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메두사와 생명의 팜므 파탈에 대한 어원학·문헌학·문화사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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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메두사와 생명의 팜므 파탈에 대한 어원학·문헌학·문화사적 고찰!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8.08 0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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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두사와 팜므 파탈: 지혜와 생명의 여성 | 권석우 지음 | 청송재 | 414쪽

 

이 책은 저자가 세 권으로 기획한 여성을 매개로 한 삶과 죽음의 우로보로스적 동일성과 비가역성에 관한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다. 지혜를 상징하는 메두사와 생명을 상징하는 팜므 파탈에 대한 어원학적·문헌학적 고찰과 더불어 일부 문화사적 고찰을 담고 있다.

저자는 기획한 세 권의 저작에서 여성을 통해서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이 다시 삶이 되는 현상을 추적하고 있으며, 여성적 동물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뱀과 이에 상응하는 태양계의 별자리인 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이라는 ‘우로보로스’의 원(圓) 또는 원융(圓融) 현상을 파헤치고 있다.

이번에 출간한 제2권 『메두사와 팜므 파탈』은 2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미 발행한 제1권 제1부 1~4장까지에 이어 제2부 5장부터 8장까지, 그리고 제3부 9장부터 10장까지이다. 제1권에서는 주로 여성과 죽음, 생사에 연관된 종교적인 전통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면, 제2권인 이 책은 삶의 여성이 어떻게 죽음 등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서양의 역사에 출몰했는지에 관해 논구한다. 

특히 저자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표상했던 여성이 19세기 말에 이르러 죽음의 여성으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과 세기말 하면 떠올라 이를 대표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된 팜므 파탈이 히브리 문명의 릴리스와 살로메, 수메르-메소포타미아의 이슈타르와 유디스, 그리고 그리스의 메두사는 물론이고 근현대 독일에 이르면 룰루라는 엽기적 인물로 역사에 등장하여, 남성의 삶을 앗아가는 소위 ‘치명적 여성’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파괴적 심상으로 굳어져 갔는지를 추적한다.

결국 메두사와 팜므 파탈은 그 어원과 기원을 추적해 들어가 보면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혜와 존재 자체를 상징했던 메두사는 제우스보다 먼저 역사에 출몰한 전쟁과 지혜 그리고 존재의 여신 아테나와 연결되고 있으며, 메두사 등을 아우르는 세기말의 유행어 팜므 파탈은 신전여사제 혹은 탁선무녀, 그리고 넓은 의미에 있어서는 생명의 여성과 관련이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지혜와 생명의 여성〉이라는 부제로 제시한 이 책의 주제는 따라서 전적으로 죽음의 여성이 아니라 삶의 여성에 관한 논의이다.

이 책은 지혜의 메두사와 생명의 팜므 파탈을 통하여 여성의 유실된 이미지를 복원하는 작업이기도 한데, 제5장은 여성성과 이와 연관된 생명·죽음과의 상관성을 여성의 근원이자 에센스로 여겨지는 여성 성기에 대한 성찰이다. 달의 “이움과 참”(wane and wax)이 여성의 임신과 월경(月經, menses)으로 체현되는 과정을 추찰하면서 인류는 죽음을 넘어 삶을 다시 기약하고 있었으니, 예수를 잉태한 “신성한 원천으로서의 흠 없는 자궁” 또한 여성의 생물학적 자궁임이 분명하다고 필자는 추론한다. 또한 이 제5장은 여성 성기를 지시하는 우로보로스의 신물인 뱀과 그것의 상상적 변형인 메두사에 대한 분석으로 채워져 있다

제6장과 제7장에서는 메두사에 대한 양가적인 판단, 즉 추함과 거세로서의 메두사에 대한 인상적 논의와 더불어 그녀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에 대한 표현과 예찬이 함께 있어 왔음을 이와 관련된 시문학과 회화 작품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드러낸다. 그리고 아름다운 메두사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은 8장에 이르러 신화 속에 나타난 메두사를 역사적으로 복원하는 작업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 제2권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III부는 여성을 죽음과 동일화하는 부정적 관념이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라는 현상을 낳게 했던 유럽을 위시한 서양의 19세기 말에 관한 연구이다. 제9장에서 저자는 세기말의 회화와 문학에 관한 단편적인 성찰을 통하여 여성을 파멸과 죽음의 에이전트로 보는 현상이 세기말에 극점을 이루어진 현상을 고찰하는 가운데, 뱀이라는 심상을 넘어 이제는 강-바다인 물과 달과 죽음, 그리고 모성과 여성과의 어원학적 상관관계뿐만 아니라 말(馬)로도 표현되는 시간의 속성과 여성에 관한 젠더 관련성을 니체와 하이데거, 바슐라르 등 다양한 이론가들의 견해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추적한다.

제10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가능케 한 유럽의 시대상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세기말, 데카당스, 신여성, 팜므 파탈의 어원과 기원에 대한 추적뿐만 아니라 팜므 파탈의 세기말적 징후의 하나이기도 한 창녀의 창궐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필자는, 니체적 의미의 “여성적 삶” 또는 “삶이라는 여성”(vita femina)에 일견 함축되어 있는 여성 비하의 의미를 넘어서, 팜므 파탈의 원래의 의미인 ‘생명의 여성’, 즉 팜므 비탈(femme vitale)의 복원 가능성과 그 필요성을 논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도달하고 있는 결론은 ‘삶과 죽음이 대대적으로 꼬아진 우로보로스의 끈’이라고 말하는 서양 문명의 우로보로스적 사유 즉, 여성이 삶이고 죽음이고 재생과 부활이며, 그러한 여성성을 매개로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이 다시 삶이 되는 것은 허상이며, 여성이 여성이듯이 죽음은 죽음이고 전쟁 또한 전쟁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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