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 10주년 기념 공연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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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뮤지컬, 10주년 기념 공연의 의미
  • 최승연 뮤지컬평론가
  • 승인 2023.08.15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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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연의 〈뮤지컬 인사이트〉

 

2022년 한국 뮤지컬 시장 티켓 총매출이 4천억 원을 넘어섰다. 이는 코로나 이전보다 높은 수치다. 사실 코로나 시대 이전부터 한국 뮤지컬은 로컬 시장의 한계에 자주 부딪혀왔다. N차 관극, 마니아 관객 중심 시장이라는 특성이 매우 뚜렷하여 폭넓은 대중적 확산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 말 처음으로 4천억 원 시장 규모를 넘어섰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점이 코로나 시대와 맞물린 것이다. 이에 대하여 코로나 시대의 반사적 효과라고 해석하는 관점이 우세하다. 약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극장 출입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뮤지컬의 라이브니스(liveness)를 즐기지 못했던 대중 심리가 반영된 일시적인 상승효과라는 해석이다. 이를 증명하듯 2023년 8월 현재 작년 대비 약 84.5%의 매출을 보이고 있다. 

2022년 뮤지컬 시장은 대극장 뮤지컬과 중소극장 뮤지컬 위주의 대학로 뮤지컬로 양분되어 있었다. 이는 오래된 현상이지만 작년에는 그 양상이 더욱 뚜렷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작품성과 흥행력이 이미 증명된 레퍼토리가 시장을 이끌었다는 특징을 보였다. 올해는 다소 양상이 다른데,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것은 시장이 활력을 되찾아 창작과 라이선스 양편에서 신작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창작 뮤지컬로는 202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청춘소음>, <앨리스>, <다이스>,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 그리고 EMK뮤지컬컴퍼니의 <베토벤>을 시작으로 국립정동극장의 <비밀의 화원>, 우란문화재단의 음악극 <백인당 태영>, 라이브러리컴퍼니의 첫 뮤지컬 <빠리빵집>, 신시컴퍼니의 쇼뮤지컬 <시스터즈>(9월~11월 공연 예정), 오랜 기획 기간을 거쳐 연말 공연 예정인 일본 만화 원작 <베르사유의 장미>(EMK뮤지컬컴퍼니)가 눈에 띈다.

라이선스 뮤지컬로는 아이엠컬쳐의 <식스 더 뮤지컬(Six the Musical)>과 쇼노트의 <멤피스(Memphis)>, <컴 프롬 어웨이(Come From Away)>(11월 공연 예정)가 주목된다. 소극장 뮤지컬은 대학로와 정동극장을 통해 올해 유독 많은 신작을 내고 있는데 <일라이>, <98퍼센트>, <신이 나를 만들 때>, <쁠라테로>, <수레바퀴 아래서>, <보이A>, <오즈>, <신의 손가락>, <제시의 일기>,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등이 라인업을 채우고 있으며 작년 12월부터 올해 초까지 공연된 신작을 합하면 더 많은 작품이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신작이 많이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뮤지컬은 개발 이후 초연을 완료하고 긴 흥행 기간을 거칠수록 이윤이 발생하는 특징을 갖고 있어서 신작 초연은 항상 위험 부담 속에 있다. 오픈이 되기 전까지 작품에 대한 시장의 진짜 반응을 알 수 없을뿐더러 초연 이후 재연까지 이어지는 제작 과정에 작용하는 많은 변수들은 초연 이후의 상황을 더욱 예상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신작이 시도되는 시장의 활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2023년 초연들, 특히 창작 초연들의 성과를 되짚어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특히 ‘시장의 활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동력이 신작에서 마련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성과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시장에 새로운 자극이 주어질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며 이에 대한 답은 결국 뮤지컬 시장의 다양성과 건강함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올해 신작 창작 뮤지컬의 라인업이 전부 공연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일 수 있으나, 현재까지는 신작보다 재연 이상의 공연들에서 더 큰 시장의 활기를 느낀다. 또한 신작 중에서는 라이선스 뮤지컬의 참신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영국 튜더 왕조의 절대 권력 아래 희생당했던 헨리 8세의 아내들 6명이 팝스타처럼 등장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식스 더 뮤지컬>, 흑백의 인종 갈등과 젠더 경합 이슈를 교직시키고 이를 로큰롤과 리듬 앤 블루스 음악으로 담아낸 <멤피스>, 그리고 9·11테러 이후 동시대의 공동체 문제를 다루는 캐나다발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는 주제 및 양식의 다양성에서 좋은 참고사항이 된다. 무거운 영국의 역사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80분이라는 짧은 런 타임 안에 팝음악으로 풀어내어 지금/여기의 관객이 감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정리한 <식스 더 뮤지컬>은, 뮤지컬의 동시대성을 ‘감각’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로웠다. 

