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적 자본주의와 역사학
상태바
야수적 자본주의와 역사학
  • 김학이 동아대 사학과 교수·독일사
  • 승인 2023.08.14 03: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술 에세이]

 

                                          이미지 출처: EBS 다큐프라임_자본주의 1부 캡처

내가 진행하는 대학의 서양 근대사 수업에서 ‘자본주의의 대두’를 건너뛸 도리는 없다. 그에 대한 연구와 정리가 쌓여있기에 수업 자체도 어렵지 않다. 내용 대부분은 마르크스주의적 계급론이 차지하지만, 나는 청교도들의 세속적 금욕주의가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막스 베버의 이론도 빠뜨리지 않는다. 개신교도들의 ‘문화’가 자본주의 ‘경제’를 낳았다는 그의 주장은 강의할 때마다 새롭다 못해 신기할 정도다. 그리고 나는 역사가이기에 그 주장을 거의 본능적으로 역사화하려 한다. 그래서 베버가 그 주장을 펼친 1910년대의 독일과 그가 속한 지식인 집단을 더듬어본다. 1910년대의 독일은 대기업 공장 노동이 경제현상을 각인하기 시작한 나라였고, 영국 경제학이 한계효용법칙을 개념화하고 수요공급 곡선을 그리던 그때 독일의 ‘역사학파 경제학’은 공장 노동에 의한 ‘노동자의 탈영혼화’ 현상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경제는 나라마다 독특한 윤리적 공동체의 한 단면이었다. 그처럼 경제는 그저 경제가 아니라 문화였던 것이고, 베버는 그 문제의식을 근대 초의 자본주의에 투영했을 것이다.

그 독일 지식인들의 관심은 결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18/19세기에 독일 관념론은 신이 없거나 없다고 가정된 세상에서 윤리적 인간을 어떻게 생산할 것이며, 개인으로 원자화된 세상에서 윤리적 공동체를 어떻게 구축할 것이냐는 문제에 깊고 집요하게 천착했다. 기독교 전통 외에 그 문제의식이 1900년경의 베버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재앙이 닥친다. 1차 대전과 패배라는 파국과 세계대공황이라는 파탄에 직면하여 독일은 지식인이든 정치가든 나라와 민족을 도덕적으로 혁신하는 문제에 매달렸고, 그때 제시된 답안 중에서 가장 많은 독일인들이 지지한 버전이 나치즘이었다. 그리고 그 인종주의 도덕 공동체의 내용은 타자의 무차별적인 학살이었다. 그러나 도덕 공동체에 대한 독일인들의 관심은 나치 독일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 독일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기도 한 ‘사회적 시장경제’는 윤리적 경제를 내용으로 한다.

내가 잘 아는 바는 아니지만, 영국도 관심은 매한가지였다. 다만 걸어간 길이 달랐다. 토머스 홉스가 인간의 욕망을 윤리의 피안에 둔 이래 그 나라는 정치적 급진주의이든 공리주의이든 자유롭게 욕망을 추구하는 개개인에게 어떻게 공적인 기회의 평등을 제공할 것이냐는 문제에 매달렸다. 이는 19세기에 실시된 각종의 개혁으로, 특히 그 나라의 전통에 낯선 제도인 공립 초등학교의 일반화로 나타났다. 더욱이 자기도 모르는 채 산업혁명을 하다가 세계의 공장이 되어버린 그 나라의 빅토리아 시대 자본주의는 축적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그들의 “젠틀맨 자본주의”는 한편으로는 귀족에게 접근하느라 신규 산업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만들기도 하였으나, 사회적 효과는 무척 긍정적이었다. 소위 “젠틀맨의 명예”는 용기와 모험이라는 기존의 귀족적 명예 코드 외에 개인의 정직성, 순수성, 책임감, 품위, 타자에 대한 배려, 한마디로 개인 각자의 도덕적 완성이라는 가치를 더했다. 더욱이 그 모든 덕목이 공적으로 현시되어야 했다. 이는 구별짓기를 통하여 계급적 동질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주장하는 전략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준에 합당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보편적 기준이기도 했다. 최근에 구 식민지 출신이 그 나라의 총리가 된 것은 영국의 자본주의가 사회적 이동성 문제에서 얼마나 유연한지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나는 조선 시대의 한국이 동아시아 3국 중에서 도덕적 질서가 가장 엄정하고 도덕적 이상이 꿋꿋했던 나라로 알고 있다. 그 면모는 19세기 말에서 오늘에 이르는 시기에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것 같다. ‘동도서기’를 위하여 서양문명이 고도의 도덕 문명이라는 사실은 백안시하고 그들의 근대성을 물질과 기술로 등치시킨 것도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그것을 쫓다가 우리는 어느덧 돈을 도덕 그 자체로 여기게 되고, 그렇게 한계에 도달한 게 아닌가 한다. 최근에 내가 OTT 플랫폼으로 시청한 한국의 재벌 드라마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한국의 재벌은 법을 법으로 알지 않음은 물론 무한히 부도덕하고 무한히 무례하다. 간간히 세간의 주목을 끄는 재벌의 행태,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고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부었다는 뉴스를 보면 재벌 드라마에 일정한 진실 가치가 들어있는 것 같다. 그러나 놀랍게도, 재벌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비웃고 분노하지만 동시에 은근히 쪼그라들어버린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그들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들은 나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언제라도 나를 일회용 물건처럼 파괴할 수 있으니까. 그 수동성이 얼마나 생생한지 재벌 드라마가 혹시 그것을 고의적으로 겨냥한 것은 아닌지, 내가 그토록 경멸하는 음모론이 스멀스멀 올라오기까지 했다.

