 열겠다는 미래 기획이다. 서구 근대 보편을 해체하고 중화 문명의 특징과 중국의 특수한 경험을 서구 근대 제도와 가치에 대한 대안으로 상승시키려는 것이다. 

 

3. 중화 민족주의 시대 중국, 동아시아는 어떻게 개입할까?

중화 민족주의는 서구 근대 제국주의의 침략 논리를 중국식으로 전도한 것이다. 중국몽 시대 중화 민족주의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근대 민족주의가 지닌 배타적이고 억압적인 측면을 중국식으로 복제하고 있다. 이러한 중화 민족주의 시대 동아시아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어떻게 중화 민족주의 시대 중국에 개입해야 하는가? 

현재 동아시아의 상황은 중화 민족주의의 반서구 근대 기획에 동조 분위기보다는 중국에 대한 비판을 넘어 혐오가 넘친다. 그런데 중화 민족주의가 동아시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하여, 동아시아에서 혐중국이나 반중국으로 중국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친미국 반중국을 추구하는 것이 유일하고, 효과적인 대응책인지는 깊게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동아시아가 중화 민족주의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무게를 더하려면, 지금 중국이 추구하는 것을 동아시아 보편 지평에 두고서, 그것을 중국의 문제이자 동아시아에 출현했거나 앞으로 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민족주의 유형으로 보고서 대응할 필요도 있고, 지금 중국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지점을 근대 극복이라는 차원에서 모색할 필요도 있다.

그럴 때,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동아시아 사상적 자원 가운데 하나가 일본 전후 진보 지식인이자 중국 근대 작가 루쉰(魯迅) 연구자인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가 서구 근대의 충격 속에서 동아시아 근대 일본의 길과 중국을 길을 비교하는 가운데 루쉰의 저항에 주목한 점이라고 본다. 다케우치는 동아시아가 서구 임팩트에 대응하여 근대화하는 방식을 둘로 나눈다. 하나는 전향형(轉向型)으로, 일본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의 길로, 회심형(回心型)이다. 전향과 회심의 가장 큰 차이는 저항의 여부다. 일본은 저항이 없이 서구를 향해 움직이면서 자신을 버린다. 자신을 버리면서 새것으로 자신을 대체한다. 이에 비해 회심은 자신을 지키면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다케우치 문제의식의 핵심은 서구 근대의 충격 속에서 동아시아가 어떤 길을 가야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암시를 제공한다. 그가 말하는 동아시아의 저항은 결국 이중의 저항을 의미한다. 서구적인 것을 부정하면서 중국적인 것은 긍정하는 저항도 아니고, 서구적인 것을 긍정하면서 중국적인 것을 부정하는 저항도 아니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동아시아가 주체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노예와 주인 구도에 비유하여 설명하는데, 동아시아가 주인인 서구를 따라서 더 서구적으로 되어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이런 식의 해방 시도는 노예 의식에 찌든 것으로, 노예와 주인 사이 위치만 바뀌었을 뿐 노예 의식은 여전하다고 본다. 다케우치는 이를 “노예와 주인은 같다”라는 루쉰의 말로 비판한다. 다케우치 문제의식의 핵심은 노예에서 벗어나 주인이 되려고 하는 해방의 꿈과 열망보다 중요한 것이 노예와 주인이라는 구도 자체를 넘는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인간을 여는 데 있다는 점에 있다. 그래야만 진정 새로운 주인이 탄생하고, 세계가 새로워진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시각은 중국 부상 시대에 동아시아가 중국에 개입할 때, 어떻게 개입할지에 대한 시사를 준다. 동아시아의 중국 비판이 중국에 설득력이 있으려면, 한국과 일본이 중국에 대한 우월 의식과 비하 의식을 바탕으로, 중국을 혐오하거나 중국이 한국과 일본을 추월하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갖는 차원을 넘어서서 중국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일본이 중국이 가려는 근대주의적인 발전 노선을 가는가 하면, 한국에서도 중화 민족주의와 유사한 한민족 민족주의가 대두하고, 일본에서도 자신을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희생자로서 정체성을 구축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victimhood nationalism)가 대두하는 한, 한국과 일본의 중화 민족주의 비판은 중국에 설득력이 있기 힘들다. 일본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한국이라도 중국과 다르게 새로운 문명적 대안을 창출하고, 그런 한국 모델의 우월함을 통해서 중국에 개입하고 비판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우월함은 모범적이고 인간다움에 기반한 문명적 우월함이어야 한다. 이는 한국이 중국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길이자 동시에 그 과정에서 한국을 개혁하는 이중의 과정이다. 한국의 중국 비판이 중국이 스스로 배우고 싶은 한국모델을 창출하려는 한국 사회 변혁의 동력으로서 작동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법은 “중국과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삶의 질 경쟁 혹은 문명 경쟁을 하는 것이, 중국을 대하는 최선의 길이다.”

중국이 갈수록 부강해지는 시대에 한국이 중국에 역전당할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면서 자기 파괴적인 혐오만 할 것이 아니라 중국이 본받고 학습하고 싶은 한국 모델을 만드는 일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한국은 중국에 무엇인지를 묻는 말만 과잉인 시대에, 중국에 한국은 무엇인지를 물으면서, 경제 차원에서 중국보다 경쟁력을 지니는 것을 포함하여, 중국보다 나은 한국을 어떻게 만들지를 절실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중화 민족주의와 동아시아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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