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상태바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 박광기 대전대·정치학
  • 승인 2023.08.20 13: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광기 칼럼]

시대와 환경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고 결국 도태하기도 한다. 그래서 경쟁력을 갖추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을 세우고 변화를 선도해가야 한다. 만약 변화를 직시하지 못하고 변화에 대항하려고만 한다면 그 결과는 모조리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오고 결국 소멸의 위기를 맞게 된다. 흔히 말하는 이런 상황이 지금 우리 대학, 특히 지방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시작된 입학정원 미달의 문제가 등록금 동결, 대학 구조조정, 대학의 경쟁력 약화 등 여러 가지 다른 문제들과 결부되어 결국 대학의 존폐위기까지 거론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대학의 위기가 감지되었지만, 이런 변화의 조짐이 현실에서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애써 부정해왔다. 학령인구의 감소가 대학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대학의 입학정원 조정도 대학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교육부의 교육정책의 탓이며, 등록금 문제도 경제 상황이 나아지고 정부의 정책이 변화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우리 사회에 이미 굳게 뿌리내리고 있는 대학의 서열화는 수도권 대학으로의 집중현상으로 나타나 지방대학의 위기를 더 가속화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만 보면, 지금 직면하고 있는 대학의 위기, 특히 지방대학의 위기는 사실 대학이 스스로 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위기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를 따지고 책임을 묻기에는 너무도 현실이 엄중하고 시급하다는 것이다. 당장 2학기 시작과 함께 대학들은 수시모집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 이번 신입생 모집에 미달사태가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자의든 타의든 대학이 스스로 변화해야만 하고, 그 변화를 통해 대학이 스스로 살아남을 방안을 찾아야만 한다. 한 마디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대학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정부가 이런 변화와 위기를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대응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원망스럽고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위기를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시급하고 다급하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는 연간 200억씩 총 5년간 1,000억을 지원하는 글로컬대학30 지원사업을 통해 대학이 스스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15개 대학이 예비 선정되었고 10월 말 10곳 내외의 대학이 최종 선정된다. 예비 선정된 대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동안 우리 대학이 해보지 않은 새로운 계획과 구상이 들어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는 대학 간 통합도 있고,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의 연합, 대학 내 강도 높은 구조조정, 특성화 등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학생의 자율적인 전공선택권을 보장하고, 학과와 전공의 폐지, 학사제도 및 교육과정의 과감한 변화의 내용도 들어 있다. 문제는 글로컬대학 지원사업의 실효성과 효과성은 차치하더라도 과연 교육과정과 학사제도의 획기적 전환이 과연 우리 대학의 현실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과거 독일의 대학은 법학, 의학, 사범대학 등 특수한 전공분야를 제외하고 학생들이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대학 간 편입학 및 전과가 언제든지 자유로운 학사제도를 택해왔다. 교육과정 역시 미국이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각 학과나 전공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학점제도가 아니라, 기초과정(Grundkurs), 준 세미나(Proseminar), 본 세미나(Hauptseminar) 과정을 이수하고 졸업논문이나 시험을 통과하면 졸업하는 제도를 택해왔다. 물론 각 과정에 우리와 같은 학년별 및 전공별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학생들은 스스로 전공을 설계하고 그에 맞추어 수업과 실습을 들어야만 했다. 마치 지금 우리 대학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고 있는 제도적인 혁신의 모습과 내용 그대로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독일학생들이 입학 후 적어도 2-3년은 자신이 전공할 전공과 부전공을 택하기 위해 방황하고 이곳저곳을 헤맨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입학 후 졸업까지 최소한 6~8년이 소요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학부과정에서 다양한 전공을 경험하는 것은 후에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독일과 같이 기본적으로 학비가 없는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독일 역시 통일이후 학생들이 장기간 대학을 다니는 것이 사회적인 부담으로 작용하여 교육개혁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과도한 계획이 결국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당장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추구하는 시도가 오히려 대학의 존립을 어렵게 하지 않도록 대학의 사정에 맞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박광기 대전대·정치학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독일 뮌헨대학교 정치학 박사. 대전대 대학원장 및 도서관장, 국무총리실 인문사회연구회 및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 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장, CBS 시사포거스 및 시사매거진 앵커, 한국정치정보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