 

                                                             사진 출처: 경향신문

최근에 접한 사회학자 김주환의 대학생 인터뷰 분석은 한국의 청년들이야말로 수동성으로 관통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청년들은 내 나이 또래와는 달리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는커녕 자신을 “외적인 힘에 떠밀리고 패배할 숙명”으로 표상하고 있었다. “‘헬조선’, ‘탈조선’, ‘수저계급론’, ‘망한민국’,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노오력’, ‘N포 세대’ 등과 같은 표현들이 시사하듯,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탈피할 수 없는 유사 신분제의 중세 사회로 체험한다.”(김주환, 「숙명적 비극의 시대, 청년들의 절대적 고통 감정과 희생자-신 되기의 탈정치」, 『사회와이론』, 제36권, pp. 49-92) 야수적 자본주의의 희생자들이다.

수동성으로 관통되어 있는 동시에 미래를 암울하게 느낀다면 어떻게 활로를 열 수 있을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의 연대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느끼는 그들에게는 그것은 길이 아니다. 남은 방법은 자아 및 자아의 확대인 가족 및 동문들 속에 옹송그리며 파묻히는 것이 하나요, 강자들과 한 패가 되는 것이 다른 하나다. 그러나 강자들에게 빌붙는 것도 그들에게 선택되어야 가능한 일, 현실은 강자와 힘을 숭배하는 한편 사회적 약자들에게 혐오와 폭력을 쏟아내는 것일 터이다. 강고한 계급성, 자아에의 몰두, 현실에 대한 분노, 힘에 대한 숭배, 약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 – 아주 전형적인 파쇼적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의 일베가 파쇼가 아닌 것은 그들에게 평등주의적 비전이 결여되어 있고, 앞으로도 그것을 갖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껏해야 산업사회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흔해빠진 유사 파쇼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이 위험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악은 똑같은 모습으로 출현하지 않는다. 언제나 시대에 걸맞은 형태로 나타난다. 대중정치적으로 작동하는 권위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매일 체험하고 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한국인들 일반의 의식, 특히 미래관이 궁금해졌다. 인간은 과거에 대한 해석과 미래에 대한 기대 속에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특징적이게도, 아니면 전형적이게도 한국의 내로라하는 미래 연구 기관들은 한국인들의 미래관을 조사하기보다 한국의 미래전략을 짜는 데 힘을 쏟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의 조사는 인터뷰 대상자들에게 내가 원하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다.”라는 항목에 대한 2018년의 답변에서 매우 찬성이 15.7%, 찬성이 46.3%, 이도저도 아니다가 26.8%, 반대가 8.6%, 매우 반대가 1.8%였다. “귀하는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까?”에 대한 답변에서 그렇다가 59%, 아니다가 37.5%였다. “나는 어떤 다른 나라 사람이기보다도 한국인이고 싶다.”에 대해서는 무려 77.%가 그렇다고 답했다. 아니다는 겨우 4.7%였다.

