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중국의 천하관과 신천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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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의 천하관과 신천하주의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8.19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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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10강_ 조경란 연세대 교수의 「21세기 중국의 천하관과 신천하주의」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관련 현안을 짚어보는 두 번째 섹션 ‘오늘의 동아시아’ 제10강 조경란 교수(연세대 국학연구원)의 강연 중 서론과 결론부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21세기 중국의 천하관과 신천하주의
- 시진핑 체제의 ‘지배 서사’: 천하주의, 대일통, 지정학 -


조경란 교수는 “서방 자유주의 질서가 쇠퇴 일로에 있는 반면, 권위주의가 상승 국면에 있다는 판단” 아래 중국이 “경제뿐 아니라 정치 체제 등 소프트파워 측면에서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보며 “테크놀로지의 토대 위에 마르크스주의(당의 영도)와 전통(천하)이라는 두 가지 기둥을 세우려는” “종합적 미래 구상”의 ‘지배 서사’ 전략을 꾀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중국의 인문사회과학의 ‘지배 서사’를 담론화”할 때, “75년의 공산주의 문화에 주목”하는 시각과 “중국 전통의 복원력(resilience)에 집중해야 한다”는 관점 사이의 “긴장에 직면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은 “복합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중국 지식인들이 펼치는 지배 서사에 대한 갑론을박이 21세기라는 시대에 얼마나 타당한지”, 특히 중국 정부가 제시한 “‘인류운명공동체’(2012년), ‘아시아운명공동체’(2015년), ‘중화민족공동체’(2017년)”에 대한 그들의 담론이 “공산당의 정책을 분식해주는 패권적 이데올로기에서 머물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어 칸트의 ‘영구평화론’처럼 제도적 상상의 원천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지” 묻는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국제정치 학자들의 대(對)중국 논의와 일본 철학계의 반응이 어떠한지를 비교, 검토하는 가운데 한국인의 시각”에서의 판단을 시도한다. 

 

지난 7월 22일, 조경란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10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서방 자본주의+민주주의’ vs. ‘중국 마르크스-레닌주의+천하주의’

중국은 2022년 10월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 이어 2023년 3월 제14기 1차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 전인대)를 통해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3연임을 확정했다. 아울러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49년까지 로드맵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그간 발표해온 ‘인류운명공동체’(2012년), ‘아시아운명공동체[亞洲命運共同體]’(2015년), ‘중화민족공동체’(2017년)를 바탕으로 하여 세계 패권 국가 구상을 밝힌 것이다. 세계를 겨냥한 글로벌 전략, 개발도상국과 주변 국가를 포함한 아시아 전략, 중국 내부의 통합 전략 등 세 차원의 중장기적 계획이 드러난 셈이다.

21세기 패권 국가가 되는 데는 과학기술 베이스의 하드파워가 중요하지만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소프트파워다. 소프트파워의 중심에 신천하주의가 있다. 이번 20차 당대회를 통해 중국공산당은 자본주의의 민주주의 대 중국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천하주의라는 대립 구도를 천명했다. 이 대립 구도에서 이들에 의하면 전자는 패도고 후자는 왕도다. 테크놀로지의 토대 위에 마르크스주의(당의 영도)와 전통(천하)이라는 두 가지 기둥을 세우려는 것이 중국의 종합적 미래 구상이다. 이 대립 구도에서 중국의 전략을 ‘지배 서사’라 부른다.

중국의 인문사회과학의 ‘지배 서사’를 담론화할 때 두 가지 시각 사이의 긴장에 직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중국 현대 문학의 거두 첸리췬(錢理群) 교수는 75년이라는 긴 시간을 통해 ‘독자적 체계’를 갖춘 ‘당 문화’ 속에서 “중국적 특색을 지닌 당대의 중국 지식분자”가 형성된 것으로 본다. 반면, 중국의 회복력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마오쩌둥주의의 처참한 사회적 실험보다는 수천 년간 지속된 국가 문명의 오랜 역사와 훨씬 더 관련이 있다는 미국 학자의 견해도 있다. 전자는 75년의 공산주의 문화에 주목해야 하고, 후자는 중국 전통의 복원력(resilience)에 집중해야 한다는 쪽이다. 나는 양자를 동시에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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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배 서사’, 21세기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는가 - ‘신이단’: 거자오광(葛兆光), 왕페이링(王飛凌), 첸리췬(錢理群)

