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 … “일본 제국주의 '국가의 성 관리 체제'에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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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 … “일본 제국주의 '국가의 성 관리 체제'에 주목해야”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8.1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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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 국제학술회의 개최
-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시공간적 연속성과 인식의 단절 검토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번 국제학술회의가 생존자 숫자나 한일관계만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인식해온 것을 성찰하고, 이 문제의 시공간적 연속성 위에서 우리가 확장하거나 누락해 온 것들이 무엇인지 검토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동북아역사재단은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지난 11일(금)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내셔널리즘과 성 동원, 그 연속과 단절: 국가의 성 관리 체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생존자 숫자나 한일관계만을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식해온 것을 성찰하고, 이 문제의 시공간적 연속성 위에서 우리가 확장하거나 누락해 온 것들이 무엇인지 검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는 냉전 체제의 해체와 사회 민주화를 배경으로 1980년대 말 전시 성폭력 범죄로 ‘발견’되었다. 이후 국제사회는 이 사건을 ‘20세기 최대 인신매매 사건’으로 인식했으며, 생존자의 증언은 전시 성폭력에 대한 초국적 기억의 경관을 바꾸어놓았다. 진상 규명, 기억과 추모 활동, 미래 세대 교육 등 이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관련 국가와 국제사회의 꾸준한 노력은 이제 상식적인 일이 되었다. 

1991년 8월 김학순의 공개 증언 이후 30년이 훌쩍 넘었다. 올해는 1993년 8월 ‘본인의 의사에 반한 위안부의 피해 사실 확인과 가해국으로서 일본의 재발 방지 노력’을 공표했던 ‘고노담화’가 나온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러저러한 부침을 겪고 있지만 ‘고노담화’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기본방침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성범죄 재발방지 노력은 얼마만큼 실천되어 왔을까. 이는 현재 국제관계와 일상생활 속에서 ‘인권과 평화’ 규범, 그리고 그 실천 방식을 어떻게 공유하고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지난 과정의 성취와 한계를 돌아보고자 했다.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독일, 미국의 연구자들도 참석한 이번 학술회의가 무엇보다 주목한 지점은 '국가의 성 관리 체제'였다. 일본의 극우세력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부정론자들은 근대 이후 일본에서 시행된 '공창제'(19세기 후반부터 1945년까지 근대 일본의 성 관리 정책)를 들어 일본군 위안부 역시 공창제의 일종으로, 피해자들을 매춘부로 폄하하고 전쟁 성범죄를 자발적인 성매매로 왜곡해 왔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이냐 강제냐'라는 논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자발성과 강제성을 따지는 데 갇히면서, 논의는 국가 혹은 제국주의가 동원하고 관리한 여성의 신체와 성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외면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요컨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의 전쟁터와 점령지라는 시간과 공간에 갇혀 논의되어온 측면이 크다. 이번 회의에서는 이 문제의 본질적 성격을 논의하기 위해 시공간을 가로질러 존재해온 ‘국익을 위한 성 동원’의 실태를 공유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아시아의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로서 19세기 후반부터 대륙 진출을 도모해왔던 근대 일본의 성 관리 체제와 제2차 세계대전기 독일군의 성 관리 사례를 살펴봤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연구 과정에서 성취한 것과 누락한 것이 무엇인지 검토했다. 이로써 내셔널리즘, 제국주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오리엔탈리즘 등을 비판적으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이 문제 해결의 목표에 닿기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 국제학술회의 발표요약】


▶ 발표1: 가라유키상에게/으로부터 보는 성과 권력 … 다케모토 니나(오차노미즈대 젠더연구소)

‘가라유키상’은 19세기 후반 일본의 팽창정책 속에서 성매매를 위해 일본에서 대륙으로 보내진 여성들을 말한다. 일본 정부는 일본인 남성을 위한 여성의 공급과 관리를 우선시하여, 이들에 대한 ‘보호’를 포기했다.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렸던 후쿠자와 유키치가 신문에 "인민의 해외 이식을 장려할 때 특히 창부 외출의 필요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일본의 세력 확장을 위해 성매매를 허가하는 인식을 보일 정도였다. 다케모토 니나는 이 같은 인식이 이후 위안부 제도로 이어졌다고 봤다. 

2001년 하버드대 교수 램지어가 일본군 ‘위안부’의 ‘자발성’을 주장하면서 가라유키상 ‘오사키(オサキ)’ 사례를 들어 초국적 학자들의 반발을 산 적이 있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오사키가 남긴 말을 접할 수 있다. 또한 가라유키상이었던 사사다의 이야기도 육성과 함께 전하고자 한다.

▶ 발표2: 근대 일본에서 본 구미의 성관리 정책 … 하야시 요코(나고야대 젠더다이버시티연구소)

일본군에 의한 전시 성폭력은 세계사적으로 봐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일본의 근대 공창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미국가로부터의 압력과 명령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 자신이 이에 대해 독자적으로 고안하고 결정한다는 의식이 희박했다. 근대 공창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 적이 없었으며, 이러한 태도는 전시기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고안과 시행으로 이어졌다.