 

                                            사진 출처: EBS 다큐프라임_자본주의1 캡처

그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미래를 그처럼 낙관하고 또 자부심을 갖는다면, 응답자에 포함되어 있는 20대 역시 자신의 미래는 암울하게 느끼면서도 한국이라는 나라의 장래는 낙관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는 내가 나의 학생들에게서 개인적으로 얻은 답변과도 일치한다. 요컨대 한국의 청년층은 자기 개인의 미래는 비관하고 민족의 미래는 낙관하는 시간성의 균열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수동성에 그 분열된 시간성이 교차하면 어떤 효과가 날지 자명하다. 나만 불행하다는 울분과 분노와 폭력, 그래서 유사 파쇼적 인간의 강화. 도대체 한국의 청년들은 어떻게 해서 자신의 미래는 비관하면서 나라의 미래는 낙관하게 된 것일까? 나처럼 중학교 때까지 시냇물에서 천렵을 하고 개구리를 잡아먹다가 오늘엔 어느덧 휴대전화로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단타를 하기에 이른 사람들이 기술주의적 미래를 낙관하는 것은 지당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20대 청년들은 2000년경에 태어난 세대다. 개인적으로 겪은 과거의 가난이 현재와 미래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물론 한국의 ‘선진국’ 경제가 그들에게도 긍정적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나, 그것조차 과거의 가난과 비교할 때야 효과를 배증시킨다. 요컨대 한국의 역사학이 그들에게 보여준 과거(historiography)가 한국의 미래를 낙관하도록 했을 것이다.

시간에 따른 삶의 변화와 미래의 관계는 겉보기와 달리 그리 간단치는 않다. 18세기에 서양에서 처음으로 시간이 변화로 의미화된다. 그전의 서양은 변화를 몰랐다. 그래서 예컨대 ‘근대’의 독일어 표현은 지금도 ‘신시대(Neuzeit)’이고, 따라서 근대성의 본질적 특징은 나날이 새롭게 변화하는 삶이다. 논리적으로, 문제는 변화가 현재의 가치를 파괴한다는 데 있다. 변화가 본질이라면 미래는 현재와 선연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현재 사회의 불안정과 파탄이다. 그러나 근대사회가 전통사회보다 더 파탄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학 이론을 이해할 도리는 없지만, 17/18세기 상호성 담론에 대한 그의 분석은 내게 중대한 통찰을 안겨주었다. 변화의 지속은 변화를 안정시킬 기제가 필요한 바, 그중 한 기제는 변화를 ‘발전’으로 의미화하는 데 있다. 돈이라는 추상적 매체가 자본축적을 강화하면서 역으로 축적이 돈의 작동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그 예다. 그 시점에 정립된 자유, 평등, 인간다움 같은 ‘근본개념’들도 똑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 설명은 한국의 역사학이 산업화 과정에서 행한 역할도 납득시켜준다. 한국의 역사학은 좌파이건 우파이건, 한국사이건 동양사이건 서양사이건, 대중에게 민족을 실체화하는 동시에 나라의 ‘발전’을 선언하고 입증해왔다. 최근에 내가 학생들과 함께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가보니, 동학 농민들이 추후의 독립운동은 물론 20세기 후반 한국의 민주주의와 21세기 K-Pop과 직결되어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발전사관이다. ‘발전’, 즉 미래의 긍정적 변화는 의당 현재의 사회를, 즉 사회적 갈등을 완화한다. 그 시각에서 보면 독재정권에게 저항했던 한국의 좌파 역사학조차 민주화의 강력한 축인 동시에 개발독재의 동반자였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다. 앞서 인용한 서베이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심각한 계획을 하기엔 미래가 너무 불확실하다.”는 항목에 대한 2013년의 답변에서 매우 동의가 16.8%, 동의가 41.7%, 반대가 16.8%, 매우 반대가 2.5%였다. 한국인들은 막연한 미래에 대해서는 긍정하지만 구체적인 미래에 대해서는 매우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20대 청년들의 경우는 그 정서가 역사(historiography)에 대한 염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방의 여러 대학에서 사학과가 없어진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심각한 것은, 여러 대학에서 수강신청 학생이 격감하여 교양에 편성된 역사 과목이 줄폐강되고 급기야 강의 목록에서 아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질문해보니, 학생들은 역사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라 뻔해서 싫다고 답했다. 중고등학교 때 죽어라고 암기한 발전사관이 대학에 와서 자세하게 반복되기만 하니 지겨운 것은 당연하다.