시진핑 3기 체제에서 ‘중화민족공동체’, ‘아시아운명공동체’, ‘인류운명공동체’가 공식화되었다고 말했다. 이 3세트 공동체는 모두 공동체라는 말을 붙였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팍스 시니카를 향해 있다는 오명을 피하기 힘들다. 

문제는 지식인들의 논의다. 21세기적 성찰을 발견할 수 없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중국학자들의 마인드와 서술 방식이 문제일 수는 있다. 이들 사고의 기본 구도가 호불호의 차원이거나 종교와 신념 차원의 접근이지 학문적 접근 방식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중국이 진정 ‘왕도’를 실천하는 좋은 나라가 되어 영향력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과감하면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중국 지식계에 소수지만 이러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거자오광, 왕페이링(王飛凌), 첸리췬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현재 중국 지식계는 ‘정통’과 ‘이단’으로 구분되어 있다. 천하 담론과 ‘대일통’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다수의 지식인이 ‘신정통’이라면 ‘국제 질서 모델’을 주장하거나 현재 중국의 지식 환경이나 조건을 문제 삼는 이들 세 지식인은 ‘신이단’에 속한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춘추공양학파와 춘추좌전학파로 갈린다. 전자는 화이를 따지지 않고 ‘세계주의적’이며 따라서 팍스 시니카의 추구와 모순 없이 결합 가능하다. 이들은 천하와 ‘정치 유학’을 강조한다. 후자는 존왕양이를 따지며 ‘심성 유학’을 주장한다. 결국 주자의 심성 유학이 ‘신이단’이 된 아이러니한 형국이다. 설상가상으로 시진핑 3기에서 사상의 통일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런 구분을 부추기는 요소다.

 

질서 모델 분류표

                                    * 출처 – 21세기 중국의 천하관과 신천하주의: 열린연단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75년에 걸쳐 만들어진 ‘공산주의 문화’다. 공산주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지식 환경과 조건을 메타인지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에서 ‘살아 있는 이단’이라 할 수 있는 첸리췬은 “중국적 특색을 지닌 당대의 중국 지식분자”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같은 조건에서 중국 특색의 지식인 집단도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들은 장장 75년 동안 이미 독자적인 체계를 갖춘 ‘공화국 문화’, ‘마오쩌둥 문화’, ‘당 문화’ 속에서 창출됐다. 따라서 첸리췬은 ‘중국에 대한 재인식’이 사실상 중국과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사상, 문화, 학술의 중대한 과제가 되었다고 강조한다.

이와 다른 견해도 있다. “중국을 노골적으로 거부할 것이 아니라 중국을 이해하고 중국의 경험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겸허하게 평가해야 중국의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미국과 가장 큰 차이는 중국에서는 통솔이 잘되는 정당이 규율의 연속성 속에서 중단 없이 수십 년에 걸쳐 슬로건 내용을 시행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성공 비결을 공산당 규율의 연속성과 실행 능력에서 찾는 것이다.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 기술과 정치의 불일치는 점점 심화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기술만 있고 정치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 시대, 미국 민주주의의 철저한 부패로 인한 정치의 실종, 이러한 현실에서 중국의 경우 자극제는 될 수 있을지라도 대안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현재의 비극이 존재한다. 국가든 개인이든 그 어느 것도 믿을 수 없으니 각자도생만이 있을 뿐이다.

