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앞으로 어떻게 자기 존립을 정당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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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앞으로 어떻게 자기 존립을 정당화할 것인가?
  • 김혜숙 이화여대 명예교수·철학
  • 승인 2023.08.1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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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직설]

세상이 빠르게 변해 가고 있다. 내가 오랫동안 몸 담았던 대학의 환경도 경쟁이 심화되고 권위의 기준이 변화하면서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 코로나로 앞당겨진 디지털화는 대학 소멸론까지 나오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양한 교육 솔루션과 디지털 교육 콘텐츠의 개발, AI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 변화에 우리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번 정부는 교육, 연금, 노동 개혁을 하겠다고 나섰다. 교육 개혁의 방향은 돌봄, 디지털 교육, 대학 개혁으로 정해졌다. 7~8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서구 대학의 변천과정을 들여다보면 국가와 교회에 버금가는 제3의 권력으로 대학이 존립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종의 지식인 길드 조직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자율과 자치의 성격을 강화해온 대학은 지식과 학문 공동체의 규범과 기준을 만들고 축적하면서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학문의 발전은 자유로운 정신활동이 보장되는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지식을 활용하여 산업을 일으키고 발전시키게 되면서 지식공동체가 산업, 국가, 자본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현상이 강화되었고 대학의 자율적 특성은 쇠퇴하게 되었다. 돈이 되지 않는 연구, 돈이 없는 연구자, 부국강병이나 사회 실천과 연관이 없는 연구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순수한 지적 호기심보다는 문제해결 능력과 직업적 실효성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문명 시대를 맞아 대학의 연구는 과학과 기술 관련성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그와 관련되는 최첨단 연구의 규모와 비용은 대학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고 있다. 대학의 특허품이었던 연구조차 이제 대학 밖에서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거나 적어도 산학 또는 산학관의 연계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큰 규모의 과학과 기술의 연구는 대학 밖으로 나가고 실습이나 인턴십 또한 대학 밖으로 나간다면 대학에는 무엇이 남을 것인가? 지금 인터넷 공간에 돌아다니고 있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강좌들에 대해 대학은 어떤 경쟁력을 내세울 것인가? 인터넷과 다양한 매체의 발달, 통신 기술의 발달은 교육이나 의료를 더욱 더 ‘서비스’ 개념으로 바꿀 것으로 보인다. 사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지만, 어느 순간 학원과 대학과의 차이가 불분명한 시대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우리 사회의 사교육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까?  

대학이 기업의 연구기관이나 학원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면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이 살아 있는 곳, 또는 살아 있어야 하는 곳이라는 점일 것이다. ‘자유로운 정신활동’이란 무목적적인 정신활동을 말한다. 원래 인간의 생명 활동은 무목적적이다. 우리는 그냥 살기 위해 태어나고 죽음 앞에서는 모두 자연인이다. 정신 활동도 기껏해야 ‘살아야 한다’는 삶의 목적에 봉사할 뿐 무목적적이다. 

보이는 것들에 관해 왜 그런지를 묻고 할 수 있는 한의 설명을 하고자 하며, 가능한 한 끝까지 추론을 밀고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인간 정신의 특성이다. 대학은 자유로운 정신이 살아있어 끊임없이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내고 실험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대학에서의 이런 활동이 있기에 새로운 산업도 일어날 수가 있는 것이고 기업연구소 같은 곳도 기능할 수가 있는 것이다. 국가기관과 기업이 사용하는 창의적 연구능력을 함양시키는 곳이 대학이 아닌가? 

교육은 사회를 밑받침하는 공공재적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으며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특정한 목적을 잘 수행하는 역량을 키우는 교육기관도 필요하고 대학도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엇보다도 대학의 바탕은 강제되지 않은 살아있는 최상위 정신활동에 놓여있다. 이것을 잃는다면 대학은 존립할 필요도 없고 존립할 수도 없으며, 모든 대학이 미국의 University of Phoenix처럼 된다한들 별로 아쉬워할 일도 없게 될 것이다. 

영리 목적으로 출발하여 24시간 온라인 수업을 돌리는 University of Phoenix는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비상장 법인의 형태로 운영되는 것으로 아는데 대학을 회사처럼 운영한다. 종신교수제를 없애고 모든 교수는 계약직이다. 우리가 아는 대학이라기보다 지식회사, 지식학원에 가깝다. 역량을 키우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적 자원을 생산해내는 전진기지로만 대학을 본다면 이런 형태가 효율적일 것이다. 돈을 내고 학생이 필요한 정보와 지식, 기술만 사이버 교육을 통해 습득하면 되니 수능이나 학생종합기록부 같은 것이 큰 의미가 없을 것이고, 우리가 겪고 있는 교육 문제도 많은 부분 해소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미국의 테크기업들에서는 직원들이 직장으로 출근하는 것을 거부하고 재택근무를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비슷한 논리로 온라인 수업을 경험한 학생들 또한 ‘왜 학교를 가야 하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대학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이런 근본적이지만 어려운 질문들을 마주하고 있다. 답을 찾으려면 질문을 해야 하고 제대로 질문을 하려면 물음과 문제의 영역을 정확히 설정해야 한다.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김혜숙 이화여대 명예교수·철학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이화여대 제16대 총장을 지냈다.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분석철학회 회장, 한국여성철학회 회장,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 한국철학회 회장, 국제여성철학회(IAPh) 이사, 세계철학연맹(FISP) 이사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칸트: 경계의 철학, 철학의 경계』, 『新음양론』, 『예술과 사상』(공저), 『포스트모더니즘과 철학』(편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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