 

역사학이 바뀌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는 서양 역사학도 현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서양의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이 시간성(temporality) 연구에 진력한 결과 새로운 인식들이 축적되고 있다. 서양에서 발전적 미래관이 처음으로 붕괴된 때는 1차 대전 직후였다. 파시즘과 나치즘과 공산주의는 그때 집권했다. 서양의 미래는 2차 대전 이후 안정을 되찾았다가 1970년대에 완전히 닫혀버린다. 그러자 미래의 리스크를 현재에 산입하는 동시에 과거를 현재와 등치시킨다. 결과는 압도적인 현재주의(presentism)이다. 그 웅변적인 표현이 인류학에서는 인류세이고 역사학에서는 빅히스토리다. 그처럼 역사적 시간과 역사적 세계의 고유성이 삭제되자, 역으로 과거가 곧 현재라는 착시도 나타난다. 유럽 곳곳에서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커버린 극우는 외국인 망명자의 대량 유입 때문만이 아니다. 유럽 각국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이탈리아정신’ ‘독일정신’ ‘프랑스정신’ ‘스웨덴정신’이라는 형이상학적이고 비역사적인 망령도 중대한 원인이다. 더욱이 1989/90년 소련의 몰락 이후 평등의 자리에 도덕이 들어서자, 선악 이분법에 따라 자국의 역사를 열심히 재해석한 독일이 최근에는 급기야 “도덕적 강대국”을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나치야말로 도덕적 우월성을 한시도 의심하지 않지 않았던가. 물론 현재의 독일은 나치와 달리 ‘보편적’ 도덕을 표방한다. 그러나 보편이라는 것이 한두 발자국만 헛디뎌도 폭력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제국주의를 겪은 나라들이라면 너무나 잘 안다.

한국의 지극한 발전사관과 서양의 지극한 현재주의에 대한 처방전은 역사세계의 고유성을 확립하거나 되찾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 각 시기의 고유성과 가능성들을 토대로 하여 현재의 고유성과 가능성들을 생산하는 것이다. 역사적 현재는 서양처럼 현재에게 과도한 부담을 얹거나 우리처럼 과거를 줄 세워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 예를 나는 언뜻 힐끗 엿보는 한국 문학에서 발견한다. 장중한 문체로 과거를 현재로 만들어 인기를 얻는 소설가들도 몇 명 있지만, 내가 아는 한국 작가들 대부분은 역사를 숭고화하기보다 사람들의 구체적인 슬픔과 고통을 안아준다. 과거를 미학화하더라도 근대성으로 질주하는 양상들을 그려내기보다, 인습에 매인 아버지, 부모의 사랑을 독점하는 아들, 아들의 출세와 배신, 오빠 때문에 중학교도 가지 못했지만 오빠의 사랑 독점을 당연시하는 여동생, 그 여동생의 은밀한 열망과 아버지의 폭력, 아들에 대한 애끓는 사랑 때문에 그리고 또 인습적인 가부장주의 때문에 남편에게 도전하지는 못하지만 딸의 팔자가 안타깝기만 한 어머니. 역사는 그 열정들과 그 모순들을 그 시대의 조건에서 그려내야 한다. 그러면 역사학도 문학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전의 시대는 갔다. 발전은 가진 자들만을 더더욱 강화할 뿐이다. 필요한 것은 공감이고, 공감은 고유한 과거의 식별과 그에 입각한 현재의 성찰에서 얻을 수 있다.


김학이 동아대 사학과 교수·독일사

지은 책으로 『나치즘과 동성애. 독일의 동성애 담론과 문화』(문학과지성사, 2013), 『감정의 역사. 루터의 신성한 공포에서 나치의 차분한 열광까지』(푸른역사, 2023)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개마고원, 2008), 니콜라스 스타가르트, 『독일인의 전쟁. 편지와 일기에 담긴 2차 대전의 전투, 전쟁범죄, 폭격, 내면의 성찰』(교유서가, 근간)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