중국은 우리가 새롭게 질문해야 하는 대상이다. 왜냐하면 어쩌면 미국을 대신하여 세계를 ‘지배’하게 될지도 모를 가능성을 지금으로선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중국공산당의 프로젝트를 뒷받침해주는 이데올로기인 천하주의나 지정학 담론을 추종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개입하고, 대안을 고심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월러스틴(Immanuel M. Wallerstein)의 지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유럽적 보편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그 극복태로 어느 하나를 즉자적으로 지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단 하나의 위험한 대안은 보편적 가치들에 기초했다고 주장하지만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가 기존의 세계 체제에서보다 십중팔구 더욱 사악하게 우리의 관습을 계속해서 지배하게 될 새로운 위계적 불평등의 세계다.”

 

5. 맺는 말 - 한국,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은 19세기 중후반 아편전쟁,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후 180여 년 동안 와신상담 끝에 이제 다시 우주 최강의 패권 국가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중국의 경제 성장과 규모의 경제가 역설적으로 지성의 붕괴, 문명의 절멸까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국 체제의 강국화 전략이 정치 이외의 모든 부분을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중국의 통치 상황을 ‘지성사적 위기’로 규정한 바 있다. 

천하주의와 중화주의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담지하고 있는 중국 지식인 일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를 대상화시키지 못함으로써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자기 객관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자기를 대상화하고 현단계 세계 지식의 구조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종합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국가의 크기와 무관한 학문적 역량이다. 그러나 중국의 학문은 국가의 크기와 경제 성장에 매몰되어 그 역할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인다. 학문의 크기와 국가의 크기는 비례 관계가 아니다. 국가는 방대하지만 학문은 왜소한 경우가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사실상 중국발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구상은 중국의 안에서의 시각만이 아니라 중국의 밖에서 중국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나올 수 있다. 즉 ‘메타인지’를 통한 자기 직시가 가능할 때 비로소 중국에 대한 새로운, 객관적 서술이 가능해질 것이다.

시진핑 3기 체제가 내놓은 세 종류의 공동체론과 그것을 이론적으로 분식하는 천하 담론에는 법고(法古)만 있지 창신(創新)이 없다. 단순한 ‘자기 회귀’일 뿐이다. 21세기 중국의 길이 세계와 아시아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전통 시기의 그것보다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21세기 중국만의 보편이 아니라 새로운 보편을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지금은 1989년 냉전 해체 이후 최대의 변곡점이다. 그러나 한국은 매우 한가해 보인다.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 사이에 위치한 한국(또는 한반도)은 세계사와 아시아의 역사를 깊이 인식하되 진보 보수 진영의 갈린 시각으로 구축된 이념의 장막은 걷어내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국제 질서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로 재편되고 있다. 권위주의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 한국은 그 바로 옆 나라이다. 그렇기에 중국은 지경학, 지정학에서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우리는 중국과 상생과 공존을 위한 실리 외교를 펼쳐야 한다. 동시에 한반도는 중국에 인접하고 있기에 미국이나 유럽이나 심지어 일본과도 다른 심급으로 중국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은 중국의 큰 그림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치, 경제, 학계 등 민관이 모두 참여하는 다양한 트랙을 가동하여 그들과 협력해야 하는 것은 협력하고 모호하게 해야 할 것은 모호하게 해야 하고 비판해야 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 중국을 볼 때도 전통 시기를 기준으로만 보아서도 안 되며 75년 동안의 공산주의 체제로만 봐서도 안 된다. 둘을 복합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이 전통-현대의 복합 구상으로 미래를 구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제까지 통용되어온 ‘중국 인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서방의 중국 인식과도 차별화되는 한국의 ‘새로운 중국 인식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빅픽처를 디자인해야 한다.

한국은 선진국이 되었는데도 자기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 인문학을 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이제 한국은 4대 강국에 갇힐 것이 아니라 그들을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 위에 올라타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전처럼 주변 강국에 대책 없이 휘둘리던 때와는 체급이 달라졌다. 이제 선진국이라는 ‘자각’ 아래 한국의 시각에서 과감하면서도 세밀한 세계 구상과 전략이 나와야 한다. 이것이 있다면 주변 강국의 ‘변칙적’ 움직임에도 원칙적이면서도 동시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21세기 중국의 천하관과 신천하주의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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