따라서 좀 더 유의미한 양상은 한국 시장의 유니크한 특징을 보여주는 재연 이상의 작품들, 특히 올해 10주년 기념으로 공연되고 있는 작품들에서 보인다. 2022년 <사의찬미>(네오 프로덕션)와 <여신님이 보고계셔>(연우무대)에 이어 올해 <그날들>(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과 <트레이스 유>(스튜디오선데이) 그리고 <레베카>(EMK뮤지컬컴퍼니)가 10주년을 맞이했다. 10년간 공연이 이어졌다는 것은 작품이 꾸준히 흥행력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데 이를 통해 한국 관객의 취향과 공연의 영향 관계 그리고 시장의 흐름 등이 구체적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뮤지컬 [그날들] 공연사진 (제공: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뮤지컬 〈그날들〉 공연사진 (제공: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올해 10주년 작품들에는 대극장 창작과 라이선스, 그리고 중소극장 뮤지컬이 골고루 포진해 있는데, 무엇보다 모두 음악이 흥행의 핵심이다. <그날들>은 김광석의 음악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며 <트레이스 유>는 록 콘서트형 뮤지컬, <레베카>는 실베스터 르베이의 드라마틱한 음악이 돋보이는 오스트리아 뮤지컬이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코어 관객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뮤지컬 마니아들이 확실하게 즐길 수 있는 <트레이스 유>, 김광석의 팬층을 중심으로 일반 관객에게 감수성으로 어필하기 쉬운 <그날들>, 배우의 압도적인 성량을 즐기며 대극장 뮤지컬의 진수를 맛보고 싶은 관객을 위한 <레베카>. 이런 면에서 <그날들>과 <레베카>는 모두 일반 관객에게 진입 장벽이 낮은 대극장 뮤지컬로서 확장성이 큰 작품이라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 작품 모두 흥행의 이유가 음악에만 있지 않다. ‘어떤 테마를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점은 오랜 시간 공연을 끌고 올 수 있었던 매우 중요한 동력이었다. 특이한 것은 세 작품에 모두 ‘추리’의 요소가 들어있다는 것인데, 추리의 플롯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그날들>과 <레베카> 그리고 서사의 모호함으로 흘러가는 <트레이스 유>는 관객이 퍼즐을 풀 듯 관극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차이가 있다면 <그날들>과 <레베카>는 김광석과 히치콕(원작 소설보다 히치콕의 영화 <레베카>(1940)에 더 가깝다)이라는 직접적인 레퍼런스가 있어 추리가 그 자장 안에 존재하고, <트레이스 유>는 모든 넘버가 하나하나 강조되는 록 콘서트의 강렬한 흐름과 이에 대비되는 느리고 모호한 서사의 흐름 안에서 추리가 작동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날들>과 <레베카>는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결말을 향해 움직여 관객이 추리의 결과를 공연 안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트레이스 유>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뮤지컬 〈트레이스 유〉 공연사진 (제공: 스튜디오선데이)

이러한 차이는 대극장과 중소극장 뮤지컬의 생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퍼즐이 풀려 클라이막스 지점에서 명확하게 카타르시스가 작동되는 구조인 <그날들>과 <레베카>와 달리, 서사의 모호함은 해결되지 않은 채 퍼즐에 대한 다양한 해석만 남기고 끝나는 <트레이스 유>는 그 이후 N차 관극을 통해 관객 안에서 여러 버전으로 공연이 완성된다. 우빈과 본하는 사실 한 몸에 갇힌 다중인격이며 약을 통해 한 인격이 다른 인격을 삭제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설정을 축으로 여러 해석의 층위가 쌓이며 공연은 다층적으로 진화한다. 이러한 캐릭터의 관계성에 의존하는 서사는 한국 대학로 뮤지컬의 한 가지 패턴을 대표한다. 

이 패턴의 시작에는 브로드웨이보다 한국에서 크게 흥행한 라이선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2004), <쓰릴 미>(2007)가 있다. 지킬의 어두운 성향을 하이드로 분리시켜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지킬 앤 하이드>와 동성애적 요소와 가스라이팅이 복잡하게 얽히며 ‘그’와 ‘나’의 심리적 경합을 다룬 <쓰릴 미>의 아이디어는 주로 2~3인극으로 제작되는 대학로 중소극장 뮤지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모든 인물이 메인/서브의 개념 없이 자신의 서사로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극의 밀도를 높일 수 있으며, 관객은 인물 사이의 관계성을 추리하기 위해 극에 몰입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쓰릴 미> 초연을 연출했던 김달중 연출이 <트레이스 유>를 다시 연출함으로써 이러한 방식은 창작 뮤지컬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는데, 지난 10년 간 <인터뷰>(2016), <더 픽션>(2018), <트레드 밀>(2022),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2022) 등이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으며 동일한 계열을 형성하였으며 <쓰릴 미> 직후 공연되었던 <후.WHO?>는 <쓰릴 미>와의 매우 투명한 영향 관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올해 신작을 통해 주체, 젠더, 인간애, 치유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다뤄지고 있으며 장애와 AI, 그리고 게임 세계관으로 테마가 확장될 수 있다는 판단이 든다. 이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역사는 특정 계열을 형성하며 레퍼토리로 정착하는 작품들을 조망하고 전망하며 다시 쓰여야 할 시점이 되었다. 


최승연 뮤지컬평론가

런던대학교(로열 할러웨이)에서 연극학 석사, 고려대에서 국어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동아시아학과 객원연구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논저로는 “청년 테마로 본 뮤지컬: 팬덤의 참여욕망과 수행성에 대한 고찰”, “라이선스 뮤지컬의 현지화에 대한 일고찰”, “확장하는 보편, 타협하는 로컬리티”, “해방 후 오영진의 좌표와 음악극 실험”, “만들어진 비애와 감성의 연대”, 『미국 뮤지컬과 국가정체성의 형성』(공역), 『멜로드라마적 상상력』(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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