▶ 발표3: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의 성 관리 정책과 ‘관리되는 여성’ … 박정애(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일본과 조선의 공창제를 비교하여 성 관리 정책에 반영된 식민주의를 분석한 박정애 연구위원은 "식민지 가부장제와 사회경제적 차별구조 안에 놓였던 조선 여성이 위안부가 되는 과정은 식민주의 폭력구조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군위안부 제도의 특수성은 제국 일본의 성 관리 체제에서 형성된 인신매매 메커니즘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면서, 공창제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제대로 하는 것에서부터 생산적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일본 내지와 식민지, 그 세력권 안에서 차별성을 가지고 시행된 ‘제국 일본’의 공창제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일본 내지의 공창제보다 식민지의 공창제와 성격이 더 유사하지만 현재 ‘위안부’ 피해 부정론을 둘러싼 공박은 일본 내지의 공창제만 시야에 두고 이루어지고 있다. 공창제 또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같은 일본의 성 관리 정책의 식민성은 한국인 피해자의 피해 강조가 아니라 식민지라는 지역 안에서 차별적으로 성 관리 되었던 일본인, 조선인 여성, 그리고 전시기 식민지라는 지역이 활용되는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

▶ 발표4: 나치 독일 국방군 매춘업소와 일본군 “위안소”: 제2차 세계대전의 군 매춘/군 성노예제도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하여 … 레기나 뮐호이저(함부르크 학술문화지원재단)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군인도 점령지에서 여성에 대해 성 착취를 했다. 독일과 일본의 역사적 경험을 둘러싼 우리의 접근방식, 지식 기반 및 논쟁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비교연구가 취약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를 해보면 독일 국방군과 일본군은 ‘남성들의 억제할 수 없는 성적 욕구’를 관리하기 위해 통제된 매춘을 해결책으로 본 것이 공통적이었다. 또한 모두 내셔널리즘, 성차별, 인종차별에 기초하고 있었다. 반면 나치 독일이 성적 위반에 대해 반유태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 금지를 하는데 더욱 엄격했다. 일본의 제도가 독일보다 식민지 권력 구조에 기초한 ‘여성들의 인신매매에 크게 의존했다’는 점도 차이점일 것이다.

 

11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내셔널리즘과 성 동원, 그 연속과 단절'에서 한국, 일본, 독일 등 다양한 배경의 발표자와 참가자들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br>
11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내셔널리즘과 성 동원, 그 연속과 단절'에서 한국, 일본, 독일 등 다양한 배경의 발표자와 참가자들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 발표5: 일본군 ‘위안부’ 담론 안의 ‘오리엔탈리즘’ 고찰 … 로라 현이 강(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이 발표는 설명 패러다임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의 유혹에 저항하는 것으로 우리가 ‘위안부’에 대한 비판적 이해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다. 최근 영어로 쓰인 몇몇 연구들이 ‘위안부’의 불균등하고 감당할 수 없는 힘/이론 구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역사적 문화적 인식론적 차이를 번갈아 비추고 굴절시키며 모호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오리엔탈리즘을 적용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 발표6: 자연스러움에 대하여 – 평화시의 ‘문화’와 전시의 ‘폭력’ … 장수희(동아대)

이 발표는 전쟁과 폭력이 겹겹이 쌓여 있는 세계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자,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같이 전시 성폭력과 민간인의 노예화가 “전쟁 중이기 때문에 늘 있는 일”로 인식되게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다. 가해자들이 어째서 스스로의 가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중층적 가해주체들을 분명히 하고 이 억압주체들이 시스템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 발표7: 여성사로서 일본군 ‘위안부’ 연구와 일본인 ‘위안부’의 불가시화 문제 … 후지메 유키(오사카대)

이 발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보기 어렵게 하는 일본 연구에 대한 비판이다. 첫째, ‘위안부’와 ‘공창’의 차이를 강조하는 언설은, 일본인 ‘위안부’를 불가시화하거나 왜곡해왔다. 둘째,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비합법적 요소’에 대한 과잉 강조이다. 셋째, 일본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외국군 사례는 일본군에 비해 심각하지 않았다는 언설의 위험함이다. 역사적 실태를 직시하면서 연구자들이 초국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후지메 유키는 "공창제도와 위안부의 연관성은 뚜렷하며, 일본군 위안소는 1930년대 이후 전쟁 속에서 군, 내무성, 외무성이 연계하여 설립한 것이며, 따라서 정의상 공창제도에 다름없다"라며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더욱 국가가 사죄와 배상을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 발표8: 확장과 누락: 전시 성폭력 연구에 대한 고찰과 제언 … 백재예(메사추세츠 주립대)

최근 연구에서 전시 성폭력을 구성하는 가해와 피해의 외연은 확장된 반면, 그것을 둘러싼 맥락적 요소들은 파편화되고 누락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경험은 그 시기의 일본과 같은 추축국이 저지른 범죄행위로서, 현대 내전의 정치적 동학과는 단절적인 것으로 다룬다. 이 연구들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불처벌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흡했던 전시 성폭력 인식과 국제법적 규범, 그리고 냉전이라는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불가능했던 것으로 평가한다. 또 현대의 발전된 정치, 사회, 법적 구조와는 질적으로 다른 단절된 ‘과거’ 경험으로 호명되는 경우가 많다. 전시 성폭력 연구의 목표가 가해예방과 피해로부터의 회복 및 정의구현이라는 실천적 목표와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확장된 담론의 외연과 역사적 맥락을 더욱 적극적으로 연계하여 전시 성폭력에 대한 다층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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